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한계시록 서론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구약을 합친 성경전서의 마지막 책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신약 중 제일 나중에 쓰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주제가 ‘종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신약의 제일 끝에 수록되게 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종말’은 세상의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 사탄의 멸망,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도래 등인데, 이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에덴을 묘사했던 것과 같은 표현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경은 ‘잃어버린 낙원’에서 ‘되찾은 낙원’으로 옮겨가는 셈입니다.

저자 및 독법

요한계시록은 1세기 말엽에 소아시아 해안의 외딴 섬 밧모에 살았던 요한이란 사람이 쓴 것입니다. 이 요한이 제4복음서와 세 편의 요한 서신의 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쓴 시기도 주후 60년대 네로 황제 때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주후 95년경 도미티아누스 황제 말년 가까이에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의 묵시이긴 하지만 소아시아의 일곱 도시에 흩어져 있던 일곱 개의 크리스천 공동체들에 보낸 편지이기도 합니다. 밧모섬의 요한은 이 공동체들 안에서 잘 알려져 있던 사람인 것이 분명하고, 크리스천 순회설교자로서 권위 있고 카리스마가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요한은 구약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같습니다. 구약을 단 한 구절도 공식적으로 인용한 적은 없지만 요한계시록

의 65퍼센트 정도는 구약의 구절들을 모방했거나 암시한 것들입니다.

바울의 편지가 그랬듯이 요한계시록도 예배와 같은 공동체 모임에서 큰 소리로 읽도록 써졌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묵독한 것이 아니고) 그의 편지를 들었고, 그것도 한 번에 다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2. 요한계시록을 읽는 두 가지 방법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할까요? 여기에 우리 시대에 요한계시록을 읽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래 신봉자(futurist)의 해석

미래 신봉자 읽기의 요점은 간단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장래에 일어날 이야기로 읽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책인 성경에는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다.

이 전제들은 소위 ‘천년왕국적 읽기’라 불리는 해석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독법은 요한계시록을 암호문으로 여깁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종말의 징표들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메시지로 요한계시록을 보는 것입니다.

휴거, 환란, 적그리스도와의 아마겟돈 전쟁, 예수의 재림, 최후의 심판을 다룬 천년왕국적 해석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의미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이 경우 복음은 예수를 열심히 믿음으로써 곧 닥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인류에게 닥칠 비참한 운명에서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메시지는 또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태도, 특히 사회정의와 환경문제에 대한 태도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세상이 곧 끝날 것이라면 여기에서 생활조건을 향상시키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 또 환경보존을 위해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모두 다 곧 끝나버릴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장래에 있을 일을 예고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런 미래 신봉자의 해석은 (천년왕국적 해석을 하는 사람을 포함해서) 광범위한 크리스천들의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크리스천들은 이런 해석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회의는 요한계시록을 읽는 두 번째 방법을 생각게 합니다.

과거-역사적(post-historical) 해석

과거-역사적 해석은 “본문(text)은 상황(context)과 함께 보아야만 비로소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합니다. 즉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그것이 쓰였던 당시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만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초점을 맞출 때 올바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자기 당대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으로 믿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이런 해석은 1세기 말경 소아시아 지방에 있던 특정한 크리스천 공동체에 보낸 편지 속에 요한계시록의 비전이 담겨져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편지의 내용이 편지를 받는 공동체에 주는 메시지이지 수천 년 후의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요한이 그 당시의 메시지를 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머리말과 맺음말에서 요한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쓰고 있다는 것을 일곱 번이나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에 요한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의 계시입니다. 이 계시는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1:1)라고 기록하고 있고, 두 절 뒤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1: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맺음말에서는 때가 가까웠다고 강조한 것이 다섯 군데나 있고, 부활한 예수가 “내가 곧 가겠다”라고 세 번 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 여러 세기에 걸쳐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는 말로 ‘곧’이라든가 ‘가까웠다’는 말의 의미를 희석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신약 중에서 제일 나중에 쓰인 책인 베드로후서에 있듯이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벧후 3:8).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처음 들었던 사람들은 ‘곧’이라는 말에 이런 주석이 붙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곧 또 어쩌면 지금부터 몇 천 년 후에’라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머리말과 맺음말 외에 요한이 그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본문 안에도 있습니다. 13장과 17장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13장을 보면 뿔 열과 머리 일곱 달린 짐승이 바다에서 나와 세상을 지배하고 자기에게 예배드리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마치 요한이 알던 당시의 세계, 즉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당시 상황과 같습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의 전역에 있던 성전에서는 황제를 주님이라 부르고 신으로 예배했습니다. 13장 끝 부분에 ‘그 짐승’은 사람인데 ‘그 수는 666’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알파벳의 각 글자를 숫자로 바꾸어 표기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숫자로 풀이해 표기하던 방법을 ‘게마트리아’라고 불렀는데, 이 게마트리아 법칙에 따르면 ‘666’이란 숫자는 ‘황제 네로’ (Caesar Nero)를 가리킵니다.

