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13-23장에는 바빌론, 앗시리아, 블레셋, 모압, 시리아, 이집트, 에돔 등 앞에서 언급된 민족들이 다시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에 다른 민족들, 즉 두로와 시돈, 에티오피아, 아라비아, 게달, 셉나 등이 덧붙여집니다. 이웃 민족들에 대한 이사야의 멸망 예고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이사야 예언자가 살던 남 유다는 스스로 자기 방어와 생존을 하기가 어려웠던 고대 근동의 보잘것없는 나라였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고대 근동인들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특정한 나라나 민족의 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그 신을 섬기는 민족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서 13-23장의 이웃 민족들의 멸망 예고는 이런 당대의 상식에 맞서서 비록 유다가 고대 근동에서 소수 민족이요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유다가 섬기는 야훼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에 맞설 수 있는 신은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즉, 야훼 하나님은 모든 인간 세계의 질서를 주재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에 대한 신탁은 자주 성전(聖戰)과 연결됩니다. 야훼 하나님이 총사령관이 되시어 다른 민족들의 군대를 사열하십니다. “저 소리를 들어 보아라. 산 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다. 저 소리를 들어 보아라. 무리가 떠드는 소리다. 저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나라들이 소

리 치고 나라들이 모여서 떠드는 소리다. 만군의 주님께서, 공격을 앞두고, 군대를 검열하실 것이다. 주님의 군대가 먼 나라에서 온다. 하늘 끝 저 너머에서 온다. 그들이 주님과 함께 그 진노의 무기로 온 땅을 멸하려 온다”(13:4-5).

세상의 여러 민족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따라 통제됩니다. 하나님은 온갖 민족과 기존 관계를 재편하십니다. 이집트나 앗시리아처럼 이스라엘에 적대적 민족들도 야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이 생겨, 앗시리아 사람은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 사람은 앗시리아로 갈 것이며, 이집트 사람이 앗시리아 사람과 함께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이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이다”(19:23-24). 하나님은 서로가 원수처럼 지내는 이 나라들을 당신 백성으로 끌어안으실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 나라에 복을 주며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 이집트야, 나의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야,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 복을 받아라’ 하실 것이다”(19:25).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앗시리아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분의 ‘소유’(히브리어로 ‘스굴라’는 본디 임금이 아끼는 가장 귀중한 보석을 가리킵니다)로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24-27장은 주석가들 사이에서 이사야의 대(大)묵시록으로 불립니다. 여기에는 묵시문학적 요소와 문체로 기술된 온 세상에 대한 보편적인 심판과 예언, 감사기도와 신앙고백이 뒤섞여 나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수도 시온산, 예루살렘에서 임금님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왕이 되실 터이니, 달은 볼

낯이 없어 하고, 해는 부끄러워할 것이다. 주님께서 시온 산에 앉으셔서 예루살렘을 다스릴 것이며, 장로들은 그 영광을 볼 것이다”(24: 23). 해와 달은 고대 근동에서 셈족들이 숭배하던 두 큰 신이었습니다. 즉, 만군의 주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해신과 달신은 힘을 못 쓴다는 말입니다.

만군의 주님이 시온산 위에서 온 세상의 임금님으로 등극하시는 날, 잔치가 베풀어집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새 임금이 등극하면 제사와 잔치를 곁들였습니다(참조: 삼상 11:15; 왕상 1:25). 하나님께서는 친히 시온산 위에서 모든 민족에게 풍요로운 잔치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또 주님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25:6- 8). 여기서 수의는 슬픔과 절망의 표지요, 동시에 수치의 표지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친히 수의를 찢으시어 모든 민족의 슬픔과 수치를 없애버리실 것입니다. 메시아 잔치에 관한 신약성서의 언급(마 8:11; 22:2-10; 눅 14:15-24; 계 19:9)은 바로 이사야서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이 대목의 주요 메시지는 외세의 억압과 침략에서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야훼 하나님 말고 다른 어떤 나라에도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 대목에서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신 야훼를 저버리고 낯선 신들에게 넘어간 것을 비난했으나, 여기서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야훼 대신 낯선 나라, 구체적으로는 이집트에 의존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외세의 지배를 받으면 그 나라의 신도 섬겨야 하던 고대 근동의 관례에 비추어 볼 때 낯선 신과 낯선 나라는 하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유다는 앗시리아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이집트에 의존하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는 사마리아가 멸망한 예로 들며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주정꾼들처럼 흥청대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외칩니다(28장). 그러나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사야의 말투를 흉내내며 빈정거립니다. “차브 라차브, 차브 라차브, 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 제에르 샴, 제에르 샴”(28:13). 이 말을 직역하면 ‘명령에 명령 명령에 명령, 규칙에 규칙 규칙에 규칙,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이 되겠는데 하나님의 명령과 규칙을 따르라는 예언자의 질책과 호소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29장에서 예언자는 정신을 차리지 않는 백성에게 아리엘의 징벌을 예고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도 전합니다. 아리엘은 ‘하나님의 성읍’을 뜻하며 예루살렘이나 그 도성 일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입술로만 당신을 섬기는 백성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29:13).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 불충한 백성을 치시는 날, 귀머거리가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소경이 눈을 뜨며 천대받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고 가난한 이들이 흥겨워할 것이라고 합니다(29:18-19).

