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유일신앙

9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다. 10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14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15나아만과 그의 모든 수행원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와, 엘리사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예언자님의 종인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16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소” 하고 사양하였다. 17나아만이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예언자님의 종인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는,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18그러나 한 가지만은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주님께서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모시는 왕께서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곳으로 들어갈 때에, 그는 언제나 저의 부축을 받아야 하므로, 저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님께서 이 일 때문에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벌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9그러자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말하였다. "좋소,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렇게 하여 나아만은 엘리사를 떠나 길을 갔다. (왕하 5:9-19)

잘못 낀 첫 단추, 유일신앙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 후 네 번째 주일’로 성서일과(RCL)가 제시한 구약 본문은 ‘열왕기하 5장’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엘리사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준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증언을 위해 본문을 읽고 묵상하던 중 30여 년 전(1996년 9월 22일)에 이 본문으로 설교했던 기억이 떠올라 찾아서 읽어보고 씁쓸했습니다. 무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한국교회가 별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 후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12.3 내란 이후에 ‘극우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큰 문제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해 3월 23일 “고백과 믿음: 기독교의 원죄?”라는 제목의 증언에서 말씀드렸듯이, ‘오직’을 주장하면 필연적으로 ‘배타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극우와 테러’로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오직’의 시작은 ‘유일신앙’에서 출발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를 극우와 테러로부터 구출하려면 잘못 낀 첫 단추부터 다시 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증언은 ‘유일신앙’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기독교 밖에도 구원은 있는가?

종교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던 아일랜드의 한 도시에서 가톨릭 사제와 개신교 목사 그리고 유대교 랍비가 신학적인 격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축복을 보내십니다. 평화를 위해 한 가지씩 소원을 말하면 하나님께서 꼭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먼저 목사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일랜드에서 모든 가톨릭 신자가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평화가 절정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사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거룩한 아일랜드 땅에 개신교 신자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이 섬에 평화가 오게 될 것입니다.” 침묵하고 있는 랍비에게 천사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 소원은 무엇입니까? 아무 소원도 없습니까?”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없습니다. 이 두 신사의 소원만 들어주시면 저는 만족합니다.”

누군가 지어낸 것이겠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네 종교 현실의 정곡을 찌르는 풍자입니다. 한국기독교는 ‘민족복음화’나 ‘성시화’란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합니다. 이 말은 우리 국민을 100% 기독교인 만들겠다는 발상이며, 달리 표현하면 한국 땅에서 기독교 아닌 다른 종교를 ‘박멸’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는 ‘사랑’을 제일가는 계명으로 내세우면서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뿌린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일까요?

인도의 한 마을에 어떤 선교사가 선교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겸손하고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선교사는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선교사인 저보다 먼저 이곳에 와 계셨군요.”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불교 신자들이었습니다. 비록 그 마을 사람들은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이미 선교사 이전에 거기에 오셔서 역사하고 계셨다는 이 선교사의 고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타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우리가 타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 오늘의 본문 말씀은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오늘 읽은 열왕기하 5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와 시리아의 군사령관 나아만 장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는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적국의 군사령관인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줍니다. 이 이야기에서 제 관심은 ‘치유 사건’ 이후에 주고받은 나아만과 엘리사의 대화입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나병이 나은 나아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7절을 보면 이렇게 약속합니다: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고는 주님께 미리 용서를 빌며 엘리사에게 한 가지 청을 합니다: “제가 모시는 왕께서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곳으로 들어갈 때에, 그는 언제나 저의 부축을 받아야 하므로, 저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님께서 이 일 때문에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벌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18절). 같은 구절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왕께서 림몬 신전에 예배하러 가실 때에 부축해 드려야 하고 왕께서 림몬 신전에서 예배할 때 같이 엎드려야(절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엘리사의 대답은 놀랍게도 “좋소, 안심하고 돌아가시오”(19절)였습니다. 그의 대답은 “십계명에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우상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다”가 아니었습니다. 또 “시리아 왕에게 가서 너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증거 삼아 그를 개종시켜라”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엘리사의 포용적 태도에서 조상을 공경하는 생활 관습과 의식까지도 우상숭배라고 정죄했던 한국기독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태도, 즉 ‘관용’을 발견합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껏 우리가 배워온 기독교 교리와 배치되는 이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태초부터 스스로 존재하셨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무소부재하시고 또한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 신앙고백 중에서, 하나님이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무소부재하다, 즉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이 어디에나 다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창 12:1) 하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일대 모험을 감행합니다. 또 네겝에서 베델쪽으로 옮겨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조카 롯에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 13:9).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고향이나 타향, 오른쪽이나 왼쪽, 이쪽이나 저쪽 어느 한 곳에만 계시지 않고, 그 경계를 초월하여 어디에나 계시는 존재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또 시편 139편 기자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지하)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시 139:8-10)