요한이 13장에 묘사한 짐승이 그 당시의 로마 황제를 뜻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17장의 ‘큰 창녀’를 묘사한 대목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여자는 황제의 옷을 입고 있었고 13장에서 묘사한 짐승을 타고 오는데 그 여자 이름은 ‘큰 바빌론’이라 했습니다. 바빌론 제국은 이미 600여 년 전에 멸망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이 여자를 왜 바빌론이라 불렀을까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바빌론이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듯이 로마도 주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유대인들과 크리스천들은 로마를 상징적으로 바빌론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바빌론이란 이름의 이 여자가 로마제국을 뜻한다는 사실은 17장 두 군데서 훨씬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여자는 ‘일곱 개의 산’ 위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옛날부터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 여인이 로마를 상징한다는 것은 이 장의 맨 나중 구절에 와서 더욱 명백해집니다. “네가 본 그 여자는, 세상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진 큰 도시를 가리킨다”(17:18)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세기 당시에 이것은 로마를 뜻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에게 ‘666개의 짐승이자 사람’은 장래의 일일 수가 없고, 그 당시의 현실적 문제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이런 증거 외에도 과거-역사적 해석이 미래 신봉자적 해석보다 훨씬 더 설득력을 갖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요한의 편지가 실제로 수천 년 후 장래의 일을 말한 것이었다면 그가 편지를 보낸 공동체가 그의 편지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뿔이 열 개 달린 짐승이 유럽연합(혹은 다른 어떤 장래에 있을 세력)을 뜻하는 것이라면, 커다란 메뚜기가 공격용 헬리콥터(혹은 어떤 다른 장래의 살상용 무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2억의 군대가 실제로 장래에 있을 어떤 군대를 뜻한 것이라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그 편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이 특정한 사람에게 묵시록인 편지를 썼

지만 그 메시지는 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 되고 맙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요한계시록의 과거-역사적 해석은 요한이 미래 일이 아니라 그 당시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한 것임을 알게 합니다. 물론 요한이 장래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한이 곧 일어나리라 믿고 있었던 아주 가까운 장래의 이야기였지 지금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도 아직 미래로 남아 있는 먼 훗날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요한의 편지 메시지는 그 공동체에 보내는 경고(특히 2장과 3장)였고 격려였습니다. 나중에 그의 메시지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우선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기와는 달리 그리스도는 주님이시고 시저나 짐승은 그렇지 않다는 것.

⦁하나님은 머지않아 짐승과 그 짐승의 화신인 시저의 지배를 뒤엎으실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내심을 갖고 참으며 확신을 갖고 용기를 내고 믿음을 가지라는 것.

