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8-30장은 야곱의 생애 가운데 제2막에 해당되며, 형의 복수를 피해 집에서 도망쳐 나와 하란에서 20년간 객지 생활을 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28장에는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베델에서 꿈을 꾼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이어지는 창세기 29장 이야기는 야곱의 혼인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도착한 땅에 사는 동방 사람들은 가나안 동쪽 또는 북동쪽 시리아 아라비아 사막 주위에 사는 부족을 가리킵니다. 야곱은 그들에게 라반의 안부를 물은 뒤(6절) 근처 우물에서 라헬을 만나 친척으로서의 관습대로 입을 맞추고 여행의 성공을 기뻐하며 울었습니다. 이 우물가에서의 만남은 야곱과 라헬의 사랑이 시작되는 계기가 됩니다.

라반의 환영을 받고 그의 집에 머물게 된 야곱은 라반에게 라헬과의 혼인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재산이 없는 야곱이 신부를 맞아들이기 위해 제안한 7년간의 노동은 상당한 대가이며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습니다. 라반은 사촌이 최우선의 구혼자라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이제 야곱과 라반은 대등한 친척 관계에서 조건부로 일해야 하는 일꾼과 주인의 상하관계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칠 년간의 노동을 며칠밖에 안 되듯(20절) 기꺼이 바칩니다. 때가 되었을 때 라반이 야곱을 속여 레아와 결혼시키고 라헬을 위해서 7년간의 추가 노동을 요구한 것은 여인을 재산의 일부로 간주했던 고대의 사고방식을 보여 줍니다. 결국 라반은 야곱을 속였습니다.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야곱은 이제 삼촌 라반에게 속음으로써 과거 자기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릅니다. ‘속인’ 자가 ‘속은’ 자가 된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인 일 때문에 야곱과 라반, 라반과 라헬, 레아와 라헬 간의 갈등이 생겨나 이후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라반과의 갈등과 긴장 관계는 점점 심해지는데, 여기서 새롭게 부각되는 사실은 갈등의 원인이 사회경제적 이익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라반이 야곱과 라헬의 희생 위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에 이들 사이의 평화(샬롬)가 깨어진 것입니다.

야곱은 두 아내와 그들의 몸종에게서 12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얻습니다. 레아와 라헬은 남편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지위를 결정하는 자녀를 얻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라헬에 비해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섯 명의 아들을 낳고 몸종 질바를 통해 두 병의 아들을 더 얻습니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는 대신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몸종 빌하를 통해 아들 둘을 얻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요셉과 베냐민을 낳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은 레아와 라헬의 상황과 결부되어서 아이들의 어머니가 지어 부른 것으로, 그 이름들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르우벤: ‘나의 억울한 심정을 살피셨다’ 또는 ‘나를 사랑해 주시겠지’

시므온: ‘들으셨다’

레위: ‘나한테 메이다’

유다: ‘내가 여호와를 크게 찬양하리라’

단: ‘내 사정을 바로 보살피셨다’

납달리: ‘내가 언니와 겨루다’

갓: ‘행운’

아셀: ‘행복’

잇사갈: ‘갚아 주다’

스불론: ‘나에게 선물을 주시다’ 또는 ‘나를 위해 주다’

요셉: ‘씻어 주다’ 또는 ‘하나 더 주셨으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한 어린이의 이름을 짓는 이유로서 하나님의 행동이 언급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펴주시고(르우벤), 하소연하는 소리, 호소를 들으시고(시므온, 단), 좋은 선물(스불론)을 주시니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유다). 성경 저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삶 속에 깊숙이 작용하고 계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우리 삶의 주변과 그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깨닫는 믿음의 중요성을 새롭게 일깨워 줍니다.

2. 창세기 28-30장 말씀 순례

(1)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에서 아내감을 찾게 하였다 (28:6)

창세기 27장 41절은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고 증언합니다. 이에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가 하고 다니는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 아들을 불러다 놓고서 “너의 형 에서가 너를 죽여서, 한을 풀려고 한다. 그러니 나의 아들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제 곧 하란에 계시는 라반 외삼촌에게로 가거라. 네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너는 얼마 동안 외삼촌 집에 머물러라. 네 형의 분노가 풀리고, 네가 형에게 한 일을 너의 형이 잊으면, 거기를 떠나서 돌아오라고 전갈을 보내마. 내가 어찌 하루에 자식 둘을 다 잃겠느냐!”(창 27:42-45)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리브가는 형 에서로부터 동생 야곱을 도망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8장 6절은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에서 아내감을 찾게 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증언만 보면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신붓감을 구하러 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머니 리부가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남편에게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다른 이유를 둘러댔습니다. “나는,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사는 게 아주 넌더리가 납니다. 야곱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딸들 곧 헷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인다고 하면, 내가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습니까?”(27:46) 그녀는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야겠다는 심중의 계획을 자기 입으로 발설하지 않습니다. 이삭이 그러한 계획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영리한 행동 때문에 야곱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형의 분노와 증오를 피해 허둥지둥 도망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면서 신붓감을 찾아 나서는 자가 됩니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아라. 이제 곧 밧단아람에 계시는 브두엘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거기에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네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여라”(28:1-2).

