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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성서의 맥
제목 성경통독 "성경의 맥을 따라" 제25주차 길잡이 및 과제물 (20200923)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0-09-19
조회수 17
첨부파일
통독 25 길잡이_1단.pdf
통독 25주간 과제물.hwp

성경의 맥을 따라25

 

1. 신약전서(新約全書) 입문

긴 여름방학을 끝내고 오늘부터 성경의 맥을 따라하반기 성경공부가 시작됩니다. 상반기에는 성경의 맥()을 잡기 위해 구약전서를 목차 순서가 아니라 시대 순서에 따라 통독했었습니다. 하반기에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신약전서를 통독할 예정입니다.

신약전서는 1-2세기에 써진 27권의 작은 책들이 모여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경험하고 이해하고 해석한 교회 자체의 자기 이해가 반영되어 있는 책입니다. 27권 중 몇 권은 2세기 초에서 중반에 써졌지만, 대부분은 주후 50년에서 1세기 말 경에 써졌습니다. 구약전서가 약 8백여 년에 걸쳐 써진 이스라엘 사람들의 제일가는 문헌인데 반해, 신약전서는 1백 년도 못 걸려 써진 불과 몇 천 명의 종파운동 문헌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도 바울의 서신들이 써졌던 주후 60년대의 크리스천의 수는 약 2천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신약전서가 거의 다 완성되었던 주후 100년에 와서도 크리스천의 수는 불과 75백 명 정도였답니다. 이렇게 적은 수의 크리스천을 감안할 때 신약은 참으로 인상적인 문헌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신약전서에 수록된 문헌을 27권의 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이나, 이를 이라 부르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못한 데가 있습니다. 대개 이 들은 아주 짧습니다. 더욱이 현대적 의미로 책이란 저자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일반 대중을 위해 쓰는 것이 보통인데, 신약전서에 수록된 문헌은 하나같이 저자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공동체에 써 보낸 글들입니다.

신약전서의 분류와 목록은 [1]과 같습니다. 이 순서 역시 집필된 순서나 시대 순서를 따라 배열된 것은 아닙니다. 네 권의 복음서는 신약전서 중에서 제일 먼저 써지지 않았습니다. 바울 서신은 모두 복음서보다 먼저 써졌고, 나머지 성경들도 복음서와 거의 같은 때에 써졌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신약의 기초를 이룹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서는 초기 기독교 운동의 기초가 되는 이야기이고 제일 중요한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신약전서 통독은 복음서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이 아닌 마가복음부터 출발합니다. 왜 마가복음서부터 복음서 읽기를 시작하는가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류

목록

약어

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역사서

사도행전


서신서

바울서신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전

고린도후서

고후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살전

데살로니가후서

살후

디모데전서

딤전

디모데후서

딤후

디도서


빌레몬서


기타

히브리서


공동서신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벧전

베드로후서

벧후

요한1

요일

요한2

요이

요한3

요삼

유다서


묵시서

요한계시록




  

2. 복음서의 기원

신약전서에는 모두 네 개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를 학자들은 공관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이들 복음서들은 공관(共觀, synoptic)이라는 어근이 암시하듯이, 나란히 펼쳐놓고 함께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공관복음서를 읽어보면 중복되는 자료가 많은데,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가복음의 90%가 마태복음에도 나타난다. (마가의 661절 가운데 약 600)

마가복음의 67%가 누가복음에도 나타난다. (마가의 661절 가운데 약 450)

마가복음에 나오지 않는 약 200절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양쪽에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자료들은 마태복음에서만 발견되고, 어떤 자료는 누가복음에서만 발견됩니다. 그리고 아주 적은 분량의 자료가 마가복음에서만 발견됩니다. 여기서 중첩되는 자료가 공관복음서의 기원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위에서 말한 범주과 범주, 즉 세 복음서가 공유하고 있는 자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한 범주, 즉 마가복음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공유하고 있는 200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2]와 같이 이해합니다.


