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읽을 예레미야 11-20장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대목은 다섯 개의 고백(11:18-12:6, 15:10-21, 17:14-18, 18:18-23, 20:7-18)입니다. 이 고백들은 예레미야를 불완전하고, 심지어는 부도덕한 예언자로 오해할 소지를 낳습니다. 이 고백들은 애도의 시편과 그 내용이 흡사하여 ‘애가’라고도 하고, 학자들에 따라서는 ‘불평’이라고도 부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한계를 망각하고 계시다는 불평과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토로하는 분노의 울부짖음, 끊임없는 자기 비하와 연민, 원수들에 대한 복수 요청 등은 예레미야가 예언자의 소양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의심할 정도로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들은 예레미야의 인간적 약점과 개인적 갈등을 정직하게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고자 하지만 역부족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소 부정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고백의 성격을 두고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고백을 예레미야 자신의 비극적 체험에 바탕을 둔 자서전적 문헌으로 보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예언자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공동체의 비극적 체험을 경신례 안에서 노래로 지어 반복하던 공동체 문헌으로 여깁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고백이 예레미야 자신도 함께 겪은 유다 공동체의 비극과 재앙을 예언자가 자신의 불행한 삶으로 구체화해 묘사함으로써 한층 더 극적인 효과를 얻어낼 목적으로 작성된 개인의 체험과 공동체의 체험을 연결시킨 혼합문헌으로 생각합니다. 이 마지막 견해가 가장 그럴듯합니다. 아무튼 11-20장에 있는 예레미야의 고백록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 세 가지 고통, 즉 하나님의 고통과 백성의 고통과 예언자 자신의 고통 가운데서 마지막 세 번째 고통입니다.▩

11장 18절-12장 6절의 첫째 고백은 주님의 대변자가 받은 박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 하여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정의에 관한 질문을 여쭙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12:1) 욥기에서처럼 하나님은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 대신 다소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네가 조용한 땅에서만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요단강의 창일한 물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12:5) 이 두 말씀 모두 현재의 삶이 앞으로 더욱더 어려워질 것임을 시사하고 15장에서처럼 불가해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더 이상 쓸데없는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닥쳐오는 미래의 어려움 앞에서 예레미야가 구체적으로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를 제시합니다.

13장에는 두 가지 상징이 등장합니다. 베로 만든 띠와 포도주 항아리의 상징이 그것입니다. 베로 만든 띠는 허리에서 무릎 위까지 가리는 속옷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르시기를, 허리에 걸쳤던 띠를 벗어서 물에 적시지 말고 바위틈에 숨겨두라고 하십니다. 물에 적시지 말라는 명령은 빨지 말라는 분부입니다. 오랜 시일이 지난 다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다시 그 천을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숨겨둔 곳에서 꺼내보니 몸에서 묻어난 땀과 때로 그 천은 썩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떨어져 나간 이스라엘 백성도 제 죄 탓에 이처럼 망할 것입니다. 술독의 상징은 지도자건 일반 주민이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이 서로 부딪쳐 큰 혼란 속에서 멸망하리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이 망해도 동정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13:14). 그들은 이제 그분의 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15:1-4).▩

15장 10-21절의 둘째 고백이 지향하는 목표는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무리 앞에서 그의 예언직을 정당화하는데 있습니다. 먼저 예언자는 어머니께서 자신을 낳아 준 것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아! 어머니 원통합니다.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일도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저주합니다”(15:10). 그러나 이 불평은 예언자의 출생 자체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시비와 갈등으로 점철된 그의 예언적 삶 전체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시비와 갈등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고 항변하며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를 저주하는 것을 한탄합니다. 이런 예언자의 불평과 원망에 대해 하나님은 그를 박해하는 원수들 손에서 예언자를 반드시 구출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북방 민족들에게 넘겨 그들이 모르는 땅으로 끌려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15:13-14). 그러나 맹세까지 곁들인 하나님의 약속에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불평과 원망을 하나님께 직접 토로합니다. 그는 고통의 원인을 모두 주님께 돌리며 그분을 믿을 수 없는 도랑, 곧 우기에는 물이 철철 넘쳐흐르다 전기에는 바짝 말라버리는 와디라고 부릅니다.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15:18).

