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2장은 이집트에 대한 고발과 징벌에 대해 다룹니다. 이집트 왕 바로는 자기 자랑을 하며 자신을 신성시합니다. 그는 이집트의 자랑인 나일강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29:3.9). 주님께서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을 보내 이집트와 그 동맹국들을 치실 것입니다(29:18-20; 30:1-11; 32:10-16). 이집트를 위대하게 하신 분도 주님이시오(31:1-9), 그 죄를 물어 황폐하게 만드실 분도 주님이십니다(31:10-18).

주님께서 이처럼 죄 많은 민족들을 직접 징벌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바빌론은 그분이 도구로 이용하시는 한 제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빌론에 반항하는 자들은 그들을 벌하기 위하여 바빌론을 보내신 분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룹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에 대한 소식이 에스겔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도성 함락 이후부터 예언자가 전하는 신탁 내용은 이스라엘의 파괴와 심판에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으로 바뀝니다.

당시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성전은 불타 없어지고 유배생활이 끝날 날은 아득하기만 하여 유배민들 가운데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때였습니다. 낯선 땅 바빌론에 유배되어 생활해 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까닭과 나라 잃은 설움에다 정든 친지들과 강제로 헤어져 유배되었던 그간의 아픈 기억들이 삶의 의욕을 상실케 한 까닭 등으로 하나 둘씩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죽은 친지를 졸지에 떠나보낸 가족들만이 아니라, 상여가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마을 주민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초점을 잃은 눈이었습니다. 곡소리를 내지도 못할 만큼 실의에 빠져,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아 메마른 상태로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생을 마치도록 고국 땅에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비애감, 돌아가 봐야 다 폐허가 된 땅에서 무얼 하겠느냐는 허탈감이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저들을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은 친히 찢기고 흩어진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 마른 뼈와 같았던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영을 불어넣어 생기를 되찾아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죽은 지 오래 되어서 메마른 뼈들에 힘줄이 이어지고 살이 붙고 가죽이 씌워져 숨을 쉬는 환시는 메마른 뼈처럼 삶의 의욕을 잃어버려 희망 밖에는 달리 바랄 게 없던 유배민들에게 야훼 하나님께서 참 생명의 근원이심을 일깨우며 좌절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강한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여기서는 ‘야훼의 영광’이 떠나셨을 때 죽음과 파괴가 도성을 휩쓸었으나, ‘야훼의 영’이 다시 돌아오시어 성전이 재건되어 이스라엘은 새로운 예배를 드리며 흩어졌던 12지파가 다시 뭉치리라는 환상이 주어집니다.

에스겔서에서 희망예언의 절정은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47:9)는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강물의 은유입니다(47:1-12). 이 예언서에 기술된 모든 구원 이야기를 구원 역사의 배경으로 본다면, 출애굽과 시내산 계약이라는 구원의 역사의 핵심을 정리한 것으로 비유됩니다. 새로운 성전의 여러 의식은 시내 사건을 반영하며,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구원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백성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 새로이 계약을 맺으십니다. “이 성읍의 이름이 이제부터는 ‘여호와샤마’라고 불릴 것이다”(48:35). ‘야훼께서 여기 계시다’는 뜻의 ‘야훼샤마’는 야훼의 새 백성들을 위한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야훼께서 여기 계시다’는 믿음과 예루살렘 재건이라는 희망으로 새로운 생활을 꿈꾸게 됩니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무엇을 ‘보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시는데, 당신의 표징을 보고, 영광을 보라고 하십니다. 보아야만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고 할 때, 거짓된 말씀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보는가, 또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면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교회 건물 안에, 교리와 교파 안에 고정시키고, 특정한 신앙행위에 고정시킬 때, 우리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신앙에 안주하게 될 위험이 커집니다. 그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상처럼 고정되어 안주해서는 안 되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 야훼께서 여기에 살아 계심을 끊임없이 의식하라고 가르칩니다.▩

1. 제2이사야 예언자의 시대와 그의 활동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40:1)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이사야서 40장에서 55장까지를 제2이사야라고 합니다. 이 문서의 저술 시기는 페르샤의 승리, 바빌론인들의 쇠퇴, 메소포타미아에 유배 중인 이스라엘인들의 임박한 해방을 선포한다는 사실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제2이사야서는 기원전 550년과 539년 사이, 페르샤의 고레스 2세 대왕이 메대 왕국의 아스티아즈와(550년) 리디아 왕국의 크레수스를(546년) 제압한 다음(사 41:2-3 참조), 그리고 바빌론을 침공하기 전에(사 45-48) 선포되었습니다. 이 고레스 2세는 결국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의 마지막 임금인 나보니드가 통치를 잘못함으로써 백성 대부분이 반대하고 일어선 것에 힘입어, 전투를 할 필요도 없이 해방자로 환영을 받으면서 바빌론으로 입성합니다.

