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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4년
제목 [6.2] 비움과 생명참여의 생태영성ㅣ이영미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4-06-04
조회수 47
첨부파일
p240602_질그릇 1단.pdf

비움과 생명참여의 생태영성

 

8:20노아는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21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22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12:22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23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24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25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6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27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2:5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들어가는 말: “인식의 생태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성령강림후 둘째 주일이면서 환경주일로 지킵니다. 환경주일 설교자로 서울제일교회에 초청해주심에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환경주일을 맞이하여 두 가지 질문으로 오늘의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혹시 아침에 교회 오시면서 자연에게 말을 걸어보신 성도님이 계신지요? 어떤 분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면서, “꽃이 예쁘네. 꺾어서 집에 꽂아 놓을까? 냄새가 독해서 난 백합이 별로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 백합이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들에 핀 백합화에게, “백합화야, 꽃잎이 생생한 걸 보니 요즘 비가 적절하게 왔나 보네.” 또는 잎아, 왜 시들었어? 햇빛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라고 말을 건네는 것은 백합의 입장이 되어 그 상태를 살펴보는 대화입니다.

방금 전, 복음서 본문으로 읽은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은 자연과 더불어 일상 속에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셨던 자연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까마귀의 일상 속에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며 길러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백합화와 모습 속에서 창조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탄하십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도 겨자씨, 포도원, 씨뿌림 등의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전해집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연과 더불어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며 그 안의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의 섭리를 전파하셨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생태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네 개의 사진을 보면서, 두려운 감정이 드시나요?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드시나요?





뜬금없는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하는 이유는 환경주일을 맞아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또는 성서가 말하는 자연이 무엇인지? 보다, 자연을 포함한 생태공동체를 바라보는 우리 시선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함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생태적 회심이라고도 불리는 생태적 전환이 우선되지 않고서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인간의 유익을 위한 또 다른 욕망의 발로에 불과하다는 것이 오늘 설교의 결론입니다.

바로 전에 던진 질문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말씀드렸는데, 조금 더 살펴보자면, 첫 번째 질문에서 전자는 자연을 그리고 동물을 대상화, 혹은 수단화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그리고 동물을 대상화시킬 때에 그들은 우리 마음속에 있기보다는 우리와 분리된 객체로 인식됩니다. 후자는 그 상태를 살피며 자연을 주체로 인식하는 태도입니다. 이 경우 그들이 혹시 아프거나 고통을 당하면, 그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고통은 나의 고통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진을 보면서 두려운 감정이 올라왔다면, 내 안위가 걱정이 되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음을 반영해주고, 안타까움과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면, 생태적 사고를 하고 있음을 반영해줍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생태위기에 대한 교황의 교서를 담은 <찬미받으소서>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중심에서 아파하는 공감이 없이 몸의 실천(생태적 전환)은 어렵다.”

<찬미 받으소서>, 19.

 

지금을 공감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도 인간과 동등한 생태계의 주체자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생물 안에 보시기에 좋았다(토브)”고 말씀하신 그 창조주의 선함(토브)이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는 눈을 비로소 가지게 됩니다. 자연을 주체로, 그리고 우리와 연결된 존재로 바라보는 시 한 편을 나누면서 본격적으로 성서를 통한 생태적 전환의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호쿠사이가 말하기를/ 로저 키이스

 

[중략]

그가 말하기를, 모든 것이 살아있다네

조개껍질과 건물, 사람, 물고기

, 나무, 숲이 살아있다네

물이 살아있다네

 

모든 것이 자신의 삶을 가지고 있다네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살고 있다네

그가 말하기를, 당신 안의 세계와 함께 살라.

[이하 생략]

 

2. 생태적 전환 1: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8:20-22; 삼상 17:47참조)

생태적 전환이란 생태적 관점에서 사고하고, 생태적 언어를 사용하고, 생태적 삶을 사는 것을 다 포함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구원의 종교라 할 만큼 구원신앙이 중요한 데, 생태적 전환이 우선으로 필요한 신앙관이 바로 구원입니다. 오늘의 본문 창세기 8장은 홍수심판 이야기가 끝나는 대목인데, 이 본문은 우리에게 성서가 전하는 구원에 관한 중요한 두 개의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이제는 다시 안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시나요? 본문은 놀라운 사실을 전합니다.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6:5-8)

 

20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0-22)

 

