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마당 > 설교

설교

카테고리 2022년
제목 [7.17] 새 시대, 새 신앙(New normal, New faith) | 한문덕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2-07-20
조회수 169
첨부파일
p220717_질그릇 1단.pdf

새 시대, 새 신앙!’(New normal, New faith)

 

1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12:1-3)

54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55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56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12:54-56)

4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6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7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8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11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12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고전13:4-13)

 

인사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북노회 생명사랑교회에서 목회하는 한문덕 목사입니다. 제가 서울노회에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있었고, 부교역자로 시무하던 향린교회가 서울제일교회와 같은 시찰이었기에 종종 들렀습니다만 설교자로 온 것은 처음입니다.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의 길 한복판에 서 계셨던 서울제일교회 교우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매우 큰 영광입니다.



제가 지금 시무하는 생명사랑교회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고, 저는 7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첫 담임목회지이고, 우리 교인들에게 첫 담임목사이기도 합니다. 제 나이가 이제 50이 넘었는데, 교단과 교계에서는 아직도 젊은 목사로 불리고 있고, 요 근래에는 총회와 노회, 그리고 각종 에큐메니칼 단체들에서 진행하는 각종 사업과 활동에 불려 다니고 있습니다. 지지난 주에는 “2030 세대, 기장교회, 그리고 목회자라는 주제로 열린 총회 선교정책협의회에서 기조발제를 했고, 엊그제 금요일에는 총회 신도정책협의회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신도들의 대면 신앙생활과 관련한 발제를 했습니다. 지금 안식년을 보내고 계신 정원진 목사님처럼 저 또한 10월 말까지 안식년 중인데요. 저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전국의 온라인 성도들과 동료 선후배 목사들을 만나면서 지금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들을 듣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 전 세계는 매우 다양한 이유로 글로벌 위험사회로 접어들었고, 교회도 불확실성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서울제일교회가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은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아버지의 집과 고향을 떠나, 갈 바를 모르고 나선 아브라함처럼 과감하게 지난 관습과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과감한 모험과 도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그런 믿음 있는 자를 찾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읽어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누가복음서의 본문에서 예수께서 하시려는 말씀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어느 시대나 당시의 자연과학적 상식을 가지고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각 시대에 알맞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뜻은 왜 분간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라고 번역을 했고, 새번역 성경은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는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즉 물리적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Χρόνος)가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적인 때를 상징하는 질적인 시간, 카이로스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 전 세계는 결정적인 전환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전 세계적 변화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기후 재앙, 둘째는 바이러스의 위협, 그리고 셋째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입니다. 이 세 가지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각 국가와 사회, 개인의 현재와 앞날이 좌지우지 됩니다.

기후재앙은 오래 전부터 수많은 양심 있는 모든 지식인들이 계속 경고해 온 것입니다. 생태계 파괴는 점진적이며 수면 아래에서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다는 특징을 지니기에 한 개인의 차원에서는 대처하기 어렵고,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자국 이기주의 속에서 전 세계 인류는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지금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 19 세계 대유행도 큰 틀에서 생태계 파괴와 연결된 기후 재앙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호주 대륙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과 전 세계적 홍수,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 하루아침에 36도나 떨어지는 이상한 기온 변화, 진드기와 메뚜기 떼의 난립, 계속 파괴되는 아마존의 열대 우림 등 지금 전 지구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것이 인류에게 미치는 파국적 결과가 어떨지는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기후변화는 지금 인류에게 생존을 위한 기본 환경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만약에 지구의 온도가 1도가 더 오르면 인류의 생존에 적합한 땅 자체가 매우 축소될 것은 분명하고 그것은 곧바로 전 세계적 식량의 고갈로 이어질 것인데, 그 때 80억에 가까운 인류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며 생존할 수 있을 지 지금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달러가 오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자 스리랑카는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했고, 이어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등 17개 정도의 개발도상국들이 심각한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기후재앙으로 인한 식량의 위기가 찾아올 때 세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각종 바이러스가, 지구 땅 전체의 70-80%를 점유하고 있는 인간을 매개체로 삼았기 때문에 앞으로 전염병 세계 대유행은 주기적이며 반복적으로 올 것이라는 예견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인류는 바이러스 속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일상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194차 산업 혁명을 급격하게 당겨 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 재택근무와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졌습니다. 비대면(Un-tact) 상황이 가져온 우리 삶의 변화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현대인들이 세 종류의 세상을 동시적으로 살고 있다고 교인들에게 늘 말해 왔습니다. 하나는 우리 생존의 물리적 기반이 되는 실재 세계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정신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신념의 세계이며, 마지막은 바로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상 세계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월 각자 처한 물리적 환경, 즉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의 세계를 만들어 왔고, 또 그 신념과 가치관으로 물리적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렀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환경의 급속한 발달로 우리의 신념 세계가 가상 세계와 실제 세계를 가로지르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후손들은 훨씬 더 가상 세계에 익숙한 존재, 실제로 가상과 실재의 넘나듦이 자유롭고 구별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가상세계의 등장은 디지털 원주민과 디지털 문맹 사이에 심각한 양극화를 불러오고, 이것은 세대 차이에 의한 불통과 갈등이라는 또 다른 어려움을 불러올 것이 분명합니다.

