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무엘하

사무엘 하권은 첫머리에서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 길보아산 전투에서 죽은 후, 헤브론에서 유다 왕위에 오른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 이스보셋과 싸우다가 마침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일왕국의 왕이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북쪽의 지파들과 남쪽의 지파들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 두 지파의 접경지대에 있는 여부스족의 도성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통일왕국의 수도로 삼는가 하면, 북쪽의 실로에 모셔져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시키는 등 공을 들여서 왕국의 기틀을 잡습니다. 그러나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와 불륜의 정을 통하여 잘못을 저지르는가 하면, 맏아들 암논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 다니는 불운을 겪는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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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죽자 남부에서는 선두에 서 있던 유다 부족이 다윗을 그들의 왕(nagîd: 수령)으로 선출했습니다(삼하 2:4). 한편 북부 부족들은 사울의 후계자를 사울 집안에서 찾아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이렇듯 부족연합 전체에 대한 지도권을 놓고 내리 일곱 해를 싸우는 과정에서 다윗 가문이 점차 승기를 잡았습니다. 블레셋이 아직도 압박을 가해오는 터라, 마침내 북부 부족을 대표하는 원로들은 다윗이 자신의 수도로 정하고 있던 헤브론으로 찾아와 그에게 북부 부족들의 왕도 맡아달라고 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삼하 5:3-4).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맨 처음 취한 조처 중 하나는 여부스족의 요새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노획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산악지대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그때까지 가나안 성읍국가체제의 일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곳은 북부 부족 영토와 남부 부족 영토 사이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중립지대에 들어앉아 양쪽 영토를 두루 다스림으로써 이제까지 수도로 삼아온 남부 헤브론에 머물거나 북부의 중심도시 하나를 물색하여 자리를 옮겨 갈 경우에 유발될 수 있는 시기와 의혹의 눈길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족연합이 합심하면서 지원의 토대가 넓어짐에 따라 다윗은 블레셋인들에게 공세를 취하고 일련의 결정적인 전투를 통해 단시일 안에 그들의 세력을 분쇄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에 대한 종주권을 장악하고 그들의 본거지였던 남부 평야의 다섯 성읍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다 그들을 가두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범한 몇몇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우선 남부와 북부 중간에 위치한 예루살렘으로 사령부를 옮김으로써 양측이 어느 한쪽을 시샘할 수 있는 소지를 없앴습니다. 사울은 예배/희생제사 문제들에 대해 일방적으로 단안을 내리는 등 부족연합체의 종교적 사안에 함부로 개입함으로써(삼상 13:8-15) 사무엘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로 인해 사무엘은 사울에 대한 지원을 거두어버렸습니다. 이에 반해 다윗은 창출과정에 있는 새로운 정치구조와 부족연합체의 종교적 전승 사이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상당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일례로, 다윗은 블레셋인들이 실로 산당을 파괴한 이후로 방치돼 왔던 부족연합체의 유서 깊은 예배 상징물인 언약궤를, 요란한 풍악을 울리고 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모셔옵니다(삼하 6:12-15).

본래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은 이스라엘 백성의 책임이 강조되어 그들의 행동 여하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계약 형태였습니다(모세계약). 이 모세계약의 특징은 출애굽기 19장 5-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하면”(if ... then)의 구문형식으로 표현된 모세계약은 이스라엘이 계약을 성실히 준수한다는 조건 아래 맺어지는 조건적 계약입니다. 모세계약은 출애굽기 23장 3절(또한 수 24:16-18)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의 계명들을 충실하게 지킬 것을 서약함으로써 체결되었습니다. 즉, 모세계약은 그 존속여부가 이스라엘의 복종/불복종 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이스라엘의 책임이 크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모세계약 사상은 이스라엘 평등공동체 기간 동안 이 공동체의 신학적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신 후에는 지금까지의 모세계약 사상과는 다른 유형의 계약사상이 나단의 신탁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이 새로운 계약사상은 다윗의 조정에 의해서 발전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다윗 왕과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삼하 3:5). 이 다윗계약의 중심 골자는 첫째,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시고 그의 왕조의 영속을 약속하셨으며 둘째, 시온의 성전을 그가 거하시는 성소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 8-17절은 다윗 왕이 하나님의 집(성전)을 짓겠다는 열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다윗에게 그의 집(왕조)를 지어 주시겠다고 응답하십니다. 특히 ‘영원히’라는 말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여 세우신 그의 왕조가 ‘영원히’ 지속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다윗이 맺은 이 계약은 이스라엘의 책임에 의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성실한 맹세”(시편 132:11)에 의해서 그 관계가 영원히 지속됩니다. 유다의 왕이 하나님께 불복종할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기는 하지만 그의 사랑을 거두시지 않으시며 다윗과 맺으신 계약을 파기하지도 않으십니다(삼하 7:14). 즉, “다윗계약”은 “영원한 계약”으로 불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계약과 다윗에 대한 약속은 국가 이데올로기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왕정 이데올로기가 된 다윗-시온 신학은 시편 89편과 132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그 죄를 물어 채찍으로 치고 그 죄악을 물어 매질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약속한 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내 입으로 말한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내가 나의 거룩함을 두고 한 번 맹세하였는데, 어찌 다윗을 속이겠느냐?

