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도 바울의 생애와 선교 (2)

(1) 바울의 도시 선교 전략

바울은 도시 사람이었으며, 그가 사도로서 활동한 것 역시 전부 도시에서 벌인 활동이었습니다. 바울은 선교를 함에 있어서 도시들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주로 로마 지방들의 수도(capitals)들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즉 출생 장소였던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를 비롯해서, 시리아 안디옥의 경험을 거쳐,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아카이아의 고린도, 소아시아의 에베소 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그런 도시들에서의 생활, 특히 그런 수도와 같은 대도시의 생활은 어떠했을까요?

① 바울의 도시들

바울이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도시의 평민들이었습니다. 고대 세계의 “평민들”은 도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는데, 그들은 도시의 노동자 계급이었습니다. 도시 노동자 계급에는 일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 혹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가끔씩만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극빈층이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부득이 거지가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의 빈약한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힘겹게 연명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지 못했는데, 지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시 노동자 계급의 생활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대 도시들은 규모가 작았는데, 그 이유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성벽을 쌓는 것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도시 인구가

늘어나도 성벽 안에 밀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매우 높았으며, 특히 노동자 계급이 살던 지역은 그랬습니다.

고대 로마 지방 시리아의 수도였던 안디옥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보면, 1세기에 안디옥의 인구는 대략 15만 명이었으며, 그 성벽 안의 지역은 5㎢로서, 인구밀도는 1㎢당 3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서울의 2배에 해당합니다. 안디옥 성벽 안의 거의 40%에 이르는 상당한 지역이 공공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의 대저택들이 나머지 몇 퍼센트를 점유했습니다. 따라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 노동자 계급은 그 지역의 60%가 채 못 되는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인구밀도는 1㎢당 5만 명에 이르러 뉴욕 맨해튼의 두 배가 되었지만, 맨해튼과 같은 고층건물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노동자 계급 대부분은 여러 층으로 된 건물에 살았습니다. 그 건물들은 기껏해야 5층이나 6층이었습니다. 많은 가족들이 단칸방에서 살았으며, 그 방을 주로 침실과 창고로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낮에는 밖에서 일하느라 보냈는데, 날씨가 나쁘거나 병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할 때만 예외였습니다.

이처럼 인구가 밀집된 거주 지역에 하수도 시설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고대 도시들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 흔히 놀라게 되는 것은 부자들의 대저택에 있는 정교한 수도시설입니다. 즉 수돗물, 실내 화장실, 목욕을 위한 온수 시설 등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공동주택에는 이런 시설들이 없었습니다. 수돗물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사용할 물을 길어 와야 했으며 흔히 몇 층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화장실 시설은 땅에 판 웅덩이였거나 요강이었고, 요강은 대개 좁은 길에 있는 도랑에다 비웠습니다.

하수도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악취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벌레들과 질병이 많았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어디에서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으며, 특히 도시에서는 더욱 높았습니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시골에서 인구가 계속적으로 유입되지

않았더라면, 도시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는 항상 넘쳐났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로마제국의 경제정책 때문이었습니다. 토지를 잃은 수만 명의 농민들은 일할 곳도 없거나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되자 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 노동자 계급의 대다수는 이처럼 새로 유입된 사람들로서 서로 간에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도시로 이주했다는 것은 마을에서 대가족을 이루어 오랜 세월 살면서 서로 간에 도우며 살았던 전통적인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상실했다는 뜻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도시 안에서의 높은 사망률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조만간 가족들을 잃고 혼자 남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도시로 이주했다는 것은 또한 서로 다른 언어와 인종 집단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안디옥은 1㎢당 3만 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그 안에는 열여덟 개의 인종 구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해, 경쟁, 적개심이 만연했으며 종종 폭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행했던 도시들은 그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의 유적들이 상징하는 영광에도 불구하고, 비참함, 위험, 공포, 절망, 증오심으로 가득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도시선교를 했던 당시의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이 도시선교를 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자신이 천막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울이 천이나 가죽을 사용해서 차일(遮日, blind)을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차일로서의 천막은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 수요가 무척 많았으며, 기술만 있으면 가능했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일하기가 쉬웠습니다. 그의 도구들은 가벼웠고 들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느 도시에서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예를 들어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상점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행 18:3).

