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에 관해 생각하는 두 가지 근본 개념’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것은 ‘초자연적 유신론’(supernatural theism)과 범재신론(凡在神論, panentheism)이었습니다. 하나님 개념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신관(神觀)과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 우리의 신관(神觀)과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다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품’(character)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묻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신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충실함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며,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결정짓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하나님의 의인화(擬人化)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의인화(擬人化)

대부분의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전통에서도, 하나님은 흔히 “인격적인”(personal) 존재로 여겨집니다. 즉 인격적인 특성을 지닌 사람과 비슷한 존재라고 말해집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은 인격적입니까? ‘초자연적 유신론’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범재신론’은 ‘하나님’을 별개의 인격적 존재로 지칭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범재신론을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의 의인화(擬人化)를 지양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인화하는 것은 나쁠 게 없습니다. 의인화는 경배와 헌신, 관계를 표현하는 언어의 자연스러운 속성입니다. 다만 하나님에 대한 의인화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초자연적 유신론으로 귀결되고, 그러한 하나님 이해가 갖는 한계들이 뒤따르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무관심한 실재(reality)로 보는 관점이며, 둘째는 하나님을 위협적이고 위험한 실재로 보는 관점이고, 셋째는 하나님을 생명을 불어넣는 자비로운 실재로 보는 관점입니다.

2. 무관심한 하나님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첫 번째 관점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관심하여 기본적으로 우리 일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은 그저 ‘존재할’ 따름입니다. 신에게 성품 따위는 없습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는 것이 신의 속성 또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고대로부터 있어 왔지만 특별히 현대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17~18세기에 하나님의 존재는 확신하지만, 우주는 자연법칙이라는 발견 가능한 질서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고 본 ‘이신론자’가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도 여전히 이러한 이신론적인 이해방식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분리된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그 후로 우주는 스스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있는 창조자입니다. 하나님은 여기 있지 않으며, 우주가 돌아가는 과정에 관여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실제적 무신론”이라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이 우주와 우리의 삶의 과정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보기에 실제적으로는 무신론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는 두 번째와 세 번째 관점은 그리스도인에게 보다 일반적입니다. 즉 무신론적 사고가 아니라 유신론적인 사고입니다. 또한 이 두 가지 방식은 모두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요구와 보상의 하나님

하나님의 성품을 상상하는 두 번째 방식은 하나님을 요구와 보상의 하나님(a God of requirement and rewards)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대 세계의 왕처럼, 하나님은 법률을 제정해주는 분이며 재판장으로서, 그의 요구에 사람들은 반드시 부응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군주적 모델”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방식에서 우리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법적인 언어들을 통해 표현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희생제사와 회개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해결할 길을 마련하셨고, 또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희생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진리라고 믿는 것이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며, 구원의 수단입니다.

이 모델의 극단적인 형태는 “휴거”와 재림의 하나님으로서, 이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구원하지만 인류 대부분은 파멸시킬 것입니다. 이보다 덜 극단적인 형태는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상상해왔던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은 신앙과 행실에 대해서 갖은 요구를 강요하는 존재가 됩니다. 또한 벌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위협적이고 징벌적인 심판관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그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에 부응하려는 삶을 살게 됩니다. 즉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의 요구가 많든 적든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요구와 보상에 기초한 삶, 그 삶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4.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

