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소리”

1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2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3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 8엘리야는 …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에 도착하였다. 9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그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0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1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12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13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 15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왕상 19:1-3.8-15a)

6.25 민족화해주일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이고, 우리 교단 총회가 제정한 6.25 민족화해주일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25주년이 되는 해이고, 동시에 6.25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이런 때에 마침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지난 6월 13일(금)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이에 이란도 이스라엘에 보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TV에서 폭탄 공격으로 파괴된 이란과 이스라엘의 건물 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계엄 선포를 위해 유도했던 외환(外患)이 성공했다면, 이란과 이스라엘의 처참한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상한 해도 아찔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선포한 평화 메시지

지난 6월 4일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오늘로 꼭 19일째를 맞습니다. 그런데 12일째였던 지난 6월 15일(일) 오전에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6.15 선언 25주년, 평화의 약속을 되새깁니다>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같이 보시겠습니다.

2000년 6월 15일, 1945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마주 앉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대립과 불신의 벽을 허물고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었습니다. …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반도는 다시 과거의 냉랭했던 시대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남북 간 대화와 교류가 끊기고, 접경지역의 긴장과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느낍니다. … 25년 전 오늘의 약속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과 사라진 평화를 되찾아야 합니다. … 이재명 정부는 소모적 적대행위를 멈추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습니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로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중단된 남북 대화채널부터 신속히 복구하며 위기관리 체계를 복원해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그냥 ‘말 잔치’가 아니었습니다. 6.15 이틀 전인 6월 13일 오후에 이 대통령은 남북 접경지역인 경기도 연천과 파주 방문했고, 거기에서 군인들과 주민들을 만나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보다 먼저 취임 8일째였던 6월 11일 오후 2시를 기해 전방 지역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가동을 중지시켰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전격적인 조치였습니다. 이에 북한도 화답해 12일(목) 0시부터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지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 오늘까지 숨돌릴 틈도 없이 참 많은 일을 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건 ‘평화 메시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 관계가 언제부터 왜 지금처럼 경색됐는지 기억하십니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가 아니라, 5년 전인 2020년 6월부터입니다. 그러니까 남북 관계가 화해가 아닌 ‘전쟁의 길’로 치달은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충격이 더 컸습니다. 왜냐하면 문 정부하에서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했고, 남북군사합의서도 채택했으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도 천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0년 6월 16일, 북한 정부는 남한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막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습니다. 당시 우리 국민은 뉴스에서 그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북한의 조치는 좀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그 발단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전단 살포 방치에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약속한 판문점선언 2조 1항 위반입니다. 그때까지 대북 전단 살포는 확성기 방송과 더불어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4년 10월 대북 전단 살포 때문에 남북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전쟁 위기에 직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 당국의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을 근거로 11차례나 대북 전단 살포를 막았었습니다. 주민 안전이 위협받을 때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었습니다. 당시 대북 전단 살포 중지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천명한 문재인 정부는 이를 막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남북 위기의 해결 방안은 너무나도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미국 눈치 보지 않고, UN 대북 제재와 상관없는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 연결 등 남북 두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이행하면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국제적 위상도 올라가 있었고, 또 총선 압승으로 국내적 추진력도 얻었기에 남한 정부는 하루빨리 약속한 바를 이행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눈치 보며 머뭇거리다가 시기를 놓쳤습니다. 이에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폭파했던 비무장지대 감시초소를 재건했으며, 대남 전단 살포 의사까지 밝혀서 스스로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파탄 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선언만 하고, 번지르르하게 말만 하고, 정작 북한이 바라고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조치와 행동은 하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벼랑 끝 전술을 펴서 문재인 정부의 행동을 유도하거나, 아니면 집권 가능성이 가장 컸던 차기 민주당 정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이 집권했고,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북한은 대남 오물 풍선 살포로 맞섰고, 이에 남한 정부는 ‘남북군사합의’의 전면 효력 정지를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었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남한 정부는 북한의 도발이 있으면 ‘즉·강·끝’(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대응하라고 명령했었습니다. 처음엔 ‘전시작전통제권’도 없으면서 뭔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는데, 알고 보니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고 그걸 핑계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영구집권하려는 음모가 숨어있었습니다. 아무튼 지난 3년간 우리는 제2의 동족상잔 바로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6.25 민족화해주일을 맞는 감회와 각오가 남다릅니다.

예언자 엘리야와 폭력의 악순환

오늘의 본문 말씀은 성서일과(RCL)가 ‘성령강림 후 둘째 주일’ 구약 본문으로 제시한 열왕기상 19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왕상 19:1)

여기서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여덟 번째 왕이고, ‘이세벨’은 ‘아합’의 아내입니다. 아합의 아버지였던 ‘오므리’는 북이스라엘과 ‘페니키아’의 유대를 강화하고자 아들 아합을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켰습니다. 아합은 즉각 자기 신부를 새로운 수도 사마리아로 데려오기 위해 오므리가 시작했던 건축계획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이방인인 아내를 위해 예루살렘에 신전을 지었듯이, 아합도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을 짓고, 거기에 바알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습니다(왕상 16:32-33).