그러자 하나님은 당신께 대한 신뢰심을 저버리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예언자를 타이르시며 진정한 예언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그가 주님께 돌아와 다시 그분에 대한 신뢰심을 회복하면 그의 예언직을 새롭게 회복시켜주실 것이요, 그가 참된 말을 삼간다면 그를 당신의 대변인으로 삼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 앞에 주님의 대변인으로 나선 예언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다운 중개자가 되겠지만 불충스런 백성들에게 휘말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거나 그들의 구미에 맞는 말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백성들은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15:19).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을 때 해주셨던 보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 주시어 아무도 그를 대적하지 못하리라고 약속해 주십니다(15:20).

16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 자체를 징벌의 상징으로 만드십니다. 예레미야는 장가들어 아들딸을 낳아서도 안 되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초상집이나 혼인잔칫집에 가서도 안 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떨어져 고독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제 곧 이스라엘을 징벌하시어 그들에게서 기쁨을 거두시고 낮선 땅으로 쫓아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셋째 고백(17:14-18)은 하나님께 대한 예언자의 신뢰를 다른 어느 고백보다 크게 부각시킵니다. 예언자는 이 신뢰를 바탕으로 그분께 내적인 치유와, 외적인 공격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아울러 주님께서 자신이 발설한 예언 내용을 성취시켜 주심으로써 그가 참 예언자임을 원수들 앞에서 증언해 주시라고 간청합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의 성취를 바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재난이 닥치는 것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는 악을 재촉하거나 재난의 날을 기원한 적이 없음을 강조하며 자신의 모든 발언이 하나님께 기원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예레미야가 자기 예언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진짜 이유는 예언의 성취가 참 예언자로서 자신의 신원을 확인시켜 줄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해 주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넷째 고백 (18:18-23) 역시 다른 고백에서 볼 수 있는 제반 요소를 대부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호소함 (19절), 자신이 불행한 처지에 대한 불평 (20,22,23절), 무죄함의 변호 (20절), 중재의 간청 (21-23절) 등. 그러나 이 넷째 고백은 처음 두 고백 (11:18 이하; 15:10 이하)과 두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첫째, 이 고백 안에는 예언자가 개인적으로 당한 박해를 그리 크게 부각시키지 않고 그 대신 하나님의 중재에 대한 간청에 더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대한 고발이 간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만 나올 뿐 전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에서 고백의 강조점이 분노에 찬 불평과 하나님께 대한 고발로부터, 셋째 고백에서 이미 드러나기 시작한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점점 옮겨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넷째 고백을 둘러싸고 용기와 관련된 두 가지 상징 (18:1-12;19장)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내려가라는 명령을 내리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예언자가 본 일들의 상징적 의미를 밝혀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예언자가 본 일들의 상징적 의미를 밝혀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옹기장이는 진흙덩이의 주인입니다. 그는 자기가 만드는 옹기의 형태가 마음먹은 대로 구워져 나오지 않으면 그것을 부수고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 백성에 대한 주권을 가지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만드실 수 도 없애실 수도 있습니다. 19장에서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오지그릇을 하나 사 가지고 백성들의 대표들과 우상숭배의 본거지인 벤힌놈 골짜기로 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오지그릇을 깨어 산산조각으로 만들면서 이런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만군의 주가 말한다. 토기 그릇은 한번 깨지면 다시 원상태로 쓸 수 없다. 나도 이 백성과 이 도성을 토기 그릇처럼 깨뜨려 버리겠다. 그러면 더 이상 시체를 묻을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도벳에까지 시체를 묻을 것이다”(19:11).

