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스라-느헤미야의 시대 배경

예루살렘 멸망(기원전 587) 후 바빌로니아로 유배간 유대인들은 차츰 자기들의 몰락이 우상숭배와 계약에 불충실한 죄의 대가였다는 자각과 함께 회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구원을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539년, 바빌로니아 제국을 함락시킨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는 이듬해에 팔레스티나의 유다 공동체 및 예루살렘 성전 복구 사업을 명하는 칙령을 반포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느부갓네살이 약탈하여 갔던 성전 기물들을 반환하여 주었습니다. 기원전 520년경 유배지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그 수가 5만 명쯤 되었다고 합니다(에스라 5장).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들은 즉시 성전 재건공사에 착수하였으나 주변 종족들의 방해와 유다 지역의 흉년 등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공사가 중지되고 말았습니다(이사야서 56-66장은 이 시대의 사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기원전 522년경 페르시아 제국 내의 반란으로 제국이 위태롭게 되자 이스라엘이 기대하던 야훼의 통치 곧 구원의 시대가 임박한 것처럼 보였는데, 이러한 기대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에 의해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이들 예언자들은 곧 새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고(학개 2:6-8; 스가랴 5:1-11)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온 스룹바벨을 야훼의 종, 새싹(학개 2:23; 스사랴 3:8; 6:9-15) 등으로 칭하면서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이기를 고대하였습니다. 스룹바벨은 다윗 가문의 후예로서 여호야긴 왕의 손자였습니다. 이 두 예언자와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다리우스 황제(기원전 522-486년) 6년에는 성전의 완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시대는 오지 않았고 스룹바벨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유다 공동체는 다시금 깊은 수렁에 빠져 모든 희망을 상실한 채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면서 존속하게 됩니다.

기대하던 구원이 깨어지자 이로 인한 실망과 환멸은 온갖 종교적, 도덕적인 무질서와 해이를 낳았는데 이 시기의 정황은 말라기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편파적으로 집행함(2:1-9)은 물론 제사규정의 위배(1:6-14), 잦은 이혼과 이방 민족들과의 결혼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2:10-16). 정치적으로도 스룹바벨 이후로 유대인 총독이 없어지고, 그들은 사마리아 지방 당국의 관할권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예수아를 이은 요아킴과 그의 아들 엘랴십 등의 대제관들에 의해 겨우 내정을 꾸려 나갔습니다. 또한 인근 여타 부족들과의 마찰도 빈번히 일어났는데 아하수에로 황제(기원전 486-465년) 때의 원수들의 고발(에스라 4:6)과 아닥사스다 1세(기원전 465-423년) 때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 공사의 중단(에스라 4:7-23)은 그 한 예에 속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몰락과 종교, 도덕적 부패는 유다 공동체의 순수한 모습을 보존하는데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었기에 어떤 형태로든지 기울어져 가는 공동체를 쇄신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었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종교적으로 침체된 유다 공동체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여 본연의 길로 가게 되었는데 이는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활약의 결과였습니다. 아닥사스다 1세 치하의 기원전 445년 유다 총독으로 임명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자신의 두 번에 걸친 총독 재직기간 중 공동체의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동시에 여러 가지 개혁을 시도하여 경제적인 안정과 종교적 쇄신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착수, 완공하여 대외적인 안보를 확고히 하였고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느헤미야 5장), 종교적인 무질서를 바로 잡았습니다(느헤미야 13장). 그러나 종교적, 정신적인 개혁은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는 선비 에스라’(에스라 7:12.21)에 의해 더욱 철저히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의 귀환 연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 여하튼 예루살렘에 돌아온 그는 율법을 중심으로 한 유다 공동체를 재조직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는 법을 선포하고 그 법을 이행할 것을 서약하게 하였으며,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함은 물론 안식년 규정과 십일조를 지키도록 하였습니다(에스라 9장 이하). 에스라의 철저한 종교적인 개혁은 신정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재정립시켰고 후기 유다이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율법주의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2. 저자, 집필 연대, 자료 및 구성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저자는 역대기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 세 권에 쓰이고 있는 어휘와 문체, 기본적인 사상 등이 유사하다는 점과 에스라서가 역대기의 끝 부분에 이어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저자는 역대기를 쓴 잘 알려지지 않은 역대기 편찬자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느헤미야서에 있는 에스라의 회고록과 역대기는 유사성을 지니지만, 느헤미야의 회고록과는 차이점이 현저하다는 주장이 새로이 대두되고 있어서 위와 같은 견해가 확실하다고 보기는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할 점은 저자는 제의(祭儀)와 성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상당한 식견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레위 지파의 사람인 듯합니다.