그런데 페니키아 종교의 광신자였던 이세벨은 이스라엘 계약 신앙의 십자군이었던 야훼의 예언자들과 격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세벨은 페니키아에서 수많은 바알 예언자들을 데려와 녹을 주었습니다(왕상 18:19). 더욱이 이세벨은 ‘야훼의 예언자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공격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 역사의 무대에 혜성같이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예언자 엘리야였습니다. 그가 아합에게 가서 던진 첫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왕상 17:1)

이 말은 바알에 대한 ‘선전포고’였습니다. “비와 이슬로 땅을 적시어 풍요로운 생산을 내는 것은 바알이 아니라 야훼”라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예언대로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3년 후 다시 아합을 만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대결’을 제안합니다. 이 산상 대결은 누가 비와 풍산(豐産)을 관장할 능력이 있는 주님인지를 결정짓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엘리야 홀로 “바알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 예언자 400명”과 대결하여 완승합니다. 열왕기상 18장 40절은 이 대결의 최후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잡아라. 한 사람도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 백성은 곧 그들을 사로잡았고, 엘리야는 그들을 데리고 기손 강 가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 (왕상 18:40)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은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이세벨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왕상 19:2)

처음에는 이세벨이 야훼의 “예언자들을 학살”했습니다(왕상 18:4). 그다음에는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왕상 18:40). 그러자 이번에는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여서 복수하겠다고 합니다. 이게 뭘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폭력의 악순환’입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를 ‘진멸 또는 멸절’시키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합니까?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갈멜산 대결과 승리 장면은 이스라엘에서 바알 신앙이 한꺼번에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의 상황을 보면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므리 왕조에 바로 이어서 정권을 잡은 예후 왕조 때의 일입니다.

예후가 이스라엘 모든 곳에 사람을 보냈으므로, 바알의 종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왔다. 그들이 바알의 신전으로 들어가자, 바알의 신전은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가득 찼다. (왕하 10:21)

이것을 보면 적을 무찔러 모조리 죽여 없애 버리는 진멸(殄滅)은 답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에서 수없이 보지 않았습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이스라엘—이란 전쟁은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될 뿐 절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호렙산으로의 도망과 침묵의 소리 그리고 현장으로의 귀환

그 두려움을 실감한 걸까요? 갈멜산 대결에서의 승리로 기세등등했던 엘리야는 풀이 죽어서 도망을 칩니다. 북이스라엘 영토를 벗어나 남유다 브엘세바로, 또 거기에서 사십일 밤낮을 더 걸어서 계약의 성산(聖山)인 호렙산(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어떤 동굴에서 밤을 지낸 다음 주님을 만납니다. 그 장면을 다시 보실까요?

11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12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왕상 19:11-12)

엘리야가 밤을 지낸 동굴은 주님이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지나갈 때’ 모세가 몸을 숨긴 ‘바위틈’을 연상시킵니다(출 33:18-23). 또 엘리야 이야기에서 주님이 ‘지나갈 때’ 나타난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은 출애굽기 19장에서 주님이 시내산에 나타나실 때 일어났던 전통적인 현상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큰 차이도 있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신 현현과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속에 계셨던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다 잦아든 뒤에 나타났습니다.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경이로운 침묵”을 의미합니다. 이 침묵 가운데서 주님은 엘리야에게 당신의 현존을 알렸습니다. 엘리야는 이 침묵의 소리 속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강한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 못합니다. 따듯한 햇볕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강한 힘, 막대한 군사력은 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불안한 균형이나 폭력의 악순환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큰 소리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침묵이 참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저는 이 진리를 류근 시인의 ‘대화’라는 제목의 시에서 확인했습니다.

이쪽에서 소리를 멈추자

저쪽에서도 곧 소리를 멈추었다

소리 안에 있을 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침묵도 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침묵에도 크나큰 성대가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사람들은

침묵이 데려다준 소리로 언어를 만들어

비로소 서로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이쪽과 저쪽의 가슴이

저쪽과 이쪽의 가슴에 전하는

깊고 따뜻한 침묵의 발음이었다

지금 주님은 엘리야에게 이제까지 명령했던 진멸법을 거두고 폭력의 악순환을 멈추는 방법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아니고 침묵의 소리였습니다. 소리는 소리를 부릅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릅니다. 하지만 침묵은 참 대화를 결과하고, 폭력의 멈춤은 참 평화를 끌어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말을 멈추고 상대에게 집중하면,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알게 되면 행동하면 됩니다. 그런데 침묵과 경청과 행동은 역사의 현장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왕상 19:15)

그러나 침묵의 소리는 역사의 현장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를 버리고 무슨 일을 하겠다고 이 한적한 장소에 와 있느냐는 질책이요, 사명의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촉구입니다. 오늘 ‘6.25 민족화해주일’을 맞아 주님께서 우리에게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역사의 현장을 외면하거나 거기서 도망치지 말아라. 말을 멈추고, 상대에 집중하고, 필요를 살펴 행동하여라.” 이것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복하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하는 길일 것입니다. 이 길을 주님과 함께 걷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