② 바울의 청중들

우리는 또 다시 사도행전에 나오는 누가의 이야기를 그 정보와 해석을 구분하기 위해 매우 주의 깊게 읽어야만 합니다. 누가는 바나바의 선교전략을 바울에게도 포개어 놓았지만, 바울은 바나바 밑에서 선교전략을 배운 후에, 자기 혼자 선교여행을 하면서는 그 전략을 매우 과감하게 바꾸었습니다.

바울의 선교전략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는 바울이 도시들을 방문할 때마다 즉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동료 유대인들을 크리스천 유대교도로 개종시키려 했던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실제로 그랬을까요? 바울 자신의 선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자신이 “이방인들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주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바울이 누가의 사도행전에서처럼,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을 개종시키려 했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선교적 명령을 불순종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도 모순되는 행동을 한 셈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50년경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 자신과 다른 모든 사도들 사이에 합의했던 결정을 위배하는 행동을 했던 것이 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세 차례에 걸쳐 이방인들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①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 ②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 ③ 그래서... 야고보[예수의 형제]와 게바[베드로]와 요한[야고보의 형제이며 세배대의 아들]은...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2:7-9)

결론은 바울이 각각의 도시에서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을 크리스

천 유대교도로 개종시키기 위해 선교를 시작했을 수는 결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일을 위해서 회당에 갔었을 수는 있는데, 다메섹에서의 하나님의 위임과 예루살렘 회의에서의 인간적인 위임을 지키는 선에서 그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찾아갔던 이방인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우리는 대개 고대 세계의 유대인의 관점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분되는 두 집단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 번째 집단이 있었습니다. 즉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지만, 회당의 이방인 참가자들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 유일신론을 받아들여, 유대인의 도덕, 가족 윤리, 공동체의 가치를 존경하고, 특히 정기적으로 회당에 출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각각의 도시에서 항상 회당에 간 것은 유대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들 이방인 참가자들을 크리스천 유대교도로 개종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해 드러냈던 진정한 원한을 설명해줍니다. 바울은 회당 참가자들을 가로채기했던 셈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울이 단지 그의 동료 유대인들에게 말했다면, 그들은 그를 비웃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단지 순전한 이교도들에게 말했다면, 그의 동료 유대인들은 그를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바울과 유대인 회당이, 그들 이방인 참가자들이라는 제3의 집단을 놓고 서로 다투고 있었던 것입니다. 회당은 “전통적인 유대교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한 반면에, 바울은 “크리스천 유대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그들 개종한 이교도들이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와 같은 바울의 편지들 속에 나오는 신학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그들은 순

전한 이교도들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회당에 출석하며 부분적으로 유대인의 관례를 지킴으로써 이미 유대교 신앙과 사상을 배웠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아마도 다른 점들보다 더욱 중요하게, 바울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는 사실은 50년대 중반 이후 그의 놀라운 주장, 곧 “그러나 이제는 이 지역에서, 내가 일해야 할 곳이 더 없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여러분에게로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므로, 내가 스페인으로 갈 때에, 지나가는 길에 여러분을 만나보고, 잠시 동안만이라도 여러분과 먼저 기쁨을 나누려고 합니다”(롬 14:23-24)라는 주장을 설명해줍니다. 즉 30년대 중반부터 50년대 중반까지 겨우 20년 만에, 바울은 로마제국의 동부지역에서 일을 끝내고 이제는 서부지역으로 향하려 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바울의 도시 선교전략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그가 이처럼 놀라운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특별한 전략적 초점, 즉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의 “인구학”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선교 가능한 전체 도시들 가운데서 우선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도시들을 선택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새로운” 도시들 가운데서, 로마의 지방 수도들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중심 도시들에서 회당의 이방인 참가자들, 즉 사도행전에 나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겨냥했습니다. 바울이 이런 초점에 맞추었기 때문에, 겨우 20년 만에, 로마제국의 동부지역을 끝내고 서부로 갈 준비가 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③ 바울의 공동체들