요한계시록의 과거-역사적 해석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장래 일을 예견한 예언이란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잘못된 예언이었습니다. 요한이 곧 일어나리라고 믿었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은 그 후로도 약 300년가량 더 계속되었고, 나아가 로마가 망할 때에도 요한이 예측했던 것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재림도 곧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역사적 해석은 성경이 인간이 쓴 것이지 하나님이 쓰고 하나님이 보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경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3. 요한계시록의 큰 주제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빗나간 예측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초자연적 표현들은 교회 예배와 의식 문집에도 많이 활용되었고, 크리스천 예술에도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시적 세계를 초월하는 또 하나의 현실이 있다는 이야기는 영감과 희망과 용기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원형적인 표현은 삶의 정치적 영역과 영적 영역에 두루 미치는데, 이런 표현을 통해서 이 두 영역을 갈라놓는 것이 아니고 통합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두 주권의 이야기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중심이 되는 갈등의 이야기를 여러 방법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와 시저라는 서로 대립된 주권 사이의 갈등입니다. 시저가 주님인가 아니면 예수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이 주님인가? 물론 요한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시저에 대해서 어떤 주장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율리우스 시저가 암살당하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비참했던 내란을 평정하고 나서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황금시대’가 열리는데, 이때 이래로 로마 황제에게는 신적인 칭호가 붙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주님’ 그리고 심지어는 ‘신’이란 호칭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우구스투스는 지상에 평화를 가져 온 구세주로 알려지게 됩니다. 소아시아에서 발견된 주전 9년에 쓰인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섭리의 신은 … 최고의 선으로써 우리의 삶을 … 드높였다. 아우구스투스는 … 자비로써 우리와 우리 뒤에 오게 될 사람들에게 전쟁을 끝내고 모든 것을 (평화로운) 질서 속에 놓여지게 할 (구세주를) 허락했다. … 그 결과 우리 신의 탄생일은 그 분 때문에 세계를 위한 좋은 소식(=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황제를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전에서는 황제를 위한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이러한 예배는 각 지역 주민들에게 시저와 로마의 통치에 대한 종교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밧모섬의 요한은 주님 되심은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어린 양’ 뿐이라고 선포합니다. 요한은 예수를 처음 묘사하면서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1:5)라고 했습니다. ‘신실한 증인’으로서 예수는 죽임을 당하고 로마제국에 의해 처형당한 어린양이었고, ‘죽은 사람의 첫 열매’로서 하나님이 주님의 합당함을 입증해 주셨고, 또 높여주심으로 로마가 거짓 주님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과 보좌에 앉아서 ‘땅 위 왕들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전반을 통해 시저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던 모든 명예와 찬양은 대신 하나님과 예수에게로 돌아갑니다. 요한계시록의 많은 부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의 형태로 써졌고, 이러한 찬미의 표현들은 그 후 줄곧 찬송가 작사가들의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4:8)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5:12)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하도록 있습니다.(7:12)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11:15)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왕권을 잡으셨다.(19:6)

예수가 주님이시고 시저는 주님이 될 수 없습니다. 신약 전체에 흐르는 이런 선포의 내용에 밧모섬의 요한도 공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과 로마제국