그 자손이 영원토록 이어지고, 그 왕위는 내 앞에서 태양처럼 있을 것이니,

저 달처럼, 구름 속에 있는 진실한 증인처럼,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다. (시편 89:32-37)

주님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셨으니, 그 맹세는 진실하여 변하지 않을 것이다.

“네 몸에서 난 자손 가운데서, 한 사람을 왕으로 삼을 것이니, 그가 보좌에 앉아 네 뒤를 이을 것이다. 만일 네 자손이 나와 더불어 맺은 언약을 지키고, 내가 가르친 그 법도를 지키면, 그들의 자손이 대대로 네 뒤를 이어서 네 보좌에 앉을 것이다.”

주님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그 곳을 당신이 계실 곳으로 삼으시기를 원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곳은 영원히 내가 쉴 곳, 이곳을 내가 원하니, 나는 여기에서 살겠다. 이 성읍에 먹거리를 가득하게 채워 주고, 이 성읍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넉넉하게 주겠다. 제사장들로 의로운 일을 하게하고, 성도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게 하겠다. 여기에서 나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한 사람을 뽑아서 큰 왕이 되게 하고,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왕의 통치가 지속되게 하겠다. 그의 원수들은 수치를 당하게 하지만, 그의 면류관만은 그의 머리 위에서 빛나게 해주겠다.” (시편 132:11-18)

여기서 야훼는 ‘영원한 왕조’와 ‘시온의 축복’을 약속한 주체가 됨으로써 이 약속을 이행할 책임을 지게 됩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 약속이므로 백성들도 당연히 다윗왕조에 도전해서는 안 되며, 그에게 순종해야 할 신앙화 된 의무를 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계약 전통은 신약시대에까지 이어져 중요한 신학을 낳게 됩니다. 다윗계약의 전통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바울)으로, 모세계약은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야고보)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왕으로서의 다윗의 권위나 권능은 제쳐두고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허약함이 부각됩니다. 11-12장의 이야기는 사무엘기의 백미(白眉)입니다. 유혹은 한가한 틈에 찾아옵니다. “그 다음 해 봄에, 왕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맡겨서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11:1). 사울 가문과의 전쟁도 마무리되고 이스라엘의 주적인 블레셋인들도 제압한 다음 다윗은 변방의 작은 전쟁은 요압 장수에게 맡기고 예루살렘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다윗은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는 광경을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헷 사람 용병 우리아의 아내인 것을 알아내고는 여인을 데려다 잠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멀리 전쟁터에 나가 있는 외국인 용병의 아내와 한 번쯤 잠자리를 같이 한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생각이 자신은 물론이요 나라 전체의 운명을 뒤바꿀 만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다 쓰다가 통하지 않자 여인의 남편 우리아를 살해합니다. 그러고는 뻔뻔하게도 남편을 위한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여인을 궁으로 불러들여 아내로 삼고 부정의 씨앗으로 태어난 아들을 정식 아들로 둔갑시킵니다. 일이 감쪽같이 잘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의 얕은 생각이고 성경 저자는 짧은 한마디 말로 다윗의 부정을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 (11:27).

