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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4년
제목 [6.9] 우리에게 왕을...ㅣ정원진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4-06-11
조회수 34
첨부파일
p240609_질그릇 1단.pdf

우리에게 왕을

 

4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모여서,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갔다. 5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6그러나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는 장로들의 말에 마음이 상하여, 주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7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8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 9그러니 너는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라." 10사무엘은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삼상 8:4-10)

 

사무엘기 연속설교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 후 셋째 주일이고, 우리 교단이 정한 총회선교주일입니다. 또 내일이 마침 610일이어서, 오늘을 ‘6.10민주항쟁 기념주일로 지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용하는 성서일과’(RCL)는 지난 주일부터 구약 본문을 사무엘기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저는 앞으로 10주 동안 사무엘기 상·하를 본문으로 해서 증언할 계획입니다.

사무엘기는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한 권의 책이었으나, 후에 그리스어 번역본을 만들 때 두 권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이 책에는 사사 시대 말기부터 왕정이 확립되어 중앙집권체제가 세워지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 즉 주전 1,040년부터 971년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이 인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인물은 이스라엘 왕정의 기틀을 놓은 사무엘과 초대 왕 사울, 그리고 통일 왕국을 건설한 다윗입니다. 사무엘기라는 이 책의 이름은 위 세 인물 중 사무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사사기까지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특징

사무엘기는 이스라엘의 초기 왕정 시대를 다루고 있어서, 사무엘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정이 도입되기 전에 출애굽기에서 사사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발전시켜 온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특징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에는 군주가 없었습니다(17:6; 18:1; 19:1; 21:25 ). 애굽 왕 바로, 즉 군주에게서 탈출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군주를 거부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둘째, 이 공동체는 야훼만의 신앙으로 결속된 종교적공동체였습니다. 저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공동의 제사 의식을 통해서 저들을 군주에게서 해방한 야훼 하나님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야훼만의 신앙은 단순히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었고, 정치적인 결단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야훼여! 당신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요 왕입니다라는 고백은 사람 위에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예속될 수 없다는 염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야훼만은 군주들의 횡포를 거부하는 핵심적인 거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염원은 특히 법전에 역력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십계명의 첫 부분만 바로 이해해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나 이외에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 “어떤 형상으로 된 것이든지 우상화하지 말라”, “너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등은 신적인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군주들, 즉 신의 대리자로 횡포 하는 군주들 또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신처럼 행세하는 군주들에 대한 반대의 뜻을 뚜렷하게 밝힌 것입니다.

셋째, 군주의 지배에서 탈출한 이 공동체는 평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고대 사회와 달리 이 공동체에는 계층이 없었습니다. 경제에서 법 제도에 이르기까지 평등주의를 철저하게 실현했습니다. 계약법전(20:22-23:33), 사제계법전(1-16), 성결법전(17-27), 그리고 신명기법전(12-26) 등을 살펴보면 이러한 노력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법전을 집약해 놓은 십계명은 억눌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보호하고 강자의 횡포를 억제하려는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가령 안식일법 같은 것은 인간은 노동 후 반드시 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고, ‘노동하지 않은 너희 지배자들은 쉴 권리가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또 간음이나 도적질,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을 금한 것 역시 약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고, 권력으로 횡포할 수 있는 강자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넷째, 따라서 이 공동체에는 상존(常存)하는 지배구조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사사들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평소에 가족, 종족, 지파를 단위로 자율권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에게서 특별한 은사(지명)를 받은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총지휘하도록 했고, 열두 지파는 그의 지휘 아래서 위기를 타개해 나갔습니다. 이들을 사사라 부르는데, 그들은 일반인과 똑같은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사들은 자기 사명을 끝내면 도로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단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활동했던 사무엘은 상존(常存)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렇듯 상존하는 지배구조를 두지 않았다는 것은 권력을 한 사람에게 독점시키지 않겠다는 투철한 의지의 반영이었습니다.

사사 시대까지의 고대 이스라엘은 엄격한 의미에서 국가가 아니었고 지파 동맹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왕을 세워서 국가체제를 갖추는 것을 꺼렸습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저들 자신이 군주제도 밑에서 신음하던 민중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세에 침략당하고 패배를 거듭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군주제도를 갖춘 강력한 국가체제를 원하게 되었고, 마침내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약 200년간 기적적으로 지속해 오던 평등사회는 붕괴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입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 바로 앞에는 당시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지자, 자기 두 아들을 사사로 임명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1사무엘은 늙자, 자기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다. 2맏아들의 이름은 요엘이요, 둘째 아들의 이름은 아비야다.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사사로 일하였다. (삼상 8:1-2)

 

원래 사사는 제사장과 달리 세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자기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운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이스라엘 평등공동체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웅변하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사사직을 예외적으로 세습받은 사무엘의 두 아들은 제 잇속만 차리느라 이스라엘을 법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은 다른 나라처럼 왕을 세워달라며 간청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장로들이 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을까요?”라는 문제가 성경 시험에 나온다면 모범 답안은 블레셋을 비롯한 외적들과 효과적으로 싸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많은 권위 있는 이스라엘 역사서도 모두 그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성경의 해당 구절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사무엘상 85절을 보면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삼상 8:5)

 

외적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바로 앞장인 사무엘기상 7장은 사무엘이 이끄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을 대파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굳이 왕이 없더라도 전쟁에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또한 백성들은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다면 어른의 아들들은 사사로서 자격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사사로 세워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어야 옳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다른 사사를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을 요청했습니다.



