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새롭게 다시 만나기

1. 예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골로새서 1장 15절은 “예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다(Jesus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라고 증언합니다. 이 증언은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핵심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예수가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는 하나님이 무엇과 같으며 또한 하나님이 무엇에 대해 가장 열정적인지를 계시하며 성육한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일차적인 계시를 한 인격(a person) 속에서 발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결정적 계시가 ‘사람’에게서 나타났다고 보는 그리스도교의 시각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형제 종교인 유대교와 이슬람교와는 달리)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의 결정적 계시는 ‘성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바로 이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고, “그리스도”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가 누구인지를 확언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에서 온 말로, 히브리어 “메시아”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단어는 모두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뜻하며,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에 대한 유대교의 희망을 요약해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름과 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칭호를 나타내 줍니다. 즉, “그리스도(메시아)이신 예수”라는 말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교 신앙은 항상 역사적 예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분이라는 것에 대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우리의 현재 삶에 주는 함축적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역사적 사실들을 넘어서서, 그것의 의미들을 추구하기 위해 씨름하는 데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우회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에서 믿는 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알고 있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알려면 먼저 예수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2. ‘그런’ 예수는 없다!

여러분은 ‘예수’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다음 장의 두 그림, 즉 [그림 1]과 [그림 2] 중에 어느 것이 여러분의 가지고 있는 예수상(像:image)에 더 가깝습니까?

[그림 1]은 멜 깁슨(Mel Gibson)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제임스 카비젤(James Caviezel)입니다. 그리고 [그림 2]는 미국의 과학전문지 󰡔파퓰러 미케닉스󰡕(Popular Mechanics) 2002년 12월호에 실렸던 예수의 얼굴’입니다. 이는 예루살렘 부근에서 발견된 1세기 팔레스타인 사람의 두개골을 바탕으로 당시의 법의학적 지식과 컴퓨터 기술을 총동원하여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모습을 복원한 것입니다. 이 그림 속의 예수는 보시듯이 뭉뚝한 코에 까만 곱슬머리, 짙은 갈색 피부를 한 전형적인 농사꾼의 모습입니다.

이제껏 예수를 파란 눈에 금발을 한 서양 사람이라고 생각해 온 사람은 [그림 2] 속의 예수 모습에 조금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기존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금방 깨닫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예수가 오뚝한 코에 깊고 푸른 눈을 가진 금발머리 서양 청년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림1]                            [그림2]

그런데 우리는 왜 이제껏 그렇게 생각해 왔을까요? 그건 우리가 서양 사람들이 그린 예수상(像, image)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 속에 그려진 예수상이 아닙니다. 생각이나 이론에 그려진 예수상이 더 큰 문제입니다. 소위 서구 신학계가 형성해 온 ‘교리’가 그리고 있는 예수상(像)이 더 큰 문제라는 말입니다. 파란 눈에 금발머리를 가진 예수, 그런 예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껏 서구의 그리스도론이 말해 온 예수, 그런 예수 역시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기존의 예수상(像)과 예수관(觀)의 문제점

(1) 기독교 신앙의 뿌리를 잃어버림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는데, 교회는 그런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포했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선포의 주체’였던 예수가 후에 ‘선포의 대상’으로 바뀌었음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에서는 ‘선포의 주체’였던 예수를 전문 용어로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라 부르고, 후에 ‘선포의 대상’이 된 예수를 ‘신앙의 그리스도’ (faith of Christ)라 부릅니다. 문제는 이 둘 사이에 커다란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같이 사도 바울과 같은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예수가 우리의 그리스도요 구세주다”라는 말로 전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받아들여 자기 신앙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자라게 한 일종의 대모(代母)입니다. 거기에 비해 예수는 기독교를 존재케 한 생모(生母)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기른 정’이라면 예수는 ‘낳은 정’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지난 2천 년 동안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신앙고백만을 되풀이 해 온 것은 낳은 정은 잊고 기른 정에만 만족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도인의 대표적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입니다. 거기를 보면 ‘동정녀 마리아’와 ‘본디오 빌라도’ 사이에 정작 있어야 할 역사적 예수의 삶에 대한 고백이 빠져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만 있지, 예수에 대한 고백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은 주후 5세기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의 거의 모든 종파에서 아무 문제없이 암송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낳은 정은 잊은 채 기른 정에만 만족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는데, 교회는 그런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포했다”는 명제는 ‘신앙의 그리스도’의 뿌리에 ‘역사의 예수’가 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역사의 예수’를 간과한 채 ‘신앙의 그리스도’에만 관심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그 뿌리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예수와 상관없는 그리스도를 신앙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오늘날의 교회를 “예수 없는 기독교”(Christianity without Jesus)라고 부릅니다. 과연 “예수 없는 기독교, 예수 없는 교회”가 진정한 기독교요 교회일 수 있을까요?

