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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1년
제목 [12.25] 말씀의 육화(肉化) | 정원진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1-12-29
조회수 216
첨부파일
p211225_질그릇 1단.pdf

말씀의 육화(肉化)

 

1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4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5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9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10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11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2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14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1:1-14)

 

말씀의 육화(肉化)

Merry Christmas! 오늘 기쁘고 복된 성탄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이런저런 이유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 슬픔과 걱정 가운데 한숨짓고 계신 분들에게 성탄(聖誕)의 소식이 빛과 소망과 구원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11절로 14절의 말씀은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표’(Lectionary)가 매년 성탄절마다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여러 차례 이 본문으로 증언했습니다. 과거의 증언들을 보니 별로 추가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똑같은 이야기를 수정 없이 반복할 수는 없겠지요?

소위 로고스 찬가라고 불리는 오늘의 복음 말씀이 증언하는 성탄의 사건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16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이처럼’, 공동번역은 극진히’, 가톨릭새번역은 너무나라고 번역했고, 영어 성경은 ‘(loved) in this way’‘so (loved)’라고 번역했음.) 이 말씀에서 이처럼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인카네이션’(Incarnation, 성육신)입니다. 달리 말하면, 말씀의 육화(肉化), ()의 사람됨입니다.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우리 인류를 얼마나사랑하십니까? 또는 어떻게사랑하십니까? 기꺼이 인카네이션할 만큼, ‘성육신’(成肉身)할 만큼 사랑합니다. 높고 높은 신의 자리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올 만큼, ‘로고스’(logos)싸르크스’(sarx)가 될 만큼, 무한하고 초월적인 영()이 유한하고 한계를 가진 육()이 될 만큼 사랑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인카네이션 사랑은 케노시스(Kenosis)의 사랑입니다. 비움의 사랑, 낮아짐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인카네이션 사랑

하나님은 왜 그러셨습니까? 우리가 버거운 인생의 짐 때문에, 무거운 욕망의 무게 때문에 하나님께 오를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간 사랑법입니다.

여러분 중에 집에서 개를 키우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키우듯, 개를 돌보고 키웁니다. 또 스스로 자기가 그 개의 아빠엄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기에게 개새끼라고 하면 아마도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무리 개를 좋아해도, 내가 개의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개의 새끼는 될 수 없습니다. 개를 사람 취급해 줄 수는 있지만, 내가 개 취급당하는 것은 싫습니다. 개를 높여서 사람 대우는 할 수는 있지만, 내가 낮아져서 개가 되는 것은 못 합니다. 이것이 우리네 인간들의 개 사랑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랑의 한계입니다. 어디까지나 개는 개고 나는 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높이기 위해 먼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신의 영광도, 높은 하늘 보좌도 다 포기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과 창조세계를 사랑하는 정도이고 수준입니다. 이런 차원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탄절의 첫 번째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임마누엘 사랑

그리고 성탄절의 두 번째 복음은 바로 임마누엘’(Immanuel)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사랑하십니까?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실만큼 사랑합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은 그는 세상에 계셨다고 하고, 14절은 “(그가)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 멀리, 저 우주 너머에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올 성탄절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임마누엘 사랑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아마 성탄절을 앞두고 장례를 치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성탄절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떠오른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동행이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병원에서 원목으로 일할 때 자주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을 했습니다. 그때 가장 강조했던 것이 공감과 동행이었습니다.

 

공감: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1km를 걸어야 한다. 상대방의 신을 신으려면 먼저 나의 신발을 벗어야 한다. 이는 나의 지각과 인지의 틀을 버리겠다는 결단을 의미한다. 또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1km를 걷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온전히 거한다는 것을 뜻한다.

 

동행: 공감은 긴 터널을 대상자와 함께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때 우리는 대상자의 옆자리에 있되 조금 뒤에 위치하면서 속도를 맞추어 동행하게 된다. 대상자의 앞에 서지 않는 것은 대상자가 삶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며, 약간 뒤에 서는 이유는 대상자가 힘이 들어 주저앉을 때 이를 지지해 주기 위함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가수 최성수가 부른 동행이란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거기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

야만 하나 /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외롭고 고달픈 우리 인생길에 동행이 되어주시기 위해 우리 곁에 조용히 다가오십니다. 상상만 해도 든든하고 넉넉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떠오는 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종환 시인의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에 실려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입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리고 또 Carole King이 부른 You've Got a Friend가 떠올랐습니다.

 

When you're down and troubled 네가 우울하고 힘들 때

And you need some loving care 사랑의 돌봄이 필요할 때

And nothing, nothing is going right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

Close your eyes and think of me 눈을 감고 나를 생각해

And soon I will be there 그러면 곧 내가 거기 있을거야

To brighten up even your darkest night 너의 칠흑 같은 밤을 밝히기 위해

You just call out my name 넌 그냥 내 이름을 불러

And you know wherever I am 그리고 넌 내가 어디 있는지 알잖아

I'll come running 내가 달려갈게

To see you again 널 다시 만나기 위해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겨울, , 여름, 또는 가을 (어느 때든지)

All you have to do is call 네가 할 전부는 날 부르는 거야

And I'll be there 그러면 내가 거기 있을거야

You've got a friend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요한복음 1515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고 하십니다(공동번역). 그렇습니다! 요한복음의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의 벗이 되신 하나님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때때로 우리는 주님이 어디 계신가하고 묻습니다. 때로는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우리를 방관하고 내버려 두는 것 같아서 주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성탄의 소식은 우리에게 큰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단지 우리가 깨닫고 있지 못할 뿐이지,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우리와 더불어 늘 함께 계심을 깨우쳐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얼마만큼? 신의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자리로 기꺼이 내려오실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얼마만큼?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하루 24시간 우리와 함께 계실 만큼. 그 크고 넉넉한 사랑을 깨닫고 누리는 복된 성탄절 되시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