요한계시록이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고대 우주전쟁 신화를 모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데에도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은 그 신화를 토대로 해서 두 주권의 주제를 설정하고 로마제국에 대한 그의 고발을 확대해 나갑니다. 우주전쟁 신화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화권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이야기는 선과 악이 우주전쟁을 하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싸움을 흔히 빛과 질서와 생명의 신이 암흑과 무질서와 죽음의 악마와 싸우는 것으로 묘사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악마의 세력을 용이나 바다 괴물이나 원시적인 뱀으로 묘사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정치적 측면을 갖게 된 것은 요한이 묘사한 용 이야기 때문입니다. 요한에게 로마제국은 고대 우주전쟁 신화에 나오는 그 용의 재현이었습니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그 짐승이 로마제국을 뜻한다는 것은 13장과 17장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첨부할 것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잘 알려져 있던 아폴론 신(제우스의 아들, 따라서 신의 아들을 의미함)과 고대 괴물인 피톤(Python)의 이야기입니다. 아폴론의 어머니 레토가 아기를 낳을 즈음에 피톤은 그 아기를 잡아먹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으나 다행히 아폴론은 무사히 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폴론은 성장한 후 피톤과 싸워 결국 그를 죽이고야 맙니다. 로마제국은 아폴론과 피톤의 이야기를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이용했습니다. 이에 반해 요한은 반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네로 황제는 스스로 신의 아들이고 빛의 신이라고 했으며, 무질서와 어둠과 죽음의 신비한 힘을 가진 피톤을 죽임으로써 질서와 평화의 황금시대를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이 아폴론의 출생 이야기를 모방해서 요한계시록 12장에 로마제국이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이야기한 것을 다시 거꾸로 말합니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여인이 장차 여러 나라를 다스리게 될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때 커다란 용 한 마리가 그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무사히 태어나 하나님 보좌에 올라가게 됩니다. 요한이 이야기하는 이 아이는 물론 예수입니다. 하늘에서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이 용과 싸워 이기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전쟁은 하늘에서 있었지만 그 용이 패하게 되는 사건은 지상에서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용은 ‘어린 양의 피에 의해서,’ 즉 예수의 죽음에 의해서 정복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 결과, 용은 땅에 던져지고, 용이 갖고 있던 권위와 능력과 보좌는 요한계시록 13장 처음에 나오는 머리가 일곱인 ‘바다에서 온 짐승’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은 로마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아폴론의 탄생 이야기를 뒤집어 이야기한 것입니다. 황제가 아폴론이 아니라 예수가 아폴론이고, 지구상에 평화의 참다운 황금시대를 가져올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황제와 로마제국이 그 짐승을 죽이게 되는 아폴론이 아니고, 그들은 그 짐승과 용과 옛날 뱀의 재현일 뿐이라고 일러줍니다. 로마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의 정반대라는 말입니다. 로마제국이 지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또 로마 황제들이 주님이고 구세주이며 신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실은 무질서와 난폭함과 죽음의 화신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로마의 문제인가?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요한계시록이 로마제국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무엇이 로마의 문제였을까요? 왜 요한은 로마제국을 ‘짐승’이라고 불렀을까요?

예전에 학자들은 로마가 크리스천들을 처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 학자들은 요한의 공동체가 주후 95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명한 크리스천 대학살을 직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기 자신을 ‘주님’과 ‘신’으로 부를 것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체포와 처형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학자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크리스천 학살을 명령한 역사적 증거가 별로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크리스천 학살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불과 소수의 크리스천만 처형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당시 크리스천의 대학살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도 소수의 처형만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한이 편지를 보낸 그 공동체에서는 안디바라는 순교자 한 명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가올 재판과 처형에 대해 경고를 하긴 했지만 이런 재판과 처형이 이미 시작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본문에 몇 번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30여 년 전 네로 때의 순교자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처형당했는지 혹은 다만 소수가 처형당했는지 하는 것이 왜 그토록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처형의 정도에 따라 왜 요한이 로마를 ‘짐승이라고 불렀을까 하는 우리 생각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요한 당시에 크리스천 대학살이 있었다면 로마가 크리스천에게 행한 것으로 미루어 로마를 ’짐승‘이라 부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로마가 하나님의 진노와 파괴에 직면하게 된 이유가 될 것이고, 요한의 메시지는 “로마가 우리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로마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것이 됩니다.

이 이슈를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추리도 가능합니다. 시저가 자기 자신을 ‘주님’이나 ‘신’으로 부르지 않았더라면, 제국의

사원에서 자기를 예배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시저가 크리스천들을 처형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더라면 시저도, 로마제국도 무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해석은 이 이슈를 큰 종교적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결과가 되고, 요한의 로마에 대한 고발도 별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만일 로마가 크리스천들에게 ‘종교적인 자유’를 허용했더라면 크리스천들도 로마와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전반에서 볼 수 있는 요한의 열정은 크리스천 처형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요한의 고발은 단순히 크리스천을 처형하는 로마뿐만 아니라 제국으로서의 로마였다는 징후는 뚜렷합니다. 이 제국으로서의 로마야말로 요한이 말하는 세상을 혼돈 속에 빠뜨렸던 머리가 일곱 개나 달린 괴물, 용의 화신인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이 로마제국을 강력히 고발하고 있다는 견해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이런 고발은 로마제국이 크리스천을 처형했기 때문만이 아니고, 로마제국을 인류 역사에 자주 등장했던 지배체제의 재현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의 고발