창세기 821절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이유가 인간이 어릴 적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은혜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을 했으니까, 혹은 내가 ○○을 하면 하나님이 복 주시겠지창세기 8장은 이러한 믿음을 180도 뒤집습니다. 인간은 변한 게 없고 오히려 더 악해졌는데,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은혜에는 회개도 조건도 없는 무조건적 은혜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달린 것입니다.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함으로써 우리가 지구를 구할 것 같은 희망과 착각에 빠집니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지구를 가 구할 수 있다는 교만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을 착취하고 함부로 대했던 죄인임을 고백하고,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으로 인한 생태파괴에 대한 죄를 고백하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이것을 고칠 것이라고 하는 그러한 교만한 마음이 출발점이 된다면, 지금 잠시 생태 운동의 행동을 멈추고 자신을 다시 성찰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이들을 위한 지구: 인류 생존을 위한 가이드>의 저자는 개인 혹은 교회와 같은 작은 공동체가 이루는 환경 운동의 한계와 영향력을 지적하면서, 대기업이나 국가의 근본적인 회개가 없다면 인류의 생존은 희망이 없다고 경고합니다. 자본주의가 양산해낸 성장과 탐욕을 버리고 근본적인 회심을 해야 함을 촉구합니다.

창세기 8장이 전하는 두 번째 구원에 대한 생태적 인식의 전환은 구원은 죽어서 유토피아에 이르는 사후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상에서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그 안에서 모든 생명이 행복을 누리는 새 하늘 새 땅의 새 창조임을 보여줍니다. 구약성서의 중심이 되는 두 신앙의 축이 창조신앙과 구원신앙인데 이 둘은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연관된 신앙입니다. 즉 구원은 창조질서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본래 축복을 모든 생물이 누리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성서의 구원 이해입니다.

창세기 8장이 구원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총에 의해 주어지며, 그 구원은 창조의 회복이라는 생태적 구원 이해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해체하는 일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중심에 욕망을 비워버리고 그 안에 생명을 담아야 합니다. 이미 있는 오물로 찬 통에 생수를 부으면, 그 물은 희석된 오물이지 생수일 수 없듯이, 인간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인 인간 중심의 욕망을 비우지 않고, 생활의 태도를 살짝 바꾸는 것으로 퉁쳐 보려는 행동은 우리의 심리적 안정과 위로, 그리고 희망을 가져 보려는 꼼수일 뿐입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제 그리스도교회는 비움의 영성으로 생태적 전환을 함께 이뤄가야 합니다.

 

3. 비움(케노시스, kenosis)의 생태영성 (2:5-8)

여러분, 두꺼비집이 뭔지 아시나요? 옛 시골집 처마 밑이나 집 뒤편 구석에 걸려있던 두꺼비집은 전류의 공급체와 수용자를 연결해주면서 지나치게 전력을 많이 쓰는 순간 자신을 온전히 비움으로써 전류의 흐름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이 도를 넘어섰을 때 홍수를 통해 자연을 비움으로써, 세상을 리셋했습니다. (6-8) 그러나 인간의 악함은 계속되었습니다. 수천 년이 흘러 인간의 죄악이 도를 넘어섰을 때, 이번에는 스스로를 비우고 이 땅에 오셔서, 죽음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비우는,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비움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과도해지는 인간의 탐욕의 죄와 심판을 경고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장과 번영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빌립보서 2장의 그리스도 찬가를 부르며, 거기서 고백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의 영성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그리스도교의 비움의 영성을 청빈과 낙빈으로 요약해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유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후8:9)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고후8:15)

 

아무쪼록 두꺼비집이 다시 셧다운 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이 깨어나 비움의 영성을 실천함으로써 탐욕의 과도한 흐름을 중단시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4. 생명 참여(테오시스, theosis)의 생태영성 (12:22-27)

개신교회가 실천하는 비움의 영성은 욕망을 비우고 산이나 광야로 향하는 사막의 수도전통과는 구별됩니다. 개신교의 비움의 영성은 욕망을 비운 그 자리를 생명이신 창조주 성령 하나님으로 채움으로써 적극적인 생명 살림의 영성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전진하는 것입니다. 생태 신학의 선구자인 샐리 멕페이그(Sallie McFague)는 비움의 생태 영성을 초기부터 주창한 여성 신학자입니다. 멕테이그의 마지막 유고작인, <불타는 지구의 희망 예수 그리스도>에서 생명 참여의 영성을 제안하는 데 착안을 얻었습니다.

오늘의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이제 생태적 회심을 통해 하나님과 자연과 이웃을 중심이 아니라 생명 중심으로 인식하는 생태적 전환을 통해, 내 중심에 있는 탐욕의 죄성을 비우고, 그 자리에 생명의 기쁨과 소중함으로 채워 나가는 서울제일교회 성도님이 되시기를 간구합니다.



서울제일교회는 생명 참여의 생태 운동을 이미 모범적으로 시작하고 있음을 정원진 목사님과의 대화에서,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을 통해서, 그리고 보도기사를 통해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소중한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그 동기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욕망이 아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고통하며 내는 신음 소리에 공감하며 그들과 함께 아파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은총을 간구하는 여러분과 저의 기도가 우리 이웃에게 확장되고, 종국에는 하나님께 전달되어 다시금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지구가 회복되기를 희망하며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