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를 넘어서…

1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2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서, 에브랏 가문 사람인데, 모압 지방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살았다. 3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4두 아들은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룻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 5그러다가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으니,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잃고, 홀로 남았다. 6모압 지방에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주님께서 백성을 돌보셔서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 7나오미가 살던 곳을 떠날 때에, 두 며느리도 함께 떠났다. 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8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님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룻 1:1-8)

예수의 족보에 오른 여인 룻

창조절 열한 번째 주일인 오늘, ‘성서일과’(RCL)가 제시한 구약 본문은 ‘룻기’입니다. 3년 주기의 ‘성서일과’ 중에 룻기가 본문으로 제시된 주일은 단 두 주뿐입니다. 그것이 지난 주일과 이번 주일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킨 관계로 룻기를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룻기를 한꺼번에 다루겠습니다.

룻은 구약의 인물이지만, 신약에도 등장합니다. 그것도 신약의 첫 책인 마태복음 1장 처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에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2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마 1:1-2)

이렇게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형식—정확하게는 ‘아버지 누구가 아들 누구를 낳고’라는 형식으로 16절까지 이어지는 ‘예수의 족보’ 가운데 특이하게도 5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중 한 명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이고, 나머지 4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 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이’(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 1:3.5-6)

이 네 명의 여인은 모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인데, 그중 세 번째로 오늘의 주인공 ‘룻’이 등장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예수의 족보에 등장하는 이방 여인 ‘룻’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룻기 이야기

룻기는 문학적으로 보아 아주 짜임새 있는 작품입니다. 인물들의 성격도 뚜렷하고, 플롯 또한 정교합니다. 먼저 우리는 나오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오미는 오랜 기근을 피해 고향인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온 여인입니다.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과 함께였습니다. 비록 물설고 말이 설어도 살기 위해서 찾아간 이방 땅이었는데, 거기서 가장인 엘리멜렉은 자기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도 홀로 된 나오미를 위로해 준 것은 아들들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의 원주민 처자인 룻과 오르바와 각각 맺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은 후사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두 아들의 이름은 그 황량한 시대에 무명의 민초가 겪어야 했던 상황을 암시합니다. 말론은 ‘질병’이란 뜻이고, 기룐은 ‘황폐’라는 뜻입니다.

남편의 죽음과 두 아들의 죽음을 연이어 경험한 나오미에게 그 땅은 더는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에 자기 고향 땅에 기근이 물러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나오미는 미련 없이 모압을 떠나기로 작정합니다. 하지만 길을 떠나면서 청상과부가 된 두 며느리에게 생각이 미쳤을 때, 나오미는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8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님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9너희가 각각 새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1:8-9)

이는 두 며느리를 냉정하게 떨쳐버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새 가정을 이루어 살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시어머니의 배려였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내 딸들”(1:11)이라고 부르며 “함께 가겠다”는 저들을 말립니다. 마침내 나오미는 “아서라, 내 딸들아. 너희들 처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구나. 주님께서 손으로 나를 치신 것이 분명하다”(1:13)라고 말합니다. 결국 오르바는 지속되는 권유를 받아들여 울면서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슬픔과 절망의 어둠 속에 갇힌 나오미를 차마 홀로 버려둘 수 없어 룻은 기어코 나오미를 따라나섭니다. 만류하는 나오미에게 룻이 한 말은 가슴 절절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16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17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1:16-17)

남편과 장성한 두 아들까지 잃고 쓸쓸하게 귀향하는 시어머니를 차마 홀로 버려둘 수 없어 그녀와 동행하려 한 룻의 마음은 연민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낯선 땅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문화적 관습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입니다. 자기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소수자로 살아야 함을 뜻합니다. 낯선 땅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삶이 힘겨워질 때 슬그머니 찾아갈 기댈 언덕을 포기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고향을 떠날 때 룻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로 룻의 자기희생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룻기 2장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두 여인의 삶이 얼마나 딱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먹고 살길이 막연했습니다. 룻은 선량한 사람을 만나면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울 수 있을 거라면서 밭에 나가보겠다고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다른 방도가 없었던지라 나오미는 그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남자들 틈에서 여성은 참 취약한 존재입니다. 게다가 남의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와 더불어 연명하려는 이방 출신의 여인은 가장 연약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칫하면 시선의 폭력과 언어폭력, 더 나아가서는 성적 폭력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룻이 이삭을 줍던 밭은 엘리멜렉의 친척인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추수를 독려하기 위해서 밭에 나왔던 보아스는 낯선 여인을 발견하고는 일꾼들을 감독하는 젊은이에게 그가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6저 젊은 여인은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사람입니다. 7일꾼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곡식단 사이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더니, 아침부터 와서 지금까지 저렇게 서 있습니다.(2:6-7)

보아스는 룻을 불러 이삭을 주우려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일하는 여자들을 바싹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우라고 이릅니다.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는 추근거리지 말라고 엄히 일렀다면서, 목이 마르거든 서슴지 말고 일꾼들이 길어다 놓은 물을 마시라고도 합니다. 감동한 룻은 이방 여자에 불과한 자기를 왜 이리도 살뜰하게 보살펴 주냐면서 이마를 땅에 대고 절했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이렇게 답합니다.

