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장 요약 : “왜 범재신론인가?”

∙범재신론(panentheism) : 말 그대로 ‘모든 것(汎, pan)이 하느님(神, theos) 안에(en) 있다(在)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모든 것 이상이지만(초월성),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다.(내재성).

∙범신론(pantheism) : 하느님과 전우주를 동일시하는 종교적, 철학적 사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이 하느님이다”고 표현할 수 있다. 하느님은 모든 것 속에 현존함에도 불구하고(내재성 긍정), 모든 것 이상은 아니다.(초월성 부정)

∙범재신론을 하느님에 관해 생각하는 기독교의 대안적인 근본 개념으로 생각해야 할 이유는 첫째, 범재신론은 초자연적 유신론에 의해 제기된 지적 난관의 상당 부분을 해결하고 둘째, 범재신론이 성서적이라는 것이며 셋째, 어떤 종교 경험이 하느님에 관해 생각하는 이러한 방식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 “바로 여기에” 계신 하느님: 성서 안의 범재신론

∙성서는 때로 하느님이 “저 바깥에” 계신 존재인 것처럼 말한다. 이것은 신앙과 예배에서의 자연스러운 언어이다. 그러나 성서는 하느님을 단순히 “저 바깥에” 계신 분으로만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계신 분으로도 언급한다.

∙그러므로 성서에 따르며, 하느님의 영광/하느님의 현존은 단순히 어떤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 세상 안에서 알려지고 경험된다. “임마누엘”(Immanuel) : “하느님

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성서는 또한 하느님이 우리를 감싸안는 영, 즉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감싸는 실재로 언급되기도 한다.(시139편, 행17:27-28)

∙많은 성서 본문들은 하느님을 아는 것(knowing)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아는 것은 히브리어로 ‘야다’라는 단어로 지식적인 앎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의미에서의 ‘앎’을 의미한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받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친밀하고도 직접적으로 아는 것이다.

▪ 하느님에 대한 경험들

∙만약 하느님이 경험될 수 있다면, 하느님은 단순히 어딘가에 계신 것만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도 계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대한 경험은 범재신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경험은 크게 비일상적 의식 상태(탈자적, ecstatic)에서 일어난 것과 일상적 의식 상태에서 일어난 것을 구분할 수 있으며, 탈자적 경험은 환상(visions), 무교적 경험(shamanic experiences), 신비적 경험(mystical experiences), 꿈(dreams), 가사의 경험(near-death experiences) 등 몇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환상(visions) : 순간적으로 실재의 또 다른 층 혹은 또 다른 차원을 보는 생동적 경험(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의 환상 등)

∙무교적 경험(shamanic experiences) : 환상과 유사한 형태로, “주술적 비행”을 통해 일상을 뛰어넘은 또 다른 실재를 감지하고, 교류한다. 무당을 예로 들 수 있다.

∙신비적 경험(mystical experiences) :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깨닫는 탈자적 의식 경험으로, “눈을 뜬 채” 일어나는 신비 경험(외향적인 신비 경험)과 “눈을 감은 채” 일어나는 신비 경험이 있다. 이것은 기독교 전통을 포함한 종교 경험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중심적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꿈(dreams) : 모든 꿈이 그렇지는 않지만 종종 꿈은 하느님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중개역할을 한다. 꿈 자체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해주는 성격을 갖기도 하고, 잘 해석된 꿈을 통해서 내적인 지혜와 접촉하기도 하다.

∙일상적 의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경험은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깨달음”으로 “탈자적 경험”에 비해 덜 극적이고 개인적, 일상적 경험이지만 오랫동안 지속된다.

∙하느님의 일상적 경험을 잘 표현한 것들 중 하나가 마틴 부버의 『나와 너』에서 존재의 두 가지 방식이다. 나-그것(I-It)의 존재방식은 세계를 주객 이분법의 틀 속에서 인식하고 나와 세계와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반면, 나-너(I-You)의 존재방식은 관계와 상호연관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나-너의 “나”는 (세계 안에) 전적으로 현존하며 (세계와) 전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만든 경계와 나에 대한 의식은 순간적으로 녹아 없어진다. 초월적인 것이 유한한 것 속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경험되는 일종의 하느님 경험들이다.

▪ 하느님에 관한 생각에 미치는 함축적 의미들

∙탈자적 종교 경험은 하느님의 실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중요한 이유가 된다. 종교 경험의 다양성은 하느님은 단순히 믿어야 할 신앙의 한 조항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진술은 우리가 깨달은 것을 줄여서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범재신론적 하느님 모델은 종교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긍정하는 기독교 전통에도 충실하다. 더욱이 “저 바깥에” 계시는 초자연적 유신론의 하느님 개념보다 지적인 면에서 더 적합하다.

∙그러나 범재신론이 하느님에 관한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을 개념화 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초월성이 말로서는 다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언표불가능성 言表不可能性) “이름 붙일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하느님은 이미 우리를 알고 있고 또 우리에게 알려지기를 기다리시는 우리 가운데 계신 “당신”(the You)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관해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을 범재신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적 삶을 관계 속에서 이해하게 만드는데, 이러한 이해야말로 참되고 동시에 깊은 의미에서 기독교적 삶에 생명력을 제공한다. ▩

■ 참고 도서 :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나와 너』 마르틴 부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