하나님은 어느 한곳에 머물러 계시는 존재가 아닌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라는 신앙—무소부재하시다는 신앙은 우리의 신앙 영역을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가 창출해 낸 다른 신앙에까지 확장해 줍니다. 온 민족과 나라를 움직이는 힘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바벨탑 건축의 붕괴에 관한 이야기에도 이러한 하나님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민족이 아니라 여러 언어를 말하는 여러 민족의 하나님이며 온 세상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한 민족의 종교적, 민족적 의식에 의해 고착된 일정한 방식에 얽매이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무소부재하다’라는 고백을 진정으로 승인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꼭 선교사의 등에 업혀 오시지 않고서도 그 이전에 먼저 스스로 우리에게 오셔서 이미 우리 역사 속에서 활동하고 계셨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선교사들이 전해 준 기독교에 의해서 우상숭배라고 정죄 받았던 우리의 전통문화와 제 종교 그리고 조상에 대한 공경 의식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그분만이 죽지 않으시고, 사람이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속에 계시고, 사람으로서는 본 일도 없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즉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사고나 언어로 대상화할 수 없는, 그래서 그 어떤 개념으로도 담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많은 종교가 하나님을 ‘무(無)’ 또는 ‘신비’ 등으로 표현한 것도 이런 신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야훼’(I am what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궁극적 실재(alternative reality)를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이란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그 어떤 실재(the reality)’에 대하여 할 수 없이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노자의 도덕경 첫 구절을 보면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란 말이 있는데, 풀이하며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 지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에 대하여 어떤 이름을 붙이는데, 그 이름이 곧 그 ‘무엇’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어떤 것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우리와 상관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붙이기는 하는데, 이름이 바로 그 이름의 주인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다시 말해 “궁극적 실재는 우리의 제한된 표현을 초월한다”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궁극적 실재에게 어떤 이름이나 속성을 붙이면, 그것은 이미 그 이름이나 속성에 제한을 받는 무엇이 되기에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실재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세계 인식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존재이십니다. 그분은 절대자로서 인간의 세계 이해의 지평선 저편에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세상 안에 계시하시면서도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는 ‘신비’로 머무십니다.

만유(萬有)의 하나님

공동번역 성경은 절대자의 이름을 ‘하느님’이라고 표기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 대부분이 사용하는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성경은 절대자를 ‘하나님’이라고 표기합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 대부분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오직 그분’이란 뜻으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하나’에 ‘님’을 붙인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는 하나, 둘, 셋…하는 자연수의 하나를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수로 헤아릴 수 없어서 ‘하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 오해를 막기 위해서 셋이면서 하나, 즉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까다로운 말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고 셋이고 백이고 천이고 만인 그런 하나입니다. 차라리 ‘모두’(全)라는 뜻과 더 어울리는 개념입니다. 그분을 벗어나 만물은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5-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새번역이 ‘모든 것’이라고 번역한 말을 공동번역은 ‘만유(萬有)’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에베소서 4장 6절을 “그분은 만유의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만유(萬有, all)라는 말은 참 무서운 말입니다. 그 속에는 안 들어가는 게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모든 피조물이 ‘만유’라는 말의 울타리 속에 있습니다. 물론 마귀나 사탄도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미안하고 기분 나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하물며 무신론자라고 해서, 타종교를 믿는 신자라 해서 바울이 말하는 이 만유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존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하나이심을 부인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만유가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이 만유 안에 계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일신관’이 ‘유일한 신관’인가?

제가 오늘 증언 제목을 ‘성숙한 유일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이 제목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유일신앙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유일신관’이 ‘유일한 신관’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일신관을 버리자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라는 수사에 문자적으로 갇히지 않는 좀 더 성숙하고 완전에 가까운 유일신관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독교’이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보다 크시고, 기독교를 초월하십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하나님’이란 개념은 우리가 믿는 절대자를 기독교라는 울타리 속에 가둬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기독교라는 틀 속에 가둬 둘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독교라는 틀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기독교(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길을 따라 삽니다. 또 자신이 체험한 구원의 도를 만인에게 알리고 전하는 일에도 게으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절집의 승려를 하나님 안에서 나의 형제로 부둥켜안을 수 있고, 고집쟁이 무신론자도 나의 자매로 껴안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여럿인 것이 그분 안에서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분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진리’라 부르기도 하고 온갖 이름으로 부릅니다만, 우리는 그 모든 이름 뒤에 있는 이름을 믿습니다. 간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교란 여러 가지가 무성한 하나의 나무이다. 종교를 가지라고 보면 많고, 나무라고 보면 다만 하나이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가지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가지는 모두 말라 버리고 자신만 살아남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가지가 아닌 나무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 가지에 달린 열매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지의 열매도 나누라고 하십니다. 그 열매 역시 하나님이 역사한 은총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보다 크게 눈을 뜨고, 더 넓은 세계를 보며, 성숙한 유일신앙으로 무장하여, 우리의 하나님이 온 인류와 더불어 이루어 가시는 구원 행위를 깨닫고 거기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