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通), 통(統), 통(痛)

1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2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3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4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5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6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7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8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9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창 11:1-9)

성령강림절, 총회선교주일, 국민주권정부 출범

지난 주일까지는 ‘부활’의 계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성령’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절이 기독교의 생일이라면,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생일입니다. 부활 사건이 없었다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없었다면 예루살렘 교회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을 교회의 생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침, 올해는 교회의 생일인 성령강림절이 우리 교단의 생일인 ‘총회선교주일’과 겹쳤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53년 6월 10일에 서울 동자동 한국신학대학에서 호헌 총회를 열고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분립하여 새역사를 출발했습니다. 이를 기념하고자 우리 교단은 매년 6월 둘째 주일을 총회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은 6.3 대선 결과로 ‘이재명 정부’—‘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한 후 첫 번째로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성령강림절, 총회선교주일 그리고 새 정부 출범을 다 고려해서 증언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증언 제목을 ‘통(通), 통(統), 통(痛)’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증언은 성령강림절을 맞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총회선교주일을 맞은 우리 기장 교회들에게, 또한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 드리는 메시지로 준비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와 성령강림 사건

오늘 본문 말씀은 성서일과(RCL)가 성령강림절 구약 본문으로 제시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아는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라는(1절) 말로 시작합니다. 동쪽으로 이동하던 사람들은 시날 땅 한 복판에 자리를 잡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4절).

이 바벨탑 이야기에는 아주 심각한 문명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탑을 쌓을 때 돌이 아닌 단단히 구워낸 ‘벽돌’을 사용했고, 흙 대신 ‘역청’을 사용했습니다. 벽돌은 ‘도량형의 통일’을 상징합니다. 역청은 ‘틈 없는 연결’을 가리킵니다. 벽돌과 역청은 하나의 목소리만 허용될 뿐 다른 목소리는 허용하지 않는 제국주의를 달리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일사불란, 총화단결’이라는 말은 우리가 전체주의 사회에서 흔히 듣는 말입니다. 벽돌과 역청의 세상은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참 평화는 없습니다. 차이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것, 약한 사람들을 거칠게 동화시키려는 태도는 ‘폭력’입니다. 이렇듯 전체주의 사회는 차이와 다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독재자는 ‘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을 통해 차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세계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을 흩으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언어의 혼잡은 어찌 보면 징계이지만 은총일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하셨으니 말입니다. 다름을 용납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색입니다. 그 나라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입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세상이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그 한계를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한 후, 제자들은 끈 떨어진 연 같은 신세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곳에 모여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혀 모양의 불꽃이 그들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게 되어 각각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예루살렘에 순례 왔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이방인들은 제자들이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말하는 것을 듣고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이 사건의 역사성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서로 소통하기 어려웠던 세계가 다시 통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불통의 세상을 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 증언 제목 ‘통(通), 통(統), 통(痛)’에서 첫 번째 통은 ‘통할 통(通)’ 자를 썼습니다. 소통(疏通)이라는 단어에 쓰이는 글자입니다. 이 글자는 ‘통하다, 꿰뚫다’라는 뜻도 있지만, ‘오가다, 왕래하다’란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통은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양방통행’입니다. 독백(monolog)이나 명령(command)이 아닙니다. 대화(dialogue)이고 의논(discussion)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소통하는 능력’입니다. 소통은 이제껏 서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해서 하나가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에 하나님이 언어를 흩으셔서 사람들이 서로 오해하고 갈등하고 분쟁했습니다. 하지만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서로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길, 하나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렇듯 성령 충만한 사람은 소통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교회는 세상과 교회 바깥 이웃과 잘 소통하는 교회입니다. 뉴스를 보니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이 대통령의 별칭을 ‘통님’으로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친근한 이미지를 줄 뿐만 아니라 임기 중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란 뜻도 담아서 그렇게 했답니다. 이 대통령도 이 호칭과 해석에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정말 그대로 되기를 희망합니다.