저술 연대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기원전 400년경까지의 내용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후인 기원전 4세기 중엽이나 말에 쓰인 것으로 봅니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다른 여러 구약성서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자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선 느헤미야의 회고록(느헤미야 1-7장; 12장; 13장 일부)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다음으로 에스라의 회고록(에스라 7장 후반; 8장 대부분; 9장 등)이 역시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셋째로 아람어 본문(4:7-26; 7:12- 26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문헌의 기본적인 진실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외에 여러 명단이 있습니다(에스라 2장=느헤미야 7장; 8장; 10장; 느헤미야 3장; 10장; 11장; 12장).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에스라-느헤미야서가 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순서적으로 구성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배열할 수 있습니다.

1) 에스라 1-6장：성전 재건과 축성.

2) 느헤미야 1-7장; 12장：예루살렘 성벽 수축과 봉헌

3) 에스라 7-8장; 느헤미야 8장; 에스라 9-10장; 느헤미야 9-10장：법의 선포, 죄의 고백 및 법 준수 의식.

3. 저자의 의도 및 신학적 특징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내용이 페르시아 왕의 명령이나 허락에서 시작하여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 및 서약 갱신으로 끝나고 있음은 페르시아 왕에 대한 충성과 대대로 내려오는 야훼 신앙에 대한 충실성을 엿보게 합니다. 전자는 유다 공동체의 정치적으로 대외적인 자주성을 확보하려는 것이고, 후자는 유대인의 존재 의의와 근거를 규정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활동이 보여 주는 의의는 야훼 신앙에 대한 충실성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존립과 직결되고 있습니다. 특히 유다 민족의 순수성 유지는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 문화적, 종교적 혼합주의의 위험과 뒤이어 오는 통합적 헬레니즘에 대항하기 위한 철저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업적은 단순한 민족주의를 고수하고자 하는 옹졸한 유다이즘이 아니라, 오히려 야훼 신앙이라는 종교적 유산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복구, 유다 공동체의 재건 및 율법에의 충성 등은 ‘하나님께서는 당신 약속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법이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에스라가 설파한 율법의 준수는 단순한 율법의 강요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계약 신앙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서, 그 법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의 결과 신정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새로이 시작되었으며 법과 제도 중심의 종교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이는 후기 유다이즘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율법주의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율법주의는 그 본뜻을 상실한 채 오만한 배타주의의 성격을 띠면서 형식주의로 변신하는 결함을 지니기도 했습니다.▩

① 귀환과 성전 재건 공사 (에스라 1:1-6:22)

에스라의 활약을 보도하기에 앞서 역대기 사가는 바빌로니아에 유배당했던 유대인들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의 과정을 전합니다. 유배라는 뼈저린 체험을 통해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몰락이 야훼께 불충했던 결과임을 깨닫고 죄스런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고,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제2이사야, 에스겔 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시리라고 예언하며(렘 25:12; 29:10; 사 45-55) 그 기대를 고조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은 귀환과 성전 재건 공사를 허락하는 황제의 칙령을 자신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로서 받아들인 것입니다(1:1 참조).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이처럼 당신 약속에 충실하신 야훼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앙과 충실성을 드러내는 표지로서, 또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결속시킨다는 의미에서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립니다(3:2-3).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도 그러하듯이 제단은 유대인들에게 생활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기초를 놓은 유대인들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넘쳐 야훼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서 기뻐합니다. 그러나 영화로웠던 과거의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목놓아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렇게 시작된 성전 공사는 원수들의 방해를 받고 얼마 가지 않아 중단되고 맙니다(4:1-5). 그들의 방해는 성전 공사 때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됩니다(4:6-23). 이처럼 참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유혹과 방해가 있기 마련이며, 때로는 악이 선을 누르고 승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신앙인은 결코 선을 지향하는 마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중단된 성전 공사를 재건하라는 외침이 학개와 스가랴에게서 나옵니다. 이 예언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스룹바벨의 영도 하에 성전 공사는 계속 진행됩니다(5:1- 2). 그러나 이번에는 원수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성전은 완공됩니다(6:15).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힘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6:22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봉헌 예식과 지난날의 잘못을 속죄하는 제물을 드립니다(6:17). 또한 그들은 온갖 부정을 씻어 버리고 유월절 축제를 지냅니다(6:19-21). 하나님 자녀들의 규합과 일치를 의미하는 유월절이 여기서는 새로운 출애굽을 기념하는 축제가 됩니다.