바울의 공동체들은 작은 규모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로드니 스타크는 그의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기원후 606

년까지 로마제국 전체의 기독교인 숫자를 2,000명으로 추정합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이야기는 훨씬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제시합니다. 즉 기독교적인 설교의 첫날에만도 “약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행 2:41). 그러나 이것은 과장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본토에 대략 1,000명 정도 있었을 것이며, 나머지 1,000명은 제국의 나머지 지역, 주로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 아마도 이집트와 멀리는 로마에까지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공동체를 세운 도시들에서는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 숫자가 1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며, 아마도 몇 명 혹은 몇 십 명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공동체들이 작은 규모였다는 두 번째 이유는 공간적인 제한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교회 건물을 건축하게 된 것은 2~300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기 때문에, 바울의 공동체들은 기존의 공간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가정 교회”(house church)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지만, 오히려 “상점 교회”(shop church)라는 말이 적절할 것입니다. 즉 기독교인들이 상점에서 모였는데, 상점은 일반적으로 공동주택과 기타 건물들의 1층에 있었습니다. 상점들은 작았으며, 대부분 3m×6m를 넘지 않았으며, 그보다 작은 상점들도 많았습니다. 그보다 큰 모임이 가능했던 것은, 고린도에서처럼 개종자들 가운데 자신의 대저택을 소유하고 사람들을 대접할 만큼 부유한 사람들이 있을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규모가 작은 모임이었을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한 도시 안에 몇 개의 “상점 교회들”이 있었을 법도 합니다.

바울은 그런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에 대해 어디에서도 포괄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동체 예배에 대한 매뉴얼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1:20에서 “주님의 만찬”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성만찬을 축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그렇게 했을까요, 아니면 한 주간에 한번 “매주 첫날에” 했을까요? 우리는 세례가 이 새로운 공동체로 들어가는 입회의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세례의식이 가볍게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교육과 분별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개종자들이 때로는 “말씀”을 들은 직후에 세례를 받았던 것으로 묘사된 것은 실제로 그랬으리라고 상상하기 매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러나 초기 예수운동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로마제국에 의해 처형된 주님을 따른다는 뜻이었으며, 제국의 문명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반대되는 생활방식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습니다.▩

바울은 50년대 초에 빌레몬이라는 한 크리스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장소는 십중팔구 에베소에 있던 총독의 감옥이었을 것입니다(고전 15:32; 고후 1:8-9 참조). 바울은 밤에는 감옥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간수와 함께 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과 지원을 받는 것은 허락되었습니다.

빌레몬서는 매우 특별한 상황 때문에 기록된 한 장의 편지입니다.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그리스어로 “쓸모 있다”는 뜻)는 그의 주인과 심각한 문제에 빠져(처벌? 죽음?) 바울에게 도망쳐 중재를 요청하고 용서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당시의 로마법은 이런 상황에서 노예가 주인보다 지위가 높은 친구에게 도망쳐 와서 중재를 요청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는 동안, 바울은 오네시모를 크리스천으로 개종시켰습니다(10절 참조). 후에 바울은 한 통의 편지를 들려 오네시모를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냈는데, 그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우리는 이 짧은 편지로 로마제국의 노예제도와 노예경제에 대한 바울의 입장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단지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자유민으로 해방시켜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16절 참조). 그 이유는 크리스천 주인은 크리스천 노예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든지 평등하며 불평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노예 해방은 빌레몬을 비롯한 모든 크리스천이 지킬 의무라는 것이 바울의 입장입니다.