하나님께서는 나단 예언자를 보내십니다. 나단이 들려준, 부자가 가난한 이의 하나밖에 없는 암양을 가로챈 이야기는 다윗을 진노케 합니다. 다윗은 그 부자가 자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자 나단이 다윗에게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12:7) 하고 지적합니다. 내가 저질렀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잘못이 남이 저질렀을 때는 죽어 마땅한 큰 죄악이 됩니다. 다윗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저지른 잘못은 ‘주님을 무시한(얕본)’(12:10) 큰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당신을 업신여긴 죄로 여기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윗과 다윗 가문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또 다윗이 은밀하게 저지른 일을 모든 백성 앞에서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되갚겠다고 하십니다. 나단의 단죄와 징벌 선언 앞에서 다윗은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창세기의 아담이나 하와와는 달리 다윗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자기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습니다. 다윗의 이런 태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목숨만은 치지 않기로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악의 씨앗인 아들은 죽고 다윗의 살붙이들 사이에서 왕위를 둘러싼 칼부림이 일어나며, 그의 친자식 압살롬이 밝은 대낮에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소실을 욕보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가정에 가한 폭력이 그대로 그의 가문 안에서 재현된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하신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된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이나 권위를 그분의 선물로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이 선물로 받은 것을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착각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급급하게 될 때 어떤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우리는 다윗의 행적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가 한 개인이 아니라 한 나라의 통치자일 경우에는 그의 잘못이 자신의 몰락뿐 아니라 온 나라의 몰락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9-20장, 그리고 열왕기상 1-2장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다윗 왕권 계승사)를 읽으면 우리는 마치 예전에 KBS TV에서 방영했던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최고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목숨을 건 불꽃 튀는 암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음을 보며 쓴웃음만 나옵니다.

이야기는 먼저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호의를 베푸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장애인으로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위협적인 인물이 못됩니다. 하지만 그는 유사시에 정통 왕권을 주장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무엘하 16장 3절을 보면 압살롬의 반란 때 다윗이 므비보셋의 동향을 묻자, 므비보셋의 시종 시바가 “(그는) 지금 예루살렘에 남아 계십니다. 그는 이번에 이스라엘 가문이 자기 할아버지의 왕권을 자기에게 돌려 줄 줄로 알고 계십니다”라고 보고합니다. 이런 이유로 다윗은 한편으로는 요나단과 맺은 계약에 충실한 자신의 모습을 부각시켜 사울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추종자들의 환심을 사고, 다른 한편으로는 므비보셋을 자신의 감시 아래 두는 일거양득의 전술을 택합니다.

다윗이 사울 추종자들을 제압하고 왕권을 굳건히 하자 이제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왕위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시작됩니다. 암논은 장자로서 당연히 다윗의 직계 계승자입니다. 압살롬은 누이동생의 억울한 일을 복수한다는 핑계로 왕좌의 강력한 경쟁자인 맏형을 제거합니다. 이 일로 3년 간 망명을 떠나 있던 압살롬은 돌아와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일에 열중하다 결국에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아마도 자신에게로의 왕위 계승이 힘들 것이라 판단해서 스스로 왕위를 찬탈하려 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반역을 칼을 들이댄 그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고 압살롬은 전사했습니다.

이제 남은 두 아들 사이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한 불꽃 튀는 암투가 계속됩니다. 다윗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차기 왕권을 노리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다윗의 왕권을 세우는 데 기여했던 개국공신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더욱 굳히기 위해, 차기 왕권을 잡으리라고 예상되는 왕자들과 미리 줄을 대느라 분주했습니다. 아도니야 진영에는 다윗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군사령관 요압, 압살롬의 전략을 미리 빼내 연락해 준 사제 아비아달이 줄을 섰고, 솔로몬 진영에는 예언자 나단, 사제 사독, 다윗의 호위대장 브나야가 줄을 섰습니다.

아도니야 왕자가 세력을 확장하자 이를 경계한 예언자 나단이 밧세바와 더불어 계략을 꾸밉니다. 아도니야가 왕위에 올랐다는 식으로 진상을 왜곡시켜 결국 다윗으로 하여금 솔로몬에게 양위토록 합니다. 이렇게 해서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제일 먼저 아도니야를 위시한 정적들을 숙청하고, 반란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사울 추종자들을 완전히 제거하여 그의 왕권을 확립하는데 성공합니다.

이 이야기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솔로몬 궁정의 사제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시고 솔로몬을 다윗의 후계자로 뽑으셨음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하지만 기록된 역사의 행간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요? 이런 피의 역사를 통해 등극한 솔로몬은 과연 성군이었을까요?▩

현대인의 시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자신의 왕국에서 인구조사나 병적조사를 실시한 것은 상식에 속하는 행위처럼 보입니다. 조선시대 임금들이 호패법을 실시했던 것과 똑같은 통치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시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천벌을 받을 행위입니다. 그것은 인구조사의 목적 때문입니다. 인구조사는 결국 징세와 징집, 부역 등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실시합니다. 중앙집권화된 군주국가에서 이것은 통치에 필요한 당연한 절차지만, 지파동맹 체제의 전통에서 보면 이것은 반역행위인 것입니다. 징세, 징집, 부역 등은 결국 지배 엘리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지 민중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사무엘이 했던 대답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합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당신들이 거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입니다. 그는 또 당신들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당신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삼상 8:11-17).