앞 대목에도 볼 수 있듯이 징벌의 예고와 구원의 약속은 이사야서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됩니다. 하나님의 뜻도 물어보지 아니하고 이집트로 특사를 보내 바로에게 기대려는 정치적 줄타기는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30:1-6). 오히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고요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큰 힘을 얻는 길입니다(30:15).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면 그분은 틀림없이 당신 백성을 돌보시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날이 오면 예루살렘에 사는 시온 백성들은 다시는 울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백성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매 맞아 생긴 그들의 상처를 고치시는 날에, 달빛은 마치 햇빛처럼 밝아지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서 마치 일곱 날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이 밝아질 것이다”(30:26).

주님께서 노기가 충천하여 위엄을 갖추시고 친히 앗시리아를 심판하러 오십니다(30: 27-33). 그러니 이스라엘은 아무런 도움도 못되는 이집트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이집트 사람은 사람일 뿐이요,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군마 또한 고깃덩이일 뿐이요, 영이 아니다. 주님께서 손을 들고 치시면, 돕던 자가 넘어지고, 도움을 받던 자도 쓰러져서, 모두 함께 멸망하고 말 것이다”(31:3). 그 날이 오면 앗시리아와 그 동맹군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와 어떤 위협을 가해도 만군의 주님께서는 아무런 동요 없이 예루살렘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사자가 으르렁거릴 때에, 힘센 사자가 먹이를 잡고 으르렁거릴 때에, 목동들이 떼 지어 몰려와서 소리친다고 그 사자가 놀라느냐? 목동들이 몰려와서 고함친다고 그 사자가 먹이를 버리고 도망가느냐? 그렇듯, 만군의 주님께서도 그렇게 시온 산과 언덕들을 보호하신다”(31:4). 하나님을 사자로 비유한 것은 유다를 공격하는 앗시리아 임금들을 떠올리게 합니다(5:29-30). 앗시리아 임금들은 흔히 자신들을 사자로 비유하였고, 나훔 예언자는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사자굴이라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먹이를 물고 있는 사자가 목동들을 두려워하지 않듯, 하나님은 목동들로 표현된 앗시리아와 그 동맹군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이 하실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서에 사자의 표상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시대에 요르단강 주변에 사자들이 자주 출몰하였기 때문입니다.

32-33장에는 약속과 심판, 유배 이전의 상황과 유배 이후의 반성

이 뒤섞여 있습니다. 통치자들이 법과 정의대로 백성을 다스리면 태평성대가 오고(32:1-8) 태평무사한 여인들처럼 비천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사치와 향락에 젖어 지내면 백성의 농토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나고 도시와 마을은 텅 비어 버릴 것입니다(32:9-14). 그러나 주님께서 정의와 평화를 하늘에서 내리시면 사막은 과수원이 되고 과수원은 풍요로운 숲이 될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의 백성은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곳에서 태평성대를 누릴 것입니다(32:15-20). 예언자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고 그분이 직접 내려오시어 법과 정의로 당신 백성을 다스려 주시기를 청합니다(33:1-6).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저 높은 곳에 계시면서도, 시온을 공평과 의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너로 안정된 시대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늘 백성을 구원하시고, 지혜와 지식을 주신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귀중한 보배다”(33:5-6).▩

34-35장은 ‘이사야의 대(大)묵시록’(24-27장)에 대비시켜 ‘이사야의 소(小)묵시록’이라 불립니다. 앞의 대묵시록에 비하여 이 대목은 신탁 내용이 주로 에돔에 집중되어 있으면서 묵시문학적인 요소와 문체를 드러냅니다. 사해 남동쪽 메마른 광야에 위치한 에돔은 야곱의 형 에사오의 후손들이 살던 곳입니다. 오랫동안 유다 왕국의 속국이었으나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바빌론 군대에 함락 당하자 이때를 틈타 유다를 배신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는 에돔을 단죄하는 신탁들이 많이 나옵니다(사 63:1-6 ; 렘 49:7-22; 겔 25:12- 14; 35장; 욜 4:19; 말 1:3-5; 시 137:7; 애 4:21-22).

