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것과 전할 것

17다음에 지시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유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18첫째로, 여러분이 교회에 모일 때에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환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파당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그렇지만 여러분이 분열되어 있으니,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21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22여러분에게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 (고전 11:17-22)

세계성만찬주일

매년 10월 첫째 주일은 전 세계교회가 함께 지키는 ‘세계성만찬주일’ (World Communion Sunday)입니다. 이날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전 세계교회가 예배 때 성만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이 주일은 1933년, 미국장로교 휴 톰슨 커(Rev. Hugh Thomson Kerr) 목사가 주도한 행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전 세계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성찬을 나누는 것을 통해 연합의 상징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1936년에는 ‘미국장로교’가 ‘세계성만찬주일’을 공식적으로 지키기 시작했고, 1940년부터 ‘미국교회협의회’로 확대되어 점차 다른 교단과 지역으로 퍼져 나가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사는 ‘분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파나 교회 분열의 중심에는 성만찬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도 Lord’s Supper(주님의 만찬), Holy Communion(거룩한 교제), Eucharist(감사례) 등 다양합니다. 그러다가 1982년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과 직제위원회’ 총회에서 󰡔세례, 성만찬, 사역󰡕(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BEM)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채택됩니다. ｢리마 문서｣ 또는 ｢BEM 문서｣라고 불리는 이 문서는 개신교회와 동방정교회 그리고 로마가톨릭을 포함한 전 세계교회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성만찬 예식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교회가 교리와 교파를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만찬을 함께 거행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세계성만찬주일’이 더 확산했습니다.

16세기 교회개혁을 촉발했던 마르틴 루터의 ｢95개 논제｣가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는 ｢BEM 문서｣가 그것과 버금가는 문서라고 평가합니다. 다만 16세기의 ｢95개 논제｣는 교회 갱신을 의도했으나 결과적으로 교회 분열을 초래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의 ｢BEM 문서｣는 교회 갱신을 의도했는데 교회 일치까지 구현했다는 데에 성과가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세계성만찬주일’은 교회 분열의 주요 원인이었던 성만찬을 교회 일치의 지렛대 삼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성만찬 제정사 다시 읽기

저는 오늘 성서일과 본문을 따르지 않고, 고린도전서 11장 17절 이하에 있는 성만찬 이야기를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으로 새번역 성경은 여기에 ‘성만찬의 오용을 책망하다’라는 소제목을 붙였습니다. 둘째는 23절로 26절까지의 말씀인데, 공관복음서와 병행하는 ‘성만찬 제정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27절로 34절인데, 새번역 성경은 ‘주님의 만찬을 바르게 행하여야 한다’는 소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잘못 행해지고 있던 성만찬을 꾸짖고 바로 잡는 이야기 가운데, 샌드위치처럼 ‘성만찬 제정사’를 끼워 넣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23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24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5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6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고전 11:23-26)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마가, 마태, 누가, 공관복음서 모두에 ‘마지막 만찬’(Last Supper)이라는 소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1장에 있는 ‘성만찬 제정사’는 누가복음과 비슷하게 ‘기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Do this i0n remembrance of me.”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기억’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 마지막 만찬은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유월절’이었습니다. ‘유월절’(逾越節)은 ‘과월절’(過越節)이라고도 하는데, 그리스어로는 ‘파스카’(πάσχα)이고, 영어로는 ‘Passover’입니다. 그 뜻은 “(재앙이) 넘어가다”(출 12:27)입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은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처음 난 것들의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의 피를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집은 재앙 없이 그냥 넘어갔습니다(passover). 유월절은 이 사건에서 유래한 명칭이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재앙에서 구원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음식이었는데,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고,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씀함으로써 그것들에 당신의 죽음과 관련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류는 멸망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억하라’고 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그로 인한 구원 사건’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덕(德)을 본 것만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계속 희생하고 우리는 그 덕분에 천국행 구원열차에 무임 승차합니다. 한 마디로 구원은 공짜입니다. 하지만 priceless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고 귀중하다’라는 뜻이지 ‘공짜나 무료’를 뜻하는 free가 아닙니다. priceless를 free와 동의어로 착각한 것에 바로 기독교의 타락과 비극이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Do This...