나보니드 임금에게 명백하게 반기를 들던 갈대아의 사제들은 이 페르샤 임금의 이러한 승리를 그들의 최고신인 마르둑과(렘 50:2 참조) 그의 시종들인 벨 신 및 느보 신의(사 46:1 참조) 덕택으로 돌립니다. 그 영향으로 이스라엘인들의 거주지에 이르기까지, 몇몇 사람들은 이 일련의 사건들 안에서 이러한 거짓 신들의 개입을 보려는 경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무명의 예언자인 제2이사야는 유배 온 자기의 동포 가운데에서 깨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포들에게 세상의 유일한 주인은 주님뿐이심을 주지시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확신 속에서(사 48:16), 그는 구원 곧 바빌론의 억압에서의 해방, 자기들의 거룩한 땅으로의 귀환 그리고 예루살렘의 복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해방은 ‘칠 년에 일곱을 곱한 햇수’ 동안의 유배 기간에 종말을 고하는 것입니다(기원전 587-538). 이방 출신이면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 곧 메시아라 불리는 고레스를 통해서 당혹스럽기까지 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이 해방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굴욕에서 영광으로 건너가게 만듭니다. 그들이 거룩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옛날의 이집트 탈출보다 더욱 훌륭한 새로운 탈출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언자는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상기시키면서, 당신의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일관된 계획, 곧 온 세상을 포괄하는 그분의 보편적인 왕국의 결정적인 실현을 엿보게 합니다(52:7-10). 이 왕국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창건되기 때문에, 이 거룩한 성읍은 화려한 복구를 체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예루살렘으로 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이룩된 구원이 모든 인간들에게 예외 없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체험하게 되는 구원의 첫째 요소, 곧 바빌론의 멸망과 고레스에 의한 해방은 무엇보다도 40-48장에서 다루어지고, 그 구원의 두 번째 요소, 곧 새로운 탈출은 40장에서 55장에 이르는 제2이사야서 전체에 걸쳐서 되풀이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요소, 곧 시온의 재건과 보편적인 구원의 강조는 무엇보다도 49-55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볼 때 제2이사야 예언자의 활동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첫째 단계(40-48장)

전체적으로 구원을 선포하면서 예언자는 네 가지 오류를 교정시킵니다.

① 자기들을 버리셨다고 주님을 탓하면서 용기를 잃은 자들에게(40:27) 예언자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이유를 상기시킵니다. 첫째는 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분의 권능은 온 세상에 빛난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성실성은 역사에 빛난다는 것입니다.

② 자기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신다고 주님을 탓하는 몰염치한 자들에게(43:22-24) 예언자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자들은 자기네 불행의 원인인 죄악을 쌓아온 그들 자신이라고 반박합니다(43:24-28).

③ 이방인 출신 해방자를 선택하셨다고 주님을 탓하면서 화를 내는 자들에게(45:8-10) 제2이사야는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로서 그들이 품고 있는 교만을 지적합니다(45:11-13).

④ 바빌론의 번영을 가져왔다는 그곳의 신들에 이끌린 자들에게 예언자는, 참되신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미래를 예고하고 만들어 가실 수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또는 흔들거리는 신상들처럼 효력이 없는 이 자칭 신들이라는 존재들에 대한 풍자에서, 이 물신(物神)들에게 신빙성이 없음을 보여줍니다(41:24; 42:17; 44:21; 46:8; 48:5).

48장의 마지막 단락에서 제2이사야서의 중간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이 예언자의 생애 가운데에 일어나는 하나의 전환점을 예감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말해졌던 주제들은 포기되고 이제 새로운 주제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그의 선포는 이스라엘의 정예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향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2) 둘째 단계(49-55장)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서 가장 성실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예언자의 메시지는 세 가지 면에서 주목됩니다.