하나님의 성품을 상상하는 세 번째 방식은 하나님을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a God of love and justice)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서 안에서 자주 강조되는 것으로,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말하기 위해 사랑의 관계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분이며 이스라엘은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을 한 여인으로 의인화시켜서 호세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녀를 꾀어서, 빈들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녀에게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 그녀는 젊을 때처럼… 거기에서 나를 기쁘게 대할 것이다.” 이스라엘을 “너”라고 바꿔 부르면서 호세아는 계속하기를, “그 날에 너는 나를 ‘나의 남편’이라 부르고… 내가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아들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호 2:14-16, 19). 또한 포로상태에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사 43:4). 옛날부터, (솔로몬의 노래라고도 알려진) 아가서(雅歌書)라는 연애시집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혹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는 알레고리 혹은 비유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이것은 신약성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우 잘 알려진 한 구절만 인용한다면, 요한복음 3장 16절의 첫 마디, 곧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라는 구절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사랑과 정의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정의는 사랑의 사회적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의 하나님은 단순히 “친절한”(nice) 분이 아니라 날카로운 분, 곧 사회정의를 향한 열정을 지닌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만물을 사랑하십니다. 단지 나와 너만이 아니라, 단지 우리들만이 아니라 삼라만상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정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계속되는 불의에는 그 마땅한 결과가 뒤따를 것임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이처럼 사랑과 정의로 생각하는 방식에 따르는 기독교인의 삶은, 앞에서 말한 방식, 곧 하나님을 요구와 보상의 하나님으로 생각한 방식과는 매우 다릅니다. 여기서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더욱 자비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은 관계와 변화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불어넣고 살림을 지향하며, 우리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를 바라며, 그러한 변화에 관여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관계로 접어듭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두고 더욱 깊이 신뢰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5. ‘율법의 하나님’ 대 ‘은총의 하나님’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이처럼 서로 대조되는 두 가지 방식을 달리 표현하면, 율법의 하나님(God of law)과 은총의 하나님(God of grace)입니다. 전통적으로 루터가 대조시켰던 이 두 개념은 오늘날 다른 교파의 개신교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이 두 개념 사이의 대조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의 차이점도 아니며,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차이점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이렇게 두 가지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나타나며,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주신 분이며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바울과 루터 그리고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일반적으로 거부했던 “행위”(works)의 하나님입니다. 그들은 대신에 철저한 “은총”(grace)의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신 것은 무조건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믿거나 행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철저한 은총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 너무 자주 오해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흔히 하나님의 은총에 조건을 붙여서, 만일에(if) 당신이 ～을 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받아들이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만일에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만일에”라는 조건

절이 덧붙여지면, 은총은 조건적인 것이 되어, 더 이상 은총이 아닌 것이 됩니다. 이렇듯 자비로운 하나님과 징벌적인 하나님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예외 없이 조건적 은혜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조건적이라면 결국엔 징벌적인 하나님만 남게 됩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밝혀야 할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즉 무조건적인 은총은 우리가 어떻게 천당에 가는가, 혹은 누가 천당에 가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원이 일차적으로 “천당에 가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개념은 잘못 왜곡된 것입니다. 구원의 일차적인 의미를 그렇게 생각하면, 무조건적인 은총이라는 개념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과 신앙과 상관없이 천당에 간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은총은 내세(afterlife)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위한 기초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위한 기초가 율법인가 아니면 은총인가, 요구와 보상인가 아니면 관계와 변화인가? 은총은 후자를 확증합니다.

6.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 주는 메시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 그리고 은총의 하나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기독교의 메시지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즉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믿을 필요가 있는 것들을 믿거나 행동해야 할 것들을 행동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의 삶은 이미 참된 진리, 즉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터득하는 것이고,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맺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요구와 보상의 하나님과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의 두 가지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두 가지 매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즉 기독교의 메시지는 “나쁜 소식”이 될 수도 있으며, “기쁜 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쁜 소식”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이 끝날 때나 아니면 역사가 끝날 때에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지 않으면 큰 불행을 겪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협박의 종교, 근심의 종교, 자기보존의 종교로서의 모습입니다.

기독교 메시지가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메시지, 우리의 삶을 개인적으로 변화시키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메시지입니다. “나쁜 소식”의 메시지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불길에서 일부는 구출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불살라버릴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기쁜 소식”의 메시지는 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비전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넘치는 변화된 지상세계에 대한 비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질문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입니다. 기독교는 요구들에 관한 것인가? 즉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만 하는 것들이 여기에 있다는 식의 요구들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는 관계와 변화에 관한 것인가? 즉 “여기에 길이 있으니 이 길을 따르십시오!” 하는 것인가? 이 두 가지 방식 모두에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는 협박이며, 다른 하나는 초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