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칭호와 죽음

1. 예수의 칭호

부활절 이후의 예수를 부르는 모든 칭호는 ‘유대교’의 맥락에서 의미를 띤다. 하지만 ‘메시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로마제국이라는 배경에서도 날카로운 의미를 지닌다.

(1) 메시아

흔히 영어로 ‘그리스도’(Christ)라고 옮기는 이 칭호는 매우 유대교적인 칭호로 로마제국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유대교 맥락에서 메시아는 하나님이 특별한 사명을 위해 ‘기름 부은’ 자를 말한다. 1세기 무렵에서는 압제로부터 유대인들을 구해내고 이 땅에 새 시대를 열어줄 사명을 위해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약속된 자를 가리켰다. 예수를 ‘메시아’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를 구원자로서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아들

유대교 맥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하나님과의 생물학적인 관계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맺는 누군가를 지칭했다. 로마제국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아우구스투스(기원전 31년부터 기원후 14년까지 재임한 로마황제) 이후로 황제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 그들은 (유대교적 의미에서) 예수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황제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로마의 제국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3) 주님

유대교 맥락에서 ‘주님’은 하나님을 부를 때 쓰는 용어였다. ‘주님’은 충성과 헌신이라는 관념을 수반하는 말이다. 예수가 주님이라는 고백은 예수는 우리가 마땅히 헌신해야 할 하나님의 계시라는 뜻이다. 로마제국의 맥락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황제에 대한 칭호였다. 따라서 예수가 주님이라는 것은 황제는 주님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4) 구원자

유대교에서 ‘구원자’는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출애굽 이야기), 귀양살이에서의 귀환, 위험에서의 구출 및 기타 여러 가지와 연관 되어있다. 로마제국의 맥락에서는 ‘구원자’ 역시 황제에 대한 칭호 중 하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구원자’라고 전할 때 그들은 이 말의 두 가지 의미를 대조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제국신학에서 황제인 ‘구원자’는 군사적 힘과 승리를 통해 평화를 이룩하는 자를 뜻했다. 반명 ‘구원자’ 예수는 정의와 비폭력을 통해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는 자를 의미했다.

부활절 이전의 예수가 성전 권력과 로마제국 권력이 결탁한 통치체제에 도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승이 발전되는 과정에서 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에 도전했다.

2. 예수의 죽음

예수의 죽음은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이룬다. 복음서보다 앞서 기록된 바울의 편지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라는 것이라고 선언한다(고전 1:23).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은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의미할까?

(1) 속죄로서의 죽음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예수가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죗값을 치렀다는 것이다. 이를 신학용어로는 ‘대속’ 또는 ‘속죄’라고 한다. 이러한 이해방식이 굉장히 만연해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것을 그리스도교의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이해방식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이해방식은 전통적인 것이 아니며, 성서에 나오는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1천 년이 될 때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해방식이었다.

예수의 죽음을 ‘우리를 위해’ 그리고 ‘희생’과 관련짓는 언어는 신약성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신해서’라는 의미가 최초로 결부된 것은 1097이 되어서였다.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는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었나?󰡕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었나? 왜 예수로 육화했나? 안셀무스는 그 대답을 죄, 죄에 대한 책임, 그리고 용서의 틀 속에서 찾았다.

그의 대답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에게 죄를 지었고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의 죄는 오직 적합한 희생을 치를 때에만 용서받을 수 있다.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이런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며, 불완전한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 역시 이런 목적을 이룰 수 없다(그런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죄를 위해 죽는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완전한 인간의 형태로 완전한 제물을 마련하셨는데 그 제물이 바로 예수다. 이제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오직 예수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용서가 허락된다.