② 느헤미야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느헤미야 1:1-7:72)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에 있을 때 동생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예루살렘이 버려진 채 있다는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슬피 울며 탄식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1:5-11). 인간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느헤미야의 행동은 신앙인이 취해야 하는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 줍니다. 이 기도의 내용에는 신명기 학파의 영향이 나타나 있습니다(예를 들면 계약의 강조 및 계약에 충실하면 보상을 받고 불충하면 벌을 받는다는 사상 등).

기도를 드린 지 4개월 만에 느헤미야는 황제의 허락을 받아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갑니다(2:1-10). 이는 기도의 결과였으며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기까지는 4개월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처럼 기도를 하는 데는 성급함이 아니라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온 느헤미야는 성벽 공사를 시작하여 순조롭게 진행시켜 나갑니다(2:18). 이런 소식을 들은 산발랏과 도비야는 갖은 방해로써 이를 저지시키려 합니다. 조롱을 하고(2:19; 4:1-3) 습격을 계획하고(4:5-6) 유인과 고발을 시도하다가(6:1-9) 그것도 안 되자 거짓 예언자를 시켜 음모를 꾸미기(6:10-14)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느헤미야는 이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오십이 일 만에 성벽 축조 공사를 완성합니다(6:15：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기간이 실상은 2년 4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켜 나가려 할 때 여러 가지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 중에서는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을 굳게 믿고 마음의 무장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갖은 어려움 중에서도 느헤미야는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고 보살핍니다.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외침 소리를 들은 느헤미야는 동포를 착취하는 자들을 엄하게 꾸짖고 수탈한 재물을 돌려 줄 것을 서약하게 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5:1-13).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위해 힘껏 일합니다.   

7장의 귀환자 명단은 에스라 2장의 명단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에스라 2장의 명단이 역사상의 사건을 보도하기 위함임에 비해 느헤미야 7장의 명단은 다른 의도로 쓰였습니다. 여기서 역대기 사가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의 완공으로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귀환자들의 명단은 재산 상속이나 가문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성벽을 완공하여 안정된 생활 기반이 조성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 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합니다. 이 혁신은 야훼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법전(8:1)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에서 새해 첫 달인 칠월(양력 9-10월) 초하루에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초하루를 야훼께 바쳐진 거룩한 날, 십일은 죄를 벗는 날로 여겼고 십오일부터 일주일간은 초막절 절기로 지냈습니다(출 34:22; 레 23:24 이하; 민 29:1.7.12).

온 백성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해뜰 녘부터 해가 중천에 이르기까지 그 법전에 귀를 기울입니다(8:3). 법전이 낭독되기 전의 장엄하고 경건한 예식은(8:4-7)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백성들은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이 날은 야훼께 바쳐진 거룩한 날이므로 애통해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법전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사람들은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8:13-14). 원래 초막절은 고대 근방 지역의 농경민족들이 풍요다산을 비는 뜻에서 지내던 축제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종교 속으로 흡수되었고, 출애굽 및 광야 생활을 상기시키는 기념제로 축제의 의미가 바뀌었습니다(레 23:34.43).

초막절을 지내고 난 뒤 이스라엘 백성은 단식하며 죄를 뉘우치는 날을 지내기 위해 다시 모입니다(9:1).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칠월 십일은 죄 벗는 날입니다(레 23:26). 그러나 여기서는 모세의 율법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참회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이 참회는 다른 민족들과 맺었던 관계를 청산하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9:2).

이어서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기리는 긴 기도를 바칩니다(9:5-37). 이 기도는 전능하신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끌어 주신 야훼의 영광을 찬미하고(7-15) 이스라엘이 저지른 온갖 악행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셨음을 기립니다(16-31). 이러한 사랑과 자비를 저버리고 또 다시 죄를 범한 이스라엘이 무서운 고난을 치르고 있다고 겸손히 잘못을 고백합니다(32-37). 이 기도의 전반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되새기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시리라는 희망과 기대에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드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 것을 서약합니다(10장). 그 서약의 내용은 야훼와의 계약에 충실할 것,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민족과의 혼인을 금하는 것입니다. 안식년과 안식일을 준수하고, 또한 성전 유지 및 행사비로 수입의 일부를 바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햇곡식과 첫 과일을 바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을 유지하고 전례 행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여기서 이처럼 법규정과 성전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강력한 제도적인 장치가 없이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존속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① 에스라의 개혁 활동(7:1-10:43)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된 후부터 에스라가 등장하기까지는 적어도 오십여 년 이상의 기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시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금 선조들이 저질렀던 죄악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제들의 부정과 다른 민족과의 결혼이 가장 성행하였습니다(말라기 1-2장 참조).