빌레몬서를 자세히 꼼꼼하게 읽어보면 이 편지는 그리스-로마의 설득을 위한 수사학의 걸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편지는 개인적 편지이지만 전혀 사적인 편지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단순히 빌레몬에게 보내는 것만이 아니라, 편지에 이름이 언급된 두 사람과 빌레몬의 집에 모이는 가정 교회 모두를 수신인으로 한 편지입니다(1b-2절). 또한 그 발신인은 단지 바울 개인만이 아니라 감옥에서 그를 돕고 있는 다섯 명의 다른 크리스천들의 이름으로 쓴 편지입니다(1, 23절).

바울은 크리스천 노예 오네시모를 그의 크리스천 주인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내면서, 오네시모는 복종하도록, 그리고 빌레몬은 용서하도록, 각자에게 훈계를 해서 되돌려 보냈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바울이 오네시모를 자신의 노예로 남아 있도록 요청하거나, 자신을 돌보도록 그를 해방시켰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냄으로써, 빌레몬 자신이 세례 받을 당시의 결단으로부터 나온 크리스천의 의무로서 자발적으로 오네시모를 해방시키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신앙’과 ‘행위’를 대조시켰을 때, 그것은 단순한 ‘신앙’과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말한 신앙은 결코 “행위 없는 신앙”(faith without works)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신앙에는 항상 행위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신앙’과 ‘행위’를 대조시

켰을 때, 그것은 항상 “신앙과 더불어 행위”(faith with works)의 줄임말인 “신앙”과 “신앙 없는 행위”(works without faith)의 줄임말인 “행위”를 대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간에 (공동체 안에서) 평등하며 (공동체 밖에서) 불평등할 수는 없습니다. 크리스천들의 모임 안에서의 평등성은 거리에서의 평등성으로 이어져야 하며, 크리스천의 생활 전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그 공동체 안과 밖의 사회에서 서로 간에 평등해야만 합니다.▩

1. 빌립보의 역사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의 왕 빌립 2세가 주전 360년경 마케도니아의 동쪽 끝에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 했습니다. 주전 168년 마케도니아가 멸망하면서 빌립보는 로마 공화국에 합병되었는데, 주전 42년에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로마군과 시저 편을 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로마군이 여기서 한판 승부를 벌여 후자가 승리했습니다. 그 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공화국을 동서로 나누어 통치하다가, 주전 31년 그리스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물리쳐 대권을 통합하고, 마침내 주전 27년 로마 제국을 창건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합니다(주전 27년~주후 14년 재위).

옥타비아누스는 주전 30년경에 앞서 빌립보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도시를 이탈리아의 도시들처럼 자치권, 면세권, 사유권 등을 갖는 로마의 자치시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래서 빌립보는 주로 로마 시민권자, 곧 제대한 군인들이나 유배된 자들이 사는 정착지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사도행전 16장 12절에선 이 도시를 일컬어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고 합니다.

2. 빌립보 크리스천 공동체의 설립 : 행 16:6-40 참조

주후 52년경, 바울은 (통상은 두 번째로 알려진) 그의 세 번째 선교여행 때의 어느 날 밤 환상을 봅니다. 한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행 16:9)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소아시아의 비두니아로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배를 타고 에게 해를 건너 유럽으로 갑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바다를 건너 그리스 북부 네압볼리 항구에 입항했고, 거기에서 다시 내륙으로 약 15㎞ 떨어진 빌립보로 갔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바울은 유럽 선교의 막을 엽니다.

