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도행전 개관

신약성서에서 사도행전은 독특한 문서입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서도 아니고 서신도 아니면서 이 두 가지 유형의 문서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네 복음서는 모두 내러티브, 즉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과 신약성서의 서신들은 초대 교회의 삶과 투쟁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 복음서가 전하는 이야기는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서신이 보여주는 교회의 삶은 이야기 형식이 아닙니다. 이렇듯 사도행전은 신약성서에서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저자와 연대

사도행전의 문학적 형식이나 그 신학적 목적을 더 잘 이해하려면, 사도행전이 신약성서에서 따로 독립되어 있는 문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제2부에 해당합니다. 사도행전의 다음과 같은 첫 구절을 보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2권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데오빌로님, 나는 첫 번째 책에서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습니다. 거기에 나는,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때로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지시를 내리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하신, 모든 일을 기록했습니다”(행 1:1-2). 사도행전의 저자는 자신이 “첫 번째 책”, 즉 누가복음을 쓴 사람과 동일 인물임을 밝힙니다. 그래서 관례적으로 사도행전의 저자를 ‘누가’라고 하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하나임을 강조하여 누가-행전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정경에서 누가와 사도행전이 서로 떨어지게 된 것은 네 복음서를 함께 묶는 관행 때문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품으로서 동일한 저자에 의해 써졌기 때문에, 이 책들의 연대 역시 동일하게 대략 80-90년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이라는 제목은 누가가 쓴 두 번째 책에 후대에 교회가 붙인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 잘못 붙여진 이름입니다. 누가-행전에서 ‘사도’는 열두 사도에 국한됩니다. 따라서 누가의 용어에 따르자면 바울은 사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사도행전의 중심인물로 등장합니다. 이 제목은 이 책에 대한 후대 교회의 해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을 사도행전을 쓴 누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실마리로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체 이야기의 윤곽

사도행전이 종종 기독교 역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인식되면서 자연히 초대 교회사에 대한 사료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사도행전은 역사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이 역사적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을 수는 있지만 초대 교회에 대한 객관적인 연대기는 아닙니다. 초대 기독교 역사와 사도행전의 이러한 모호한 관계는 사도행전의 바울과 바울 자신이 쓴 편지들 속의 바울만 비교해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대목에서 사도행전의 사건 진술과 바울 자신의 진술이 서로 엇갈립니다.(예: 행 9:3-30과 갈 1:13-17; 행 15장과 갈 2:1-10) 사도행전은 일차적으로 누가가 전하는 초대 교회에 대한 이야기로서 누가의 관심과 신학적 입장에 따라 채색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8은 사도행전의 내러티브 흐름과 구조를 알려주는 열쇠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1-7장은 (성령의 인도 속에서) 기독교가 예루살

렘과 유대에 전파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8-12장은 사마리아와 주변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13-28장은 복음이 “땅 끝”, 즉 로마에까지 전파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좀 더 넓은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교회의 운동(movement)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한 주요 인물은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인데, 사도행전에서는 그 중에서도 바울에게 그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전해지는 과정에서 두 가지 결정적인 사건이 있는데, 9장의 사울(바울)의 회심과 10장에 나오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세례를 준 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사도행전에서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언급됩니다. 고넬료 이야기는 11:1-18에서 되풀이되며, 바울은 22장과 26장에서 자신의 회심을 거듭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의 목적

누가는 예수의 이야기와 교회의 이야기를 각각 하나의 이어지는 이야기의 두 부분으로 제시함으로써 교회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교회의 시대는 예수의 승천과 그의 재림 사이에 위치한 기간으로서(행 1:11) 단순히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결실을 맺는 시간입니다. 또한 교회의 시대는 골동품의 가치를 매기듯 평가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의 지속적인 선포를 위한 토대이자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쓴 것은 교회의 과거를 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증거는 성령이 교회에 임재하여 활동할 때 가능해집니다. 예수가 잉태될 때 마리아에게 강림했던 성령(눅 1:35), 나사렛에서 예수에게 기름을 부었던(눅 4:18) 성령이 이제 교회에 임하여(행 2:1-4) 사도들과 제자들의 활동을 인도합니다.(예: 행 4:31; 8:29; 15:8; 19:21) 누가는 예수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성령의 역사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언급했다시피, 사도행전에서 누가의 일차적 관심은 이방인을 향한 선교, 즉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넘어 로마제국까지 교회가 확장되는 과정(movement)에 있습니다. 바울은 제국의 관리들인 펠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행 24장), 그리고 아그립바 왕(26:1-32) 앞에서 “이 일이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님”(26:26)을 보여주기 위해 증언합니다. 천사도 바울이 로마 황제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일러줍니다.(27:24)