① 그들의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될 것입니다. 곧 예언자처럼(50:4- 11) 박해받은 이들은(51:7-8) 위로를 받고(51:1-8), 억압받는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② 시온의 복구가, 예언자 호세아와 그 후계자들이 그렸던 것처럼, 남편인 하나님과 그의 아내인 이스라엘 공동체 사이에 이루어지는 부부간의 재회로서 서술되고 경축됩니다. 곧 과부가 되었던 예루살렘은 다시 남편을 찾게 되고, 아이를 갖지 못했는데 이제 다시 아이를 낳게 되며, 그리고 불충했던 예루살렘은 변함없이 계약을 지키시는 주님에 의해서 다시 정숙한 아내가 됩니다(49:14-26; 51:9-52:12; 54).

③ 진정한 하나님, 만물의 하나님에 대한 민족들의 회개가 점점 더 강조됩니다. 이 민족들은 점차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구원에 경탄하고(49:7; 52:10; 이는 이미 40:5에서도 언급됨),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알기를 갈망하며(49:23; 55:5; 이는 이미 45:14- 15.23-25에서도 언급됨), 온 세상에 대한 진실한 신앙의 증인인 주님의 참다운 종에 의해서 계몽되고 변화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49:2. 6; 53:11).

2. 야훼를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얻으리라: 사 40:27-31

이사야 예언자가 이 메시지를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고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성불가침의 예루살렘 성전은 초토화되고, 포로로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하고, 이민족으로부터 갖은 모욕과 수난을 당하는 처참한 상황에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력을 상실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렇듯 악의 횡포가 판을 쳐도 전혀 간여하지 않는 침묵의 하나님은 그들의 절망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40장 27절에서 유배민들은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이렇듯 하나님은 그가 선택한 백성이 처해 있는 이러한 비극에 대해, 간여하지 않고 70년간이나 침묵하셨습니다. 말이 70년이지, 이 70년은 우리가 겪은 일제 36년의 두 배나 되는 세월이고, 40년을 한 세대로 본다면 두 세대가 지나가는 세월입니다. 이 긴 세월동안 하나님께서는 종적을 감추다시피 침묵을 하셨던 것입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신부재(神不在)의 현실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야말로 절대절망의 시대였습니다. 이때 이사야 예언자는 절대절망 속에 신음하며 기력을 잃은 바빌론 유배민들에게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라(새번역)/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공동번역)”(40:37)고 외치면서 새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라!” 여기서 ‘앙망하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카와>는 ‘기다리다’ 또는 ‘바라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야훼에 대한 신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오직 야훼를 앙망하라”는 말은 “야훼 하나님만을 신앙하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즉 야훼 하나님 아닌 다른 일체의 것은 우러르지 말라, 신앙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도 연관되는 이 말은, 다른 종교들과의 경쟁에서 야훼 하나님만을 앞세우는 그런 종교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모든 것에 대한 절대거부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만’의 신앙은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인정하고, 그 외의 신격화된 일체의 것에 대한 절대거부를 뜻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것들이 신격화되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물질(돈)을 섬기고, 어떤 사람은 힘(권력)을 섬기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섬기고… 이 모든 것들이 우상숭배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단순히 숭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 죄를 낳습니다. 물질을 독점한 자가, 권력을 독점한 자가, 명예를 독점한 자가, 그것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죄의 현실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라! 야훼 하나님만을 신앙하라! 야훼 하나님 아닌 다른 일체의 것들을 신앙하지 말라! 이사야 예언자의 이러한 외침은 시편기자의 고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누구는 병거를 믿고 또 누구는 기마를 믿지만, 우리만은 우리 하나님 야훼의 이름만을 믿사옵니다. 이 사람들은 휘청거려 쓰러지겠지만 우리는 꿋꿋이 선 채 넘어지지 않사옵니다(공동번역, 시 20:7-8).” 야훼 하나님만을 신앙하는 것은 야훼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이 인정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세상,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이 세상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하라는 말입니다. 이같이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할 수 없고 소망할 수 없는 절대절망의 상황에서, 절대신앙과 절대희망을 요구합니다.