앞서 말했듯이 바울의 전도 당시 빌립보는 로마의 자치시였고 로마의 퇴역한 군인들과 공무원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관계로 로마 제국의 법이 삶의 절대적 기준이었습니다. 로마 제국 내의 도시 안에서는 공적인 예배행위만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집회 장소는 사회생활의 중심권으로부터 떨어진 도시 외곽(성밖)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빌립보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빌립보 외곽을 흐르는 지각티스 강가에 모여 예배를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6:13에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로 번역된 ‘프로슈케’(proseuchē)는 회당(syunagoguē)과 달리 유대인들의 결사체가 조직되지 못한 곳에서 형성된 일종의 비공식적 예배처를 말합니다.] 참석자들은 주로 부인들이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했습니다. 그 청중 가운데는 고향 두아디라에서 고급 자색 옷감을 수입해서 빌립보 일대에 팔던 루디아라는 부인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루디아가 이 여성의 이름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16:14을 직역하면 “사람들이 ‘루디아’라고 부르는 여인”입니다. 이 표현은 ‘루디아 사람으로 알려진 여인,’ 곧 ‘루디아 여자’라는 뜻일 것입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유대교로 아

주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유대교에 동조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루디아는 가족과 함께 지각티스 강에서 세례를 받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이로써 루디아는 유럽 최초의 크리스천이 되었고, 그녀의 집은 빌립보에서 첫 번째 ‘가정교회’가 되었습니다.

루디아 부인 집에 가정교회가 설립된 뒤의 어느 안식일, 바울 일행은 유대교 기도처가 있는 지각티스 강가로 가다가 귀신에 접해 점치는 한 여자 노예를 만났습니다. 그녀가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계속 소리를 질러대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악령을 쫓아내고 고쳐주었습니다. 그러자 점치는 노예 여자를 부리던 주인들은 돈벌이할 길이 막힌 것에 격분하여, 바울과 실라를 빌립보 자치시 행정관들에게 끌고 가서 로마인들의 미풍양속을 해친 자들이라고 고발했습니다. 행정관들은 바울과 실라를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발목이 차꼬로 채워져 깊숙한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기뻐하며, 찬송을 부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고 저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그런데도 바울 일행이 달아나지 않은 것에 간수는 크게 감명을 받고, 그 밤중에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음식을 대접하며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빌립보에 두 번째 ‘가정교회’가 탄생했습니다.

3. 빌립보서 집필 동기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게 된 동기와 이유는 이렇습니다. 빌립보 교우들은 바울이 에베소 주둔 로마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다는 소식을 듣고 위문품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로 하여금 바울에게 전달하고 옥바라지를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그만 향수병에다 중병까지 앓아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자비로 겨우 회복되니 바울은 서

둘러 그를 빌립보에 돌려보냈습니다. 한시바삐 에바브로디도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빌립보 교인들을 걱정에서 해방시켜주고자 한 것입니다. 이 기회에 감옥에서 써서 보낸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2:25-30). 바울은 편지를 보내면서 빌립보교회가 그에게 보내 준 도움에 감사를 표합니다(2:25, 4:10- 20). 또한 빌립보 교회의 두 여성 지도자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경쟁심 때문에 생겨난 분열을 화해시키기 위한 노력도 합니다(2:1-4).

4. 바울의 작별 편지

빌립보서는 바울이 마지막에 쓴 편지는 아니지만, 아마도 바울은 이 편지를 작별 편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은 빌립보서를 감옥에서 썼는데, 빌레몬서를 썼던 에베소 감옥에 갇혀 있던 동안에 빌립보서도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왜 감옥에 갇혔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지만, 이 편지를 통해 그 감옥이 로마제국의 감옥이었으며, 그가 수감된 것이 처형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1:12-26).