 

 

마가복음서

 

Q복음서

 

 

 

 

 

 

 

 

 

 

 

 





마태 특수자료

SM

 


마태복음서

 

누가복음서


 

누가 특수자료

SL

 

 

 

 

주후 70년경에 마가는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 구전을 채집하여 복음서를 펴냈습니다. 이것은 주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대적으로 그의 가르침은 거의 없습니다. 한편 그보다 10-20년 앞서 누군가가 주로 예수님의 말씀 구전만 채집하여 예수님의 교훈집이라 할 수 있는 Q복음서(Q자료를 뜻하는 독일어 Quelle의 약자)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서기 80-90년경에 누가와 마태가 각기 복음서를 펴냈는데, 그들은 주로 마가의 구조를 따르면서 그 중간 중간에 Q복음서로부터 가져온 가르침을 첨가하는 수법을 썼습니다. 또한 누가와 마태는 마가와 Q복음서 이외에도 제각기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사료를 채집하여 여기저기에 삽입했습니다. 이 사료들을 일컬어 누가의 특수사료(SL)와 마태의 특수사료(SM)라고 합니다.

이처럼 마가·마태·누가 복음서는 사료상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하며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 개별적으로 보기보다는 함께 보는 것(共觀)이 순리입니다. 또한 복음서들 가운데 최초의 문서는 마가복음과 (지금은 사라진) Q 복음서이며, 따라서 본문 연구시 그 우선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3. 복음서의 성격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성경학’(Biblical Study)은 지난 200년 동안 소위 역사-비평적 방법론(historical-critical method)이라고 통칭되는 성경연구방법론을 발전시켜 왔는데, 복음서와 관련하여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중심적인 결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 전체와 마찬가지로, 복음서도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은 고대의 다른 문서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연구될 수 있다.

복음서들은 초기 기독교 운동 공동체들의 산물이다. 물론, 개별적인 저자들도 영향을 끼쳤지만, 그들은 공동체의 관점에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각 복음서를 썼다.

복음서들은 역사적인 자료들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역사적인 보도가 아니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단순하게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보도하려는 저널리스트가 아니었으며 역사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기쁜 소식을 선포하려는 목적을 가졌던 복음사가들’(evangelists, 이 단어는 복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것이다)이었다. 관점을 약간 달리하면, 복음서는 전기’(biography)가 아니며, 그들의 관심은 역사적인 사실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초기 기독교 운동 공동체의 삶과 사상 속에서 예수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복음서의 전승들(traditions, 전해진 이야기들)은 발전하고 성장한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40년에서 7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수십 년 동안에 예수에 관한 전승들은 계속 발전했다.

복음서들은 역사(history)와 상징(symbol) 모두를 내포하고 있다. 즉 복음서들은 어느 정도 예수에게로 소급되는 전승들을 보존하고 있다. 비록 복음서들이 그것이 써진 공동체에게 저들의 삶 속에서 예수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기 위해 신화와 은유(metaphor)라는 언어를 사용한 상징적인 이야기들을 내포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요약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네 개의 복음서는 역사적인 보도나 전기가 아니라, 각 복음서를 집필한 공동체에 의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요 해석(interpretation)입니다.

 

4. 복음서 독법(讀法)

복음서는 역사적 기억과 은유적 이야기를 통해 발전된 전승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사렛 예수가 어떤 역사적 인물이었나를 재구성해보는 입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복음서에 유일하게 예수에 관한 역사적 자료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가 죽고 나서 40년 내지 70년 사이에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생각했고, 또 예수에 대해서 어떤 확신을 가졌는가 하는 것을 기록해 놓은 1세기 후반의 문헌이라는 관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독법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서가 표면에 떠오르기 전, 전승이 형성되어가는 과정 속에 나타난 예수를 말합니다. 반면에 두 번째 독법은 경전화된 예수’(canonical Jesus)에 관한 것으로, 복음서를 통해 접하게 되는 예수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을 때, 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 다 옳고 또 유용한 방법입니다.