다윗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인구조사를 실시했다가 결국 하나님께 벌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무엘의 경고는 실제로 일어나는데 다윗에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과거의 12지파 공동체를 12개의 지방행정조직으로 재편하고, 다윗의 병적조사를 토대로 과세, 징집, 부역을 실시합니다. 열왕기상 4장 7-19절은 솔로몬이 옛 부족조직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징세(徵稅) 장치를 중앙으로 집중시킬 목적에서 다윗이 정한 부족단위 행정구역을 보다 효율적인 형태로 재정리했음을 보여줍니다.▩

2. 열왕기

열왕기 상·하는 구약성경의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책입니다. 열왕기는 사무엘기와 역대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정시대를 다룬 성경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부터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서 멸망하기까지의 왕국사를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列王記)라는 책의 이름은 ‘왕들’이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믈라킴’에서 왔습니다.

이 책은 비록 왕들의 행적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이스라엘의 정치를 서술하기 위하여 쓰인 책이 아닙니다.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자기네 신학사상에 근거하여 왕정 역사를 씀으로써, 지나간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이끌어 내고자 했습니다. 즉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버리고 계약을 파기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계약에 불충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굳건히 세우시리라는 희망을 불어넣으면서, 회개를 촉구하려고 신명기계 역사가들이 바빌론 포로기 때 열왕기를 최종 편집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에 대한 열왕기 저자의 평가는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1-2장은 왕권을 장악하기 위한 솔로몬의 냉정하고 잔인한 성격을 숨김없이 묘사합니다. (이 왕권 계승 과정은 앞에서 살펴본 바 있어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다윗이 죽자 솔로몬은 재빨리 움직여 가차 없는 조치로 자신의 권력을 굳히고 정부기구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는 왕위를 놓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주요 정적 세 사람의 암살을 지시했습니다. 그의 형인 아도니야와 다윗 휘하의 군사령관 요압과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다윗에게 저주를 퍼부은 시므이(삼하 16:5- 13)가 그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또한 대사제 아비아달도 아나돗에 유폐시켰습니다(왕상 2장). 이 같은 조처들을 통해 솔로몬은 고대 근동의 전형적인 군주국가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안정과 자신감을 충분히 확보해냈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숙청이 마무리되었음을 이렇게 알립니다: “솔로몬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2:26). 그런데 사울과 다윗의 경우와 달리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는 백성이 아무런 역할을 못합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것은 온전히 궁정 내부의 권력다툼을 통해서였습니다. 이제 일반 백성,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가난한 이와 약자들의 권익은 나라 정책 결정에서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라는 계약법전의 규정은 솔로몬 왕정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소홀히 취급되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 이야기에 이어 갑자기 솔로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옵니다 (3:3-15). “솔로몬은 주님을 사랑하였으며,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랐으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3절). 기브온 산당에서 한밤중 꿈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선물을 청하라고 하셨을 때 솔로몬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청을 드립니다(7-9절). 솔로몬의 겸손하고 사심 없는 청원에 주님께서는 감복하시어 지혜와 분별력뿐 아니라 그가 청하지도 않은 부와 명예까지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10-14절).

솔로몬의 시대에는 건축, 미술, 음악이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이집트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제사 의식을 다채롭게 했으며, 성전 중심의 활동인 시편, 격언, 등의 지혜 문학과 성경기술(야훼스트 전승) 및 전례 음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솔로몬 궁전은 지혜문학의 중심지가 되었고, 후세에도 솔로몬은 지혜로운 자의 표상이 되었고, 그로 인해 지혜에 관한 내용이면 솔로몬을 저자로 보는 경향이 생겼습니다(5:9-14).▩