에스라는 아론과 사독을 잇는 가문의 사제로서 모세의 법에 통달한 선비였습니다. 그는 야훼의 법을 깨우쳐 몸소 실천할 뿐 아니라 그 법령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르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7:10). 이러한 정신의 소유자였기에 그는 야훼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실상 에스라가 자신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야훼께서 보살펴 주신 덕택이었습니다. 그 분의 도우심은 에스라에게 힘이 솟게 하였습니다(8:28).

에스라는 페르시아 황제의 칙령을 받아 약 오천 명의 동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황제의 칙령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는 것과, 하나님께 바칠 예물과 성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가라(7:12-26)는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과의 결혼함으로 종교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9:1-2). 다른 민족과의 결혼이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부터 금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창 41:45; 48:5; 민 12:1 이하). 그러나 이방 여인들로 인해 그들이 섬기던 우상숭배가 성행하게 되자 그러한 결혼을 금지시켰습니다(신 7:1-4 참조). 바빌론 유배 이후 이스라엘은 평민뿐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들까지도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에스라는 옷을 찢고 수염을 뜯으며 슬퍼합니다. 에스라의 심정은 저녁 제사 때에 드린 기도에서 잘 나타납니다(9:6-15).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확신과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회개가 이 기도의 중심입니다. 9:10-12은 신명기 7:1-3을 인용한 것인데 순수한 야훼 신앙을 유지하라는 교훈을 줍니다. 에스라의 기도는 죄의 고백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기도에서 에스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과 동등한 죄인으로 여깁니다.

에스라가 드린 기도의 효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의 울음을 터뜨립니다(10:1). 에스라가 지시하는 데로 하겠다는 스가냐의 제안을 받고 에스라는 일대 개혁을 일으킵니다(10:2-17). 에스라는 백성들을 소집하여 땅의 뭇 족속과 손을 끊고 외국 여인들과의 관계를 청산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② 귀향민의 정착과 느헤미야의 2차 개혁(느헤미야 11:1-13:31)

이 부분에서는 귀향민들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 각 지방의 성읍에 정착한 이후의 생활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구약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서술 이후의 약 이백 년 동안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11장에서는 예루살렘성에 자리를 잡은 유대인들의 명단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타민족이 침입해 올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방에서 토지를 소유하고 살던 사람이 예루살렘에 사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불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원하여 살고자 한 사람들은 칭찬을 받습니다(11:2).

이어 12장에서는 바빌론 유배 이후 돌아온 유대인들의 명단을 전한(12:1-26) 다음 예루살렘성 봉헌식에 관한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12:27-43). 예루살렘성 봉헌식에 관한 부분은 원래 6:16에 이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사가는 이 부분을 에스라 6:13-18의 예루살렘 성전 봉헌식과 짝을 지움으로써 스룹바벨 시대와 느헤미야 시대의 영광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성 봉헌식은 부정을 씻고 성 전체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행렬과 제사 두 부분으로 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성전에 바치는 곡식에 관한 부분(12:44-47)은 사제와 레위인들에 대한 배려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시대의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다음 장(13장)의 부패상을 더욱 드러내려는 역대기 사가의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13장은 느헤미야가 귀환하여 자신이 없는 사이에 또 다시 그릇된 길에 들어선 이스라엘을 재차 회복시킨다는 내용입니다. 느헤미야의 이차 개혁은 크게 네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성전을 더럽힌 암몬 사람 도비야를 추방하여 성전을 정화하고(4-9절), 레위인들의 의무를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합당한 몫을 배당함으로써 성전을 보살피게 합니다(10-14절). 또한 안식일 규정을 준수하게 하고(15-22절) 타민족과의 결혼으로 더럽혀진 백성을 정화시킵니다(23-28절). 이러한 개혁을 통해 이스라엘은 율법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정 공동체를 형성해 나갑니다.▩