왜 굳이 왕을 요구했을까?

다른 사람을 사사로 세우면 그뿐인데, 장로들은 왜 굳이 왕을 요구했을까요? 바로 다음에 장로들은 정말 자기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합니다: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왕을 달라는 장로들의 요구 밑바닥에 깔린 진정한 의도는 다른 나라들처럼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나라들처럼 되고 싶다라는 말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싶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님 계명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는 정의, 평화, 자유, 평등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우상을 버리고 진정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처럼 되겠다고 합니다.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정의가 되는 나라로 나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7절은 이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묘사합니다:

 

7c그들이 너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야훼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8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 (삼상 8:7c-8)

 

사무엘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신학적인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야훼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 역사로 이해하고, 인간 왕을 달라는 요구도 야훼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과 인류학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의 역사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장로들이 왕을 요구한 이유를 다르게 봅니다. 그들은 인구팽창과 철기 사용 및 기술 발달로 인한 생산의 증가와 그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축적 등이 군주제 등장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다 같이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야훼만의 신앙 아래서 서로서로 돕고 살았는데, 잘살게 되고 빈부격차도 생기니까 자기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이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왕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왕을 요구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을 달라는 요구는 그만큼 이스라엘이 가진 것이 많아졌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지 않더라도 삶을 이어 나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서 굳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를 필요가 없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믿고 신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믿고 신뢰한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은 아닐까요? 교회는 세상 안에서 존재하면서 어떻게 하면 세상의 풍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유지하고 실현하면서 존속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사무엘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왕을 세운다는 것, 즉 군주제가 절대 악은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합니다. 군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왕정의 폐해를 백성들에게 낱낱이 일러주라고 합니다. 그것을 다 듣고도 백성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고집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왕정을 선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한때 잘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파멸했습니다. 잘살아 보자고 한 일인데, 결론은 파국이었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선언을 넘어) 행동합시다

제가 지지난 주일에는 도시·농어촌선교주일을 맞아 농촌자매교회인 방동교회에서,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환경주일을 맞아 향린교회에서 각각 증언했습니다. 두 교회에서 증언하면서, 그리고 요즘 여러 회의에 참석하면서 든 생각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후 위기를 발등의 불이 아니라, 강 건너 불쯤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319일에 󰡔2023년 기후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5상승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과학자들이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던 1.5상승까지 겨우 0.05남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0.05상승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요? 기후위기시계는 오늘 현재 ‘543이 남았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지난 410일에 한 연설에서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해 지구를 구할시간이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이상 상승해도 지구나 인류가 당장 멸망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타고 지옥행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비슷해질 것입니다. 그때는 제동장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인류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고, 그래서 점점 살기가 불편해지다가, 결국에는 살기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왜 제동장치가 없어지냐면, 기온 상승은 영구동토층을 녹일 것이고, 이는 영구동토층이 품고 있던 메탄가스 배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수십 배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그런데 기온 상승영구동토층 해동메탄가스 방출기온 상승이라는 섬뜩한 악순환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인류는 현재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말기 암 환자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인류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언만 했지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1991년부터 2021년까지 30년간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이 인류가 출현한 이후로 1990년까지 배출한 양보다 훨씬 많습니다. (7850억 톤 vs. 9480억 톤). 그래서 인류는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고,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 끔찍한 사실을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풍자적으로 고발합니다. 202112월에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 혜성의 충돌 위기를 소재로 하여, 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앞에서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그리고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감독 아담 멕케이(Adam Mckay)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보고서를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든 영화가 바로 돈룩업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눈으로 거대 혜성이 매일 지구로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현실을 “Don't look up! 위를 쳐다보지 마세요!”라는 말로 풍자합니다. 그 결과 전 인류는 혜성 충돌로 멸망하고 맙니다.

오늘은 교단이 정한 총회선교주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날은 기장이 1953610일에 새역사를 출발한 것을 기념하면서, 오늘날 집중해야 할 선교과제를 모색하는 주일입니다.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해 지구를 구할 시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최우선 선교과제임은 분명합니다. 이미 우리 교회는 이 과제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분발해야 합니다. 앞으로 저는 탄소금식 생활화, 탄소헌금으로 햇빛발전소 세우기와 나무 심기를 전 기장 교회, 전체 한국교회로 확산시키는 데 헌신할 예정입니다. ? 그래야 나도 살고, 내 가족도 살고, 이웃도 살고, 지구 생태계와 인류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2년이라고 말하면, 정확히 누가 세상을 구하는 데 2년이 걸리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정답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입니다. (더 늦기 전에) 여러분이 지금 당장 행동해야만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더 잘살아 보자고 왕정을 선택했는데, 결과는 파국이었습니다. 인류도 더 잘살아 보자고 성장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는 기후 위기입니다. 다행히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선언을 넘어 지금 당장 행동합시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왕이나 풍요나 편리가 아니라, ‘기후위기 비상행동입니다. 이 거룩한 선교에 모두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