(2)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28:20-21)

성경은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특별하게 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잡초 같은 인생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실려 있기에 성경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순례하면서 만난 이스라엘의 성조들 가운데 가장 약점 많고 허물 큰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야곱일 것입니다. 야곱의 신앙 태도는 ‘~이라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이 그 증거입니다. 거기 보면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치다가 베델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야곱은 이렇게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28:20-22).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는 돌베개를 베고 자던 야곱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28:15)라고, 야곱의 허물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를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야곱의 서원기도는 ‘조건적’이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이렇게 해 주신다면, 나도 당신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이 석상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고, 십일조도 바치겠습니다’ 하는 식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놀라운 선물이요 신비로운 은총 앞에서 감사를 드리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은총을 받아내려고 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축복 앞에서도 하나님과 흥정하고 거래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야곱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탁하기보다는 자기 힘으로 축복을 움켜쥐려 애쓰느라고 자기 인생 대부분을 소비했습니다. 자기 욕망대로, 자기 의지대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운명은 그 혼자만의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따라다니시면서 언제나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야곱을 ‘집념의 인간’으로 정의한다면, 하나님 역시 ‘집념의 하나님’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야곱을 움켜쥐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지렁이 같은 야곱, 벌레 같은 이스라엘”(사 41:14)이 혼돈과 어두움 속에 있었을 때 그를 꽉 움켜쥐고 계셨습니다.

야곱은 생에 있어서 세 차례에 걸쳐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는데, 그것은 매번 야곱이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던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속임수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내고 집에서 도망치던 날 밤 ‘베델’에서(창 28:10-22), 그리고 400명의 무장한 부하들을 이끌고 자기를 죽이기 위해 오는 형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 ‘얍복강’에서(창 32:23-33), 마지막은 가뭄을 피해 온 가족이 이집트로 이주하던 날 밤 ‘브엘세바’에서였습니다(46:2-4). 하나님께서 세 차례 모두 밤에 나타나신 것은, 야곱이 겪고 있는 어둠의 시간에 특별히 그와 함께 하고 계심을, 즉 시련 중에 그를 돌보고 계심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야곱을 보살피시는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야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야곱은 베델과 얍복강 체험을 통해서 거듭나고도 인간적인 집념과 의지 속에서 끊임없이 비신앙적 모습－옛 사람의 모습을 보였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구원의 손길을 펼치셨습니다. 이 점은 얍복강 사건 이후에도 성경이 야곱이란 이름과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병행해서 사용하는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원래대로라면 야곱은 얍복강 체험 이후에 더 이상 야곱이라고 불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창 32:28)라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은 다음, 다시는 옛날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비록 그가 새로운 이름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동 양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어떤 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없이 인간의 의지와 집념만을 갖고 살아가는 야곱의 모습－비신앙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야곱은 ‘집념의 인간’이었지만, 신앙적 차원에서 초지일관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서 살아간 ‘집념의 신앙인’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주 당신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야곱에게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라고 명했으면서도, 당신 스스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부르시지 않고 죄 많고 허물 많은 ‘야곱의 하나님’이라 즐겨 부르셨던 것은 비록 야곱이 이스라엘로 살지 못한다고 해도, 즉 새로운 신원에 맞갖게 살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은 그런 야곱을 내치시는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집념의 인간 야곱이 두 손 들고 당신께 온전히 의탁해서 진짜 이스라엘로 변화되기까지 늘 함께 하시면서 그를 구원의 길로 묵묵히 이끄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란 말은 세 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하나는 야곱의 새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 민족의 또 다른 이름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가의 이름입니다. 성경은 성조들의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야곱의 이름을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삼은 것은 자신의 역사가 야곱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었지만, 허물 많고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들을 택하셔서 당신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해 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저들은 아브라함도, 이삭도, 그리고 요셉도 아닌 야곱의 새 이름을 따서 스스로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새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불완전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 붙들려서 참 신앙인 되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과정적’ 존재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내 세상적 모습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를 믿기보다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경우처럼 못난 우리를 끝내 변화시켜 당신 사람으로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순례

3. 숙제

창세기 31장부터 35장까지를 꼼꼼히 읽어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