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무엘기에 들어가며

오늘부터는 구약성경의 아홉 번째와 열 번째 책인 사무엘기 상·하를 통독하게 됩니다. 사무엘기는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한 권의 책이었으나 후에 그리스어 번역본을 만들 때 두 권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이 책에는 사사시대 말기부터 왕정이 확립되어 중앙집권체제가 세워지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 즉 주전 1040년부터 971년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이 인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인물들은 이스라엘 왕정의 기틀을 놓은 사무엘(삼상 1-7장)과 최초의 왕 사울(삼상 8-15장), 그리고 통일 왕국을 건설한 다윗(삼상 16장-삼하 24장)입니다. 사무엘기라는 이 책의 이름은 위의 세 인물 중 사무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무엘기는 이스라엘의 초기 왕정시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무엘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정이 도입되기 전에 출애굽기에서 사사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발전시켜 온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특성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2. 출애굽기에서 사사기까지에 나타난 고대 이스라엘 사회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에는 군주가 없었습니다(삿 17:6; 18:1; 19:1; 21:25 등). 군주에게서 탈출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군주를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이 공동체는 “야훼만”의 신앙으로 결속된 ‘종교적’ 공동체였습니다. 저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고 공동의 제사의식을 통해서 저들을 군주에게서 해방시킨 야훼 하나님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야훼만”의 신앙은 단순히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었고 정치적인 결단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즉, “야훼여! 당신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요 왕입니다”라는 고백은 사람 위에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예속될 수 없다는 염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야훼만”은 군주들의 횡포를 거부하는 핵심적인 거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염원은 특히 법전들에 역력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십계명의 첫 부분만 바로 이해하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나 이외에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 그리고 “어떤 형상으로 된 것이든지 우상화하지 말라”, “너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 등은 신적인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들, 즉 신의 대리자로 횡포 하는 군주들 또는 스스로를 신격화하여 신처럼 행세하는 군주들에 대한 반대의 뜻을 뚜렷하게 밝힌 것입니다.

셋째, 군주의 지배에서 탈출한 이 공동체는 평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고대 사회와 달리 이 공동체에는 계층이 없었습니다. 경제에서 법 제도에 이르기까지 평등주의를 철저하게 실현했습니다. 계약법전(출 20:22-23:33), 사제계법전(레 1-16장), 성결법전(레 17-27장), 그리고 신명기법전(신 12-26장) 등을 살펴보면 이러한 노력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법전을 집약해 놓은 십계명은 억눌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보호하고 강자의 횡포를 억제하려는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가령 안식일법 같은 것은 ‘인간은 노동 후 반드시 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고, 아울러 ‘노동하지 않은 너희 지배자들은 쉴 권리가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간음이나 도적질,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을 금한 것 역시 약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고, 권력으로 횡포할 수 있는 강자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넷째, 따라서 이 공동체에는 상존(常存)하는 지배구조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사사들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평소에 가족, 종족, 지파를 단위로 자율권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에게서 특별한 은혜(지명)를 받은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하여금 총지휘하도록 했고, 열두 지파는 그의 지휘 아래서 위기를 타개해 나갔습니다. 이들을 사사라 부르는데, 그들은 일반인과 똑같은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사들은 자기 사명을 끝내면 도로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단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활동했던 사무엘만은 상존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렇듯 상존하는 지배구조를 두지 않았다는 것은 권력을 한 사람에게 독점시키지 않겠다는 투철한 의지의 반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실제로 어떻게 조직되고 유지·관리되었을까요? 우리는 그 단초를 여호수아 7장 16-18절에 있는 아간의 색출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지파별로 나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다. 유다 지파를 가문별로 나오게 하였더니 세라의 가문이 뽑혔고, 세라의 가문에서 장정들을 나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다. 삽디의 집안의 장정들을 차례대로 나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에서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다.”