다만 복음서를 읽을 때 자신이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방법으로 읽는지 마음속에 유념해야 합니다. 역사적 예수와 경전화된 예수를 분간하여 읽지 않을 경우 혼동이 올 수 있을 뿐 아니라,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주의자들은 복음서의 경전화된 예수에 관한 기록을 나사렛 예수에 관한 역사적 기록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는 더 이상 현실적인 인물로 여겨지지 않고 예수의 놀라운 사람됨마저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빵을 몇 곱절로 만들고, 물 위를 걸으며, 폭풍을 잠재우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고, 죽은 사람을 일으킬 수 있고, 또한 열두 군단의 천사를 하늘에서 불러 내릴 수 있다면,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더욱이 경전화된 예수에 관한 기록을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면 복음서 본문의 풍부한 의미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서는 더 이상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은유적 이야기가 못되고,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기록한 것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와 경전화된 예수와의 차이점을 분명히 알고 읽으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깨닫게 되고, 또한 이 둘은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게 된 것은 부활 때문이었고, 또 부활 이후였습니다. 여기서 부활이라 함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그가 죽은 후 예수님을 살아 있는 실재(a living reality)로 체험한 것을 말하며, 또한 하나님이 예수를 메시아로 또는 주님의 위치로 높여주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예수, 즉 경전화된 예수가 우리가 신약에서 접하게 되는 예수님입니다.

 

5. 마가복음의 주제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복음서는 1세기의 마지막 30-40년 사이에 각기 다른 공동체에서 서로 다른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 써진 문헌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집필 순서에 따라 각 복음서의 주제를 하나씩 소개하고 합니다. 동시에 공인으로서의 예수님의 첫 활동을 각 복음서가 어떻게 기록했는지 살펴보고자 하는데, 이는 각 복음사가가 예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첫 활동이란 예수님이 행한 첫 공적 연설이나 공적 행적을 뜻하며, 이것이 주제 설정의 시작과 방향을 알려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는 각 복음가사가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예수님에게 어떤 의미를 두고 있었는지를 미리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구실을 합니다.

오늘은 먼저 첫 복음서인 마가복음부터 시작합니다. 마가복음은 주후 70년경에 써졌는데, 이때는 유대인들의 대로마 항전이 거의 절정에 달했고 마침내 예루살렘과 성전이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하고 파괴되었던 시기입니다. 마가복음이 써진 것은 이런 엄청난 일들이 발생하기 직전이나 아니면 직후였기 때문에 이런 모든 상황들이 마가복음에 어두운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전시 복음서라고도 부릅니다.

 

묵시적 종말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항거투쟁이 극에 달했던 전시 때의 영향은 특히 마가복음 13장에 나타나는데, 13장을 ()묵시록이라고 부릅니다[‘()묵시록은 요한계시록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13장은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로 시작합니다. 자들이 성전을 바라볼 때, 한 제자가 예수님께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13:1)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13:2)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어떤 징표가 있을 것인지 묻습니다. 소묵시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와 전쟁 소식 및 전쟁 소문, 그리고 처형과 배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한 나라와 나라끼리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끝에 가서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는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13:14)고 말합니다. 여기 기록된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라는 표현은 다니엘에 있는 표현으로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당시 외세가 성전을 점령하고 이방 나라의 신을 숭배했던 사실을 표현한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마가복음에서는 성전에서 방금 일어났던 사건(혹은 곧 일어날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표현했고, 이 사건이 있고 난 후에는 창조 이후에 보지 못했던극심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온다”(13:26)는 말을 하는데, 이는 마가가 예수 재림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마가는 이런 현상이 곧 일어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3:30). 주후 70년대에 들어와서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는 등 많은 수난을 겪게 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종말이 가까웠다는 징조라고 마가복음의 저자는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가복음에는 묵시적 종말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첫 부분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 속에 이미 묵시적 종말론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 마가복음 중간 부분에는 인자가 천사들과 더불어 영광 중에 온다는 기록이 있고 이 구절 바로 다음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임박하였다고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와있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9:1) 달리 말하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것을 볼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의 공인으로서 첫 장면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공인으로서의 첫 장면은 짤막한 연설이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것이 그 연설의 주제였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때가 찼고그 나라가 가까웠다고 하는 이 구절은 마가복음의 주제인 셈입니다.

주후 70년대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마가복음이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음을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 놀랍게도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는 이야기는 이 복음서에 여러 번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의 다른 부분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자주 쓰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복음서의 대부분은 또 하나의 주제인 즉 예수를 따르는 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첫 머리에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이사야서 40장의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는 마가복음의 제목 구실을 합니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유대인의 유배시절과 연관시킴으로써 유배생활에서 돌아오는 길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서의 중심 부분에 강조했듯이 유배에서 돌아오는 길이 바로 예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상경하는 이야기에는 제자가 되는 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의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길은 지배제도와 맞서 대항해야 할 땅, 즉 죽음과 부활의 땅인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

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세 번이나 곧 닥칠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때마다 제자들에게 예수를 따르라고 이릅니다. 마가복음사가에게는 예수의 이 죽음과 부활의 길인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을 강조하는 것은 마가복음에 기록한 예수님의 첫 연설의 마지막 부분인 회개한다는 말과 바로 연결됩니다. 여기서 회개한다는 말은 후에 기독교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죄를 뉘우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배생활에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개념을 하나님의 나라의 이야기에 결부시키면 회개한다는 말은 돌아오는 과정을 밟는다는 말이며,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을 뜻하게 됩니다.