35장은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태평성대를 노래한 32장 15-20절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황무지에는 기쁨의 꽃이 활짝 피고 힘없는 자들은 건강해지며, 사막에 샘이 솟아나고 메마른 곳이 샘터가 되며, 맹수

와 들짐승들이 폐허가 된 성읍에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35:5-7). 35장의 신탁에 나오는 표현은 주석가들이 ‘위로의 책’이라 부르는 이사야 40-55장의 신탁을 미리 인용하거나 암시합니다.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35:4)는 이사야서의 중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님의 이 격려의 말씀을 들은 남은 자들은 갖가지 장애에서 풀려나 기뻐 뛰는 장애인들과 같습니다.

36-39장은 죽을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하는 히스기야의 기도(38:9- 20)만 제외하고 열왕기하 18:13-20:19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히스기야 임금 시절에 일어났던 앗시리아 침공과 히스기야 개인의 중병 사건을, 당신께 충실한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밝혀주는 좋은 실례로 제시합니다.

39장은 독자의 관심을 앗시리아 침공에서 기원전 587년에 있었던 바빌론 침략으로 돌리는데, 38장의 히스기야 기도는 하나님께서 바빌론 유배를 풀어 유다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을 미리 예상하게 하면서 이사야서의 후반부(40-66장)를 준비합니다.▩

내가 미가요. 내사 예언자라고 할 것이라고 있나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 떨어져 있는 촌마을 모레셋 출신에 불과한 대요. 블레셋 국경 부근이라 전쟁도 잦고 농토도 황폐해져 먹고 살기도 어려운 통에 나와 처지가 똑같은 농민들의 심정을 대변해서 한 소리 했을

뿐인데, 그게 공감대를 형성했나 봐요. 그러다 보니 용기도 나고 뚝심도 생겨서 내가 살던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죠.

제가 활동을 시작하던 때에는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왕으로서 유다 땅을 다스릴 즈음이었습니다. 이때 남북 왕국은 모두 앗시리아의 위협을 받아 휘청댔지요. 그런 와중에 앗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시리아와 제휴하자 온 나라에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앗시리아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체제에 유다도 가입하라고 강력히 요구받았던 거죠. 이때 저와 같이 활약한 이사야가 나서서 그 동맹에 합류하면 망하리라는 예언을 선포했죠(사 8장). 그 결과로 동맹에 가담하지 않자 반앗시리아 연합군이 전선의 후미에 있는 유다를 쳐부수고자 기원전 735년에 유다를 침공했어요. 이들과 맞서 싸울 힘이 부족했던 아하스는 왕위에서 물러서느냐 아니면 앗시리아에 도움을 청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섰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임마누엘 예언을 선포하며 제3의 길－곧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분께 의지하는 길이 있음을 깨우쳤지만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자신의 발등에 떨어질 불이라 우선 끄고 보자는 정치적인 계산이 앞섰던 거죠. 그리하여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원조를 청했으니 뱀을 피하려다가 호랑이 아가리로 자청해서 들어간 꼬락서니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가 함락 당하고 나라 또한 여러 조각으로 찢겨져 앗시리아 제국에 병합되었지요. 그런 운명은 이스라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유다는 앗시리아의 영향권에 완전히 들어갔습니다. 정기적으로 공물을 갖다 바쳤는데, 그 공물이 다 어디서 나오겠어요. 백성들의 어깨에 얹혀지는 짐일 도리 밖에요. 전쟁으로 농토는 황폐해지고 일손은 없고 한 상태에서 과중한 세금이 매겨지니 버틸 재간이 있나요. 그러다 보면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없어 빚이라도 내서 끼니를 잇곤 하지만, 이런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침내는 자기 땅을 모두 말아먹게 되죠. 농민들이 처분하는 논밭을 사는 이들은 대개 권력층

언저리에 있어요. 그러니 어찌 이런 비리를 지도자를 향해 외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였으니, 이 재앙을 너희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거만하게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재앙의 때가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이 너희를 두고서 이러한 풍자시를 지어서 읊을 것이다. 슬픔에 사무친 애가를 지어서 부를 것이다. ‘우리는 알거지가 되었다. 주님께서 내 백성의 유산의 몫을 나누시고, 나에게서 빼앗은 땅을 반역자들의 몫으로 할당해 주셨다’”(2:1-4).