누가는 로마세계에서 기독교가 성공적으로 증거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사도행전 끝에 가면 로마에서 바울은 구금상태에 있지만,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은 승리와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그 구절에 따르면 바울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습니다”(28:31). 현실에서의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바울의 운명과 함께 사도행전을 열린 결말로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선포한 자의 최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증거되는 복음의 생명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누가는 로마제국에서 번성하여 세계사에 한 몫을 할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교회의 모습을 그립니다.▩

2. 사도 바울의 생애와 선교 (1)

역사적 바울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바울 자신의 편지들과 누가의 사도행전을 치밀하게 비교하고 세밀하게 평가하는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성경은 사도행전 뒤에 바울의 서신들이 나오는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의 시선을 통해서 바울을 보고, 누가의 해석을 통해서 바울을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와 ‘바울에 대한 바울의 이야기’ 즉, 누가의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들에 나온 자료들을 통합하기 위해서 다음의 3가지 원칙을 따를 것입니다.

(1) 두 사람의 공동자료는 그대로 받아들인다.(유대인, 바리새파, 박해자 등)

(2) 누가와 바울이 차이가 있을 때에는 바울을 따른다.(로마시민권, 가말리엘의 제자, 예루살렘 성장, 사도권 등)

(3) 서신에는 없고 사도행전에만 있는 자료 중 누가의 주제보다는 바울의 주제와 관련되는 것은 받아들인다.(다소 출신 등)

1. 다소(Tarsus)

소아시아 중남부에 있는 다소는 1세기에는 로마제국이 통치하는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바울은 기원후 8년경 태어났는데, 다소에서 태어난 것 때문에 그는 세 가지 매우 귀한 선물과 한 가지 나쁜 선물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긍정적인 선물은 전망(展望, vista)으로서, 그리스 세계와 셈족 세계 사이의 경계선 지역이 갖는 유리한 조건과 관련된 것입니다. 즉 다소는 서양과 동양의 경계였으며, 각각을 향한 관문이었습니다. 또한 해로와 육로의 교차점이었던 다소는 바울에게 일찍부터 바다와 산맥, 협곡과 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으며, 실현하기 어렵지만 열려진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심어주었습니다.

두 번째 긍정적인 선물은 노동(labor)으로서, 수고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다소라는 도시가 그 시민들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 시민들은 다소라는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다소 사람들은 지중해의 탁 트인 전망과 길리기아 평야의 축축한 늪지대, 타우루스 산맥의 매서운 추위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의 찌는 듯한 더위를 모두 토목공사로 연결시켰습니다. 지리는 확실히 운명이었지만, 노동은 지리를 바꿀 수 있었으며 또한 역사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적극적 선물은 교육으로서, 그리스 대학 도시 안에서의 유대교 회당의 교육과 관련된 것입니다. 바울이 젊었을 때 스트라보(Strabo)가 쓴 책 <지리>(Geography)는 다소의 대학을 “철학자들의 학파와 강좌가 있었던 유명한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등을 능가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소년 바울은 자신의 유대 전통에 대한 특수한 교육만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 학파들과 그리스 수사학의 기술들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변증론 및 논쟁술도 배웠을 것입니다. 이런 교육은 경전을 암기하고, 인용문들을 엮어내고, 말로써 논증할 뿐 아니라, 문서로 주장을 펼쳐나갔던 사도를 위해서 매우 적합한 교육이었습니다.

그의 고향 다소가 안겨준 가장 큰 부정적 선물은 말라리아였습니다. <첫 번째 바울의 복음>이란 책에서 보그와 크로산은 바울이 어린 시절에 다소에서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다고 보는데, 말라리아는 오한과 발열을 쉽게 일으키는 기후에서 감염되기 쉬우며, 일단 발병하게 되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떨리며 엄청난 땀을 흘리게 될 뿐만 아니라, 극심한 두통, 멀미, 구토를 겪게 됩니다. “육체의 가시”는 다소라는 도시가 바울에게 남긴 가장 영원한 표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