이사야 56-66장은 제3이사야로 불리는 사람의 저술입니다. 이 무명의 예언자는 기원전 537년과 520년 사이에 등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유배자들의 첫 무리가, 본디 유다의 제후였다가 나중에 총독으로 임명된 세스바살의 지휘 아래 귀향하였습니다(에스라 1:8-11; 5:14; 역대상 3:18의 칠십인역 본문).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기초를 놓기는 하였지만(에스라 5:16), 곧바로 대내외적인 여러 어려움으로 해서 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약식의 제의나마 속개하기 위해서 제단만이라도 세우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였습니다(에스라 3장). 조금씩 조금씩 다른 유배자들의 집단들이 되돌아오는데, 그 가운데에는 대사제 예수아와 유다 왕국이 망하기 전 마지막 임금 여호야긴의 손자로서,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관리를 위임받은 고등 판무관인 세스바살을 계승한 스룹바벨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권위 아래 예루살렘과 이 거룩한 성읍 주변을 재건하려고 노력한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부류들로 혼합된 집단이었습니다.

㈎ 유배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스라 2; 느헤미야 7) : 이들은 주로 유다와 시므온과 베냐민 지파 사람들로서 이들 가운데에는 사제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황폐하고 노략질 당한 지역에 재입주하는 데에 곤란을 겪게 됩니다.

㈏ 본국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 : 이들 가운데에는 이스라엘의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었지만, 귀향자들의 종교적인 열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우상숭배자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유배자들의 땅에 자리를 잡고 살아야 했었는데, 귀향한 그들에게 재산권을 양도할 용의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분열을 제3이사야서의 많은 구절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방인들: 유배 기간 동안에 많은 이방인들이 유다 땅에 정주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오기도 하고(60:10; 61:5 참조),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온으로 귀향할 때 따라오기도 하였습니다(60:9; 66:20 참조). 점점 수가 많아진 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얼마나 동화될 수 있었는가가 문제였습니다.

㈑ 디아스포라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 이들이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57:19 참조) 이들을 위해서도 귀향길이 준비되어야 했습니다(57:14; 62:1). 그리고 이들은, 주님께서 이미 모아들이심으로써 특권을 받은 이들 외에, 그분께서 다시 모아들이고자 원하시는 이들입니다(56:8).

예언자는 이렇게 상이한 구성 요소들로부터 일치되고 거룩한 백성을 다시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네 가지 큰 난관에 부딪칩니다.

∙늦어지는 구원에 의해서 야기되는 희망의 위기.

∙끈질기게 계속되는 타락, 곧 우상숭배.

∙여러 정황들에 의해서 발생한 분열, 곧 동포들 사이의 미움.

∙상이한 부류들의 결합으로 증가된 위험, 곧 이방인들에 대한 멸시.

희망의 위기는 귀국자들이 절감했던 실망감에서 옵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파괴되어 있는 채로 남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 시대에 가서야 재건됩니다(기원전 445-433). 성전은 공사 초안만 잡혀 있을 뿐이었고, 예전의 성전보다 그나마 덜 아름답게라고 지어진 것은 시간이 더 흐른 뒤인 기원전 520년에서 515년 사이였습니다. 생활 여건을 보더라도 외적으로는 일종의 경쟁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 내적으로는 고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방해 때문에 좋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거의 절망 상태에 빠진 열성 신도들은 늦어지는 구원과 전혀 움직이지 않으시는 것 같은 주님과 관련해서 그분을 끊임없이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불평을 잠재우기 위해서 제3이사야는 일면 구원이 도래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죄악을 드러내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구원의 틀림없는 원천인 하나님의 성실성을 재확인합니다.

예언자는 이 밖에도 거짓 신들에게서 도움을 찾는 우상숭배자들을 회개시키려고 합니다. 이들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 성전 매춘, 부정한 동물들을 제의에 사용하는 것(65:4; 66:3.17 참조), 강신술(65:4), 이른바 멜렉-몰록 신(57:9) 또는 갓과 므니와 같은 신들을 경배하는 것과(65:11) 같은 타락한 종교 의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탈선을 교정하기 위하여 예언자는 두 가지 증거를 들어 위협합니다. 곧 구원을 베풀 수 없는 거짓 신들의 무능과,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참되신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기하는 자는 동시에 자기 동포들과의 계약도 깨는 자입니다. 그래서 이 유대인들 사이에 실제로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민들을 수탈하는 지배자들이 있고(56:8-57:1) 이웃들을 약탈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상호 부조의 거절과 폭력, 정의의 거부와 임의로 동포를 제명하는 행위 등도 보게 됩니다. 예언자는 이러한 중죄들을 엄하게 고발하고, 이것들이 참다운 경신례와 부합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58장 등).