옛날 지배체제는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와 종교적 합리화가 마치 거미줄처럼 엉켜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권세와 부를 쥐고 있는 상류층은 자기네 이익을 위해 사회를 지배했고, 그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 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요한은 이런 모든 면에 대해 로마제국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억압: 로마는 1세기의 세계를 지배하면서 협박과 폭력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은 스스로를 로마 여신이라는 형태를 입은 한 여인으로 인격화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도 로마를 여인으로 인격화하여 화려한 옷을 입은 ‘큰 창녀’라 불렀고, ‘세상

왕들과 음행한’ 매력 있는 간부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여자는 유혹을 일삼았을 뿐 아니라 마술을 써서 세상 사람들을 로마제국의 길로 따르도록 흘렸다고 했습니다.

로마는 음탕한 마녀일 뿐 아니라 협박과 폭력으로 다스렸던 잔인한 짐승이었습니다. “온 세상은 그 짐승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누가 이 짐승과 같으랴? 누가 이 짐승과 맞서 싸울 수 있으랴?”고 말했습니다. 로마는 위협만 가지고 부족할 때에는 잔인한 폭력으로 다스렸습니다. 요한은 로마가 약 25년 전 유대 모국을 재점령하고 많은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또 바울과 베드로를 포함한 많은 크리스천들이 로마에서 순교당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 당대에 로마제국의 화신인 짐승은 크리스천들을 죽였을 뿐 아니라 예언자들과 그밖에 많은 사람들도 죽였습니다. “예언자들의 피와 성도들의 피와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가 이 도시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요한은 로마제국이 ‘어린 양’ 예수를 무참히 죽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처형함으로써 로마제국은 스스로 짐승임을 드러냈고, 암담한 운명에 처해질 것을 자처한 셈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로마제국의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위상을 회복시키셨던 것입니다.

경제적 착취: ‘큰 바빌론’과 ‘큰 창녀’로 인격화한 ‘로마’를 묘사하면서 요한은 로마의 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8장에는 로마의 멸망을 상상한 기록이 있고, 로마가 얼마나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는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하였으니... 고운 모시옷과 자주색 옷과 빨간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도시야.” “네 상인들이 땅의 세도가로 행세하고... 세상의 왕들은 그 도시와 더불어 음행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요한은 또 화물선이 세상의 모든 값진 물건들을 가득 싣고 지배체

제의 중심지 로마로 나르는 장면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화물 중에는 사치품뿐만 아니라 농산물과 심지어 노예까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요, 고은 모시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모시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나무와 각종 상가 기구와, 값진 나무나 구리나 쇠나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몰약과 유향이요, 포도주와 올리브기름과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병거와 노예와 사람의 목숨입니다.(18:12-13)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곧 끝나리라고 말합니다. “온갖 화려하고 찬란한 것들이 네게서 없어졌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착취를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은 통탄하게 됩니다. “화를 입었다, 화를 입었다. 큰 도시야! 바다에 배를 가진 사람은 모두 그 도시의 값진 상품으로 부자가 되었건만, 그것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

종교적 정당성: 종교적 정당성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로마제국이 자기들이 지배하게 된 것은 신의 뜻이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요한은 이런 사실을 요한계시록 13장 후반에서 ‘그 짐승’을 예배하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미 설명한 것 같이 요한이 로마를 비방한 것이 로마가 크리스천들을 처형했기 때문만이 아니고 지배체제의 재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같은 지배체제는 형태는 달랐지만 이미 모세 때 이집트에도 있었고, 구약성경에 수록된 멸망 전 선지자 때의 이스라엘에도 있었습니다. 로마와 짐승은 예부터 계승된 전통을 이어받은 셈이었습니다. ‘큰 바빌론’이란 표현은 로마를 지칭했을 뿐만 아니라 권세와 부와 협박과 폭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모든 지배체제에 대한 대명사이기도 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역사 속에서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

