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기 38-41장 말씀 순례

(1)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창 38:26)

창세기 38장에는 요셉의 이복형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 이야기가 끼어들어가 있습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섹스 스캔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충격적이니 당시에는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수세기에 걸쳐 이 이야기는 성경에서 거의 삭제될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만약 이 사건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후에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후손들이 열두 지파를 이루게 되고, 이 열두 지파 동맹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국가를 탄생시킵니다. 하지만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었고, 결국 외세의 침략으로 북과 남이 차례로 멸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열한 지파는 모두 사라지고 결국 유다 지파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 “유대인(Jew)”이란 말은 “유다(Judah)”에서 나온 말입니다. 만약 다말이 대를 잇지 않았다면 유다 지파는 물론이고 유대인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다말 이야기가 성경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말은 이 사건으로 해서 쌍둥이 아들인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베레스가 다윗과 솔로몬, 이사야 등의 유명한 인물들을 포함한 가계의 조상임을 조심스럽게 지적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따르면 창녀 노릇을 한 고집 센 젊은 여자 다말은 여러 왕들과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할머니로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가나안 여인 다말은 부정한 육체적 관계를 동원하는 방법까지 써서 자신을 역사에 기록했던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대인(Jew)”이라는 말 자체가 “유다(Judah)”에 직접적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살아남아 다윗 가계를 이룬 것은 유다 지파뿐입니다.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들을 탄생시켰으며, 궁극적으로 구세주가 태어나는 혈통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는 유다의 아들들이 다말의 자궁에 아들을 수태시키지 못함으로써 초기에는 대가 끊길 위기에 직면했었습니다. 만약 다말의 용기와 각오가 없었다면 유대 민족은 그때 멸망할 운명에 처했을 것입니다. 실로 그녀는 창녀 노릇을 함으로써 유다 지파를 멸종으로부터 구하고 궁극적으로 유대 민족 전체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름 없던 한 이방인 여인 다말은 이스라엘을 살린 영웅이 되었고, 나아가 온 인류를 살린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까지 당당히 자기 이름을 올려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2)‘어른이 된 세계’에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기