이스라엘 동포에게조차 흔히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대관절 이방 손님들에게는 어떻게 처신할까요? 외국인들과 관련해서 이사야서 56-66장은 여러 가지 자세를 드러냅니다.

∙어떤 구절들은 악을 고집하는 나라들은 파멸하리라고 말합니다(63:3-6; 64:1과 66:15-16.24 참조; 여기에다 59:18의 후반부와 첨가문으로 여겨지는 60:12를 보탤 수 있습니다).

∙다른 구절들은 이방 민족들이 예루살렘을 섬기리라고 말합니다(60:3-11.13-17; 61:5-9; 62:2-8; 66:12).

∙그러나 가장 흥미를 끄는 문제들은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의 품안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해서 제기됩니다. 이 비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격리될 것을 두려워하지만(56:3), 이사야 56-66장의 신탁들은 이들에게 매우 밝은 전망을 펼쳐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곤경에 빠진 어떠한 유랑민이라도 도와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58:7), 이 밖에도 회개한 이방인들을 자기네 성전으로 맞아들여야 하고(56:3- 7), 그들에게 사제직을 양도할 것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66: 21).▩

①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학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던 기원전 586년! 그 해에 이스라엘 민족의 꿈과 희망은 송두리째 뽑혔지. 나라가 망한 후 이스라엘은 셋으로 찢어졌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무리, 바빌로니아에 끝까지 항거하다 이집트로 망명한 무리, 그리고 폐허가 된 유대 땅에 남아 있는 무리. 나라가 망할 무렵 예언자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무리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재건할 희망이 움터 나오리라고 선포했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웠지. 비록 민족을 이끌던 지도층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았던 그들에게서 무슨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겠어.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르더군. 바빌로니아 유배라는 상황까지도 그분께서는 쓰시더군. 포로가 되고 나니 그전에는 못 느꼈던 가치를 새로 발견하게 되었어. 이전에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였던 선조들의 울부짖음과 해방에 대한 갈망에 눈이 트였던 게지. 우리가 섬기던 하나님은 바로 해방자 야훼임도 깨달았어.

그런 자각으로부터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못된 짓을 해왔는지도 알게 되었어.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다고 떠돌이들과 가난한 이들, 그리고 주변의 약소국까지도 마구 짓눌렀던 지난 행색이 하나님과 맞서는 일이었음을, 그런 까닭에 나라를 잃고 다시 노예로 전락해 버렸음을 환히 내다보게 된 거야. 이때부터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섰지. 비록 성전은 없지만 회당에 모여 우리의 지난 죄를 통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를 구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했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이들을 그대로 내치시지 않더군. 이스라엘 백성을 억누르는 이방인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듯이 막강해 보이던 바빌로니아를 꺾어 버려 다시금 고국 땅 유대 지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어.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유배온 소수민족들이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거든. 그때의 그 감격!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저며 오는데 눈시울이 시큰하더라고. 낯선 이국땅에 뼈를 묻는가 싶었는데 고국 땅을 다시 보다니…. 그 기쁨에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귀환 행렬에 끼어들었어. 그리고 유대 땅으로 돌아와서 난 곧 예언자로 불림 받았지. 다 늦은 나이에 말이야.

유대 땅은 내가 생각하던 이상으로 황폐해져 있었어. 그래서 막 귀환한 이들은 고국이라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먹고살아야 할 생계문제로 푹 빠져들었지. 이렇게 해서 지나간 나날들이 한두 해가 아니었어. 매년 어렵기는 마찬가지란 걸 사람들은 신중히 생각지 않더군. 그러려면 무엇 때문에 유대 땅에 귀국했어? 우리가 갖은 고생을 다하며 귀환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라고. 이집트에서 고생하고 있는 선조들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뜻 역시 ‘예배하는 공동체’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린 지금 무얼 하느냐고? 먹고살기에 급급해서 유배에서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야훼 하나님께 예배드릴 성전도 짓지 못하는 형편 아냐.