(2) 믿음과 신앙생활의 괴리

만약 우리가 ‘역사의 예수’를 뛰어넘어 ‘신앙의 그리스도’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불구로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도식은 예수의 정체성을 정확히 표현한 훌륭한 신앙고백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 예수의 실천과 우리의 실천이 다름을 합리화하는 구실을 제공해 왔습니다. 즉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그리스도니까 그렇게 살 수 있었지만, 나는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니니까 예수처럼 살 수 없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처럼 ‘살기’보다는 예수를 ‘믿기’만 하는 편한 길을 택해왔습니다.

“나는 너희의 그리스도(Christ)는 좋아한다. 하지만 너희 그리스도인들(Christian)은 싫다.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너희의 그리스도와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마하트마 간디(Gandhi 1869-1948)가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유학 시절에 그는 성경, 특히 산상수훈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정신이야말로 수세기에 걸쳐 인도를 괴롭혀 온 카스트 제도에 대한 답이라고 확신하고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를 들으려고 어떤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입구에서 제지를 당했습니다. 문지기는 그에게 예배에 참석하고 싶으면 흑인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교회로 가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너희의 그리스도와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간디의 지적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믿기만 하지, 예수를 닮으려고 하거나 따르려고 하거나 예수가 살았던 삶을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지 살지는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일까요? (‘예수를 살다’는 다소 비문법적인 표현은 ‘예수를 믿는다’는 표현의 상대어로 사용하기 위해 ‘예수의 삶을 산다’는 표현을 축약한 것입니다.)

그 뿌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예수상(像)과 예수관(觀)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인간 대신 죽었다. 인간은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이 있다”는 기존의 그리스도교 교리 때문입니다. 이 교리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기만 하고 예수를 살지 않아도 되는 명분 혹은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라면, 보통 인간은 예수님처럼 살 수 없습니다(cannot). 왜냐하면 보통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만약 예수님이 죄인인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인간 대신 돌아가셨다면, 죄인인 인간은 굳이 예수님처럼 살 필요가 없습니다(need not). 왜냐하면 이미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만약 구원이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지 행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처럼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should not).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행함으로 구원받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이러한 논리가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를 살자!

기독교 역사에서 첫 번째 이단은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을 주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처럼 보이다” 혹은 “~인 것처럼 나타나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어원을 가진 가현설은, 예수는 인간인 것처럼 보였고 인간인 것처럼 나타나기는 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예수는 겉모양만 인간이었지 실제로는 인간이 아니었고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가 “참 하나님”임과 동시에 “참 인간”이었음을 부정한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가현설은 이단사상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기독교의 표준적인 신조처럼 생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는 “참 하나님”이었음은 물론이고 “참 인간”이셨습니다. 크리스마스 사건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크리스마스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초인간, superman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통 인간, 참 인간이 되신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사건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초인간이 아니라 참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던 이유는 “나도 인간이었다. 보통 인간인 나도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것을 몸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가 그리스도다, 구세주다”라는 믿음에만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넘어 예수를 닮고, 닮음을 넘어 예수의 삶을 따르고, 그래서 우리가 삶으로 예수를 살아내는 것, 이것이 우리 믿음 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이어야 합니다.

물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우리네들이 예수처럼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시도도 해보지 않는 것과 시도하다 실패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용납해 주실 뿐 아니라 오히려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고도 그것을 땅에 묻어두었던 종처럼 하나님의 책망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첫 술을 뜨지 않으면 결코 배고픔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닮고, 따르고, 살아내는 것은 멀고 요원한 길이지만, 만약 우리가 이 길을 향해 첫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