타났건 그런 제국은 예수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런 해석은 요한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내용과 맥을 같이합니다. 이 공동체의 일부는 (혹은 모두는) 한 세대 전에 설립되었고, 초기엔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가진 아주 평등한 공동체로 바울이 설립했던 공동체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 어떤 공동체는 설립 당시의 열정적이었던 비전에서 멀어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런 공동체를 향해 크리스천 박해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이것이 그의 메시지의 골자는 아니었습니다. 편지 속에는 예수에 대해 신실했던 공동체를 칭찬하는 말도 있고, 로마제국의 문화와 가치관을 수용한 다른 공동체를 꾸짖는 말과 함께 처음의 열정과 비전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말도 있습니다. 특히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공동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말은 한 마디도 없고 아무 권세도 없으면서도 예수 말씀에 신실할 수 있고, 가난하면서도 (마음이) 부자일 수 있는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처음 가졌던 사랑을 저버린 것을 나무랐고, 회개하고 “처음 했던 일을 하라”고 종용합니다. 버가모와 루아디라 공동체에겐 제사상에 올랐던 음식을 먹는 것이 편의주의의 상징이라고 비난합니다. 사데 사람들에게는 “너희는 산 이름을 갖고 있지만 죽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남은 것을 가다듬어 죽기까지 노력하고, 들은 메시지를 기억하라”고 종용합니다. 번영하고 부자된 라오디게아 공동체를 향해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다”고 비난했습니다. 이런 요한의 부정적 표현을 종합해 보면 그가 설립한 공동체들이 지금 와서 공동체 밖의 세상과 다를 것 없이 되어버린 사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보아 요한은 로마를 묘사하면서 예수의 비전을 저버리지 말고, 로마는 짐승이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하지도 말고 아부하

지도 말라고 권고합니다. 제국의 세계인 큰 바빌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요한은 “내 백성아, 그 도시에서 떠나거라. 너희는 그 도시의 죄에 가담하지 말고, 그 도시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 그 도시의 죄는 하늘까지 닿았다”(18:4-5a)고 말합니다.

두 도시 이야기

두 주권 이야기는 두 도시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아주 다른 두 도시에 대한 비전이 요한계시록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요한은 큰 바빌론이 망하고 난 후 ‘새로운 땅과 새로운 하늘’의 환상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상도 보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바빌론은 로마시와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것이며,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시와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이렇듯 요한계시록은 두 도시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데, 하나는 지옥에서 생겨난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게서 온 도시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요한의 비전은 아주 상징적인 것으로, 그 자세한 표현은 하나같이 구약성경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징은 창조와 낙원의 이야기를 모방하고 있으며 인간의 낙원에 대한 깊은 바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고 그것은 새 창조이며, 이 새 창조엔 “바다가 없습니다.” 옛날 괴물이 살던 곳이고, 제국이 하나씩 차례로 생겨났던 그 바다는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남편 맞을 차비가 된 신부 같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은 이제 우리 인류와 함께 계신다고 선포하는 큰 음성을 듣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 (21:3)

새 예루살렘에는 슬픔과 고통과 죽음 등 모든 인간의 고뇌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또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21:4).

