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부르신 목적

16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일러라. '주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하고 말하면서 이렇게 전하여라. '내가 너희의 처지를 생각한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는 일을 똑똑히 보았으니, 17이집트에서 고난받는 너희를 내가 이끌어 내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하여라. 18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또 너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이집트의 임금에게 가서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이제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을 걸어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요구하여라. (출 3:16-18)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제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면서 제 마음에 남는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으로 알려진 마태복음 5:23-24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저는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남과 북이 화해하지 못하고 드리는 예배는 반쪽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교회와 함께하는 기도회를 추진했고 금강산에서 평양에서 북녘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한반도에 살아가면서 참된 예배는 우리 민족이 진정한 화해를 통해 한마음 되어 예배를 드릴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예배를 드릴 날을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분단된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은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2013년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평화열차위원회를 만들어 23박 24일 베를린에서부터 부산까지 평화열차를 타고 호소했고, 2015년 청와대에 종전에 대한 행정청원을 시작으로 4년간 지구촌을 돌며 세계교회와 함께 한반도평화조약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3년 동안 종교시민단체들과 함께 종전캠페인을 진행했고 지난해 서명 용지를 가지고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과 유엔, 미 국무부 등에 전달하며 종전을 호소했고 미국 시민들에 의해 현재 미 의회에 한반도 평화법안(HR 1369)이 상정되어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니까? 이 부르심, 소명에 관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주제입니다. 부르심의 소명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왜 부르셨을까요? 저는 예배자로 부르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올해 은퇴했는데 시무하기까지 저 자신이 예배자라는 사실을 늘 생각하며 목회를 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강단의 의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저도 회중석에 앉아서 예배자로서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교인들도 의아해했습니다. 대부분 교회가 목사는 예배의 인도자이고 교인들은 회중석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사람으로 인식해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은퇴하고 지금 경기도 가평의 시골에 살고 있는데 예배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약속하고 매일 11시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 인도자가 아닌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제가 이런 부르심의 소명을 발견한 것은 출애굽기를 읽으면서입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에서 해방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성서를 보면 요셉이 애굽에 형제들에 의해 팔려 갔고 요셉이 바로의 총애를 얻어 고센 땅에 자기 가족들을 끌어들여 정착하게 됩니다. 요셉을 총애하던 바로도 죽고 요셉도 죽은 후에 애굽 땅에 불어난 히브리 백성들은 박해를 받게 됩니다. 노예의 삶을 전락한 그 백성들이 애굽 땅에 들어간 지 430년 만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을 해방시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해 주십니다. 43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살았다는 것은 출애굽기 12:40이나 갈라디아서 3:16-17절에 근거해서 추정한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고 살았습니다. 자기들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잊고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은 모세를 통해서입니다. 저도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한 가지 놓치고 읽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를 수없이 읽으면서 늘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한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부르심에 대한 소명과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18, 5:3, 8:27을 보면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애굽으로 들어간 모세가 바로에게 요구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이런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바로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자로서의 자의식을 회복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부르신 하나님을 향해 예배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모든 기득권과 자신들의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광야를 향해 경계를 넘어선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하비루, 히브리인들은 ‘강을 건너온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계를 넘어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애굽을 떠난 그 날을 그들은 유월절로 지킵니다. 유월절은 히브리어로 페사흐, 영어로는 pass over라고 하는데 ‘넘어가다’ ‘경계를 넘어서다’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문명 속에 살던 그들이 광야에 무엇이 있기에 그들을 강을 건너 광야로 들어갔을까? 오늘 우리는 히브리 민족과 같은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일상과 문명을 포기할 만한 그 무엇이 있었을까?

