밤을 낮으로 살라!

11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14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롬 13:11-14)

대림절, 예수님의 오심을 (다시)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기

오늘부터 ‘대림절’(待臨節)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전례력은 1월이 아니라 대림절부터 시작하기에, 오늘부터 교회의 새해가 시작된 셈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도록 이 절기를 제정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은 2천여 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初臨)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종말’(終末)에 다시 오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再臨)이라고 부릅니다. 대림절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어떤 분에게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심’이라는 말은 ‘지금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라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심’과 ‘현존’(現存)은 ‘상호모순처럼 보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분명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심’은 문자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대림절의 ‘오심’은 이미 여기 계신 분의 오심입니다. 예수님은 2천여 년 전 성탄절에 ‘임마누엘’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는 다시 ‘성령’으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항상 우리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했을 때 우리 가운데 (첫 번째로) 예수님이 왔습니다. 또한 우리가 모여 예배할 때, 함께 기도할 때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성만찬 예식 때, 빵과 포도주 가운데 현존하는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런 기회 저런 기회에 우리에게로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여기에 그리스도교 신자인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전례력을 시작하는 대림절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저는 그 이유가 ‘망각(忘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공기(空氣)’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을 잊고 살 때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도 비슷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현존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그것을 잊고 살아온 우리에게 교회는 전례력의 새해를 출발하면서 예수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훈련으로 신앙생활을 갱신하라고 대림절을 둔 것입니다. 교회력의 리듬에 따라 예수님의 오심을 다시 기다리며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오래된 미래’나 ‘걸어온 새길’이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신앙생활의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답대로 살지 못하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대림절은 그런 우리를 다시 ‘출발선’에 서게 합니다. 그 출발선에서 우리 신앙의 ABC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모시는 훈련을 하게 합니다. 예수가 우리와 함께하심을 ‘의식’하게 하고, 예수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의도’하게 합니다. 그런 자세로 다시 1년을 살게 합니다. 아무쪼록 대림절을 통해 신앙생활의 첫 단추를 다시 잘 끼우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때—카이로스’

오늘 본문은 성서일과(RCL)가 대림절 첫 번째 주일 서신서 본문으로 제시한 말씀으로 사도 바울이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본문은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11절). 여기 쓰인 ‘때’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그리스어에서 때나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로 ‘크로노스’(χρόνος)도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시계로 계측할 수 있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이에 반해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시간, 곧 ‘결정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이 ‘결정적인 시간’에 그리스도인들은 잠에서 깨어나야만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처음 믿었을 때보다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원’(salvation)은 무엇을 말할까요? 우리가 로마서를 읽을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를 바울 당시—1세기 ‘로마제국이라는 맥락’(context)에 놓고 본문을 해석해야지, ‘16세기 교회개혁기의 맥락’에 놓고 본문을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대림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고, 예수의 오심은 예수를 모심(=받아들임)과 깊이 연관되기에, 구원을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해석틀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성서가 말하는 구원은 16세기 교회개혁 이후 현대 그리스도교가 이해해 온 것과 매우 다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더구나 ‘번영신학’은 죽어서 뿐만이 아니라,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제시한 ‘삼박자 구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 목사는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는 말씀을 토대로, 영혼 구원, 범사 형통, 육체 강건이라는 세 가지 축복을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설파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구원이라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어찌 됩니까? 하나님이 징벌하고 저주한 사람이라는 말 아닙니까?

성서가 말하는 구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목요성경공부에서 마커스 보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한다󰡕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 공부인데, 구판에 비해 개정판 번역이 훨씬 나아졌고, 또 예전에 비해 참석자들의 신앙이 ‘업그레이드’되어서 참석자는 적지만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 보그는 ‘구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구원은 그리스도교인의 소망과 갈망, 희망, 삶의 목적을 가리키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용어다.

- 성서에서 구원은 내세와 거의 관련이 없으며, 구원은 죽음 이편의 삶에서 맞이하는 변환(transformation)을 뜻한다.

- 구원은 개인적 변환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원은 이 세상의 변환, 곧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원은 개인과 세상의 변환이라는 이중의 변환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구원은 지금과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른 세상으로의 변화를 위해 ‘내가 먼저 변하여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갈망이요, 희망이며 삶의 목적”입니다.

구원은 목표 달성과 관계없이 과정 중에 이미 성취된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은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 중에 있을 때 이미 이루어진다’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상의 변화’나 그것을 위한 ‘나의 변화’가 완성되어야 구원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의 길 위에 있을 때 이미 구원은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울입니다. 바울은 ‘기쁨의 복음서’인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2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빌 3:12-14)

그렇습니다. 바울은 아직 세상의 변화와 자신의 변화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과정’ 중에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왜? 그 이유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20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1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빌 3:20-21)

하나님의 ‘동역자’(co-worker)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기 위해 애쓴 바울은 자기보다 앞서 그 일을 했던 예수가 부활했듯이, 자기도 부활할 것을 믿었습니다. 자격도 없고 능력도 부족한 자기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세상의 변화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했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이 보람과 긍지를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패배자’(loser)입니다. 가난했고, 병들었고, 비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1b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13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 4:11b-13)

그렇습니다. 바울은 패자가 아니라 승자였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자족(自足)하고,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가 어찌 패자일 수 있겠습니까? 단지 그는 힘이 최고라고 추앙받는 세상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을 뿐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지혜와 다른 하나님의 지혜를 가졌고, 하나님의 약함으로 세상의 강함을 이긴 진정한 승자였습니다.

밤을 낮으로 살라!

오늘 증언 제목을 “밤을 낮으로 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당시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온 때”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당시의 로마제국처럼 ‘힘이 최고라고 추앙하는 세상’을 묘사한 말입니다. 깊은 밤에는 어둠에 숨어서 죄가 만연하고 악이 득세합니다. 하지만 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새벽은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그러니 어둠의 자식들처럼 죄에 빠져서 살지 말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밤을 낮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살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살고, 캄캄한 현재에서 밝은 미래를 미리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제가 늘 말하듯이 성서가 말하는 ‘영생’(永生, Eternal Life)은 ‘다음 시대(천국)에서 누릴 삶을 지금 누리는 것’을 뜻합니다. 앞에서 빌립보서가 소개하는 바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죄가 무엇이냐’라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보그의 책은 성서가 말하는 죄를 다음의 세 가지 은유로 소개합니다. ① 교만, ② 태만, ③ 우상숭배. 이 셋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데, 보그는 이 가운데 ‘태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태만으로서의 죄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삶의 결정권을 넘기는 것, 남에게 들은 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그냥 ‘따라가는’ 것이다.

이를 로마서 12장 2절의 표현으로 바꾸면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이 말하는 ‘잠에 빠진 것’은 정확히 바로 이 상태를 가리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힘이 최고라며 힘을 추앙하고 추구하라고 세뇌합니다. 하지만 힘은 우상일 뿐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예수님은 가르쳤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길을 함께 걷자고 우리를 초청하시며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대림절은 그 예수님을 내 안에 다시 모시고, 그분과 함께 나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오래된 미래를 지금 살아내고 걸어온 새길을 다시 출발하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기왕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으니, 다시 세상 풍조 따라 사는 ‘변절’의 길로 뒤돌아가지 마십시오. 빛의 갑옷—예수 그리스도를 입고, 밤을 낮으로 살아내십시오. 그래서 바울이 누렸던 참 기쁨과 감사가 지금 여러분의 것이 되게 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