그리스 북동쪽에 있는 빌립보는 바울이 유럽에 크리스천 공동체를 처음으로 만든 도시였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사람들의 관계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런 어려움도 보고되지 않고, 긴박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빌립보서는 애정으로 가득합니다. 바울은 이 편지가 자기가 사랑하는 공동체에게 보내는 마지막 작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그만큼 무거움이 담겨 있습니다. 죽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그를 더욱 침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립보서의 중심적인 어조는 감사와 기쁨이며, 근심이 드러나지 않은 것에 주목할 만합니다.▩

고린도후서는 독립된 한통의 편지가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 공동체에 보낸 여러 편지들—최소 3통의 편지들이 합쳐진 것입니다. 현대 성서학계는 이에 대해서 거의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각 조각 편지의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1~7장, 8~9장, 그리고 10~13장으로 구분합니다. 물론 이 구분은 편지의 순서도 이와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튼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 공동체는 바울이 보낸 편지들을 보존했고, 나중에 이들을 고린도후서라는 이름의 한 편지로 엮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가 조각 편지들의 묶음이라는 사실은 이를 읽고 해석하는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바울이 그의 공동체와 지속적으로 관계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바울이 주후 50년경에 고린도에 그리스도 공동체를 설립했고, 거기서 1-2년간 사역했음을 상기하십시오! 또한 고린도전서가 바울이 전에 고린도 공동체에 편지를 써서 보냈고 또 그들로부터 답장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음을 상기하십시오!

고린도후서는 이 서신왕래에 추가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에 디모데를 보냈고 갈등의 현장에 그 자신이 직접 갈 것을

약속했다고 전합니다(4:17-19). 그런데 고린도후서 2장 1절에서 바울은 “여러분에게 또 다시 아픔을 주지 않아야 하겠기에, 나는 여러분에게로 가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 방문은 그가 고린도전서에서 약속했던 것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 2:4과 고후 7:8에서 그가 고린도 공동체에 대해 부분적으로 사과하는 ‘어떤’ 편지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2:4 나는 몹시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가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7:8 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몹시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2:4) 쓴 편지—이른바 ‘눈물의 편지’는 아마도 분실되었거나, 그것이 아니면 바울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고후 10~13장에 보존되어 있을 것입니다.

고후 1~7장이 한통의 편지든 아니면 여러 통의 편지가 합쳐진 것이든, 그 톤(tone)과 내용은 고후 10~13장의 그것들과는 매우 다릅니다. 거기에는 전투성도, 분노도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거기서 모든 바울서신 중 가장 밝고 빛나는 언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후 8~9장은 또 다른 편지나 심지어 두 개의 편지로 보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위해 벌인 헌금에 대한 선집입니다. 고후 1~7장과 마찬가지로 그 톤은 10~13장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여러 편지들은 그가 설립한 여러 그리스도 공동체들 중 하나였던 고린도 공동체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을 제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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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동시에 그 공동체 구성원들과 바울과의 계속적인 애정과 열정 관계 그리고 때때로의 갈등 관계를 보여주는 창을 제공합니다. 갈라디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는 성숙과 조화에 있어서 그다지 이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 따르미들 사이에 그의 길과 그를 따르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기 위해 투쟁하고 갈등하던 시기였습니다.

1. 10~13장

비록 고린도후서로 함께 묶인 조각 편지들의 집필 순서에 관해서 학자들 간의 의견일치는 없지만, 주류는 10~13장이 나머지 편지들보다 먼저 써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들에서 바울은 고린도에 와서 자기와 자기 메시지를 훼손시키고자 노력하던 교사들로부터 자신을 변호합니다.

2. 8~9장

8~9장은 고린도후서로 묶인 조각 편지들 중 어떤 순서에 놓여도 상관없습니다. 그 주제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끝에서 언급한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헌금”입니다. 바울은 그의 커다란 이방인 공동체들로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크리스천들을 돕기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이는 도움과 연대의 표시였습니다.

3. 1~7장

고린도후서의 처음 일곱 장은 아마도 가장 마지막에 써졌을 것입니다. 1~7장은 비록 갈등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갈등이 과거의 일이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고후 2:5-11에서 갈등을 상정하고 있으나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라고 권고합니다. 즉 갈등이 주요 주제는 아닙니다. 대신 이 장들에는 바울의 중심 증언들이 전시되듯 나열되어 있고 안도와 감사가 결합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