여기에 나오는 집안(가족), 가문(씨족), 지파(부족)가 바로 고대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단위들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집안(=가족)입니다. 가족은 가장과 그의 아내들, 아들들, 결혼하지 않은 딸들, 며느리들과 어린아이들을 포함하는 혈족 단위였으며, 집안의 종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의지할 데 없는 독신 친척들을 포함했습니다. 이 대가족은 기본적인 경제단위였으며 생산, 분배, 소비 등이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자급자족단위였습니다.

이 가족이 자기 삶의 기반인 토지를 잃고 땅주인에게 예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율법은 땅을 사고파는 것을 금지합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 25:23). 또한 이스라엘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의 경계를 옮기는 일을 저주가 뒤따르는 엄격한 금기로 정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주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한 땅에서, 이미 조상이 그어 놓은 당신들 이웃의 경계선을 옮기지 마십시오”(신 19:14). “‘이웃의 땅 경계석을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신 27:17). 이렇듯 이스라엘은 농경사회에서 생산의 기본단위가 되는 토지가 가족의 범위를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들을 마련하고, 이것을 위반하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엄격히 금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고대 근동의 다른 사회와 달리 과부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수혼법을 실시한 것 역시 토지와 재산이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유다와 다말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수혼법은 이스라엘의 평등사회를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서 보편적인 윤리보다 앞서는 법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회단위는 ‘미스파하’로서 우리말로는 ‘가문’, ‘문중’, ‘갈래’, ‘씨족’ 등으로 번역됩니다. 미스파하의 규모나 개념을 정확히 설정한다는 것은 어려우나, 지파(부족) 조상들의 아들들이 씨족의 우두머리로 나오는 민수기 1장과 26장의 목록에서 미스파하의 구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스파하는 공통의 관심으로 묶여진 공동체로서 ‘가족들의 보호연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자급자족은 여러 가족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어려울 때는 소속해 있는 미스파하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회에서 도움을 요청한 가족에게 이자 없이 꾸어 주는 일은 미스파하 구성원들의 의무였습니다. 이러한 법은 후에 왕정 아래에서도 동족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레 25: 36-38), 꾸어준 돈을 부득이 하게 갚지 못했을 경우에도 7년마다 돌아오는 면제년에는 그 빚을 탕감해주라는 법(신 15장)으로 남게 됩니다. 또한 가족 내에 상속자가 없을 때 남자 상속자를 공급하는 일, 땅을 보존하고 되찾는 일, 빚 때문에 노예 된 자들을 구하는 일 등이 가족 내에서 처리되지 못했을 때는 미스파하 내의 구성원에게 돌려졌으며, 이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친척들의 의무로 규정되었습니다(룻 2:20; 4:14; 신 25:9). 이렇듯 미스파하는 가족들이 정상적인 자율적 기능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긴급한 방책이 되었고, 가족들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회 단위 중 세 번째 것은 지파(종족)입니다. 지파는 여러 미스파하로 구성된 것으로 가나안 성읍국가, 블레셋 동맹국들을 물리치기 위한 투쟁의 공동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되기도 하였으며, 지형, 지세, 숲, 해협 등의 지리적인 환경이나 가나안 성읍 국가들에 의해 둘러싸인 고립지역 내의 사람끼리 연합하여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색다른 토양이나 강수량 또는 같은 농업형태에 따라 결합되기도 했습니다. 지파는 제의 의식을 공동 실시하고, 각 지역의 이야기층을 형성해 나갔으며, 군사적 자체 방어 임무와 지역 법정에서 위탁된 사항들을 결정하기 위한 법률공동체적 기능도 수행했습니다. 또한 지파는 기근, 질병, 전쟁 등으로 약해진 미스파하들을 위한 사회경제적인 상호협조체로서, 지파 장로들의 회의를 통해 어려운 처지에 직면한 지파 내의 미스파하에게 다른 미스파하의 잉여농산물을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의 소유권 이동의 마지막 경계선을 지파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유산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겨지는 일이 없어야, 이스라엘 자손이 제각기 자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파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오”(민 36:7). 이러한 원칙은 가나안 성읍 국가들처럼 몇몇 귀족에게 토지 소유권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지파들이 모인 동맹체로서, 자율적 기능을 가진 지파들이 야훼 종교 아래 평등주의적으로 결합된, 가장 큰 사회·문화적 단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성원이 되는 조건은 야훼종교의 제의, 의식, 도덕적 훈련,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사회경제적 법률들에 반영된 경제적 평등주의의 실천 등이 가장 큰 요건이었습니다. 전체 이스라엘은 7년마다의 계약 갱신을 위한 축제 때에 모든 지파들이 모인 회의를 통해서 토지의 재분배를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의 주인은 야훼뿐임을 철저히 믿었습니다. 레위기는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 25:23)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토지는 일반적으로 가족 중심으로 분배되었고, 이는 야훼께서 축복의 상급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신 것이라고 이해되었습니다. 토지는 개인이 함부로 팔아넘길 수 없고,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가장 포악한 폭군 아합마저도, 한 시골 노인 나봇의 포도원을 사들일 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왕상 21장). 부득이한 경우 땅을 팔 수는 있었으나 가까운 친척이 되사주어야 합니다(레 25:23-24). 되살 수 없는 경우에는 희년 때까지만 기다리면 자동적으로 원래의 소유자에게 소유권이 돌아오도록 규정했습니다(레 25장). 50년째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잉여재산을 상속하여, 대를 이어 부가 집중되는 것을 막는 사회적 제도였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이중·삼중적 토지 제도를 통하여 사회의 부가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았으며, 이것을 어기는 것을 야훼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생각하여 엄격한 금기사항으로 여겼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회구조와 이중·삼중의 법적· 제도적 제동장치를 통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평등사회는 농민들을 예속상태로 이끌어 갔던 가나안 사회의 계급적·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했으며, 저들만의 독특한 평등사회를 지켜나갔던 것입니다.▩