이래서는 안 돼. 사람이 근원을 모르면 모든 게 제대로 되어가지를 않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 수 있어. 삶이란 그런 소유물로 좌우되는 게 아냐. 하루를 살더라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이제라도 다시 귀환 시의 그 열정을 되살려 하나님을 예배할 성전을 지어야 돼. 그래서 스룹바벨 유다 총독과 여호수아 대사제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다그쳤지. 성전을 지으라고: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살아온 지난날을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

너희는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했으며,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품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음이 되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성전을 지어라. 그러면 내가 그 성전을 기껍게 여기고, 거기에서 내 영광을 드러내겠다. 나 주가 말한다”(1:5-6.8).

그동안 살기 힘들다고 미적미적한 게 고레스, 캄비세스 치하를 거쳐 다리우스 왕이 즉위한 지도 벌써 2년째야. 물론 생활고는 나도 겪는 일이니까 충분히 납득이 가. 고질적인 가난에 찌들이다 보니 자연 물질적인 여유는 차치하고라도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 그러니 모든 게 다 귀찮고 성가실 것은 분명해. 그래서 모두들 ‘아직 주의 성전을 지을 때가 아니다’라고 회피하려고만 들더군. 하지만 현재 겪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모든 게 달라져.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외면할 게 아니라, 왜 생활하기가 이토록 힘든가를 되물어야 돼.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문제지. 한마디로 살기가 힘들어서 성전 짓는 일을 늦추어야 하는 게 아니라, 성전을 짓지 않아서 이렇게 살기가 힘들어졌음을 깨닫고 더더욱 성전 재건에 힘써야 돼. 그런데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미처 깨우치지를 못하더라고. 여기에 예언자로서 내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드러나 있는 거지.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다리우스 왕 제 2년 6월 24일에 야훼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어. 참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지. 그러나 이 또한 얼마가지 않았어. 한 달이 지나고 나니 그동안의 애쓴 결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지. 예전의 솔로몬 성전에 비해서는 미미한 그 모습을 보고 다들 실망하더군. 일할 의욕도 많이 떨어지고. 난 이들에게 야훼께서 주신 말씀으로 다시금 희망을 불러 일으켜야 했어:

“너희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 옛날 찬란하던 그 성전을 본 사람이 있느냐? 이제 이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스룹바벨아, 이제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아, 힘을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그 옛날 찬란한 그 성전보다는, 지금 짓는 이 성전이 더욱 찬란하게 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바로 이 곳에 평화가 깃들게 하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2:3-4.9)

② 야훼의 특사 말라기

야훼 하나님의 사자, 곧 예언자가 되어서 내가 한 일은 사람들 마음 안에, 그리고 종교제도 안에 하나님께서 자리하실 부분을 마련하는 일이었어. 나보다 앞서 예언활동을 한 학개나 스가랴도 야훼께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 그 노력으로 사람들 안에 가냘프나마 희망의 불씨를 틔워서 제2성전을 건립하기 시작하는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좀 살만해졌냐 하면 전혀 그렇지를 않았거든. 오히려 못하면 못했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

그러니 예언 말씀이 씨알이 먹히지를 않아. 헛된 희망만 불러일으키는 수작일랑 집어치우라는 거지. 무슨 말을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쩍 모면하려는 거야. “나 야훼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선포하면 비웃으면서 “주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이 무엇입니까?”하며 되받아. 그래도 이런 반응은 솔직한 편이야. 닳을 대로 닳은 사제들의 반응은 오리발 내밀기 선수급이라 할 수 있어. “너희 사제라는 것들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며 한마디로 잘라 말하더군.

그런데 실제 그들이 보이는 행색은 가관이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함은 곧 거기에 현존해 계신 하나님과 위격적인 관계를 맺자는 것인데, 제상을 차리면서 눈이 먼 짐승이나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가져다 바치는 거야. 불에 살라서 없어질 재물에 흠이 좀 있다손 해서 어쩔 거냐는 모양인데, 그런 마음을 품고서 살라 바칠 바에야 아예 안 함만 못하지. 하나님이 제상 앞에 현존해 계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런 행동은 취할 수 없을 거야. 사제들은 특히 하나님을 예민하게 느끼고 사람들에게 그분과 함께 살아가라고 일러주어야 할 특별한 사명이 있는데, 사제들의 의식부터가 이렇듯 흐리멍덩하면 볼 장 다 본 거지.

