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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2년
제목 [7.31] 새 사람을 입으라! | 김요한 전도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2-08-02
조회수 148
첨부파일
p220731_질그릇 1단.pdf

새 사람을 입으라!

 

1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3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4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에 싸여 나타날 것입니다. 5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6이런 것들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립니다. 7여러분도 전에 그런 것에 빠져서 살 때에는,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8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9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10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거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도, 할례 받은 자와 할례받지 않은 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3:1~11)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이 태어난 날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생일입니다. 생일은 한사람이 탄생한 아주 귀하고 기쁜 날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일을 태어난 날부터 죽는 날까지 매년 아주 열심히 챙기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생일을 잊고 살아가시는 분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잊으실까 싶어서 교회에서 늘 챙겨드리고 있으니 서울제일교회 교인이시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한 가지 더 질문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날이 앞서 말했던 생일과 같은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세례받은 날입니다. 이날은 참으로 거룩하고 기쁜 날입니다. 온전히 나의 믿음을 주님께 고백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는 축복을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세례를 통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세례란 단순히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어떤 통과 의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야말로 한사람이 영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새사람이 되는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사건을 경험한 세례 교인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큰 변화 없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교회 내에 있을 때 모습은 변할지 몰라도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아무 변화 없이 언제나 똑같은 모습입니다. 세례를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나의 뜻과 욕심을 더 우선시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세례의 기쁨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고, 축하하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생일은 그렇게 매년 챙기며 기뻐하는데 정작 우리는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세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통해 새사람이 된 교인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자들이 갖춰야 할 모습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새로 거듭난 새사람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는지를 점검함으로 다시금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주님이 바라시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새 사람이 갖는 신앙>

첫째로, 새 사람은 주님만을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신앙이란 라틴어로 ‘Credo’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나는 믿는다라는 뜻과 동시에 심장을 준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믿는다는 것은 나의 심장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것, 예수님께 자신을 못 박고 주님 뜻에 따라 사는 것, 이것이 새 사람의 신앙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을 통해 이러한 신앙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는 신앙을 고백하였고, 진정으로 주님께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심장, 나의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셨습니까?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정 가운데 우리의 고백과 신앙은 수많은 시험과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려 항상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교회를 떠날 때도 있고, 신앙생활을 포기할 때도 있고, 주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신앙의 시련의 때에 우리는 첫 믿음의 자리,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과 맺은 약속, 세례를 기억하며 새사람의 신앙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게 된 새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듭난 첫 믿음의 자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은혜요 감사입니다. 오늘날 내 신앙의 시선과 방향이 하늘을 향하는지 땅을 향하는지, 예수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나의 욕심과 나의 야망인지를 돌아보며,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의 말씀이 이 자리에 있는 서울제일교회 교우님들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 사람의 삶의 모습>

둘째로, 새 사람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고 찾는 사람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의 본문인 골로새서 3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개역 개정으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즉 그리스도로 인해 옛 본성이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다면 당연히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찾으라는 말은 구하다’, ‘얻으려고 노력하다의 뜻과 동시에 쉬지 않고 끈질기게 찾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찾는 행위에서 더 나아가 끊임없이, 언제나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 여정 속에서 우리는 늘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고 주님의 뜻을 찾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1절을 살펴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은 그 시점은 언제이겠습니까? 바로 세례입니다. 세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살아가고자 늘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세상의 것들을 찾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 된 환경 속에 있더라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바라며, 닮아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때 어두운 현실을 기쁨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위의 것을 바라보는 삶, 즉 그리스도 예수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삶의 모습이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어서 2절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앞선 1절에서는 위의 것을 찾으라라며 행동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라면 2절은 보다 내면적이고 근원적인 생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행동에서 생각으로의 초점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생각과 마음이 먼저 변해야만 그 생각과 마음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각하고는 사실 그냥 떠올리는 수준의 말이 아니라 골똘히 생각하다라는 뜻과 동시에 ‘~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은 생각에 의해 통제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찾는 것이 새 사람의 모습임을 잊지 않으시길 바라며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 사람이 벗어야 할 옛사람의 모습 : 탐심>