3. 군주제를 배격하던 이스라엘이 군주제를 수용하게 된 배경

사사시대까지의 고대 이스라엘은 엄격한 의미에서 국가가 아니었고 지파동맹(=부족연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왕을 세워서 국가체제를 갖추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저들 자신이 군주제도 밑에서 신음하던 민중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 패배를 거듭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군주제도를 갖춘 강력한 국가체제를 원하게 되었고, 마침내 여러 요인들로 인해 200년 간 기적적으로 지속해오던 평등사회는 붕괴되기에 이릅니다. 

평등사회가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해양민족으로 알려진 블레셋의 침략을 들 수 있습니다. 주전 2000년대 후반에 지중해 연안과 유럽 남동부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민족 이동이 있었습니다. ‘바다 백성들(Sea Peoples)’로 불렸던 이들 무리는 에게해 동부 지역을 비롯하여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었습니다. 테베에 있는 이집트 람세스 3세의 신전에는 기원전 1190년경 벌어졌던 블레셋과 테커의 연합 함대와 이집트 함대간의 치열한 해상 전투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람세스 3세에 의해 격퇴된 후 이들 중 일부는 다시 바다를 건너가 크레타, 시실리, 사르디니아로 향했고, 일부는 가나안의 해안지방에 정착하여 다섯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블레셋을 세웠습니다. 이후 블레셋은 주전 11-12세기에 영토 팽창 정책을 펼쳤습니다. 바다에서는 가나안의 시돈, 띠로, 비블로스와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다투었고, 내륙에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 동맹과 크고 작은 싸움을 끊임없이 벌였습니다.

