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마당 > 성서학당

성서학당

카테고리 성서의 맥
제목 성경통독 "성경의 맥을 따라" 제28주차 길잡이 및 과제물 (20201021)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0-10-14
조회수 15
첨부파일
통독 28 길잡이_1단.pdf
통독 28주간 과제물.hwp

성경의 맥을 따라28

 

 

1. 바울과 그의 편지들

(1) 바울의 연대기

바울이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1세기의 처음 십년(1~10) 중 어느 해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바울은 주후 60년대까지 건강하게 살았는데, 그 때 나이를 70대나 80대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주전 4년경에 태어났고 주후 30년경에 처형당했기에, 바울은 예수보다 조금 젊었지만 동시대에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유대인이었지만, 성장 환경은 매우 달랐습니다. 예수는 갈릴리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났지만, 바울은 소아시아 남부의 매우 중요한 도시 다소에서 자라났습니다. 예수는 평생 동안 유대인들의 고향 땅에서 살았지만, 바울은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 곧 고향을 떠나 해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공동체 출신이었습니다.

우리가 바울에 관해 처음 듣게 되는 것은 예수가 처형된 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 사도행전을 통해서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이라는 예수의 추종자가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 바울(사울)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당시 아마도 20대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사도행전 9장에서 사울은 스스로 예수의 추종자들을 박해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가 처형된 지 3~5년이 지난 후, 사울은 시리아의 다메섹 근처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예수를 박해하던 사울은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사도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그 후 25년 동안, 바울은 걸어서 혹은 배를 타고, 주로 소아시아와 그리스 등 로마제국의 동부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결국 로마에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에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주후 60년대 초반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연대기를 염두에 두고, 이제 바울을 이해하는 방식의 기초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 기초들은 오늘날 주류 신약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지하는 것인데, 주류 신학자들은 성경을 역사의 산물로 보아 다른 역사적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연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연구의 결과로 주류 신약학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선언을 바울 이해의 기초로 삼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쓴 것으로 되어 있는 모든 편지들이 바울에 의해서 쓰인 것이 아니다. 즉 신약성경 안에는 한 사람 이상의 바울이 있다.

바울의 편지들을 그 역사적 맥락/상황(historical context)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2) 바울서신 이해의 기초, 세 사람의 바울

지난 200년 넘게 발전해온 주류 신약학은, 바울이 쓴 것으로 되어 있는 13개의 편지들을 세 그룹, (1) 바울이 쓴 편지들, (2) 바울이 쓰지 않은 편지들, 그리고 (3) 그 저자가 불확실한 편지들로 나눌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

대부분의 학자들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7개의 편지들은 진정합니다.” 즉 바울 자신이 쓴 편지들입니다. 7개의 편지들은 3개의 긴 편지들(로마서, 고린도전서와 후서)4개의 짧은 편지들(데살로니가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입니다. 1세기의 50년대에 기록된 이 편지들은 신약성경의 최초의 문서들로서 복음서들보다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진정한 편지들은 기독교로 발전할 것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언입니다.

학자들이 거의 똑같이 강하게 합의를 이루고 있는 것에 따르면, 3개의 편지들, 즉 흔히 목회서신으로 불리는 디모데전서와 후서, 디도서는 바울이 쓴 편지들이 아닙니다. 학자들은 이 편지들이 기원100년경, 혹은 그보다 10년이나 20년 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 편지들은 보다 후대의 역사적 상황과 바울의 진정한 편지 7개와는 매우 다른 문체를 보여주기 때문에, 바울이 쓰지 않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들은 바울이 죽은 후 몇 십 년이 지나 바울의 이름으로 쓰인 것입니다. 이처럼 남의 이름으로 문서를 기록하는 것이 부정직하거나 사기행위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고대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관행이었습니다.

학자들 사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세 번째 그룹의 편지들에 대해, 대다수 학자들은 바울이 쓰지 않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흔히 논쟁적인편지들로 불리는 이 편지들에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후서가 포함됩니다. 주류 학자들은 이 편지들이 바울 이후의 편지들, 즉 바울이 죽은 후 한 세대 정도 지나서, 그의 진정한 편지들과 후대의 목회서신들 사이의 중간에 기록된 편지들로 간주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쓴 것으로 되어 있는 편지들 속에는 세 사람의 바울이 있는 셈입니다. 보그(Borg)와 크로산(Crossan)은 이 세 사람의 바울에게 다음과 같이 이름을 붙였습니. 먼저 7개의 진정한 편지를 쓴 바울을 급진적인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3개의 목회서신의 바울을 반동적인 바울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편지들의 저자가 바울의 메시지를 단순히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점들에서 바울의 메시지에 반대되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들의 저자는 바울의 사상을 당시의 관습들에 강력하게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급진적 바울과 비교해서, 논쟁적인 편지들의 바울을 보수적인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보그와 크로산이 급진적,” “반동적,” “보수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바울이 죽은 후에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가짜 바울 편지들이 바울 신학의 중요한 측면과 관련하여 반() 바울적인 편지들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편지들은 바울을 길들인편지들로서, 바울의 열정을 순화시켜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이 살고 있었던 로마제국의 전형적인 세계에 순응하도록 만든 편지들입니다.