 

한국 교회의 현실

우리가 맞닥뜨린 이런 상황과 변화 속에서 과연 교회는 어떤 사역을 해야 할까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과 주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진리는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까요? 우리 모두 앞에 놓인 과제이며, 이 과제를 얼마나 잘 풀어 가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미래도 결정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시간, 제가 생각하는 준비에 대해 세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도전과 생각이 서울제일교회의 목회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함께 지혜를 모은다는 차원으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앞으로는 반드시 온라인 목회를 기존의 목회와 거의 같은 등급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코로나 19의 상황,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도래, 그리고 다음 세대들의 삶의 환경을 고려했을 때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환경이 전국적으로 촘촘하게 구축되어 있기에 우리는 이미 다양한 SNS를 활용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목회활동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모이지 못하는 일들이 생겼기에 기존의 모임 중심의 예배와 교육, 선교와 친교, 목회의 모든 활동이 위축되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코로나 19 이후 저는 매일 교인에게 신앙 교육 자료 하나씩을 보냈습니다. “One day, One contents”입니다. 월요일은 월요아침묵상의 글과 함께 기도할 제목들을, 화요일은 영상으로 제작된 생명사랑 5분 말씀 묵상 창세기 편, 수요일은 수요기도회 실시간 유튜브 방송, 목요일은 사단법인 평화나무에서 제작하고 있는 수요사경회 성경공부와 금요일은 성서를 보는 눈, 토요일은 주의 기도 강의, 그리고 주일은 주일예배 영상입니다. 성서를 보는 눈과 주의 기도 강의 이후에는 사도신경 강의, 마태복음서 강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라인 교육과 선교를 해 보니, 자주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교인들은 그나마 제 얼굴을 자주 보면서 어색함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프라인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신앙교육이 이뤄지며, 교육 내용을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감동이 되는 영상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좋아 생명사랑교회 교인이 아닌 이들도 보면서 생명사랑교회의 재정과 전도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주일 대면 예배에서는 4-50명 가량 모이는 작은 교회이지만, 우리 교회 유튜브 구독자 수는 1400명이 넘고, 매주 주일예배 조회수는 300-400회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비대면 상황이 되면서 한국교인들의 신앙생활이 흐트러졌다고 많이들 우려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에서든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고, 이것을 잘 활용하는 주체적 신앙인이라면, 그 어느 시대보다 훨씬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교회가 이 시대에 또 다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바로 목회자들의 전문성 확보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양육입니다. 온라인 예배가 일상화되면서 드러난 현상 중 하나는 이제 더 이상 종교의 상품화 과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인들이 예전과 같은 내 교회라는 소속감과 정체성이 유지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TV 프로그램을 돌려가며 자신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듯, 이제 온라인 동영상으로 나오는 수많은 신앙 관련 영상들을 보면서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예배와 설교를 찾아가는 매우 새로운 형태의 교인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A교회 성도라 하더라도 이제는 다른 교회의 설교를 마음껏 들을 수 있으며, 자신이 조절만 잘한다면 신학교 못지않은 질 좋은 배움의 기회들을 가상현실 안에서, 온라인상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이것에 매우 익숙합니다. 교회 건물보다 더 편한 공간, 예를 들면 예쁜 카페와 온라인 공간이 이들에겐 더 편하고 좋을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만연할 때, 어떻게 교회를 유지할 수 있을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어쩌면 앞으로 교회는 진정한 본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사람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참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어떤 길을 만들어갈 것인가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한국교회의 흥망성쇠를 고민하면서, 지금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교회만이 제공할 수 있는 진정한 콘텐츠입니다. 교회가 제공하는 좋은 콘텐츠가 교인들의 실제적인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사회를 선도하던 교회가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뒤따라가기도 바빠졌고, 극우 정치세력과 손잡은 기독교는 세상의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아니라 세상의 걱정거리로 전락하고,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때, 목회자의 심정은 정말 비참합니다. 목회현장에서도 이미 많은 어려움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난 세월 오염되고 왜곡된 복음을 깨끗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에 충실한 교회로 거듭나는 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거듭나려면 우선 양질의 목회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다시한번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 목회자로서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목회자를 찾아내고 길러내는 일은 신학대학뿐만 아니라 교회가 해야 합니다. 사회는 주 5일제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한국교회는 이것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생명사랑교회는 주 5일제 근무, 4대 보험 보장, 목회자 연금 보장,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가와 연차 수당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재적인원 10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이지만, 저를 포함하여 전임사역자가 3명이나 있고, 파트타임 교역자도 1명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상실감이나 자괴감이 들지 않도록 담임목사인 저는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목회자를 기르기 위한 기금 모금(fund-raising)도 하고, 교인과 목회자가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여 모든 목회활동이 신나고 재밌고 의미 있는 교회가 되려고 목회자와 교인 모두가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하는 교회는 젊은 부교역자들 사이에서 가장 오고 싶은 교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울제일교회도 곧 그런 교회가 되시길 빕니다.