11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12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룻 2:11-12)

경계 허물기

보아스가 룻에게 이렇듯 친절을 베푸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친족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룻이 아름다워서였을까요? 둘 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보아스의 어머니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앞에서 소개한 마태복음 1장의 ‘예수의 족보’를 다시 보십시오. 사람들은 대개 보아스가 다윗의 ‘증조할아버지’(다윗—이새—오벳—보아스)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런데 그는 또한 여리고 성이 함락될 때 이스라엘을 도왔던 기생 ‘라합의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라합의 집은 여리고 성벽 위에 있었습니다. 성벽은 성안과 성밖의 경계 지점입니다. 어쩌면 그 사실 자체가 라합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라합은 사실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위계질서가 뚜렷했던 성안의 세계에서 약자들은 늘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합은 그것이 불의한 질서임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출애굽을 단행한 히브리인들의 대의에 공감했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관습과 풍속의 지배를 받습니다. 네 편 내 편을 가르고 경쟁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내 편의 무리한 반칙은 너그러이 용납하지만, 상대편의 반칙은 절대로 용납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인위적인 경계 짓기에 익숙합니다. 나라, 인종, 종교, 문화는 사람들을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하곤 합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동일성의 폭력입니다. ‘우리’의 범주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위험하거나 불길한 존재로 취급됩니다. 그들은 제거되어야 할 적으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라합은 사람들을 위아래로 나누는 세상,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확연히 갈리는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인권을 존중받으며 사는 세상을 꿈꾸며, 애굽을 떠나온 히브리인들의 꿈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이런 어머니에게 배운 것일까요? 보아스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경계 안에서 사고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오미의 고난 속으로 뛰어든 룻의 선택을 귀하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룻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려고 합니다. ‘환대’란 누군가에게 설 땅을 허락해 주는 것이고, 그가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돌봐주는 것입니다. 나라, 인종, 피부색, 종교, 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인간의 고난’입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내 것으로 수용할 때 세상은 따뜻해집니다.

하지만 경계 짓기는 필수적으로 내 편과 네 편을 나눕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차별하고 배척하고 정죄합니다. 이게 힘이 정의인 세상의 풍조입니다. 힘을 가진 소수는 힘이 없는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나눠서 통치합니다. 소위 divide & rule이 예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악’이 쓰는 전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힘 가진 소수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힘없는 자, 소외된 자, 약자, 병자, 장애가 있는 자 등도 사랑합니다. 그래서 이들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 대접받는 세상, 즉 하나님 나라를 꿈꾼 예수님은 ‘열린 밥상 공동체’를 통해 모두가 환영받고 존중받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 11:28)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청 대상은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유대인만이 아니었습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남자만 도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종도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 모두”가 초청 대상이었습니다. 이 ‘모두’, ‘다’, ‘all’에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초청을 받고 거절한 사람은 있었어도, 처음부터 초청에서 제외된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계승해서 ‘교회 운동—에클레시아 운동’을 펼친 사도 바울은 세례를 받고 ‘세상의 가치—시대의 풍조’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부활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3:28)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세상에 속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혐오가 없습니다. 환대와 포용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믿고 따르고 실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롯기가 쓰인 역사적 맥락과 롯기의 메시지

룻기 1장 1절은 “‘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룻기가 사사 시대에 쓰였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룻기는 사사 시대가 아닌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쓰인 작품입니다. 룻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롯기가 기록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그 이야기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룻기가 기록된 배경은 바빌론 포로 생활로부터의 귀환입니다. 페르시아의 왕인 고레스의 조처에 따라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꿈에도 그리던 조국 산천은 폐허로 변해 있었습니다. 전쟁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고, 민심도 흉흉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성벽을 일으켜 세우는 일보다 더 시급한 것이 낙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묶는 가장 든든한 끈은 종교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유대교 신앙을 새롭게 함을 통해 나라의 기초를 세우려 했습니다. 개혁의 열망에 불탄 그들이 맨 처음에 취한 조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종교적 순수성을 회복한다는 명분에 따라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에게 이혼을 명한 것입니다. ‘순수함’이라는 것이 때로는 악마적으로 작동될 때가 많습니다. 순수함을 강조하는 순간 그 기준에 미달하는 것은 잡된 것, 혹은 더러운 것으로 취급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죄 된 것이 됩니다. 이런 순수의 광풍에 내몰려서 어쩔 수 없이 눈물로 헤어지는 부부들이 많았습니다. 자식들은 부모 가운데 한쪽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비인륜적 세태였습니다.

룻기는 이런 반인륜적 세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책입니다. 룻기는 모압 여성 룻을 누군가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 즉 미덕의 표본으로 내세우며, 편협한 민족주의나 종교적 편견을 넘어 관용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비판적으로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룻기는 차별에 반대하고, 관용의 정신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책입니다.

교회개혁주일이었던 지지난 주일에 한국교회 교인 200만 명을 모아 ‘동성혼·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아 내겠다는 10·27 집회가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열렸습니다. 그 집회에 의외의 인물들이 참석한 것에 놀랐습니다. 제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뭐라 말하나 살펴보았습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찬성하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반대한다. 차별은 반대하나 두루뭉술한 차별 반대는 다음 세대에 정체성 혼란을 초래하니 반대한다. 분명한 경계 짓기가 필요하다.” 대충 이런 주장들이었습니다. 제 귀에는 “술 먹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 정결법을 파기했습니다. 그것을 목숨같이 지키던 바리새파 출신인 바울 역시 그랬습니다. 그것이 의도하건 안 하건 경계 짓기와 차별과 혐오, 나아가 정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와 바울은 정죄가 아니라 은총과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아직 정결법 유대교에 머물러 있는 한국 개신교회가 딱할 뿐입니다. 하필 그 집회가 교회개혁주일에 열려, 스스로 개혁의 대상임을 천명한 것도 참담합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다 바알에, 세상 풍조에 무릎 꿇어도, 우리는 남은 칠천 명이 됩시다. 한국교회의 멸망을 막아 낼 의인 열 사람이 됩시다. 소수만 있어도 하나님의 뜻은 이어져 갑니다. 그 뜻을 이어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