문화적으로 블레셋인들은 팔레스타인 지방에 새로운 철기 기술을 들여와 본격적인 철기시대를 열었고, 저들의 발달된 철기 무기로 이스라엘 평등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3장 20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습이나 곡괭이나 도끼나 낫을 벼릴 일이 있으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가야만 하였다”고 전합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상비군이 없었고 때에 따라 각 지파에서 동원된 민병대가 연합하여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던데 비해, 블레셋은 우수한 무기뿐만 아니라 상비군이 조직되어 있어서 이스라엘로서는 매우 벅찬 상대였습니다. 또한 블레셋은 정치조직의 견고성에 있어서도 지파동맹(부족연합)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다섯 도시국가 동맹체).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막아내는 데 한계에 도달하였고, 이는 왕정체제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의 침략이라는 외적 요인 외에 지파동맹 내부에서도 평등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내적 요인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은 작게는 각 미스파하 사이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했다는 점과, 크게는 각 지파 사이의 이해관계에서도 틈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21장에 나오는 베냐민 지파와 타 지파들 사이의 전쟁 이야기는 지파간의 이해관계 갈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앙 산간 여러 지역들이 한결같이 다 비옥하고 소출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미스파하와 지파는 출발에서부터 남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경제적 자립을 이루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미스파하와 지파가 유달리 번영하여 남보다 세력과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이 사실을 뚜렷하게 입증하는 것이 북부의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비교적 나중에 부상한 남부의 유다 지파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동맹 초창기부터 차지했던 비중은 이 동맹을 맨 처음 창설하고 지도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여호수아의 비중으로도 익히 증명됩니다. 또 다른 주요인물인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엘가나가 아내 둘을 거느릴 수 있었다는 사실(삼상 1:2)은 그가 매우 유복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서 ‘유력한’ 미스파하에서 태어났다고 이야기되고 있는 사울(삼상 9:1)은 왕정으로 이행되는 초기단계에서 초대 수령으로 부상합니다.

약자보호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증거도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자기를 시기하는 사울을 피해 도망갔을 때, 이 제도가 실패한 데 따른 희생자들로서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무려 4백 명이나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아둘람굴 속으로 몸을 피하였다. 그러자 형들과 온 집안이 그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내려가, 그에게 이르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삼상 22:1-2). 또한 부유한 목축업자로서 다윗의 도움 요청을 비아냥거리며 거절한 ‘고집이 세고 행실이 포악한’ 나발의 태도는 어쩌면 평안하고 든든한 기분에 들떠 약자보호를 규정한 계약조항을 무시한 일부 이스라엘인들의 전형적인 태도였을 것입니다(삼상 25장).

이렇듯 지파동맹체의 내적 규율, 이데올로기 등은 외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평등공동체를 지켜나가게 하는 기본 동력이었는데, 이렇게 동맹체 내부에서도 연대의식의 붕괴요인이 발생하게 되자, 200년이나 생명을 유지해온 평등공동체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붕괴과정은 곧 왕정의 성립과정이었습니다.▩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사무엘기의 처음 몇 장은 사무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스라엘의 외적 위기와 내적 위기를 살펴보았는데, 1-3장은 내적 위기를 다룹니다. 사무엘기는 ‘한나’라는 여인의 절망적인 상황으로 시작됩니다. 한나는 사마리아 산간지방을 차지한 에브라임 지파 출신 엘가나의 두 아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한나는 히브리어로 ‘은총’이란 뜻이고, 브닌나는 ‘진주’라는 뜻입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식이 없어서 서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실로에서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께 아들 하나만 점지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서 사무엘을 낳습니다.

