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한복음의 주제

현대 복음서 연구가들은 요한복음서가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견해가 현대에 와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주후 20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클레멘트(Clement)라는 초기 기독교 신학자는 요한복음서를 다른 복음서들과 구분했고 이를 ‘영적인 복음서’라고 불렀습니다.

(1) 공관 복음서와 요한복음서의 차이

∙연대기 :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일 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요한복음서에는 삼사 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성전에서 환전상의 탁자를 뒤엎는 것이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주일에 있었고 예수님이 붙잡히게 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복음서에는 이 사건이 예수님 공생애 초기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리 :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공생애 행적 대부분이 갈릴리에서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서에는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지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닌데 반해 요한복음서에는 예수님 자신에 관한 메시지가 많이 나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든가 또는 “누구든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라는 따위의 선언은 모두 요한복음서에만 있고, 잘 알려진 “나는 ···이다”라는 이야기도 요한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나는 세상의 빛이다, 생명의 양식이다···”라는 따위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는 스타일 :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비유와 기억에 남을 만한 짧은 이야기를 통해 가르치지만, 요한복음서에서는 긴 신학적 담론을 통해 가르칩니다. 우스개소리로 요한은 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 많은 담론 속에 신약 전체를 통해 예수님에 관해 묘사가 가장 잘 된 상징적 표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요한은 예수님을 육신을 입은 말씀, 세상의 빛, 하나님의 어린 양, 생명의 양식, 참 포도나무, 문, 그리고 선한 목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은 예수님과 그의 사역의 의의를 강조하기 위해 이원론적인 상징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가령 빛과 어둠, 위와 아래, 육체와 영, 생명과 죽음, 진리와 거짓, 그리고 하늘과 땅 등이 그것들입니다. 요한은 또 ‘세상’이란 말을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사는 것의 부정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요한이 때때로 ‘유대 사람’이라는 표현을 부정적인 상징으로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관복음서도 요한복음서와 같이 모두 역사와 상징적 표현을 두루 사용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요한복음서에서는 은유적 이야기가 역사적 이야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 인물로서의 나사렛 예수가 요한복음서에서도 그 바탕이 되고 있지만, 공관복음서에서보다는 덜합니다.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요한복음서는 복음서 중에서 제일 상징적이라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의 공인으로서의 첫 장면

이런 점을 미루어볼 때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공적인 행적의 첫 장면이 극히 상징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모두 첫 행적이 연설이었지만 요한복음서에서는 연설이 아니고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결혼잔칫집에 가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행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로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와 제자들이 갈릴리에 있는 가나라는 마을에서 있었던 결혼잔치에 초대 받아 가게 됩니다. 거기서 포도주가 동이 나자 예수님은 많은 양의 물을 좋은 포도주로 바꿉니다. 잔치를 맡은 사람은 신랑이 그렇게 많은 포도주를 준비한 줄 알고 “누구나 좋은 포도주를 맨 먼저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두었구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첫 번 표징’이고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물론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양의 물(500 내지 700 리터)을 포도주로 만든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사건의 ‘일어남’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쉽게 본 뜻과 의미를 잃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과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고 의심하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다고 일단 생각을 바꾸고 나면, 예수님이 오래 전 어느 날 행한 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참 의미는 그런 일이 “일어났었느냐”에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요한이 이야기한 대로 하나의 ‘표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표징이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상징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하나의 표징으로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그 의미의 중요성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자세한 내용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모친 마리 사이의 심상치 않은 대화, 물을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위한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한 점,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측 등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한 내용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 이야기의 상징적 주제가 되는 혼인잔치 자체의 의의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혼인잔치는 1세기 팔레스타인 세계에서 특히 농민들에게(‘가나’는 시골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가장 즐거운 축제날이었습니다. 혼인잔치는 보통 7일 동안이나 계속되고 많은 음식과 포도주가 있고, 또 춤추고 즐겼음은 물론입니다. 보통 일상적으로 농민들의 먹을거리는 풍부하지 못했고 곡식, 과일, 야채, 올리브, 계란 그리고 가끔 생선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가축은 많지 않아 잡아먹기는 꺼렸기 때문에 고기나 닭 같은 것은 자주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혼인잔치에서만은 모든 음식이 풍부했습니다.

