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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4년
제목 [5.5] 무지개 교회ㅣ정원진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4-05-07
조회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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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0505_질그릇 1단.pdf

무지개 교회

 

44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에,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리셨다. 45할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게 된 사람으로서 베드로와 함께 온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부어 주신 사실에 놀랐다. 46그들은, 이방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47이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8그런 다음에, 그는 그들에게 명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였다. (10:44-48)

 

오이코스주일

5월의 첫 번째 주일인 오늘은 마침 55어린이날이고, 수요일인 5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그래서 보통 한국교회는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주일, 5월 둘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작년부터 5월 첫째 주일을 오이코스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이코스’(οκος)는 신약성서에 빈번하게 나오는 헬라어로 ’(house)이나 그 집에 사는 가족’(family) 또는 가솔’(household)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가솔(家率)’은 한집안에 딸린 식구, 그러니까 친척, 고용인, 방문객까지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달리 말해 오이코스확대 가족으로 개인에게 발생한 중대하고 특별한 시간에 즉시 연락하여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를 가리킵니다(16:25-34).

따라서 오이코스주일은 전통적인 혈연 가족이 붕괴한 현실 속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대안 가족으로 기능하자는 뜻으로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전 교우가 춘천으로 기차를 타고 나들이를 간 지난 주일을 오이코스주일로 지켰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교회의 전례력에 따라 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로 지킵니다.

 

고넬료 이야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1044절로 48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101절부터 시작된 고넬료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합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리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엘리트 군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대단한 호의를 가지고 그를 소개합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10:2).

 

그는 점령군으로서 식민지 백성들을 억압하기보다는 그들의 가련한 처지를 늘 헤아리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또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힘을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한 것이야말로 그가 기도하는 사람임을 증명해 줍니다. 사도행전은 그가 주님을 영접하게 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어느 날 오후 세 시쯤에, 그는 환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똑똑히 보았다. 그가 보니, 천사가 자기에게로 들어와서, “고넬료야!” 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4고넬료가 천사를 주시하여 보고, 두려워서 물었다. “천사님, 무슨 일입니까?” 천사가 대답하였다.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5이제,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너라. 6그는 무두장이인 시몬의 집에 묵고 있는데, 그 집은 바닷가에 있다.” (10:3-6)

 

이에 고넬료는 하인 두 사람과 자기 부하 가운데 경건한 병사 하나를 욥바로 보냈습니다. 그들이 욥바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는 정오 기도 중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환상을 봅니다.

 

11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땅으로 드리워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12그 안에는 온갖 네 발 짐승들과 땅에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13그 때에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14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15그랬더니 두 번째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16이런 일이 세 번 있은 뒤에,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서 올라갔다. (10:11-16)

 

베드로가 자기가 본 환상이 무슨 뜻일까 하며 속으로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문밖에 당도했고, 베드로는 비로소 그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립니다.

베드로의 위대함은 자기의 견해나 입장을 수정할 수 있는 개방성에 있습니다. 스승 예수가 거리낌 없이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는 당대의 유대교 통념을 거스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은 부정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환상을 통해 자기의 문화적·종교적 편견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즉시 자기 입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 함께 가이사랴에 있던 고넬료 집으로 갔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배움을 청하고자 자기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오는 것을 본 고넬료는 마중을 나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려서 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28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부정하다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29그래서 여러분이 나를 부르러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반대하지 않고 왔습니다.... 34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35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0:28-29.34-35)

 

가르침을 청한 것은 고넬료였지만 정작 소중한 것을 배운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고넬료의 말과 태도가 베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드리워 있던 고래 힘줄보다 질긴 종교적 편견을 벗겨버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겸허한 엎드림을 보면서 비로소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감동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베드로와 동행했던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그들이 왜 놀랐던 것일까요? 하나님이 이방인들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놀람은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살았고, 스스로 잘 믿는 사람으로 자처했지만 그들의 믿음이 실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 편협한 믿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방인들도 방언으로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교회 안의 이방인들

고넬료 이야기는 10장에서 끝나지만, 베드로 이야기는 11장까지 계속됩니다. 당시 이방인 전도는 스캔들’(scandal)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를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이라고 나무랐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간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그들에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푼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11:17)

 