다섯째 고백(20:7-18)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소명 때문에 예언자가 겪는 비극적 운명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예레미야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가고 억지에 말려들어 모든 사람의 웃음거리와 놀림감이 되었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주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고 그분의 말씀도 전하지 않겠다고 작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뼛속에 갇힌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그 말씀을 어쩔 수 없이 다시 토해내고 맙니다. 예언자는 주님께서 자신의 편에 서시어 악인들의 손에서 자신을 지켜주시리라고 확신하면서도 자신의 험난한 운명을 한탄합니다.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를 받았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이 복된 날이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찌하여 이 몸이 모태에서 나와서, 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나의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이러한 수모를 받는가!”(20,14,18)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소명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하는 예언자, 그렇다고 그 소명을 저버릴 수도 없는 예언자는 그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소연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21:1-23:8은 유다의 마지막 임금들에 대한 신탁입니다. 이 신탁은 임금들의 통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최후의 시드기야에 관한 예언부터 시작합니다. 예언자는 신명기 17장 14-20절에 기초하여 임금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유다의 마지막 임금들은 대부분의 선왕들이 그러했듯이 주님의 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는 임금의 의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비천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는 대신, 힘없는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사치와 향락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이민족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자신들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임금들에 관한 신탁의 결론 부분 (23:1-8)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공정과 정의로 돌볼 현명한 임금을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으로 되어 있습니다(에스겔 34장 참조). 이 신탁에서 예레미야는 이사야처럼 민족의 미래를 다윗 왕손에 태어날 참 목자의 출현과 연결합니다.

예레미야의 신탁은 정치 지도자에 이어 종교 지도자에 관심을 돌립니다. 거짓 예언자들에 관한 언급은 이미 4:10과 14:13에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언급은 23:9- 40과 27-29장에 있습니다. 23:9- 15에서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이미 멸망해 버린 북왕국의 바알 예언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당대의 예루살렘 예언자들입니다. 예루살렘 예언자들은 종교적 탈선에 윤리적 탈선까지 덧붙였다는 점에서 북왕국 예언자들보다 더 악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세 가지 점에서 빈껍데기들입니다. 첫째, 주님의 어전회의에 참석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23:16-24). 둘째, 그들은 설교할 때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기는커녕 자신들의 망상이나 허망한 꿈 이야기만 합니다(23:25-32). 셋째,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짐이 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런 말을 자주 하는 그들이야말로 주님께 짐이 됩니다(23: 33-40).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번쩍 들어 내던져 버리실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같은 참 예언자는 주님의 친구로서 그분의 어전회의에 참석하여 그분의 말씀을 집적 전해 듣고 자기 생각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만을 전하며 주님의 말씀을 짐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4장은 무화과 두 바구니의 환시를 통하여 일반 백성의 죄악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뒤 어느 날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무화과 바구니의 환시를 보여주십니다. 주님의 성전 앞에 무화과가 담긴 두 바구니가 놓여 있는데, 한 바구니에는 맏물처럼 썩 좋은 무화과가 담겨 있고 다른 바구니에는 썩은 무화과가 담겨 있었습니다. 기원전 597년 첫 번째 바빌론 유배 때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만이 죄인이고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무화과 바구니 환시는 이런 생각을 뒤바꿉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바빌론 유배자들을 좋은 무화과처럼 잘되게 해주시고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과 이집트 땅으로 피난간 자들은 나쁜 무화과처럼 다루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두 바구니가 주님의 성전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이나 유배자들이나 다같이 당신의 백성이므로 결국에는 둘 다 돌보아 주실 것임을 시사합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희망의 메시지는 32:15과 33:1-18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5:1-14은 유배 이전까지 예레미야가 전한 예언을 요약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이 덧붙여집니다. 하나는 징벌의 기간을 70년으로 밝히는 것이고(29:10: 참조: 대하 36:21: 단 9:2)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징벌하는 도구로 삼으셨던 바빌론을 이제 징벌의 대상으로 만드시라는 것입니다. 70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합니다. 기원전 539년 바빌론이 고레스 대왕에게 멸망한 해를 유배의 끝으로 본다면 70년 전은 609년인데, 이 해는 요시야가 죽은 해로 유배의 시작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반대로 597년이 제1차 바빌론 유배부터 계산하면 527년이 되고, 아니면 본격적인 바빌론 유배(제2차 유배)가 시작되는 587년부터 계산하면 517년이 되는데 둘 다 바빌론 유배의 끝으로 보기에는 부적합합니다. 오히려 70이라는 숫자를 완전을 뜻하는 성서적 상징수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창 46:27: 50:3; 출 15:27;24:1: 삿 1:7; 8:30; 9:5; 12:14; 사 23:15 등). 이 대목을 레 26:35; 대하 36:21과 연관시켜 풀이하면, 그 땅이 안식년 규정을 지키지 않은 세월을 완전하게 보상하기까지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70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휴식기간’을 뜻합니다. 이 기간이 끝나면 주님께서는 징벌의 도구로 삼았던 바빌론 임금과 그의 민족을 치시어 그들이 다른 민족을 섬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징벌의 도구 이상으로 다른 민족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26장은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26:2-6)를 소개합니다. 성전 설교의 요지는 주님의 성전에 예배하러 오는 유다의 모든 성읍 주민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들 앞에 세워주신 법대로 따라 걷지 않으며 그들에게 보낸 주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집을 폐허로 만드시고 예루살렘 도성을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 설교를 계기로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 곧 예언자들과 사제들은 예레미야를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유다 백성과 시민의 대표자인 대신들과 원로들은 “이 사람에게는 사형 선고를 받아야 할 만한 죄가 없습니다. 그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26:16) 하면서 오히려 예레미야를 두둔합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예레미야의 강력한 후원자는 예레미야와 같은 말로 예루살렘 도성과 유다가 망하리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기럇여아림 사람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여호야김 임금의 손에 잡혀 죽었습니다.