모든 것이 결핍된 땅에 숨어 있는 보물

애굽에서 파라오를 경배하고 파라오가 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였던 그들이 자신들의 봇짐을 챙기고 과감하게 광야로 들어갑니다. 광야는 모든 것이 결핍된 곳입니다. 낮에는 타는 듯한 더위가 있고 밤에는 추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그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도 결핍된 광야의 환경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배부르게 먹을 것을 달라. 목마르니 물을 달라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었던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우리를 광야로 데려와 죽게 만들려 하느냐고 아우성을 칩니다. 광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애굽의 문명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누렸던 문명의 이기를 버리기까지 그들은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습니다. 왜 부르셨는지, 왜 결핍된 광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고 부족하고 결핍된 땅에서 그들이 숨어 있는 보물을 발견하기까지 훈련시키시고 기다리십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생활 하면서 광야 같은 삶을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광야에 숨겨 놓으신 보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미드바르’ 라고 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다바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지성소를 두십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입니다. 바로 이 지성소가 ‘디비르’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바로 말씀인 다바르에서 미드바르, 디비르 다 어원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춥고 배고프고 목마른 것만 생각했지 광야에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것인가.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로 걱정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걱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가 아무 의미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자신의 존재가 예배자이고 그 예배를 위해 숨겨 놓으신 말씀과 지성소를 찾지 못한다면 늘 먹고 마시는 문제에 허덕이다 인생을 허비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노력이나 힘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 바로 광야였습니다. 이 광야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심하게 돌보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필요한 것들을 언제나 공급하셨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고 조급해하는 백성들에게 하늘의 이슬과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참된 예배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며 예배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향해 홍해를 건넜지만, 또 하나 건너야 할 경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단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경계입니다. 그 경계 앞에서 히브리인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늘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경계를 넘어설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 이르지 못합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부르심을 바르게 깨달은 사람만이 주저하지 않고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 당당하게 나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 예배의 자리

오늘 우리는 교단이 정한 평화통일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79년 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하여 감격스러운 기쁨을 누렸지만 극심한 이념투쟁이 진행되며 전쟁을 겪게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습니다. 갈라지고 찢긴 채로 지금 광야의 길을 남과 북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분단은 미완의 해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갔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을 때 미완의 출애굽이었습니다. 그들이 넘어야 할 경계가 있었고 그 경계를 넘어야 진정한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멈추고 우리가 넘어야 할 통일이라는 경계의 강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해방의 완성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이 있고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나침반입니다. 바로 그 나침반을 바라보고 걸어야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침반인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상실하고 계속해서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퇴행을 보였듯이 우리 민족 역시 그런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친일적인 행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분단을 영구화하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입니까? 민족의 제단에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바쳤던 독립투사들은 나라가 분열되고 분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온 민족이 하나 되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독립된 나라를 꿈꾸며 기꺼이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쳤을 것입니다. 독립투사들은 남쪽이나 북쪽의 어느 한 편에 기울어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민족의 해방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이런 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성서의 정신과 같이 갈라진 것을 메우고 진정한 화해를 위해 일하고 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일입니다.

우리 교단은 끊임없이 이런 정신을 잇기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생명과 정의, 그리고 평화를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이런 가치를 가지고 기도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해왔습니다. 이런 가치들이 우리의 삶이 되고 예배가 되기를 힘써왔습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 되고 진정한 통일을 이룰 날을 꿈꾸며 기도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것을 살리는 일입니다. 구약의 제물이 된 짐승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진정한 산 예배에서 보여주셨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되는 길을 추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장자에 나오는 ‘조릉의 숲’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장자가 조릉의 울타리 안을 걷고 있었을 때 큰 날개를 가진 까치를 보고 활을 겨누었습니다. 까치는 큰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자신이 잡아먹을 사마귀에 눈이 팔려있기 때문입니다. 사마귀는 또 매미에 눈이 팔려있고 매미는 아름다운 정원에 정신이 팔려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깨달은 것은 본래 모든 사물이 서로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에 팔려 진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 자신의 문제에 사로잡혀 성서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모습이 예배에 반영되기도 합니다. 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다른 모든 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배제하고 없애 버리려 한다면 결국은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이 위험한 절벽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8.15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에 그런 절벽을 만들어 오는 데 집중했습니다. 출애굽 당시 자신들을 예배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름을 잊은 백성들이 자신의 문제에만 집착하다가 광야에 뼈를 묻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민족을 위한 예배자로서 부름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임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서울 제일교회 모든 교우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