이렇게 해서 고넬료는 성경에 기록된 이방인 개종의 첫 번째 사례가 되며, 이후 이방인 전도의 길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됩니다. (11:19-30 참조) 그런데 저는 고넬료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교회 밖의 이방인이 아니라 교회 안의 이방인이 떠오릅니다. 이유는 예전에 들었던 김상근 목사님의 설교 때문입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언제가 김상근 목사님이 이 본문을 가지고 교회 안의 이방인들에 대해 설교하셨습니다. 당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댄스그룹이 등장하여 젊은이들 사이에 신드롬을 일으켰고, 또 기성세대와 크게 갈등했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그들을 X세대라고 불렀는데,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등이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심히 못마땅했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교회에도 그런 청년들이 존재했었는데, 바로 그들이 교회 안에서 이방인취급을 당했습니다. 김상근 목사님은 그 교회 안의 이방인을 포용해야 한다고 설교하셨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2~30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한국교회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성장이 멈추었고, 청년들은 교회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소위 가나안 신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혹시 교회 안의 이방인을 포용하지 못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기독교가 차별금지법 반대?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 안의 이방인은 누구일까요? 많겠지만 그 중 대표적인 이들은 아마도 성소수자일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교회가 온갖 차별을 철폐한 예수의 이름으로 차별금지법을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올해로 17년째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해마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차별금지법 반대 1인 시위를 합니다. 그러니 그 교회 교우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합니다. 22대 국회는 야당이 압승했으니 이 문제가 더 불거질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종교는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 피는 순교 때문에 흘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피해자로서 피를 흘린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로서 남이 피를 흘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로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이 해방 직후에 제주 4.3사건과 국민보도연맹 사건 때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고문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있는 혐오적이고 폭력적인 모습들과 이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도 참 많은데, 최근에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는 성소수자들입니다.

20034월에 시조 시인을 꿈꾸던 한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육우당이라는 필명을 쓰던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성소수자였습니다. 그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발표한 동성애를 죄악이라 규정하는 내용의 성명서에 분노하였고, 이내 깊이 상처받고 좌절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우리가 아는 그리고 알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차별과 혐오 어린 시선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그 피 값을 누구에게 물으실까요?

 

사랑이 최우선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이를 근거로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그런 한국교회에 제가 묻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모두 철저히 지키고 따릅니까? 동성애를 금지한 레위기는 혼작도 금지하고 혼방 옷도 금지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철저히 따릅니까? 레위기가 금지한 돼지고기를 안 먹습니까? 동성애를 반대한 사도 바울은 여자가 교회에서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거나 밀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지키거나 지키라고 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며 이혼을 결사반대했는데, 우리 교회는 그 명령에 따라 이혼한 사람을 출교시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2:27).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이 성경에 있다고 안식일법을 꼭 지켰습니까? 아닙니다. ‘보다, 성경 말씀보다 사람이, 사랑이 더 중요합니다. 최우선입니다. 그게 기독교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면, 그것은 무늬만 기독교지 참 기독교가 아닙니다. 가짜 기독교요, 적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랑으로 막힌 담을 허물며 개혁을 거듭해 왔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가 죄인이라 낙인찍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셨고, 베드로는 보자기 환상을 통해서 함께 식사조차 하지 않던 이방인에게 나아갔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는 당시 유일한 경전이자 말씀이었던 구약의 규례들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 해석에 대한 놀라운 갱신이었습니다. 이러한 갱신의 전통은 성경을 기반으로 주장한 천동설, 노예제 옹호, 여성 차별 등을 넘어서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 성소수자 문제를 넘어설 차례입니다.

어떤 분들은 동성애에서 돌이키게 해야 한다”, “동성애를 고쳐야 한다라고 말씀합니다만, 동성애는 질병이 아닙니다. 정신병도 아닙니다.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목사가 이걸 고치겠다고 전환 치료라는 걸 시도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여 더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탈동성애 단체인 엑소더스 인터내셔널1976년에 설립된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 250개 지부를 두고, 그 밖에 17개국에 150여 개 지부를 갖고 있던 가장 큰 탈동성애 운동 단체였습니다. 이들은 동성애 전환 치료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지난 20136월에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단체를 폐쇄하였습니다. 그 사과문에서 회장인 알란 챔버스는 자신들의 무지로 인해 동성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 왔고, 그 결과 성소수자들에게 도움보다는 상처를 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성애는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그냥 잘못 태어난 걸까요? 우리는 왼손잡이가 왜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게이와 레즈비언이 왜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창조된 것입니다.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돌보는 것이고 포용하고 환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로부터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교회가 피난처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지개 교회

제가 오늘 증언 제목을 무지개 교회라고 했습니다. 무지개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상징하는 표시, 특별히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무지개 깃발을 단 교회를 무지개 교회라고 합니다. 저는 이 깃발을 지난 2000년 안식년 휴가 때, 캐나다에서 보았습니다. 캐나다연합교회(UCC)1969년 미국의 스톤월 사건이후에 성소수자가 교회의 삶과 목회 영역에서 온전히 포용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마침내 지난 2014년에 <온전한 포용을 향해>라는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의 교회 출석과 입교는 물론이고, 결혼도 허락하고, 나아가 안수와 목회도 허용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아직 거기까지 가기에는 먼 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또 한국교회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순방향이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하느냐아니면 맞이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진짜 교회라면 억지로 당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아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시대를 스스로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린 이야기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접속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게 하는 힘입니다. 나아가 성령은 모든 분리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힘입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나누고 가르는 사람이 아니라, 분리된 것을 모으고 나뉘었던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끝으로 성령은 살리는 힘입니다. 차별과 혐오는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하지만 포용과 환대는 실의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힘입니다. 이런 성령의 교회가 바로 무지개 교회입니다. 우리가 성수소자를 이해하지는 못해도 사랑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성령의 교회, 무지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