전문성과 영적인 능력을 확보한 목회자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극심한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종말적 분위기로 인해 사람들은 온갖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이들에게 안전한 휴식처가 필요합니다.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하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그런 초월적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언제나 구원의 소식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교회는 생수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목마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생명수는 무엇일까요?

 

생수의 근원 : 사랑

우리에게 생명의 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을 요약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만 증명될 수 있는데, 예수님의 이웃 사랑은 우선 이웃이 될 수 없는 이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들을 친구로 삼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으며,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약자의 처지에서 늘 당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나아갔고, 심지어 자기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맞이하고 환대하는 일, 특히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사랑하는 일은 귀족적 자존감을 가질때에만 가능합니다. 자신에 대한 깊고 넓은 사랑과 존중이 없는 사람이 남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갈라지고 찢어지고 싸우고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생길 때, 한 걸음 물러서서 잘 관찰해보면 궁극적으로는 모두 자신의 품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너 때문이야라고 말을 하지만, 상대는 자극만 할 뿐입니다. 상대의 자극에 우리는 반응하는 인간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분란이 잦았던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가장 좋은 길을 택하라고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바울은 정확하게 예수님의 길을 걷습니다.

유럽에서 한동안 고린도라는 말은 성적 쾌락과 유흥과 결부되었습니다. 가령 고린도 사람 같다라고 하면 성적으로 방탕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고린도는 고대 그리스의 해양도시로 한 때 60만명의 인구가 북적였던 국제도시였습니다. 온갖 인종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나와 다른 남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내 권리와 자유를 지키는 것이 큰 관심사였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양보나, 공공을 위한 희생은 미덕이 아니었습니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고안되고 발달했습니다.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들을 설득하는 수사학이 발달했고, 2년마다 열리는 이스트무스 축제를 통해 대규모의 운동경기가 벌어지면서 경쟁과 승자독식의 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 강자에게 굴복하고, 강자에 기대어 권력을 탐하고, 수사학을 동원하여 온갖 이득을 얻어내어 한껏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고린도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은 언제나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난은 무지와 어리석음의 결과이고, 약함은 적절한 후원자를 찾지도 못하고 지혜롭지 못해 힘 있는 무리에 들지 못한 탓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했고, 조금이라도 성공을 거둔 이라면 더 높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거나, 그 사다리에 올라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도시가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쓴 고린도 교회는 이런 고린도 섬의 문화가 물밀 듯 들어와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공동체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주도권 갈등이 일어나, 교인들은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 분파가 나뉘어서 서로 헐뜯고 상대방의 도덕적인 흠집들을 폭로하였습니다. 한편 어떤 여성들은 한 남편의 아내이기를 포기하고, 남편과의 성관계도 거부하면서 방언을 통해 고린도교회를 좌지우지 하려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 교회에는 주인과 종,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심각했습니다. 이런 교회에 바울 사도가 편지를 쓰면서 권고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은 바로 이런 바울사도의 멘트로 시작됩니다. 사랑이 그 무엇보다 좋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온갖 천사의 말보다, 예언하는 능력보다, 모든 지식과 비밀을 아는 것보다, 심지어 산을 옮길만한 믿음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그 열정보다 사랑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절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 이하 생략

여기에는 모두 15개의 동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열다섯 개의 동사를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고난 당하시는 모습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온갖 모욕을 당했지만,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는 친절했고, 시기하지 않았으며, 뽐내지 않았고,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도 원한을 품지도 않았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렸고 그 상황에서 언제나 진리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는 모든 것을 덮어 주고,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믿으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며 끝까지 견뎠습니다.



존경하는 서울제일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로 서울에서 제일가는 교회가 되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주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그런 사랑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사랑할 만한 것이 있기때문에 사랑하는 조건적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껴 나갈 존재는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다 보니 사랑스러워지는 관계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가장 좋은 길인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허다한 죄를 덮으며 사랑만이 그 모든 것을 완성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만 누군가를 믿어 줄 수 있고,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으며, 온전한 사랑이 실현될 때 우리는 남김없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서울제일 교우 여러분! 이 혼돈의 시기, 불안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기, 세상이 교회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시대, 한 치 앞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시대에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더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시대에 가져야 할 가장 확실한 새로운 믿음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