27장에는 예언자의 또 다른 상징 행위가 소개됩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명에 따라 목에 멍에를 메고 나타나, 유다를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민족이 바빌론 임금의 멍에 밑에 제 목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칼과 기아와 흑사병으로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바빌론 임금 느부갓네살을 징벌의 도구로 선정하셨기 때문에 그 뜻에 저항하는 자는 재앙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재앙보다는 항복을 택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28장은 거짓 예언자 하나냐와 참 예언자 예레미야의 대결을 전합니다. 하나냐는 주님께서 597년 바빌론에 끌려간 유다 임금 여고니야와 다른 유배자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성전에서 탈취해 간 기물들을 되돌려 놓으시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내 부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예언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나무멍에를 벗겨내어 부숨으로써 오히려 쇠멍에를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냐가 만든 이 쇠멍에를 모든 민족의 목에 씌우겠다고 하십니다. 백성을 오도한 거짓 예언자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습니다.

29장은 597년의 첫 번째 유배 때 바빌론에 끌려간 포로들에게 예레미야가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유배자들은 절망적인 현실과 유배 중에서 거짓 예언자들이 불러일으킨 조기 귀환의 희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유배생활이 오래갈 것이므로 바빌론에 정착할 생각을 굳히라고 권고합니다. 집을 짓고 과수원도 만들며 아들딸들을 출가시켜 그곳에서 번성하게 하라고 합니다. 유배는 거짓 예언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포로들이 주님의 공정한 징벌 기간을 완전히 다 채우기까지 꽤 긴 세월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예레미야의 신탁은 뽑고 무너뜨리고 멸하고 헐어버리는 파괴적인 일에 집중되었으나, 31-33장에서는 파괴 다음에 따라오는 백성들이 쇄신과 땅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지금 그들은 흩어져 학대받고 있지만,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시온으로 불러들이시어 완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으실 터인데, 이 계약은 그들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맺었다가 깨드려 버린 계약과는 다릅니다. 새 계약은 주님께서 둘(십계석판)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에 직접 써넣으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필요 없이 주님의 뜻을 깨우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31:33-34). 새 계약의 성취는 예수님이 세우신 성찬으로 보증됩니다(눅 22:30; 고전 11:25).▩

백성의 쇄신에 이어 32-33장은 땅의 회복을 선언합니다. 예언자는 땅의 회복을 알리는 상징 행위를 합니다. 예루살렘이 바빌론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기원전 588-587년) 예레미야의 숙부 살룸은 베냐민 지방 아나돗에 있는 자기 밭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숙부를 구제할 권한 또는 의무를 행사하여 그 밭을 사라고 분부하십니다. 상식 밖의 이 거래는 유다 땅이 지금은 갈대아인들(바빌론인들)의 손에 넘어갔지만 오래지 않아 되찾게 되리라는 희망을 전달합니다. “너희는 지금 이 땅을 두고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는 황무지이며, 바빌로니아 군대의 손에 들어간 땅’이라고 말하지만, 바로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살 것이다”(32:43). 마침내 폐허가 되었던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이 번영하고 그곳 주민들은 행복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33:1-13). 그때가 오면 다윗 왕조와 레위 지파의 사제직도 완전하게 회복될 것입니다(33:14-22).