 

성서신학적 구분

저술

연대

일반

구분

보그와

크로산

바울 서신

13

바울이


편지들

Paul

바울

historical-

Paul

역사적 바울

50

년대

진짜

바울

서신

급진적인 바울

radical Paul


고전

고후

살전




저자가

불확실한

편지들

post-

Paul

바울

이후

 

pseudo-

Paul

가짜 바울

80

년대

논쟁

서신

보수적인 바울

conservative



살후

바울이

쓰지 않은

편지들

anti-

Paul

안티 바울

100

년 이후

목회

서신

반동적인 바울

reactionary

딤전

딤후


 

(3) 역사적 맥락/상황(historical context)

모든 고대문서 연구의 기초는 본문을 그 역사적 맥락(historical context)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즉 본문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문학적 정황 속에서 무엇을 뜻했는지를 묻고 답해야 합니다. 바울서신의 역사적 맥락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4개의 동심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공동체, 초기 예수운동, 1세기 유대교, 로마제국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공동체: 비록 우리는 바울서신 대부분을 그가 편지를 보낸 도시들의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바울은 도시들에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그 도시들 안에 있는 초기 예수운동 공동체(초대 교회)에 보낸 것들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편지를 쓴 목적은 예수의 메시지 전체를 선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를 제외하고) 바울은 그 공동체들 안에서 적극적으로 전도활동을 벌였고, 따라서 그의 편지 수신인들은 이미 바울로부터 예수의 메시지에 관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은 이미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쓴 것이며, 그 대부분은 그가 없는 동안에 그 공동체들 안에서 생겨난 문제들과 질문들에 대해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편지들은 각 공동체들과 바울의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상황 속의 대화’(Conversations in Context)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울서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편지들을 그 대화의 맥락/상황 속에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기 예수운동: 초기 예수운동이란 예수가 죽은 후 처음 몇 십 년 동안의 예수 추종자들을 부르기 위해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들을 기독교인’(Christian)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호칭입니다.] 바울을 전향하게 하고, 성장시켜 사도가 되게 했으며, 나아가 그 신앙을 계속 지켜나가게 한 것이 바로 초기 예수운동이었습니다. 즉 바울이 바울일 수 있었던 것은 초기 예수운동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도로서의 그의 삶을 통해, 바울은 보다 큰 지중해 세계 속에서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예수운동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히려고 애를 썼습니다.

1세기 유대교: 예수와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열렬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유대인 성경(구약성경)과 유대인들의 관습이 그의 인생과 사상을 형성했는데, 이것은 그가 예수의 추종자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바울은 유대교인으로 태어나 유대교인으로 죽었습니. 바울은 스스로를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나 기독교로의 개종자가 아니라 유대교 개혁자로 생각했습니. 즉 그의 회심은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바리새적 유대인(a Pharisaic Jew)에서 크리스천 유대인(a Christian Jew)으로 바뀐 것이었습니. 따라서 바울의 유대교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그의 편지 상당부분을 이해하기 어렵습니.

로마제국: 바울과 그의 모든 공동체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맥락은 단순히 바울의 시대와 장소에 관한 정보로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지배가 제국의 신학(황제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님이며, 구세주로서 지상에 평화를 가져다 준 분이라고 선포한 신학)을 통해 합법화되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바울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주님, 구세주라고 선포한 것은 당시 로마의 제국신학을 직접적으로 맞받아친 것이었습니다.

이런 네 개의 맥락 속에서 볼 때에만 우리는 바울서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바울서신 속의 많은 내용들이 비로소 빛을 내게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어떤 구절들은 여전히 이해 불가하겠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그의 진정한 편지들은) 바울의 메시지가 예수의 메시지와 뚜렷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드러내 줄 것입니다.

