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예수’를 누구라고 하느냐?

1.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

우리는 지난 6강에서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와 ‘신앙의 그리스도’(faith of Christ)를 구분해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서학자 마커스 보그(Marcus Borg)는 이 둘을 각각 ‘부활절 이전의 예수’(pre-Easter Jesus)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post-Easter Jesus)라고 부릅니다. ‘부활절 이전의 예수’는 “그의 죽음 이전의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를 말합니다. 반면에 ‘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기독교 전통과 경험의 예수”를 말합니다. 보그(Borg)는 ‘신앙의 그리스도’라는 표현 대신에 ‘부활절 이후의 예수’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을 추천하는데, 그 이유는 ‘신앙의 그리스도’는 신앙을 통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믿음의 대상’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부활절 이후의 예수’가 기독교의 ‘전통’과 ‘경험’의 예수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합니다. 즉 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경험적 실재(experiential reality)이지, 단순히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념이나 사상의 소산이거나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보그(Borg)는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예수상은 ‘짬뽕 예수상’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예수에 대해 들은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이미지 속에 결합시켜왔습니다. 복음서의 이야기들, 복음서 외 다른 신약성경의 진술들, 신조에 나오는 여러 교리들, 찬송가 가사들, 설교들 등등, 이 모든 예수에 대한 정보들을 하나의 이미지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짬뽕 예수상’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를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적인 존재’에 가까운 분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의 지식과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예수가 하신 말씀과 행한 기적은 바로 이런 신적인 지식과 권능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 예수가 확실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사실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요 삼위일체의 제2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신적인 지식과 권능을 지닌 사람은 진짜 인간일 수 없습니다. 그는 인간 이상이기 때문에, 실제 인간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의 인성(humanity)을 희생시키면서 그의 신성(divinity)을 강조할 때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평가 절하하게 되고, 예수가 얼마나 탁월한 인간이었는지를 놓치게 됩니다. 즉 그의 인간성을 빼앗는 것은 그의 위대함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를 닮고 따르고 그가 살았던 삶을 살기보다는, 단지 그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를 구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역사적 예수가 얼마나 탁월한 인간이었는지를 놓치게 되어 전자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후자도 잃게 됩니다. 예수는 ‘과거’의 신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지상에 35년 남짓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절 이후에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오실 것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여기에 없습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는 살아계신 예수, 오늘날에도 체험할 수 있는 실재인 ‘부활절 이후의 예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둘 사이를 구분할 때, 우리는 둘 모두를 만날 수 있으며, 그 둘 모두가 중요합니다.

새는 좌우 두 날개를 가져야 날 수 있습니다. 한쪽 날개만으로는 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를 구분하고, 그 바탕에서 우리의 실천과 믿음을 조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한쪽 날개가 없는 불구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신앙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사신 예수－역사적 예수를 복원하고, 그를 본받고, 그의 삶을 따름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비로소 완전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를 구분하는 일은 잃어버렸던 한쪽 날개를 회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균형을 잡는 작업입니다.

2.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어떤 분인가?

‘부활절 이전의 예수’란 그의 역사적 생애 동안의 예수, 즉 1세기 갈릴리의 유대인 농부로서 살과 피를 가졌던 과거의 인물을 뜻합니다. 이 예수는 죽어서 사라졌습니다. 그가 죽어서 사라졌다는 말은 부활절을 부인하는 말이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예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부활절 이후의 예수’란 그의 죽음 이후에 체험된 예수, 즉 기독교 ‘전통’과 ‘체험’의 예수를 뜻합니다. 여기서 두 개의 명사, 즉 ‘전통’과 ‘체험’ 모두가 똑같이 중요합니다. 기독교 전통의 예수는 발전하는 기독교 전승의 예수, 즉 정경 이전(pre-canonical) 단계, 정경(canonical) 단계, 그리고 신조(creedal) 단계의 예수를 포함합니다. 기독교 체험의 예수는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그의 추종자들(1세기와 그 이후)에게 살아 계시고, 영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적인 실재로 체험되는 예수입니다. 이렇듯 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기독교적 체험의 예수로서, 단순히 믿음의 한 조항이 아니라 체험적 실재입니다.

3. ‘부활절 이전의 예수’에 대한 간단한 설명

그렇다면, 예수는 그의 역사적 생애 동안에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완전히 합의된 것은 없지만, 예수에 대한 다음의 사실들은 상당히 합리적인 개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예수상은 앞서 소개한 보그(Borg)의 연구 결과로부터 온 것인데, 그는 ‘부활절 이전의 예수’를 ①유대교 신비주의자(Jewish mystic), ②치유자(healer), ③지혜의 교사(wisdom teacher), ④사회적 예언자(social prophet), ⑤운동의 창시자(movement initiator) 등 다섯 가지 범주(category)로 나눕니다. 이 범주들은 각각 예수에 관한 전승들을 다섯 개의 큰 덩어리로 묶어서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한 이를 종합하여 ‘부활절 이전의 예수’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 모두는 종교에 관한 교차문화적(cross-cultural) 연구로부터 나온 것들입니다. 보그(Borg)가 ‘역사적 예수’ 연구에 교차문화적인 접근 방법을 택한 이유는 한 종교 전통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신빙성(credibility)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만 의존하여 예수가 ‘유대교 신비주의자’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창작이나 투사라고 의심받을 수도 있지만, 다른 위대한 종교 전통들 속에서도 이러한 유형의 종교적 인물들이 발견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런 오해를 받을 염려가 없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위의 다섯 유형은 유대교 전통은 물론이고 세계의 다양한 종교 전통들 속에서도 잘 알려진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정확히 구분되기보다는 어느 정도 서로 중첩됩니다. 특히 첫째 유형인 ‘유대교 신비주의자’는 보그(Borg)에게 있어서 다른 네 유형들의 원천 내지는 기초입니다.