이렇듯 야훼만을 신앙하고 소망하면, 새 힘을 주십니다. 이 힘은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가져다주는 힘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힘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더 갈증을 일으키는 힘이고, 종국에는 고단하고 지쳐 죽음에 이르게 하는 힘입니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을 신앙하고 소망하여 얻는 힘은 “날개 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는” 생명의 힘입니다. 이 힘은, 태초의 인간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숨(생기: 루아하), 에스겔의 환상 속에 나타나 마른 뼈들을 살아나게 한 바로 그 바람, 오순절의 다락방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기운(퓨뉴마)－곧 성령입니다. 이 하나님의 힘은 실의와 절망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힘이고, 하나님과 더불어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힘입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처럼,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에 접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때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가를 회의했던 절대절망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사회의 현실을 둘러봐도 이러한 탄식의 소리는 정당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절대절망의 순간일수록, 아니 오히려 절대절망의 순간이기에 “야훼만을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얻으리라!”는 이사야의 메시지는 더욱 값진지도 모릅니다.▩

어제 읽은 제2이사야 40-43장에서 저자는 당시 백성 가운데 만연했던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자세 두 가지를 시정해 주었습니다. 첫 번째로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40:27)”는 사람들의 절망이었습니다. 이때에 예언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이스라엘을 선택하심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에게 다음 말씀으로 용기를 주었습니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40:29-31).”

두 번째로 야훼께서 자기네를 저버리셨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너의 죄로 나를 수고롭게 하였으며, 너의 악함으로 나를 괴롭혔다”(43:24)고 하면서 그들 불행의 원인은 그들 자신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다음의 말씀으로 새로 시작할 용기를 줍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43:18-19). 내가 메마른 땅에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듯이, 네 자손에게 내 영을 부어 주고, 네 후손에게 나의 복을 내리겠다(44:3).”

오늘 읽은 본문에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 가지 잘못을 추가로 지적하고 바로잡아 줍니다. 백성들의 세 번째 잘못은 바빌론의 신들이 번영을 이루어주었다고 믿으면서 참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나보니드 임금에게 반기를 들던 갈대아의 사제들은 페르샤 임금 고레스의 승리를 그들의 최고신인 마드둑과 그의 시종들인 벨 신 및 느보 신의(46:1 참조) 덕택으로 돌렸고, 이러한 영향이 이스라엘인들의 거주지에서까지도 미쳤습니다. 이에 예언자는 우상의 허황됨을 풍자하면서 야훼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뉘우쳐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범한 지난날의 모든 죄악을 다 용서하셨다는 것을 44:22 말씀으로 확신시켜줍니다: “내가 너의 죄를, 짙은 구름을 거두듯 없애 버렸으며, 너의 죄를 안개처럼 사라지게 하였으니,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

백성들의 네 번째 잘못은 왜 하필이면 이방인 왕 고레스를 이스라엘 선민의 해방자로 선택하셨는가 하면서 선민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주님을 탓하고 화낸 것입니다. 이에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기름 부어 페르샤 제국의 왕으로 세우셔서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는 도구로 쓰셨다는 것을 장황하게 서술한 뒤에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다음의 말씀으로 알려줍니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45:7).”