이런 여건 하에 요한이 공인으로서 첫 행적으로 삼은 본문의 예수님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예수님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하려 했고, 예수님의 기쁜 소식이라는 이 복음서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요? 요한의 대답은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는 혼인잔치의 이야기이고, 제일 좋은 것을 나중에 쓰려고 아껴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혼인잔치의 은유적이고 상징적 의미 외에 유대 초기 기독교사회 전통에서 잔치나 연회나 결혼이 뜻하는 역사적 의미를 더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향연이나 잔치를 메시아를 기다리는 시대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고, 결혼도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뜻하는 메타포로 쓰여 왔습니다. 신약에는 가끔 예수님을 신랑으로, 그리고 그 추종자들을 신부로 표현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어린양(예수님)의 혼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렇듯, 결혼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친근한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고, 하늘과 땅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는 흔히 쓰는 신비스러운 상징적 표현이고,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요한복음서는 가장 신비스러운 복음서인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공인으로서의 첫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 모든 상징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까요? 물론 확실히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은유적 표현에서는 저자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전달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어쨌든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말하려 했던 것은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는 혼인잔치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3)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

학자들은 요한복음서가 주후 90년경에 써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데 주후 70-80년경에 쓰인 마태·마가·누가 등의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굉장히 혁명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주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당연한 교리로 알고 있는 지금은 이 주장이 하나도 혁명적일 것이 없지만, 요한복음서가 쓰일 당시에는 굉장히 혁명적이었고 그래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공관복음서 가운데 첫 번째로 쓰인 마가복음은 “예수님은 그리스도다”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마가복음 8장 29절에 있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또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에 수제자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이 증언하고 있는 ‘그리스도론’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보다 약 10년 뒤에 쓰인 마태복음을 보면 베드로의 대답이 바뀝니다.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이 마태복음에는 16장 16절에 나와 있는데, 그 내용은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입니다. 이 고백을 보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보다 10년 뒤에 쓰인 요한복음서에 가서는 또 달라집니다. 요한복음서의 그리스도론은 머리말에 잘 나와 있는데, 거기를 보면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요 1:1). 이 요한복음서 1장 1절은 ‘말씀’과 ‘하나님’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1장 14절을 보면, 그 말씀이 다름 아닌 예수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 교인들은 부활체험 이후 처음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다가(마가), 나중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되었고(마태), 더 나중에는 ‘하나님’이라고까지 고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요한).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는 마지막 고백은 당시에 유대교 내에서 아주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공관복음서가 쓰일 당시만 해도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분리되지 않았었습니다.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처럼 유대교의 한 종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는 고백을 하면서부터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로부터 배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는 유일 신앙을 근본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은 야훼(여호와) 한 분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일 수 있겠습니까! 이는 마치 하늘에 해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는 말처럼 허무맹랑하게 들렸고, 저들이 수천 년 간 믿어온 유일 신앙을 파괴하는 이단적인 주장으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로부터 추방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서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아마도 성경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일 것입니다. 또한 많은 크리스천들은 이 구절을 ‘복음’의 축약판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구절을 “우리 죄를 위해 죽은,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구원받는다”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방식은 이 구절의 첫 마디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 조건을 달아놓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지만, 예수를 믿는 자만 구원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구절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뜨려 영원토록 고통 받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는 이 구절이 요한복음의 맥락(context)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심각하게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요 3:16을 자세히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사랑한 것은 ‘세상’입니다. ‘교회’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고, ‘크리스천’도 아니고, ‘인류’도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 또한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한 것은 분명히 ‘세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뭘까요? 요한복음에 나오는 ‘세상’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 모든 피조물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와 지배 체제를 뜻하는 ‘이 세상’입니다. 요한복음서와 바울 서신에서 ‘이 세상’은 예수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당신과 나뿐만 아니라, 크리스천만이 아니라, 인류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합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에서 아들을 ‘주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 아니라 ‘성육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얼마만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기꺼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왔을 만큼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성서 일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구절에서 ‘믿음’이란 예수에 관한 신학적 주장을 믿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예수를 ‘사랑하는’ 것, 예수에게 마음을 바치는 것, 예수에 대한 충실과 충절,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은 흔히 죽음 이후의 축복받은 내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에서 영생은 현재의 경험입니다. ‘영생’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다가올 시대의 삶’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서의 신학에서 이는 여전히 미래의 것이며 희망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현재의 것으로, 현재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무엇입니다. 요 17:3을 보십시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여기서 현재 시제에 주목하십시오. 영생(다가올 시대의 삶)은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것은 이미 다가올 시대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이 구절은 미래에 천당 가기 위해 지금 예수에 관한 일련의 진술을 믿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구절은 예수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예수를 통해, 성육신을 통해 알려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다가올 시대의 삶’에 지금 진입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구절은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 구절은 지금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