새 예루살렘의 크기와 생김새는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그 크기는 거대했고 가로와 세로가 각각 2천 4백 여 킬로미터로 네모꼴이었으며, 높이도 2천 4백 여 킬로미터였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같이 입방체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성전이 필요 없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21:22). 그 도성은 ‘맑은 수정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고 거리도 ‘수정처럼 투명한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황금 빛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 성벽은 벽옥으로 쌓았고, 주춧돌들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두 대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중일 대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상징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도성은 엄청나게 크고 대문은 늘 열려 있을 뿐 아니라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고,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 올 것입니다”(21:24). 그리고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이 위대한 도성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22:2). 그것은 빛의 도성이고, 거기에는 밤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사람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이 새 예루살렘의 비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일까요? 요한이 여기서 바빌론과 제국의 세계에 대해 대조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도시는 분명히 실재하는 도시가 아닙니다. 그런 도시가 이 세상에나 또 어떤 다른 세상에도 실제로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현실의 세계를 벗어났단 말인가요? 아니면 고도의 상징적 표현으로 ‘천당’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여기서 속단은 금물입니다. 요한이 묘사하고 있는 것들을 천당에 대한 이야기라고 쉽게 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요한이 표현한 것 가운데는 특히 세상적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새 땅이고 새 하늘일망정 새 예루살렘은 ‘땅 위’에 있다.

⦁새 나라와 왕들이 새 예루살렘 빛 가운데로 다닌다는 표현처럼 요한의 비전속에는 새 나라와 왕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 도성의 생명나무는 민족들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다.

⦁그 도성의 문은 세상을 향해서 열려 있다.

요한의 비전이 낙원(그런 의미에서 복원된 낙원)을 연상시키긴 하지만 그것은 한가한 정원에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소통하는 장면은 아닙니다. 그것은 한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비전입니다. 더구나 그것은 제국의 세계에서의 삶에 반대되는 개념의 도시입니다.

이렇듯 요한의 비전에는 역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것이 계시적 표현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표현은 수수께끼 같고 비유적이며 은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요한의 마지막 비전은 어쩌면 하나님의 인류를 위한 꿈인, ‘하나님의 꿈’으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꿈은 이 세상을 위한 꿈이지 어떤 다른 세상을 위한 꿈은 아닙니다. 요한에게는 이런 꿈이야말로 꿈 꿀 가치가 있는 유일한 꿈이었을 것입니다.

4. 결론

요한계시록에도 흠이 없지 않습니다. 로마를 ‘큰 창녀’로 묘사하고 14만 4천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적이 없다”고 표현한 것은 여성혐오증을 나타내 주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의 사람들에게 대량의 파괴를 가져왔다고 표현한 것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피가 “말굴레의 높이로 320여 킬로미터나 흘렀다”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하나님은 때때로 정의보다는 원수에 대한 복수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고 그것은 잔인할 정도입니다. 물론 독자들은 요한계시록을 읽고 요한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을 이 세상과, 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파괴해 버리려는 노한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크리스천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도 성경 전체에 흐르는 두 가지 주제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재하심과, 정의에 대한 확실한 증언이고, 자기네가 하나님 뜻을 실행하고 있다고 거짓 주장하고 있는 억압적 지배 제도에 대한 철저한 비판입니다. 요한이 비난하는 지배체제는 모세 때 이집트에 있었던 지배체제의 재현이고, 고전적 선지자 때 이스라엘에도 있었던 지배체제의 재현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와 바울과 또 초기 크리스천 운동이 도전했던 그 지배체제입니다.

로마와 짐승도 옛날부터 내려온 혈통을 이어 받았습니다. ‘큰 바빌론’은 로마의 상징적 이름일 뿐 아니라 권력과 부와 협박과 폭력을 중심으로 조직된 지배체제의 상징적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배체제는 옛날에나 오늘에나, 또 어떤 모양을 갖추었든지,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렇듯 제국에 대한 요한의 비난은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음성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선지자들이 그랬고, 복음서 저자들이 그랬고, 또 바울이 그랬듯이 요한의 주장도 강한 호소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님이시고 이 세상의 왕국과 문화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요한의 비전은 역사적 요소 뿐 아니라 역사를 꿰뚫는 요소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의 역사를 초월하는 비전의 힘이야말로 이 책이 신약에 포함된 이유인 듯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재결합이 에덴에서 시작된 인류의 방황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눈물방울이 하나도 없을

것이고, 생명의 강이 그 가운데로 흐르고 있고, 거리에는 생명나무도 자라고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이보다 더 멋지게 끝맺음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