이렇듯 마가복음사가에 의하면 경전화된 예수는 죽음과 부활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따르라고 추종자에게 이릅니다. 예수의 길, 즉 회개하고 유배생활에서 돌아오는 길은, 낡은 삶의 길에서 죽고 새로운 삶의 길에 다시 태어남을 말합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순교의 길을 의미하는 것인데, 어쩌면 이것이 마가복음이 써졌을 당시의 이슈였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은유적으로 해석하면 이는 예수의 길을따르고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25주 첫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기쁜 소식의 시작

1:1-3:12

41

 

헬라어로 쓰인 막 1:1을 영어로 직역하면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입니다. 마가복음은 ‘the beginning,’ 시작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무엇의 시작인가 하면 the gospel, ‘그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란 바로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복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의 제목이기도 한 이 11절의 말씀은 참으로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주후 1세기 당시 복음이란 말은 원래 군사용

어였는데, 구체적으로는 승전보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전쟁에서의 패배는 패잔병뿐만이 아니라 패전국 국민 전체가 적국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니 전쟁에서의 승전보가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겠습니까! 따라서 그리스-로마 시대에 최고의 Good News는 다름 아닌 전쟁에서의 승전보였습니다.

그런데 승전보를 뜻하던 복음이라는 군사용어를 빌려와서 신학용어로 사용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복음’(Gospel)이라고 명명했습니. , 죽음의 세력에 대한 부활의 승리를 기쁜 소식’(Good News)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복음서가 써지면서 복음이란 단어의 뜻은 바울이 사용했던 것보다 더 넓고 깊어졌습니.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 가운데 제일 먼저 쓰인 것은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는 바울 서신이 쓰인 후 약 10년 뒤에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책으로 엮었는데, 그 책에 복음서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책제목이기도 한 마가복음 11절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시작이란 말은 이제부터 마가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마가복음의 내용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 사도 바울의 주장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만이 복음이 아니라, 예수의 공생애 전체, 예수의 행적과 말씀 모두가 복음이라는 것이 마가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마가의 복음은 원래 168절에서 끝났다는 것입니다. 개신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이나 새번역성경을 보면 마가복음 169절부터 마지막 절인 20절까지 꺾쇠괄호가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권위를 인정받는 대다수의 고대 사본들은 8절에서 마가복음서가 끝남(새번역)” 또는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개역개정)”이라는 내용의 각주가 붙어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가복음 169절로 20절의 말씀은 2세기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은 원래 빈 무덤 이야기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 마가의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와 승천 이야기와 재림에 대한 약속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가의 복음서는 원래는 부활 없는 수난 이야기로만 끝났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사도 바울은 죽음에 대한 부활의 승리를 복음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가의 복음서는 원래 부활 없는 수난 이야기로 끝이 났다니, 이것이 어떻게 복음일 수 있을까요? 승리가 아닌 패배의 이야기가 어떻게 기쁜 소식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마가는 자신의 책에 분명 복음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왜 일까요? 어째서 부활 없이 수난으로 끝난 예수 이야기가 마가에게는 복음이요 기쁜 소식일 수 있었을까요? 이 물음은 우리가 마가복음을 읽는 내내 결코 놓아서는 안 될 화두(話頭)같은 것입니다. 이 질문을 놓치면 마가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가장 크고 심오한 진리, 즉 우리가 따라야 할 예수의 길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맙니다.

 

25주 둘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

3:13-6:6a

130

 

25주 셋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빵의 기적

6:6b-8:26

15

 

25주 넷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

8:27-10

49

 

25주 다섯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

11-13

119:1-16

 

25주 여섯째 날

내용

읽을 본문

시편 기도

기쁜 소식의 완성

14-1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