34-45장은 신명기계 역사서의 관점을 재조명합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신명기계 역사서는 신명기 27-28장의 내용에 바탕을 둡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축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불행을 겪게 될 터인데, 불행의 가장 큰 결과는 유배살이입니다.

사마리아의 멸망에 즈음하여 왕하 17장은 선택된 백성이 예언자들의 거듭된 경고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우상숭배의 죄를 짓고 결국 유배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예레미야 34-45장은 신명기 27-28장과 열왕기하 17장의 내용을 거의 같은 용어와 표현으로 반복합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의 중요한 신학사상 가운데 하나는 주님의 관용이다. 주님께서는 유다의 징벌을 늦추시고 예언자를 보내시어 회개를 촉구하시며 당신 백성이 회개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십니다. 이런 신학적 전망에 맞게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임금에게 하나님이 징벌의 도구로 이용하시는 바빌론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34:1-7; 37:1-10.17-21; 38:17-28). 그러나 시드기야는 예언자의 말을 무시하고 오히려 그를 물 없는 진흙구덩이에 가둡니다(37:11-16; 38:1- 6). 또 여호야김 시절 초기에 예레미야는 비서이자 제자인 바룩을 시켜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적게 하고 그 두루마리를 백성 앞에서 읽게 하였습니다. 두루마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여호야김 임금은 그것을 가져와 자기 앞에서 낭독하게 하였습니다. 임금은 서너 단이 낭독될 때마다 칼로 두루마리를 베어 화톳불에 살라버렸습니다(36:21-24). 아마도 두루마리에 적힌 유다의 멸망에 관한 신탁이 성취될까 두려워서였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임금이 태워버린 두루마리를 내용 그대로 다시 만들라고 분부하시고 여호야김과 유다 백성이 받을 큰 벌을 예고하십니다(37:28-30).

39장은 예루살렘의 함락, 시드기야의 체포, 성전 파괴를 묘사합니다. 정복자 바빌론 임금 느부갓네살은 자기 근위대장에게 예레미야를 데려다가 잘 보살펴 주라고 명령합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에게 바빌론에 항복하라고 충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총독 게달리야의 보호 아래 자유의 몸이 되어 예루살렘에 머물 수 있었지만, 이 특전을 제대로 누릴 사이도 없이 게달리야를 살해한 폭도들에게 인질로 잡혀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40-43장).

이집트에 끌려가서도 예레미야는 예언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이집트의 우상숭배를 단죄하고 그 때문에 바빌론이 이집트를 정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43:8-13). 그 다음 44장에서 예레미야는 이집트의 유다인 유배자들에게 그들이 지금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역시 우상숭배 탓이라고 역설합니다. 유배자들은 약속의 땅을 잃고 쫓겨나 유배살이를 하고 있는데도 우상숭배를 계속합니다.

그들은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자신들에게 내린 재앙이 자기네를 도와 바빌론에 대항하여 싸워줄 이집트의 신들을 섬기지 않은 탓으로 엉뚱하게 이해합니다(44: 15-19). 그러나 모든 것을 낱낱이 지켜보시는 주님께서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집트의 유배자들을 반드시 징벌하실 것입니다(44:27-29).

45장의 내용은 바룩에게 내린 신탁입니다. 초기에 바룩은 어떤 정치적 야망을 가졌던 것 같은데, 예레미야는 그런 야망을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재난의 시기에 그런 야망은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고통에 동참하고 주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내리시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땅을 세우시고 심으신 뒤, 허물고 뽑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만이 재앙에서 살아남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