눈은 철벽처럼 막혔어도 귓구멍은 뚫렸는지 제가 이렇게 선포하니까 귀에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대번에 화를 내며 제 입을 봉하려 들더라구요. 야훼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백성, 하나님의 뜻에 맞갖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회는 망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포했죠. “바로 너희 때문에 시온이 밭 갈듯 뒤엎어질 것이며, 예루살렘이 폐허더미가 되고, 성전이 서 있는 이 산은 수풀만이 무성한 언덕이 되고 말 것이다”(3:12). 여태껏 예루살렘이 망하리라고 입 한 번 뻥끗한 예언자는 없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뜻하지 않게 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첫 번째 예언자로 손꼽히게 되었지요.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기 전에 선포했던 사마리아 멸망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제 메시지는 경악으로 와 닿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내가 사마리아를 빈들의 폐허로, 포도나 가꿀 밭으로 만들겠다. 그 성의 돌들은 골짜기에 쏟아 붓고, 성의 기초가 드러나게 하겠다(1:6)”는 예언이 대상만 바뀐 채 예루살렘에 그대로 적용될 거라니 섬뜩했겠지요.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야훼께 의존하지 않고 힘으로 맞서 나라까지 망하게 했던 이스라엘을 본으로 삼지 못하고 똑같은 전철을 고스란히 밟았습니다. 히스기야 왕 시절에 이집트 세력을 등에 업고 두 차례 거듭 항거했다 된통 당했거든요. 위정자들이 정치를 잘못하면 애꿎은 백성만 고생해요. 백성이 바라는 희망은 달리 없어요. 전쟁 없는 평화를 누리고 싶은 소망이 가득하지요. 우리가 적보다 힘이 세야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며 정치권에서 나불댔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앗시리아에 짓이김을 당한 것밖에 없어요. 여러 모로 지친 백성들을 어루만져 주지 않을 수 없더군요. 당장에는 실현되지 않는 꿈일지라도 지금 겪는 고통을 그나마 받아 이길 힘은 바로 이 꿈에서 비롯되기에, 하나님과 온 백성이 원하는 바를 담았는데, 이사야 예언자도 저와 똑같은 심정이었나 봅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다른 모든 민족은 각기 자기 신들을 섬기고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주 우리의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순종할 것이다”(4:3-5).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의 피땀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고 시온을 건설하는데 모조리 흘러 들어갔지요. 그런데도 정작 혜택은 못 누리고 도시의 변두리에 소외되어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야 했어요. 그런 시대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만사가 잘 되어 간다며 빈소리를 하는 예언자들, 돈만 밝히는 재판관들, 나라가 멸망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최후의 발악만 해대는 정치 지도자들, 이들의 비리가 온 땅에 사무치는데 야훼의 심판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비록 지금은 하층민들만이 어두

움을 맛보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 어두움은 전체 백성에게 확대되고, 지금은 농민들만 땅을 빼앗겨 내몰렸지만 가까운 장래에 유다 백성 모두가 그처럼 온 땅을 빼앗기고 유배될 것임을 강하게 심어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자존심과 수치심 모두를 내팽개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제가 살아있어서는 안되죠. 대낮에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예루살렘 온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웬 미친놈인가 싶어서 몰려드는 이들 앞에서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사마리아가 천벌로 받은 불치병이 유다에까지 번져 와 기어이 예루살렘에 다다랐다. 이제 너희는 몸에 상처를 내며 울부짖어라. 우리는 적에게 포위되었다. 이스라엘의 위정자들은 몽치로 얼굴을 얻어맞으리라. 너희는 이제 정든 고향을 떠나 바빌론으로 끌려가 허허벌판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에는 포로들이 알몸으로 끌려갔어요. 따라서 그들 또한 저처럼 알몸으로 끌려가리라는 것을 제가 생생하게 보여준 셈이죠. 말로 백 번 떠들어도 듣지 않던 그들이 다 벗겨진 제 모습에서 자신들의 미래 운명이 어떠할지가 섬뜩하게 다가왔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제게 묻더군요.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6:6-7)

다급해졌던 거죠. 그래봐야 돈에 쩔어 있는 그들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날 뿐이에요. 매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도 그들에게 무엇 하나 내주려하지 않았으면서, 야훼 하나님께 몇 천 마리의 양도 아깝지 않게 내놓을 수 있다는 그릇된 심보를 적나라

하게 펼쳐 보였던 겁니다. 더군다나 아모스가 외쳤던 정의, 호세아가 호소했던 하나님의 은덕에 보답하는 사랑, 이사야가 일러주었던 겸손과 신앙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는 예언 말씀이 버젓이 그들의 기억에 살아있을 텐데 말입니다. 저 역시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여러 예언자를 통해서 제시해 주신 하나님의 뜻이 이제 와서 바뀔 리는 없으니까요.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