 

28주 첫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예수 재림의 의미

살전 1-5

97

 

바울의 첫 번째 편지이자, 신약성서의 첫 번째 문서는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데살로니가는 그리스 북부지역에 있던 로마제국의 속주 마케도니아(마게도냐)의 수도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의 유럽 선교는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에게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16:9)라고 간청하는 환상을 본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의 첫 번째 선교지는 빌립보였고, 데살로니가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거기서 바울은 유대 회당으로 가서 몇몇 유대인들과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17:4)을 개종시켰습니다. 그리고 추측컨대 몇 주 또는 몇 달 후에 바울로 인해 폭동이 일어났고, 바울은 그것을 피해 남쪽 아테네(아덴)와 고린도로 갔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자체에 따르면, 바울은 아테네에서 데살로니가 공동체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그의 동료 디모데를 약 300마일 떨어져있는 데살로니가로 돌려보냈습니다(3:1-2). 그 여행은 편도로 걸어서 15일에서 20일이 걸렸고, 배로는 일주일가량 걸렸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아직 아테네에 있을 때, 또는 고린도로 옮겨갔을 때 데살로니가 공동체의 소식을 가지고 바울에게 돌아왔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디모데에게 전해들은 것에 대한 바울의 응답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주후 50년경, 아마도 48년이나 49년에 씌어졌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디모데에게 전해들은 것에 대한 바울의 응답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공동체의 내적 동요에 관해 전해 들었던 모양입니다. 전향자는 거의 없었지만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산자들은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새겨졌습니다. 하여 그이들은 그 참혹함 속에서 기도하였습니다. ‘도대체 다시 오신다던 주님은 언제 오신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데살로니가전서를 쓰게 했던 직접적 이유였습니다.

 

28주 둘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삶

1-6

139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일곱 편지들 중 유일하게 특정 공동체나 개인이 수신인이 아니라 여러 교회 공동체들이 수신인인 편지입니다. 이 말은 갈라디아서가 한 도시에 있는 여러 가정(상점)교회들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구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회람서신으로 보내졌다는 뜻입니다. 이 편지는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1:2) 보내졌는데, 여기서 갈라디아는 도시 이름이 아니라 지금의 터키 수도 앙카라 주변 지역인 소아시아 지방의 중앙에 위치해 있던 로마의 속주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그곳에 공동체를 세울 계획이 없었습니다. 갈라디아 지방을 그냥 통과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4:13)라는 바울 자신의 말처럼, 육체적인 고통이 계기가 되어 여행을 중단하고 요양하는 기회에 그곳에 크리스천 공동체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을 크게 환대하여 영접했습니다(4:14-15).

그러나 그가 떠나고 없는 동안에 사태가 변했습니다. 바울의 반대자들이 갈라디아에 와서 바울과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중심 이슈는 할례 문제였습니다. 이방인 남자 개종자들은 그리스도 안의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서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정확히 누가 바울의 반대자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서 공격한 것으로 보아 그들 역시 초기 예수운동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그들의 싸움은 초기 예수운동 안의 일종의 이념논쟁이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그의 편지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편지입니다. 또한 갈라디아서는 감사의 말부터 시작하지 않는 그의 유일한 편지입니다. 대신에 그는 첫마디부터 자신의 권위에 대한 반대자들의 공격을 맞받아칩니다.

 

사람들이 시켜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사람이 맡겨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명하심으로써 사도가 된 나 바울이(1:1)

 

이렇게 편지를 시작한 바울은 편지 말미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다른 생각을 조금도 품지 않으리라는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교란시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5:2.10)

 

그는 이 부분의 끝에서,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5:12)라는 빈정거림(그 어원은 살을 찢는다는 뜻이다)으로 끝마칩니다.

도대체 바울은 할례의 문제에 대해 왜 이토록 격렬할까요? 그 이유는 이방인 남자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것은 바울 자신의 소명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의식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그의 비전이 뜻하는 것과도 정면으로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에 대한 사도로서의 그의 소명은 그가 이방인들을 우선 할례를 통해 유대인으로 개종시킨 다음에 그들이 다시 세례를 받아 크리스천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로서는 이런 절차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의 소명을 배반하는 것을 뜻했습니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 안의생활과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생활에 대한 그의 비전에도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개인들을 개종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공동체들을 만들었으며, 사람들을 개종시켜 공동체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그리스도 안에서함께 사는 생활로 이끌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이 세상의 정상적인 사회 안에서의 생활방식과는 철저하게 다른 대안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방식을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하나됨’ (at-one-ment)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그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즉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2:20 참조)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새로운 정체성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방향정립을 뜻하는 은유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삶은 개인들의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공동체적인 문제였습니다. 바울의 목적과 열정은 이 세상의 지혜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 대한 대안적인 사회를 구현하는 공동생활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8주 셋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고린도교회의 분열

