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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5년
제목 [10.12] 서로에게 밥이 되어줍시다!ㅣ정원진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5-10-14
조회수 1864
첨부파일
p251012_질그릇 1단.pdf

서로에게 밥이 되어줍시다!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52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서로 논란을 하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53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55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 58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것은 너희의 조상이 먹고서도 죽은 그런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요 6:51-58)

 

요한복음 판(version) 성만찬 제정사

오늘은 세계성만찬주일로 지킵니다. 원래는 지난 주일이었는데, 추석 연휴 관계로 한 주일 미뤄서 오늘 지키게 되었습니다. 또한 본문도 성서일과(RCL)가 제시하는 창조절 여섯 번째 주일 구약 본문인 예레미야서 말씀을 대신해서 성만찬과 관계된 요한복음서 6장 말씀을 골랐습니다.

요한복음 6장 전반부인 1절로 15절에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가 나오고, 후반부인 22절로 59절에는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와 생명의 빵에 관한 가르침은 ‘성만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6장 후반부의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은 한 마디로 요한복음 판 성만찬 제정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주시며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마 26:26)라고 말씀하시고, 또 잔을 나누며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마 26:28)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 바로 다음에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가리키시며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51절)라고 하면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54절)는 말로 성만찬 제정사를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그런데 오늘 본문 52절을 보면 당시의 유대 사람들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예수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하고 논란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 말씀이 마치 식인종이 되거나 흡혈귀가 되라는 말로 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당시의 유대 사람들같이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은유적인 표현(metaphor)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원래 먹고 마신다는 표현은 배고픔과 목마름과 같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갈망’을 표현하는 ‘종교적인 은유’입니다. 우리는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목이 마르면 마실 것을 찾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늘 먹고 마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단지 먹고 마시기 위해서만 살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산다면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단지 주린 배를 채우고 갈증을 해소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배를 채우고 갈증을 해소하더라도 더 맛있고 더 몸에 좋은 걸 먹고 마시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고 몸에 좋은 것을 먹고 마셔도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그 방법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정답은 빼놓고 엉뚱한 것에서 해답을 찾아 헤맵니다. 사람들이 돈, 명예, 지위 등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그런 것만 있으면 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것들을 차지해도 우리 생은 여전히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저런 오락이나 취미, 또는 친교 모임을 통해서 자기 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은 잠시 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잊게 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앞의 35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인간의 궁극적인 배고픔과 갈증의 문제에 대해 바로 내가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천국을 살자!

그 해답은 바로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성만찬 예식에 참여해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으라는 말로 알아들으면 곤란합니다. 이 말씀은 그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생의 개념부터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영생이란 문자적으로는 “영원히 사는 것”(eternal life)을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초대교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성만찬 예식에 참여했다고 해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영생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은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생은 장차 도래할 시대의 생명에 참여함을 뜻합니다. 달리 말하면, 미래에 누릴 삶을 오늘 앞당겨 미리 살고 누리는 것을 뜻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나중에 죽어서 천국 가서 비로소 누리게 될 삶을 오늘 여기서 미리 살고 누린다는 뜻입니다. 그게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생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나중에 천국에서처럼 지금 여기에서도 생의 궁극적인 배고픔과 갈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려면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하는데, 이는 단순히 성만찬 예식에 참여하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라는 말입니다. 이는 본문 54절과 56절을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54절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56절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고 합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영생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즉, 영생은 주님과 우리가 갈림이 없이 하나가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상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인스턴트커피 타는 것을 연상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커피’고, 나는 ‘물’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제 나는 그분을 받아들여 내 안에서 녹이려 합니다. 그러려면 물인 나는 당연히 깨끗한 생수여야 하고, 커피를 녹이기 위한 내 마음은 늘 뜨겁게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어느 순간 커피가 내 안에 들어와 잘 녹아서 커피 한 잔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더 이상 물이라 하지 않고 커피라고 합니다. 커피인 예수님과 물인 내가 만나면 물이 아닌 커피가 되는 이치를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라는 말로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예수님과 진정으로 하나 되면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만 사십니다. 그리고 진한 향을 내뿜는 커피는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한 따뜻한 음료가 됩니다.

지금 천국을 사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남을 위한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내가 남의 음료가 되고 음식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한 분만 음식이 되고 음료가 되라고 하면 세상은 결코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먹고 마신 우리가 서로 남에게 음식이 되고 음료가 되면 이 세상은 금방 천국으로 바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참 생명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그분의 희생과 죽음에 참여해 나도 남을 위한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밥이 되어줍시다!

세계성만찬주일을 맞아 증언 제목을 ‘서로에게 밥이 되어줍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제목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온 것입니다. 2009년 2월에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시고 나서, TV를 켜면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과 목소리가 등장하는 공익광고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광고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이렇듯 서로에게 밥이 되어주십시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꿈꾼 세상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님처럼 서로에게 밥이 되어주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이 천국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말구유’에 뉘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처음부터 세상에 밥으로 오셨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말밥통/밥그릇인 말구유에 담긴 것이 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에 밥으로 오신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당신을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당신처럼 세상의 밥이 되라’ 하십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궁극적인 목마름과 배고픔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때 삶에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까?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입니다. 내가 땀 흘려 노력한 것이 열매를 맺었을 때입니다. 특히 그것을 남들이 인정하고 알아주면 더 뿌듯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을 도왔을 때, 남을 살렸을 때입니다. 그때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인생의 의미도 찾게 됩니다.

우리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악이고 죄임을 압니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위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남을 내 먹이 삼아 살라고 합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 너도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편할지는 몰라도 보람은 없습니다. 의미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것만으로는 생의 궁극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너를 위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나를 남에게 먹거리로 내어주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그러면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가 살 뿐 아니라, 이 세상이 천국이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의미를 예수에게서 찾은 사람들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처럼 사는 것에서 찾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사는 것에서 인생의 보람과 긍지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세상 것들이 주는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먹으면 또 허기가 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먹으면 그 힘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약해서 자꾸 그 사랑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기억하라고, 잊지 말라고 교회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성만찬 예식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우리 교회는 성만찬 배찬 때마다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면”이라는 국악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가사는 이랬습니다.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저마다 떡이라오.

배고픈 사람들 이리 오시오. 함께 드십시다.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저마다 잔이라오.

목마른 사람들 이리 오시오. 함께 마십시다.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이토록 기쁘다오.

이렇게 여럿이 둘러앉아서 함께 나눕시다.

 

그렇습니다! 이 찬송 가사처럼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면”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밥’이 됩니다.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참된 음료’가 됩니다. 양식과 음료의 존재 이유는 먹힘에 있습니다. 내가 죽어서, 나를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내가 살려고 하면, 나만 잘 먹고 잘살려고 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습니다. 하지만 너를 살리려고 내가 죽으면, 내가 희생하면, 너도 살고 나도 산다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영생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따라서 이제 우리도 세상에 나아가 서로에게 밥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