봉합이 아닌 통합

서로서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게 하는 소통은 우리를 통합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통(通), 통(統), 통(痛)’의 두 번째 통은 ‘큰 줄기 통(通)’ 자를 썼습니다. ‘통합(統合)’이란 단어에 쓰이는 글자입니다. 통합의 사전적 의미는 ‘모두 합쳐서 하나로 만듦’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 됨’은 ‘획일(劃一)’과는 다릅니다. 획일은 개개인의 개성을 고려하지 않고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들같이 다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소통을 거친 통합은 획일이 아닙니다. 통일(統一)입니다. 통일은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합치되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연방제 통일이나 다양성 속의 일치를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통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교회도, 우리 사회와 나라와 민족도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그 통합은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통합이 아닙니다. 그건 전체주의 사회나 독재 국가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한 몸, 여러 지체’로 설명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지만, 서로 다른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몸이 다 눈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고 괴물입니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서로 달라야 건강할 수도 있고,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서로 달라야 아름다울 수 있고, 서로 다른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지향하는 통합은 ‘따로 또 같이’입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교단도, 한국 사회도 이런 통합을 이루길 빕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안타까워하면서 선거 때부터 대통령(大統領)을 “국민을 크게 통합하는 책임자”라고 규정했습니다. 부디 그 약속이 ‘빌 공’(空)자 공약(空約)이 아니라, ‘공적인 약속’을 뜻하는 공약(公約)으로 꼭 실현되기를 빕니다. 또 통합은 봉합이 아니라고 했으니, 내란 세력의 죄를 적당히 덮어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재명 대통령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처럼 보복하지 않고 화해와 평화와 단합을 이끄는 특별법을 제정해 내란 수괴나 내란 주요 종사자 이외의 사람들이 내란 행위에 대해서 고백하면 감형해 주는 조처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래야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진정한 대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십시오. 비록 이재명 대통령이 역대 최다 득표수를 얻어 당선되었지만, 반대 진영도 투표를 포기하지 않고 최대로 결집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내란보다 이재명 집권이 더 두렵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내란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5년 뒤 민주당 재집권이 쉬울까요? 그러니 작은 죄는 용서하고 큰 죄만 확실히 벌하면서, 내란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국민이 모두 재발 방지책에 공감하여 헌법과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모든 아픔이 나의 통증이 되어

‘통(通), 통(統), 통(痛)’의 마지막 통은 ‘아플 통(痛)’ 자입니다. 통증(痛症)할 때, 바로 그 통 자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이루려면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소통은 단지 말의 소통에 그치면 안 됩니다. 마음의 소통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웃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내 눈높이, 내 기준에서 보면 절대로 남의 사정을 다 헤아리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마음이 통해야 비로소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말을 써도 상호 소통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가대가 류형선 선생이 작사·작곡한 “모든 아픔이 나의 통증이 되어”란 곡을 불렀습니다. 이 곡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100주년 기념곡입니다. 그런데 NCCK의 역사가 우리 교단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오늘 불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가사를 다시 보시지요.

가장 낮은 곳으로 눈길을 두고 살아야

세상 모든 것들을 모두 볼 수 있어서

사랑은 멈추지 않아 지치지 않아

사랑으로 가는 길을 또다시 시작하네

더욱 아름답게 더욱 눈부시게

더욱 거룩하게 손잡고 가는 우리

세상의 모든 아픔이 나의 통증이 되어

품어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우리

우리는 멈추지 않아 지치지 않아

약속을 굳게 믿으며 새로운 길을 가네

이 가사에 보탤 말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이 NCCK 100년의 여정이었고,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가 살아온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가야 할 길입니다. 하지만 2절 가사는 좀 극단적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픔이 나의 통증이 되고, 그것들을 품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면 살기 힘듭니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지치지 않고, 우리는 그 길을 가고자 합니다. 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살아내고자 합니다. 왜? 그게 주님의 길이고, 사랑과 정의의 길이고, 바르고 옳은 길이고, 그 길을 가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왕이면 기쁘게 십자가의 길을 감당하며 걸어갑시다. 혼자서는 불가능하지만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손잡고, 신앙 동지들과 손잡고 가는 그 길에 성령님도 함께 하실 것입니다.

부디 이재명 정부도 취임 선서 후 국회 청소노동자들을 만난 것, 태안화력 ‘끼임’ 사망 노동자 대책위를 만나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을 임기 5년 내내 한결같이 유지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와 우리 교단 교회도 세상의 아픔을 나의 통증으로, 하나님의 통증으로 함께 느끼며 그들에게 곁을 내주고 마음을 나누며 함께 하는 교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