(1) 유대교 신비주의자(Jewish mystic)

신비주의자는 하나님, 곧 “한 분”(the One), “성스러운 존재”(the sacred)에 대해 생생한 체험을 갖고 있으며 으레 자주 체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구약성서를 보면 야훼 종교를 형성한 인물들은 다 신비주의자였습니다. 즉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엘리야, 엘리사, 그리고 고대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예수는 분명히 이런 신비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비전을 보았으며, 금식했고, 오랜 시간 동안 기도했으며, 친밀한 말로 하나님에 대해 말했으며,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가르쳤는데, 이것은 신비주의자들이 자신의 체험을 통해 아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 신비주의자로서 예수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신비주의자의 기본이었습니다.

(2) 치유자(healer)

모든 신비주의자들이 치유자가 되지는 않지만, 일부는 그렇게 됩니다. 예수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유를 행했으며 또한 귀신을 축출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심지어 비종교적인 학자들조차도 동의합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예수보다 더 많은 치유 이야기가 전해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탁월한 치유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3) 지혜의 스승(wisdom teacher)

지혜의 스승은 인생의 길을 가르칩니다. 예수가 말한 “좁은 길”은 인습과 전통의 “넓은 길”을 너머 가게 했습니다. “좁은 길”이란 “사람들이 보통은 가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예수의 대안적인 지혜의 중심에는 죽음과 부활의 길, 곧 내면적인 심리적-영적 과정을 뜻하는 은유로 이해되는 죽음과 부활의 길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낡은 정체성에 대해 죽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태어나는 것, 낡은 존재방식에 대해 죽고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태어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존재방식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삶, 예수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영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었습니다.

(4) 사회적 예언자(social prophet)

이것에 대해 역사적으로 비견할 만한 인물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미가와 같은 히브리 성서의 위대한 사회적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사로잡혀서, 당시 지배체제의 경제적 및 정치적 불의에 맞섰던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저항의 목소리였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예언자였습니다. 즉 만일에 하나님이 이 세상의 왕이고, 이 세상의 왕들과 황제들이 통치자들이 아니라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처럼 될 것인지를 선포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당시에 소수의 부자들을 더욱 부자가 되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었던 지배체제에 대해 급진적인 비판자였습니다.

(5) 운동의 창시자(movement initiator)

예수의 공적인 활동은 비록 매우 짧았지만(공관복음서들은 1년, 요한복음은 3년 혹은 4년이었음을 보여줌), 그의 생애 동안에 그를 중심으로 운동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운동은 그 구성원들과 비전 모두에서 근본적으로 유대인의 운동이었습니다. 매우 포괄적이었던 이 운동은 당시에 날카롭게 구분되었던 사회적 경계선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운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적인 활동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공동식사였는데, 이것은 흔히 예수를 비난했던 자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과 부랑자들과 더불어 식사했습니다. 이런 공동식사는 하나님 나라의 이름으로 행해진 종교적 행위였으며 동시에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예수의 이런 식사 관행은 음식과 포괄성(지배체제의 날카롭게 분리되고 각자 생존하는 세계가 아니라)이 하나님 나라임을 확증했습니다.

(6)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의 예수 이해

보그(Borg)의 동료이자 평생에 걸쳐 역사적 예수를 연구해 온 그는 Who Is Jesus? 라는 책의 결론부에서 역사의 예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오랜 동안 그럭저럭 생존을 유지해 오다가 점점 더 심하게 억압을 받게 된 한 피점령지의 농민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은 구조적인 불평등과 불의의 세계였습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그는 대안이 될 만한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시했고, 또한 그것을 삶으로써 살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것을 더불어 나누었습니다. 그 비전은 무상의 치유와 나눔의 식사가 있는 공동체, 하나님 앞과 서로의 앞에서 평등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는 여성과 어린이와 남성, 그리고 나병환자와 적빈(赤貧)자와 정신질환자들을 똑같이 초대했습니다. “와서 함께 먹고 고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모습, 즉 시이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직접 다스리시게 될 때의 전체 세계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는 주기도문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저의 초상화입니다. 예수는 무상의 치유와 공동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기존하는 사회의 교권 체계와 가부장적 체계에 대해 “아니오”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선언했고 창조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중개인으로 단순히 해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유랑했고,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보자(mediator)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어떠한 중보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중보자나 중개자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brokerless Kingdom of God)를 선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