특별히 이 구절은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견디기 힘든 고통과 용서 못할 사건이나 대인관계를 이길 마음에 평정과 힘을 얻습니다. 아무리 큰 아픔과 슬픔 중에서도 그 고통을 나에게 준 장본인이 인간 아무개가 아니라 바로 야훼 하나님의 손이셨음을 보는 순간부터 우리는 해방을 경험하게 됩니다. 빛뿐 아니라 어두움도 그분이 만드셨고 행복뿐 아니라 불행도 주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그 순간부터 더 이상의 항의가 그치고 해방과 자유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 행복과 불행의 주인이 바로 야훼 하나님이심을 믿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겪고 있는 모든 시련을 발판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2이사야라고 불리는 이사야 40-55장 사이에는 ‘야훼의 종의 노래’ 네 편이 실려 있고, ‘종’이라는 낱말이 모두 21번에 걸쳐 사용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종’은 ‘노예’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람어로 ‘종’이라는 낱말과 ‘일’이라는 낱말은 같은 어원인데, ‘주님의 종’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야훼 종의 첫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42:1-4).” 여기서 주님의 종은 일차적으로 고레스 왕을 가리킵니다. 그가 이방인일지라도 부러진 갈대나 깜빡거리는 심지 같은 유배민들을 해방시킨 주님의 일을 했기 때문에 주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또한 주님의 일을 한 제2이사야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고, 선별된 이스라엘 또 하나님 백성 전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사야 49장에 나오는 야훼 종의 둘째 노래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태생 나실인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다.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49:3). 이제 야훼 종은 외칩니다: “하늘아, 기뻐하여라! 땅아, 즐거워하여라! 산들아, 노랫소리를 높여라.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또한 고난을 받은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다(49:13).” 이어서 야훼 하나님의 견줄 바 없는 사랑에 대해서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49:15)”고 노래합니다. 즉 밤낮으로 아이를 지켜보면서 엄마의 포근한 가슴에서 모유를 먹이느라고 잠시도 젖먹이를 떠나지 않는 어머니를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야훼 종의 셋째 노래가 시작되는 50장 4,5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새번역)/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 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주 야훼께서 나의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공동번역).” 여기서 야훼의 종은 누구의 말이나 배우는 자세로 듣는 겸손한 사람, 자기 고집을 내세우거나 독선에 빠지지 않고 늘 순종해서 궂은 일에 꽁무니를 빼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한 주님께서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줄 아는 말솜씨를 익혀 주신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참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배우는 마음으로 듣는 귀가 열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아침마다 귀를 일깨워 주신다고 예언자는 외칩니다. 그러면서 51:17에 “깨어라, 깨어라, 일어나거라, 예루살렘아!” 하면서 흔들어 깨웁니다. 이른 아침은 하루 중 어느 때 보다도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으로, 주님의 종은 이른 아침에 귀를 일깨워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오직 고요한 침묵 속에만 들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서 영적인 깨달음을 받습니다. 내적인 마음의 귀와 마음의 눈으로서만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또 진리를 보고 우리를 묶고 있는 사슬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지 이 사슬을 끊을 수 있겠는지를 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거듭 외칩니다: “너 시온아, 깨어라, 깨어라! 힘을 내어라. … 포로된 딸 시온아, 너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내어라(52:1-2).”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말씀은 제2이사야에서 22번이나 반복되는 주제인데, 묶인 자를 풀어주고 억눌리고 갇힌 자들을 해방하는 주님의 일을 하는 주님의 종은 무력과 권력으로 지배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50:6)고 할 만큼 겸손한 자입니다. 수난 받는 야훼 종의 넷째 노래는 매우 깊은 신학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고난받는 야훼의 종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을 이 본문에 대한 거의 유일한 해석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것으로 해석될 만한 요소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해석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이 본문은 바빌론 포로기라고 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과 관련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에서 종이 어떤 한 개인처럼 묘사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개인은 사실상 공동체와 무관한 어떤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집단적 인격’의 대표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 고난 받는 종을 통하여 자신들의 집단적인 경험과 희망을 투사시켰던 것입니다.

과연 그는 어떠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으며, 장차 무엇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는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갖지 못하였고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습니다(53:3). 그래서 그는 늘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했을 뿐 아니라 고통과 질병을 겪었습니다(53:3). 그는 억울한 재판을 받으면서도 가혹하게 당하기만 하였고 결국에는 무고하게 사형을 당하였습니다(53:8). 그런데 바로 그러한 그가 고통과 죽음을 이겨내고 뭇 사람들을 구원합니다(53:11). 아무런 힘도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이던 그가, 그래서 세상의 온갖 질고를 다 짊어져야 했던 그가 오히려 백성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역설치고는 엄청난 역설입니다.

그러나 이 역설 속에 심오한 역사적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고난 받는 자만이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통찰입니다. 또한 그 고난 받는 자는 자신의 고난만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고난까지도 극복하게 해줍니다. 그 고난당하는 자들은 이제껏 권력의 횡포에도, 거짓 예언자들의 허황된 교설에도, 거룩함을 가장한 사제들의 기만에도, 가난한 이웃을 등쳐먹는 얄팍한 장사치들의 농간에도, 그 어떤 농간에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들은 바로 그러한 죄악들 때문에 늘 희생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늘 숨죽이며 살아야 했고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몰골(52:14)을 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고난의 실재를 알고 있었기에 바로 그로부터 해방의 길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죽음의 힘을 딛고 일어서 뭇 백성들을 구원한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 고난 받는 민중의 자의식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으며, 또한 그들이 역사의 주체로 나설 때 온갖 속박과 허위의 굴레에 매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여 있는지 아닌지조차 모르는 정말 가련한 존재들까지도 구원해 낸다는 진정한 대속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