셋째로, 새 사람은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린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35절부터 9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성도가 벗어버려야 할 옛사람의 습성을 잘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성도들이 벗어버려야 할 옛사람의 습성을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품적인 측면의 것들로서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과 같은 것들이고 둘째는 행실 적인 측면의 것들로서 분함과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버려야 할 습성들을 성품적 측면에서 5가지, 행위적 측면에서 5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성품적 측면 5가지 중 1가지가 앞서 거론된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옛 사람이 가진 죄악 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이라 할 수 있는데요? 무엇인지 발견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탐심입니다. 이는 5절에서 5가지의 죄악을 나열하고 부가적으로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탐심의 발현이 음란과 악한 정욕이며, 돈에 대한 탐심의 발현이 부정과 사욕인 것입니다. 또한 탐심의 발현이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것과 거짓말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다른 것을 탐하는 탐심은 그야말로 모든 죄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의 말씀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이러한 탐심이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면 하나님 대신 탐심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고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우상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그 무엇으로서 하나님을 잘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탐심은 죄요. 죽음이요. 우상 숭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성이나 명예 등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상이 커지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을 가려 결국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탐심을 뜻하는 원어는 플레오넥시아로 자신이 이미 지닌 것과 상관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를 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2가지 예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소유하는 물질 중 하나인 에 대한 탐욕입니다. 돈의 속성은 어떻습니까? 만족함이 없습니다. 돈을 소유하기 시작하면 계속 더 많은 돈을 소유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난 일들과 현재의 일들을 떠올려보면 때문에 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한 채 돈벌이 수단으로 치부하기도 했고, 사람의 생명보다는 돈을 더 중요시하기도 했고, 돈 때문에 안전 장비를 구축하지 않아 수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기도 했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봅니다. 때론 부모님의 유산으로 자녀들이 다투기도 함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함께 엄청나게 커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상화폐 시장과 주식시장, 부동산시장입니다. 그 이유는 영끌(영혼까지 끌어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이 폭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끌족, 빚투족은 대부분이 청년세대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내 집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살기도 어려운 불안한 사회 현실 속에서 결국 이들은 돈에 모든 인생을 걸었고 그 결과 소위 대박이 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잃는 모습과 개인 회생 신청이 급등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우리는 분명 돈은 생존에 필요한 도구뿐 이기에 결코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탐욕이 시작되면 이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에 대한 탐욕은 결국 수 많은 문제와 죽음을 초래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돈에 대한 탐욕을 내려놓고 마음의 중심이 돈이 아닌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절대 돈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자는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옛사람이 갖는 탐욕을 죽여야한다고까지 경고하고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주님만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는 새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는 편리함에 대한 탐욕입니다. 우리 인간은 늘 편리해지고자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어떻게 대했습니까? 편하게 살기 위해서 아주 열심히 자연을 파괴하고 살았습니다. 자연에게 우리가 행했던 악행은 이미 계속된 설교를 통해서 또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편리함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결국 우리는 기후 위기에 당면해 있습니다. 지구와 인간의 죽음이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창조 세계와 함께 공존하지 못하고 파괴한 죄를 뉘우치고 편리함이 아닌 불편함을 가지며 살아간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계속해서 서울제일교회는 창조 세계 보존을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햇빛발전소 운영, 환경 주일 성수, 생태 정의 공동기도 및 강연, ‘탄소 금식참여, 옥상정원 운영, 생명환경부 신설, 도농 교류, 종이 금식, 행사 현수막 미사용, 제로웨이스트 물품 사용, 기후 위기 비 상행동등 아주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개개인의 삶을 한번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함을 알고 있지만, 아직도 텀블러보다는 종이컵이 더 편하고, 천 마스크보다는 일회용 마스크가 편하고, 제로웨이스트 물건보다는 기존에 사용했던 물품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며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 부끄럽게도 저 또한 아직 일회용 마스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편리함의 탐욕은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변화가 처음엔 더딜지라도 새 사람을 입은 우리는 옛사람이 가진 탐욕을 버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편리함의 탐욕을 벗고 불편함을 살아내는 일은 사실 매우 어렵습니다. 비용도 시간도 많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편리함의 탐욕을 버리고 불편함을 추구하며 살아가야만 이 창조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이 비록 작아 보일지라도 창조 세계를 살리는 일에 나의 조그만 행동의 변화로 반드시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는 불편함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듯이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우리는 모두 기꺼이 불편함에 동참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례의 고백을 삶으로 :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은 주님만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고 찾는 사람입니다. 또한 새 사람은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린 사람입니다. 이렇게 세례를 통해 변화된 새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3가지로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서울제일교회 교우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세례로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본 장 10절의 말씀처럼 새 사람인 우리는 우리를 창조해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을 놓고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제 삶과 신앙, 세례를 받았던 당시 저의 고백과 마음을 돌아보며 아직 너무나 부족한 신앙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저에게 남아있는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새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교우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올해 19일 주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날은 세례 언약 재확인 예식이 있었던 주일입니다. 그날 우리의 입술로 세례 언약을 재확인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도전하는 세상의 온갖 악과 권세를 버리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어 놓는 죄의 길을 버리겠습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 그를 주님과 구주로 모시겠습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되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사랑을 우리의 삶으로 드러내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세례 받은 교인입니다. 옛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끊임없이 세례 예식 때 했던 우리의 고백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실천하고, 옛사람이 가진 모든 죄악과 그에 따른 행위를 낳는 탐욕을 끊임없이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우리의 중심에 모시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