이렇듯 당시 사제들에게서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는 모습을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지. 그래서 사제들이 하나님의 특사, 곧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얼마큼 하고 있는지 의아한 마음이 들더군. 자신의 삶으로서 사람들을 감화시키려 들지는 않고 권위만 내세워 군림한다거나, 생계고에 시달리는 인간의 고통에 깊이 동참하려 들기보다는 부유층과 한통속이 되어 편하게만 살려 드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지.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렇게 외쳤지:

“제사장들아, 이제 이것은 너희에게 주는 훈계의 말이다. 너희가 나의 말을 명심하여 듣지 않고서, 내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서, 너희가 누리는 복을 저주로 바꾸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받은 복을 내가 이미 저주로 바꾸었으니, 이것은 너희가 내 말을 명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제사장이야말로 만군의 주 나의 특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바른 길에서 떠났고, 많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버리고 곁길로 가도록 가르쳤다. 너희는 내가 레위와 맺은 언약을 어겼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2:1-2.7-8)

바빌로니아 유배지에서 돌아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형편이 나아질 기색은 조금도 없었어. 그도 그런 것이 페르시아 총독들에게 세금을 내랴, 유대 지역에 주둔해 있는 군부대에 상납하랴 수중에 들어오는 것이 별로 없었거든. 언제나 그랬듯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남지가 않았어. 이런 형편에 처해 있는 이들이 대다수이니, 십일조도 제대로 내지를 않아. 우선은 궁하니까 말로는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바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빼돌리는 거야. 그러니 사제들이 먹고살아야 할 수입이 제대로 거치지 않을 수밖에.

그래서 사제들도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야훼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 손대는 거지. 그러니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신자들은 사제들이 제물봉헌을 시원찮게 하는데, 십일조를 정직하게 낼 필요가 있느냐고 합리화하고, 사제들은 그들대로 십일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어쩌겠냐고 발뺌하며 서로의 탓을 하기에 여념이 없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데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있나? 이런 악순환은 한시바삐 근절시켜야 해. 어느 쪽에서든 하나님만 믿고 바라며, 당장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단을 내려야 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게끔 내어 드리는 거지:

“너희 온 백성이 나의 것을 훔치니, 너희 모두가 저주를 받는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나는 너희 땅의 소산물을 해로운 벌레가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포도밭의 열매가 채 익기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땅이 이처럼 비옥하여지므로, 모든 민족이 너희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3:9-12).

소출량의 십일조를 줄여서 바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재물에 대한 애착과 탐욕이 생겼다는 거야. 하나님께 마땅히 돌아가야 할 재물이 쌓여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알아? 그 재물로 하나님과는 반대되는 일을 벌이게 마련이야. 부풀려진 재력으로 뻗대거나, 얼굴 반반한 여인을 첩으로 받아들여 즐기려는 쪽으로만 머리가 돌아가지. 그러다 보면 일찍 혼인한 나이든 아내가 싫어지게 돼. 자신의 일에 참견하려 들고 다른 여인들의 방에 드는 거에 대해서 강짜를 부리곤 하니까. 이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이들이 취할 행동이 뭐겠어? 갈라서는 거지. 이혼할 사유를 만드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이야.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이 뭐라시겠어?

“한 분이신 하나님이 네 아내를 만들지 않으셨느냐? 육체와 영이 둘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명심하여, 젊어서 결혼한 너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나는 미워한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명심하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2,15-16).

가족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부부간의 관계가 이렇듯 흐트러진다는 것은 사회 전반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해. 물론 그렇게 심각해진 것은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관계가 훼손되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자리가 그만큼 좁아들었다는 것과도 통해. 사회 전반에 팽배에 있는 분위기는 하나님을 믿어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거였어.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의 명령을 지키고, 만군의 주 앞에서 그의 명령을 지키며 죄를 뉘우치고 슬퍼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이제 보니, 교만한 자가 오히려 복이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재앙을 면한다!’ 하는구나”(3:14-15)

세상 안에 넘쳐나는 불의에 대한 물음이지.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는 거야. 믿는 이에게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믿지 않는 이들은 한 세상 떵떵거리며 사는 불합리한 일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 하에 생겨날 수 있느냐는 거지. 이런 고통의 물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쉽게 답변할 수 없어. 하나님께 맡겨진 영역이니까. 다만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야훼께서 나서는 날에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어찌 되는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섬기지 않는 사람이 어찌 되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될 거라는 사실이야. 심판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염두에 두면서 생활하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그다지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을 거야.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더욱 고조되겠지: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