그런데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이해방식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알지 못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점들이 내재해 있다. 첫째, 이러한 이해방식은 예수가 우리 죄 때문에 죽어야만 했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였다고 암시함으로써 예수의 죽음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모호하게 만든다. 이 이해방식은 예수가 당대를 지배하던 권력자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얼버무려버린다. 하나님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예수를 죽였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죽을 수 있도록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 대신 바쳐지는 제물, 즉 대속은 하나님의 성품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대속은 하나님을 징벌적인 존재로 그린다. 이러한 이해방식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생각해보라. 하나님은 우리가 위반한 법을 제정한 입법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처벌함으로써 법을 시행해야 하는데, 우리를 처벌하지 않으려면 그에 버금가는 충분한 희생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 계획의 일부가 되었다. 이 말할 수 없이 훌륭하고 선한 사람을 처형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다. 때로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기 위한 논리로 전용되기도 한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기꺼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포장한다 해도 징벌적인 하나님의 성품은 어디 가지는 않는다. 누구든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피를 원한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적 폭력, 스퐁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신적인 아동 학대라는 잔인한 행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크로산은 “하나님이 우리와 화해하기 위해서 피의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식의 신학으로 내 신앙을 표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셋째, 이러한 이해방식은 기독교의 의미를 왜곡한다. 예수의 죽음을 대속의 틀로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가 죄와 용서,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내세의 축복에 관한 종교라는 세간의 통념을 강화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다. 사실 기독교와 구원은 변혁, 우리 자신과 세상의 변혁에 관한 것이다. 예수의 죽음을 대속의 틀로 이해하는 방식은 이런 점을 가려버린다. 또한 예수 믿고 용서 받아 천국에 가는 게 기독교의 전부인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2)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해석의 재료들은 신약성서 속에 들어 있지만, 이 해석이 대속교리로 발전하게 된 것은 앞에서 밝힌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이다. 그러나 이 해석의 1세기적 배경에서는, “예수가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다”라는 말이 매우 다른 의미를 뜻했다. 이 표현이 의미를 갖는 틀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희생제사 제도였다. 성전신학(temple theology)에 따르면, 특정 종류의 죄와 불결함은 오직 성전에서의 희생제사를 통해서만 처리될 수 있었다. 성전신학은 이처럼 죄의 용서에 대해 제도적인 독점을 주장했다. 또한 죄를 용서받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에, 성전신학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대해서도 제도적인 독점을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는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전의 용서 독점권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의 독점권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즉 이 해석은 성전 반대(anti-temple) 선언이었다. 희생제물이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이 해석은 희생제사 제도를 뒤엎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해석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이미 희생제물을 마련해주셨으며, 당신이 하나님으로 멀어지게 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안에서 처리하셨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성전과는 별도로 또한 그 희생제사 제도와는 별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예수는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다”라는 선언은 하나님의 철저한 은총과 우리가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대한 은유적인 선언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선언을 일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믿음 체계의 본질적인 교리로 간주한다. 이런 이해방식에서는 이 선언이 교리적인 필요조건이 된다. 즉, 우리는 예수가 희생제물이었음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방식에서는 필요조건 체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예수를 믿는 것이 새로운 필요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 선언을 하나님의 철저한 은총에 대한 은유적 선언으로 간주할 경우에는 매우 다른 이해를 갖게 된다. 즉, “예수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그 필요조건 체제를 없애버렸다는 뜻이지, 새로운 필요조건 체제를 확립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해석은 본래 체제전복적인 은유였지, 예수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나 예수의 소명에 대한 문자적인 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한 은총에 대한 은유적 선언이었다. 그리고 적절하게 이해한다면 여전히 지금도 그렇다.

(3) 예수의 죽음이 지니는 의미

①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1세기의 상황에서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음을 강조한다는 것은 곧 그의 복음이 반제국적인 복음이라는 의미였다.

예수는 단지 죽은 것이 아니며, 단순히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렸다. 이것은 예수가 로마제국의 당국자들에 의해 처형된 것을 뜻했다. 십자가는 로마제국의 처형 형태였다. 로마제국은 십자가 처형을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시켰는데, 제국의 통치에 대해 (폭력적으로든 비폭력적으로든) 도전한 사람들과 끈질기게 반항하는 노예들(단순히 가끔씩 불순종하거나 다루기 힘든 노예들이 아니라)이 십자가 처형의 대상이었다. 즉 살인자나 강도는 다른 형태로 처형될 수는 있지만, 십자가에 처형되지는 않았다. 십자가에 처형되는 그 두 부류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모두 로마제국의 지배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십자가 처형은 그 처형 방식이 공개적이며 시간이 오래 걸리며 매우 고통스러운 형태로서, 그 메시지는 “이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감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국가가 자행하는 고문이며 테러리즘이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즉시 예수가 반제국적인 인물이었으며, 바울의 복음이 반제국적인 복음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②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개개인의 변환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두의 변환을 상징하는 은유가 된다.

죽음과 부활은 옛 정체성과 생활방식에 대해서 죽고, 새로운 정체성과 생활방식으로 부활하는 변화의 길을 뜻한다. 이런 이해는 ‘참여를 통한 하나 됨’을 강조한다. 즉 우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에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참여하는 속죄는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여하는 속죄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철저한 내면적인 변화의 과정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언어이다(예: 갈 2:20).

③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계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권력에 도전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의 변환을 갈망하는 하나님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열정은 그를 십자가로 이끌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의 사랑과 하나님 사랑 모두를 본다. 십자가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킨 것으로 이해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품성과 열정에 대한 비유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으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외아들을 주셨다.” 바울의 말씀으로는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다”(롬 5:8). 이처럼 십자가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이런 틀 속에서 볼 때, 십자가는 하나님의 대가없는 사랑, 하나님의 은총을 계시한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분배적 정의라고 부르는 것, 즉 모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계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