열왕기상 3-11장에 있는 솔로몬에 관한 자료들은 “솔로몬 왕의 실록”(왕상 11:41)을 신명기계 역사가가 손질한 것입니다. 신명기계 역사가가 각 왕의 치적을 평가하는 기준은 예루살렘에서만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신명기서의 원칙입니다. 따라서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의 통치에 대한 평가는 처음부터 채색된 유리를 통해서 본 관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신명기 17장 14-2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이 법은 솔로몬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역사가는 솔로몬의 건축 계획에서 성전 건축을 가장 중대한 사업으로 여겼으므로 성전의 건립, 계획, 성전 기구 등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습니다(왕상 5-7장).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 건축은 솔로몬의 다른 토목공사에 비하면 소규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짓는데 7년이 걸렸지만, 관리 청사, 왕실, 이집트 출신의 자기 왕비의 궁 등 왕궁을 짓는 데에는 13년이나 걸렸습니다. 크기로 보아도 성전은 궁전의 3분의 1도 못되는 작은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예루살렘 밖의 병거부대를 위한 도시들을 세우고 게셀, 므깃도, 하솔 등을 요새화 했습니다(왕상 9:15-19).

솔로몬은 이집트의 바로들과 마찬가지로 강제노동을 통해 그의 계획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는 막대한 공사비를 염출하기 위해서 왕국을 열두 징세구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마다 지방장관을 배치하였습니다(왕상 4:7-19). 고대 부족제도를 열두 징세 구역으로 대체시키고 왕실에서 감독관을 파견한 솔로몬의 행정개편은 중앙집권화를 노린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체 부족 중 절반가량의 구역을 변경시켰습니다. 옛 부족의 자주성을 없애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솔로몬은 부족의 경계선과 부족의 대표자를 존중한 아버지 다윗의 행정정책을 바꾼 것입니다(삼하 24장 참조).

솔로몬의 강제노동 계획은 지극히 과중했습니다. 물론 이 토목공사에 피정복민을 많이 이용했으나, 자기 백성에게도 과중한 노역을 부과하였습니다. 왕상 5:27-30의 기록이 이를 입증합니다. 이와 같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에는 재정상의 지출보다 훨씬 더 큰 희생이 요구되었으니, 그것은 백성의 생활과 자유의 억압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동방의 왕국과 같은 왕을 원한다면 그의 권력에 의해 자유가 무자비하게 박탈당하고, 세속화되고, 나아가 계약공동체의 바탕이 흔들릴 것이라는 사무엘의 불길한 경고가 적중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철권통치에 대해서는 그의 사후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세겜 회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왕상 12장).

솔로몬은 ‘칠백 명의 아내와 삼백 명의 첩’을 거느렸으나 이것을 관능적인 측면에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의 결혼은 대부분 이웃 나라와 정치적·문화적 유대를 맺으려는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결혼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으므로 솔로몬은 외국에서 데려온 아내에게 이방종교의 신봉을 허용하였고 나아가 수도 안에 그녀들을 위한 신당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렇듯 솔로몬은 전 재임기간 동안 종교적 혼합주의－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전승과 외국의 전승의 융합－를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종교혼합주의는 단순한 종교상의 혼합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을 비롯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대 왕들은 왕정 체제를 옹호하는 바알신앙을 야훼신앙에 덧씌웠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야훼신앙으로는 왕정에 필요한 물적 기반을 도저히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바알신앙을 통해서 왕정 유지에 필요한 물적 기반을 확보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혼합주의를 택한 이유이며,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대 왕들이 그렇게 역사가와 예언자들에 의해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방신을 따라 나섰던 이유였습니다.

솔로몬이 제 아무리 영화를 누렸다 하더라도 들에 핀 백합꽃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 없다고 한 예수의 유명한 말씀만 보아도, 솔로몬이 부와 영화의 상징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열왕기상의 기록은 그가 얼마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는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와 같은 생활을 경제적으로 지탱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뛰어난 외교능력에 힘입은 교역을 통해서 얻은 바가 컸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앞서 밝힌 조세정책과 강제부역을 통한 민중 착취의 제도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특히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통관세를 둔 것은 북 이스라엘을 겨냥한 것으로 후에 국가의 분단과 나아가 국가 전체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솔로몬 시대의 풍요는 가진 자들만의 풍요였을 뿐이요, 일반 국민들은 부역과 세금에 시달려야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민중의 착취를 통해서도 경제적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자 북 이스라엘에 속하는 갈릴리 지방의 20개 성읍을 두로 왕에게 팔아버립니다(9:11).

과연 솔로몬은 성군인가요 폭군인가요? 비록 그가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로 영토를 확장하고, 최대의 부를 누렸다고 해도 그는 분명 폭군이었습니다. 더욱이 야훼 신앙의 빛에서 조명할 때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