고전 1-4

33

 

28주 넷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평등성

고전 5-7

5

 

28주 다섯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영적 은사

고전 8-14

116

 

28주 여섯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몸의 부활

고전 15-16

17

 

사도행전에 따르면, 50년경 바울은 남부 그리스에 있는 고린도에 크리스천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고린도는 항구 도시였는데, 아덴(아테네)을 포함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속주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고린도는 인구의 거의 전부가 다인종,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국제도시로 유대교 회당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그의 첫 번째 방문 때 고린도에 18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50년부터 51년까지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몇 년 후에 이 편지 고린도전서를 썼을 때, 그는 고린도로부터 에게 해를 가로질러 320km 이상 떨어져있는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이 편지의 역사적 배경은 바울이 고린도에 세운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서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입니다. 바울은 수년 동안, 아마도 최소 2년 동안, 그 공동체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그 공동체 가운데 여러 분열과 갈등이 고조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의 많은 부분들은 이들 분열과 갈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의 분위기는 갈라디아서나 고린도후서만큼 격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의 나머지 부분들은 고린도 공동체로부터 바울이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들입니다.

 

(1) 파벌

편지 자체로부터 알 수 있듯이, 고린도 공동체는 누가 그들의 지도자인지에 따라 명백하게 여러 파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1장에서 바울은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몇몇은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은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거나 나는 게바(베드로)에게 속했다또는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말했습니다(1:12). 바울은 이 세상의 지혜하나님의 지혜(이를 바울은 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바보스러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라고도 말한다)를 대조하여 대답합니다. 그는 복음의 진수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1:23). 바울은 단지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고, “그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이 세상의 지혜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권력자들과 권위자들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특별한 스승이나 인력으로 구성된 사고 체계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2) 부자와 가난한 자

둘째로,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 부자들그렇지 않은 사람들사이에 분열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앞부분에서 드러납니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1:26). “많지 않았다는 말은 일부는 그랬다는 말입니다. 즉 고린도 공동체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고린도의 크리스천 공동체는 바울의 다른 공동체들과 달랐습니다. 고린도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은 도시 노동자들이었으며, 다수는 상인과 장인 계급의 하나님 경외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바울의 후견인이나 기부자가 될 만큼 충분히 부유했습니다. 비록 저들은 소위 재벌급 부자는 아니었지만 잘 나가는부류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의 크리스천들 가운데 부유하며 권력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바로 바울이 고린도전서 속에서 다룬 많은 문제들의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강조한 것은 당시 세상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것을 뒤집어엎는 것이었는데, 이는 특별히 고린도 공동체의 부자들을 겨냥한 말이었습니다. 귀족들은 당시에 누구나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사회적 위계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버지가 죽어 과부가 된 계모와 그의 의붓아들이 유산을 지키기 위해 서로 결혼하는 문제(5:1- 13), 재정적인 문제를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문제(6:1-8), 이교도 신전들의 향연에 참석하고 그런 모임에서 제물로 바쳐진 짐승의 고기를 사다가 먹는 문제(10:14-33) 등은 부자들의 문제였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행해진 주님의 만찬방식에 대해서 말합니다(11:17-34). 바울의 공동체를 비롯한 일반적인 1세기 예수운동 공동체들에서 주님의 만찬은 단순히 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모금을 먹고 마시는 예식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예수님의 밥상공동체와 같이 진정한 의미의 식사, 진짜 식사 나눔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말한 것처럼, 주님의 만찬은 빵을 떼는 것으로 시작하여, 공동식사를 하고, 그 식후에 잔을 돌리는 것으로 마쳤습니다(11:24-25, 25절에서 식후에라는 말을 주목). 즉 주님의 만찬은 공동식사의 앞과 뒤에, 예수의 마지막 식사를 기념하여 (기도하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순서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성찬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동식사의 앞과 뒤에 있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는 주님의 만찬이 앞에서 설명한데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11장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을 보면, 그 식사는 고린도 공동체의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초대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누구나 똑같은 음식을 먹게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음식과 술을 먹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별로 없거나 아예 없거나 했습니다. 이런 관행은 로마세계에서는 흔히 있었던 일로서, 부자 주인이 손님들을 대접하면서 자신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도 손님에 포함시켰을 경우에 흔히 그랬습니다. 주인은 보통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자신과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덜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대접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식사는 서로 다른 사회적 계층들이 어울릴 때, 계층의 경계선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의 마지막에 나오는 바울의 권고는 고린도에서 또 다른 문제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십시오”(11:33). 이것이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찍 도착해서 즉시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찍 도착할 사람은 누구였겠습니까? 생계를 위해서 노동해야 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여가가 있었던 사람들, 즉 부유하고 권력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식사를 함께 나누기 전에 빵을 떼고, 식사 후에 잔을 돌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고린도에서 주님의 만찬이 진행된 방식은 당시 세상의 사회적인 위계질서와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꾸짖는 것이며 그가 경고한 맥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1:27-29)