우리는 ‘성만찬 제정사’에서 예수님이 ‘기억하라’고 했을 때, 그 앞에 ‘이것을 행하여’라는 말이 붙어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과연 ‘이것’이 무엇일까요? ‘성만찬 예식’은 아닙니다. 공관복음서의 예수님은 당신을 결코 예배의 대상으로 묘사하지도 않았고, 어떤 예배 의식도 제정하지 않았습니다.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와 관련해서는 예수님의 공적 활동을 상기시키고, 미래와 관련해서는 그의 죽음을 기념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의 공적 활동은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 운동’은 ‘열린 밥상 공동체’(open table fellowship)를 통해 실현했습니다. 그 밥상에는 남녀, 빈부귀천, 인종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었고, 모두 둘러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금 성만찬 때 나눠 받는 한 조각의 빵과 한 모금의 포도주가 아니라 실제적인 식사를 나눠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차별 없는 식사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체험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에클레시아 운동으로 계승했습니다. 그리고 열린 밥상 공동체를 주님의 만찬으로 재현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에클레시아에 들어오면 거기에서는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그 차별 철폐는 로마식 만찬과 다른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실현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본문과 이어지는 11장 3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십시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어떤 사람은 일찍 도착해서 즉시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찍 도착할 사람은 누구였겠습니까? 생계를 위해 노동해야 했던 사람이 아니라 여가가 있던 사람, 즉 부유하고 권력이 있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일찍 도착해서 집주인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다 먹으면, 늦게 도착한 이들은 남은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주님 스타일의 만찬을 당시 세상의 사회적인 위계질서와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로마 스타일의 만찬으로 환원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할 모델인 ‘에클레시아’에서, 구체적으로는 ‘고린도교회’에서, 평등한 ‘주님의 만찬’이 아니라 불평등한 ‘로마식 만찬’이 행해졌습니다. 이는 바울이 폐지했던 세상의 풍조가 다시 교회 내에 침투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이어서 자신이 전해 받은 것을 고린도 공동체 구성원에게 다시 전해 줍니다. 그것이 바로 ‘성만찬 제정사’이고, 거기 나오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라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그로 인한 구원 사건’을 기억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열린 밥상 공동체’와 그것을 계승한 에클레시아의 ‘주님의 만찬’이 ‘평등한 식사’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행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만찬은 “예수로 인해 덕(德)을 보겠다”는 예식이 아닙니다. 예수에게 이익이나 도움을 입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로 인해 덕을 보았으니, 이제 예수처럼 덕(德)이 되겠다고 결단하는 예식이 되어야 합니다. 값없이 덕을 입었으니, 이제 이웃에게 이익이나 도움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받았으니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덕(德)을 행하라!

제가 오래전에 성만찬에 관한 국악찬송가 가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함께 떡을 나누자 너 위한 내 몸이니

함께 잔을 나누자 너 위한 보혈이니

함께 떡을 나눌 때 주와 나 한 몸 되고

우리 잔을 나눌 때 너와 나 하나 되네

이제 세상 향하여 주 본받아 나가세

나 가진 것 나눌 때 주의 사랑 퍼지리

주가 희생했듯이 우리 서로 위할 때

주의 나라 이 땅에 누룩같이 퍼지리

창조절 ‘탄소금식’ 중입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금처럼 살면’ 인류의 미래는 없습니다. 물론 우린 선진국에 사니까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추우면 난방을 켜고, 기후재난으로 농·수·축산물 가격이 올라가면 툴툴거리면서 대형할인매장에 가서 상품을 구매하며 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사는 동안 가난한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점점 더 죽음으로 내몰릴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덕을 볼 생각만 하지 않고 덕이 될 생각까지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유니세프나 월드비전 같은 구호단체에 후원하는 것만이 저들을 돕는 길이 아닙니다. 후원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소비생활일 지도 모릅니다. 탄소금식과 탄소헌금으로 기후정의에 힘쓰는 일이 저들을 기후 지옥에서 구해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이 맡긴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맡긴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받기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누라고 하십니다. 베풀라고 하십니다. 희생하라고 하십니다. 덕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기후 지옥을 막을 수 있고, 인류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 ‘세계성만찬주일’을 맞아 ‘이것을 행하여 주님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