창세기 39장부터 41장까지에는 요셉의 파란만장한 삶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하나님으로부터 미래가 약속된 꿈을 선물로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열일곱 살 때에 이복형제들의 살의에 찬 미움으로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이집트에서 바로의 경호대장 집에​ 팔려간 그는, 마침내 주인의 신임을 얻어 집안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경호대장 부인을 겁탈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수가 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후에 그가 바로의 꿈을 해몽해 준 대가로 자유인이 되고, 이집트 총리가 되었을 때는 서른이었습니다. 열일곱에 시작된 고통스런 삶이 1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비록 요셉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는 했지만 그가 겪은 고난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라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가 그리 불행했다고 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열일곱에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기는 했지만 그의 인생을 큰 틀 안에서 볼 때 그렇게 비참한 것은 아니었고, 또 비록 강간미수범으로 감옥에 갇히기는 했지만 그것도 이집트 총리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재앙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결과를 보면 맞을지 몰라도 과정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요셉의 생애를 읽을 때 흔히 간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요셉 앞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보았고, 목소리도 들었고, 심지어 하나님과 씨름을 하기까지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런 체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요셉이 열일곱 살 때 두 번의 꿈에서 암시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뵌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인생의 전환점이나 위기의 순간마다 늘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했지만, 요셉이 낯선 타지에서 노예살이를 할 때에도 강간미수 혐의로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죄수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라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요셉처럼 신비로운 꿈을 마음에 품고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열심히 살았는데, 그 꿈이 이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인생은 자꾸 꼬여만 간다면, 그래도 그 꿈을 붙들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마도 지쳐서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지 못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열일곱에 꾸었던 두 번의 꿈과 그 꿈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실로 그는 놀라운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놀라운 신앙의 사람인 것은 그가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을 겪어내고 마침내 승리자로 우뚝 섰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경과 시련 한가운데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든, 어떤 상처를 받았든,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삶을 걸어갔기에 그는 놀라운 신앙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는 요셉과 같은 사람을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밝혔듯이 요셉 이야기에는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꿈 얘기를 할 때도, 형들이 그를 죽이려 했다가 종으로 팔 때도 하나님은 참견하지 않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성폭행 미수범’ 누명을 씌웠을 때도 하나님은 개입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로 꿈을 해몽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직접 나타나서 꿈을 해몽해 준 것도 아닙니다. 요셉이 겪은 사건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나타나지도, 개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요셉의 생각과 말 속에만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푸른 초장으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홀로 걸어야 했고, 원수의 목전에까지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요셉에게 당신 음성을 들려주지 않았고 뒷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꿈을 푸는 지혜는 주셨는지 몰라도 그의 꿈에 나타나서 그를 안도하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로 하여금 절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나타나 믿음을 북돋워줬을 법한데, 단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중대한 위기와 극심한 환란 속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요셉이 보여준 이러한 태도는 비록 그에게 하나님은 ‘없었지만’ 늘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환란 중에서나 유복한 중에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했습니다. 고통 중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 해서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년시절에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며 철없이 살았지만 삶의 굴곡을 겪으면서 인격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인격과 신앙은 세월과 함께 성숙해졌습니다. 실로 그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요셉에게 그토록 당신을 숨기셨을까요? 왜 한 번이라도 그에게 나타나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의 믿음을 북돋워주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굴 믿었습니까? 앞에서 저는 요셉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놀라운 신앙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보태고자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요셉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굳이 당신이 나타나시지 않아도 요셉이 충분히 잘 해결해 내리라 신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철저하게 ‘어른대접’ 하셨던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는 ‘어른이 된 세계’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기독교 신앙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분명 어른이 되었습니다. 본회퍼 목사의 말대로 우리는 ‘어른이 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일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세상이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란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정말로 세상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아 갑니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경우도 어른이 됐다고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세상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아냅니다. 물론 피해를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존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세상은 탐욕으로 치닫는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 그것을 규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왔습니다. 세상은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도덕과 윤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한 마디로 이제 세상은 어른이 되었으므로 하나님 없이도 잘 살고 있습니다. 물론 신앙인들은 달리 생각하겠지만 신앙인들조차도 옛날처럼 절실하게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따라서 갈구하지도 않는 게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어른이 된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젠 하나님 따위는 필요 없다’는 태도로 사는 길이 있습니다. 무신론자처럼 말입니다. 신앙인은 이런 태도를 ‘교만’이라고 부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부를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이것을 하나의 삶의 방식이요 태도로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그냥 하나님 없이 사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강한 신을 받들고 따르던 옛 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속했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화권에서 내가 믿는 신은 무조건 다른 신들보다 강해야 했습니다. 만약 내가 믿는 신이 다른 신보다 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주저 없이 이제까지 믿던 신을 버리고 강한 신을 선택했습니다. 신을 믿는 데 있어서 이른바 ‘의리’란 게 필요하지 않았고 그걸 중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강한 신이 그냥 강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신이 나를 도와주느냐 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나를 도와주게 하려고 신에게 정성껏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찬양도 하고 기도도 올렸습니다. 신이 하라고 하는 바를 실행하려고 애썼던 것은 물론입니다. 이것이 고대 중동지역의 종교의 본질이었습니다. 두 번째 길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신의 도움을 받으려면 옛날보다 훨씬 더 강하고 사치스러운 제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졌기 때문에 웬만한 제물로는 신의 마음을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더 많은 제물을 더 자주 바쳐야 신의 맘을 살 수 있다는 일념으로 그 앞에 제물을 쏟아 붓습니다. 그래야 점점 멀어져가는 신을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당도 더 크고 화려하게 지어야 하고, 온갖 첨단 테크놀로지를 동원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화려하게 예배해야 합니다. 음악도 더 화려해지고 쓰는 언어도 더 유창해졌습니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대부분의 메가 처치들이 이렇게 합니다. 그들이 하는 짓은 사람 좋으라고 하는 측면도 있지만 깊은 속에서는 그래야 신이 더 좋아할 거라는 맘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이 어른이 됐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되, 하나님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조르지 않고, 그런 기대도 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하냐고요? 바로 우리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해주기를 바라는 바로 그것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인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심지어 하나님도 하시지 않을 거라고 믿고, 내가 하나님인 것처럼 행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이 산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땅에 계신다면 하셨을 것 같은 일을 내가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어른이 된 세상을 관리하는 일을 하나님이 어른이 된 내게 맡기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뭔가를 하나님에게 해달라고 빌지 않고 여러분 자신이 할 수는 없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자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계셨다면 하셨을 일을, 하나님이 여러분이 놓인 상황에 계셨다면 분명히 하셨을 일을 여러분 자신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교만일까요? 이게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오만한 행동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어른’이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이 아니면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다는 믿음으로, 그래서 역설적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는 하나님은 안 계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하셨을 일을 여러분 자신이 하는 것, 그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어른이 된 세계에서 기독교인 어른으로 사는 것이란 말씀입니다.순례

2. 숙제: 창세기 42-45장을 꼼꼼히 읽어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