앞서 밝힌 맥락에서 볼 때 (body)을 분별함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주님의 만찬이 진행되던 방식은 바울에게 그리스도 안”(in Christ)에서의 삶을 표상하는 한 몸”(one body)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는 이 세상의 계층적 차별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가져오는 것을 뜻했습니다. 27절의 합당하지 않게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분리를 크리스천 공동체 속에서도 영속시키는 부자들의 행태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와 차별은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이라 부르는 공동체 안에 복제되어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크리스천 공동체들 속에서 그와 같은 분리와 차별은 이미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식탁에 앉아야 하며 똑같은 식사를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비록 음식에 대한 독점은 배제하지만, 단순히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며 똑같은 것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식사를 나누는 것이며, 하나님의 물건, 하나님의 땅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나 넉넉히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만찬입니다.

 

(3) 영적 은사

셋째로, 우리는 편지 자체로부터 고린도 공동체가 영적 은사로 인해 분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의 공동체는 물질적인 재물과 권력에 근거한 위계질서와 불평등에 의해서만 분열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영적 은사를 소유했다는 것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우월적인 위치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영적 은사를 가진 사람들(예를 들어 환상을 보거나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더 앞서 있는가? 저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월한가? 이런 문제와 바울의 응답이 고린도전서 12-14장의 세 장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

바울의 응답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영적 은사에 기초한 위계질서는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수한 은사들, 특히 방언은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적인 은사들은 다양하며 모든 은사들은 똑같은 성령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12:4-7)

 

여러 은사들에는 지혜, 지식,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의 해석이 포함 됩니다(12:8-10). 바울은 이 모든 은사들이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는일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12:11).

그런 후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언어로부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언어로 넘어갑니다. 한 몸의 모든 지체들이 필요하며 서로를 섬기도록 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모든 지체는 중요합니다. 몸의 어느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12:14- 26). 그리스도 안에서도, 사람들은 평등합니다. 즉 누구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은사들 자체에는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비록 그 은사들에 근거해서 사람들 사이에 위계질서는 없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어, 예언의 은사는 방언의 은사보다 더 중요합니다(14:2-25). 하지만 가장 큰 영적인 은사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12: 31)라는 말로 사랑장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랑이 영적 은사로서, 예언, 방언, 지식의 은사들보다 더 우월한 것임을 선언한 후(13:8-10), 마침내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라는 말로 최고의 영적 은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며,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바울에게 사랑은 그리스도 안의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한 단어로 줄여서 표현한 것입니다. ,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생활, “성령 안에서의 생활, 성령이식에 의해 생명을 얻은 삶에 대한 줄임말입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의 가장 중요한 열매인 사랑은 개인들과의 관계 이상을 말합니다. 바울에게는 사랑이 (더 나은 세상을 열망했기에) 사회적인 의미도 갖고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사랑의 사회적인 형태는 분배적 정의와 비폭력, 빵과 평화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의생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생활에 대한 바울의 비전은 “(사회 속에서) 제국의 생활방식과 그 억압과 폭력을 받아들이되,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예수와 바울과 같은 사람들이 처형된 것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한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살해된 이유는 그들이 이해한 사랑이, 개인들을 향해 마음 아파하는 연민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사랑은 당시 세상을 다스리던 지배체제에 맞서는 것이었으며, 이 세상의 지혜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생활방식을 창조하는 일에서 성령과 협조하는 것을 뜻했습니다.

사랑과 정의는 함께 갑니다. 사랑과 정의는 구별은 되지만 분리할 수는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몸과 영혼, 즉 살과 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될 때, 남는 것은 시체뿐입니다. 분배적 정의와 공동체적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는 사랑의 살이고, 사랑은 정의의 영입니다. 그것들이 분리될 때, 우리는 정신적 시체를 갖습니다. 사랑은 정의의 심장이며, 정의는 사랑의 사회적 형태입니다. 사랑 없는 정의는 잔인하고, 정의 없는 사랑은 진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