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렇게 하여, 헷 사람들은 그 밭과 거기에 있는 굴 묘지를 아브라함의 소유로 넘겨주었다 (23:20)

창세기 23장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죽음을 기술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127년을 살고 떠난 사라의 생애를 돌아보면 한마디로 파란만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남편과 함께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났고, 그 와중에 남편의 안전을 위해 두 번씩이나 자기 자신을 위험 중에 내놓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또 남편의 후손을 잇기 위해 자신의 몸종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었다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노령의 나이에 이삭을 얻고 기쁨의 웃음을 웃었던 그런 여인입니다. 이제 그 여인이 마지막으로 자기 가족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고 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묘지 터를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너와 네 후손이 땅을 차지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의 죽음에서 비롯된 막벨라 무덤의 구입으로부터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이 묘지를 구입함으로써 아브라함은 비로소 가나안 지역에 자기 소유의 땅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사라의 묘지는 ‘약속의 첫 실현’이라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묘지라고 하는 것은 ‘혈연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는 특별한 장소’로서의 의미도 있습니다. 일년에 몇 번씩 가족들이 모여서 친교를 나누고 유대와 일치를 확인하는 장소가 바로 묘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근원에서 나왔구나, 우리의 뿌리가 같구나’ 하는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장소가 바로 묘지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막벨라 동굴을 굉장히 큰 성지로 여기고 있고, 1967년도에 이집트와의 7일 전쟁을 통해 이곳을 탈환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싸웠던 것입니다. 이렇듯 사라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인 막벨라 묘지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은 “성경이 말하는 축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지 60년이 넘도록 하늘의 별보다도 바다의 모래보다도 더 많게 해 주리라던 후손은 겨우 이삭과 이스마엘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아내가 묻힐 묘지 한 평조차 없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처지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도 이에 대해서 많은 묵상을 했는데, 11장 13-16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13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14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5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의 약속은 지상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성취는 유한하며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는 영원한 삶, 곧 영생(永生)입니다. 따라서 사라가 가졌던 믿음은 단순히 땅과 후손에 대한 것이 아니었고,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통한 영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어머니 사라의 첫째 유산은 그녀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남기고간 작은 묘지였고, 보다 큰 둘째 유산은 하늘 본향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살아간 신앙의 유산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로 한 생을 그저 수동적으로 살아간 것처럼 보인 힘없는 여인 사라는 이처럼 큰 유산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갔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식을 낳고, 그 자식에게 세상의 좋은 것들을 물려주기 위해서만 힘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느라고 정작 중요한 신앙과 믿음을 물려주는 일은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참고 : 데라의 가계도

(2) 저는 아브라함 어른의 종입니다 (24:34)

창세기에서 가장 긴 24장은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삭에게로 계승되는 상속에 관한 내용과 아브라함이 충직한 종을 자기 친족에게 보내 이삭의 신붓감을 데려오게 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미래의 약속을 계승하기 위한 적절한 신붓감을 데려오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종에게 단순히 명령을 하지 않고, 자기 다리 사이에 손을 넣는 장엄한 예식으로 맹세를 시킵니다.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맹세하는 것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 ‘생명의 근원에 맹세’시킴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뜻을 이루려는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47:29 참조). 아브라함은 유언과도 같은 중대사를 그의 종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며느님이 되실 여인이 저를 따라오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주인 어른의 아드님을 데리고, 주인께서 나오신 그 고향으로 가야 합니까?”(24:5)라고 한 종의 질문은 그가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 이미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났을 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들어있습니다.

11절은 그 종이 먼 여행 도중에 겪었을 사건은 다 생략하고, 그 여행의 목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종은 동네 사람들과 목자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우물가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제 그 종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갖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어떤 기적이나 계시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평범한 일 가운데서 주님의 섭리를 보게 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14절).

그가 내세운 신붓감의 기준은 좋은 성품이었습니다. 나그네에게 친절할 뿐 아니라 동물들까지도 배려하는 자비심을 지닌 여인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긴 여행 중에 목이 탄 낙타들이 충분히 물을 들이킬 수 있도록 많은 양의 물을 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처녀야말로 성조 이삭의 아내감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까닭이었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브라함의 친족인 리브가가 물동이를 매고 나왔습니다. 그의 기도 내용이 즉시 응답 받았음을 알리는 15절 이하의 내용은 이 일의 시작부터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함께 했음을 알려줍니다.

그 종이 라반의 집에 귀빈으로 환대를 받으며 음식상을 받았을 때, 그는 “저는 아브라함 어른의 종입니다”(34절)라고 자기 신분을 밝히며, 하나님께서 자기 주인에게 내리신 많은 복과 자기 사명을 길게 이야기합니다. 그 종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의 이야기를 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자기 주인에게 행하신 하나님 이야기를 합니다. 이 점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내가 섬겨야 하는 주인이 따로 계심을 늘 의식하면서 사람들에게 그 주인을 알리며, 그 주인의 뜻을 늘 마음에 두고 그 뜻을 따르려는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그 종은 일이 이루어질 때마다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며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간구와 감사를 올리는 기도는 사건에 대한 응답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이렇듯 삶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믿을 때 우리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의 주제는 ‘하나님의 이끄시는 손길’입니다. 여기서 직접적인 하나님의 행동은 나타나지 않지만 공동체의 삶뿐 아니라 한 개인의 삶 구석구석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미친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평범한 일상사와 한 개인의 삶 안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머물고 섭리의 손길이 움직이시기에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5:16-18).

2. 창세기 25장~30장 길잡이

25장에 있는 아브라함 이야기의 마지막에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서 나온 후손들이 등장합니다(25:1-6). 이들은 주로 아랍 부족들인데,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민이었던 이스마엘 후손들(25:12-18)과 함께 아브라함의 후손을 형성합니다. 대부분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2억여 명의 아랍인들 역시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함께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자부합니다. 그런데 한 조상에게서 나온 아랍인과 유대인이 지금 철천지원수로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제가 서로의 가슴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남한과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쯤이면 우리 눈에 낀 비늘이 떨어져 서로가 형제자매임을 알아 볼 수 있을까요?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일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창세기 25장 19절부터 36장 43절까지에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성조인 이삭과 세 번째 성조인 야곱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이삭을 언급하는 부분은 분량도 적을뿐더러 특성도 뚜렷하지 않습니다(25장과 27장 일부, 26장).

온전히 이삭 이야기만 나오는 26장의 경우도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합니다(20장, 21:22-34). 특별히 ‘브엘세바’란 지명과 ‘아비멜렉’이란 인명이 아브라함(20장, 21장)과 그의 아들인 이삭(26장)과 관련하여 두 번 나오는 것에 대해 중복기사란 학설과 아니라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성서 기자가 같은 전승을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두 번 적용해 사용했다고 설명하고, 후자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후자의 경우 ‘아비멜렉’은 인명이 아니라 애굽의 바로처럼 블레셋의 왕을 통칭하는 명칭이라고 주장하며, 브엘세바 역시 같은 우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우물이 여러 개 존재했다고 봅니다. 저는 중복기사라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사실상 성조 이야기의 두 번째 주인공은 야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조사에서 아브라함 이야기와 야곱 이야기가 큰 기둥으로 서 있고, 이삭 이야기는 이 두 기둥에 걸쳐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개학 후 우리는 야곱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 참고 : 아브라함의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