한나의 이야기는 사무엘기의 이어지는 장들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여주는 청사진이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이 못 낳는 여자의 간청을 기억하셨듯이 하나님은 당신 백성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필요한 조처를 취하실 것입니다. 사무엘기와 열왕기에 전개될 왕들과 예언자들, 전투와 내정(內政)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스라엘의 번영과 미래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선물이지 그들의 노력과 공로로 얻어진 결실이 아닙니다. 왕들과 함께 엮어나갈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은 한나와 그의 아들 사무엘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한나라는 이름이 히브리어로 ‘은총’임을 떠올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장 12절부터는 이스라엘의 어두운 현실이 소개됩니다. 실로의 사제 엘리의 두 아들은 제물의 좋은 몫을 부당하게 갈취하고 성소에서 봉사하는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엘리는 아들들이 그런 짓을 못하도록 강력하게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불충을 참으실 수 없었고, ‘하나님의 사람(예언자)’를 시켜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리라는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2:27-36). 엘리 집안이 몰락해 가는 상황에서 소년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주도할 새로운 희망으로 힘차게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린 사무엘은 커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2:26). 사무엘의 소명 이야기는 “그 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3:1)는 말로 시작하여 사무엘의 예언자직을 확인하는 말로 끝납니다(3:19-4:1). 엘리 가문의 몰락과 말씀의 부재로 말미암아 생겨난 내적 위기는 주님의 충직한 예언자 사무엘의 출현으로 마무리되었던 것입니다.▩

4장부터는 블레셋인들이 몰고 온 외적 위기를 다룹니다. 실로에 모셔진 주님의 언약궤는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법을 넣어 두는 ‘궤’인데, 이 궤는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장소’로 믿어져 왔습니다. 즉,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왕인 하나님의 옥좌 발판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시는 하나님 현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로에 있는 이 언약궤를 앞세우면 백전백승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진 것은 물론, 이 언약궤마저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질문이 중요하게 떠오릅니다. 첫째,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셨는가? 둘째,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런 질문은 사무엘 시대의 이스라엘인들뿐만 아니라 언약궤도 예루살렘 성전도 잃고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배자들에게도 중요했습니다. 이 위기 상황을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는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직역: 유배갔다)”(4:21) 하고 말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영광이 유배가다)이라고 지어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사무엘 시대와 유배 시대를 자연스레 이어줍니다.

첫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신명기계 역사관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충을 징벌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불충실하고 부도덕한 엘리 집안을 징벌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5-6장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불확실한 미래에서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블레셋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언약궤를 빼앗아 다곤 신전에 갖다 놓았습니다. 주님의 언약궤를 다곤 신의 전리품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튿날 다곤 신상은 땅에 얼굴을 처박고 언약궤에 경배를 드리는 자세로 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음날도 그런 자세로 쓰러져 있는데 몸통만 남아있을 뿐 머리와 두 손은 잘려서 문지방에 널려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 야훼의 현존을 상징하는 물건 앞에서 블레셋인들의 신 다곤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블레셋인들을 역질로 치셨습니다. 결국 블레셋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기 위하여 온갖 금은보화와 더불어 언약궤를 암소 수레에 실어서 이스라엘 진영으로 다시 넘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무엘기와 열왕기 전체에 나오는 모든 사건 속에서 상황을 주도하시는 분은 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예시합니다.▩

엘리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무엘도 나이가 많아지자 두 아들을 사사로 임명했지만, 그들은 제 잇속만 차리지 이스라엘을 법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은 다른 나라처럼 왕을 세워달라며 간청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장로들이 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을까?”라는 문제가 성경 시험에 나온다면 모범 답안은 “블레셋을 비롯한 외적들과 효과적으로 싸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성경을 좀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권위 있는 이스라엘 역사서도 다 그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성경의 해당 구절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사무엘상 8장 5절을 보면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외적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바로 앞장인 사무엘상 7장은 사무엘이 이끄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군을 대파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굳이 왕이 없더라도 전쟁에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백성들은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닙니까? 엘리 때도 사정은 이와 같았습니다. 엘리는 늙고 그의 아들들은 망나니짓에 빠져 백성들을 잘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즉 이런 말들은 모두 핑계라는 얘기입니다.

그럼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백성들은 왜 왕을 요구했을까요? 바로 다음에 백성들은 정말 자기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합니다: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 밑바닥에 깔려 있는 진정한 의도는 “다른 나라들처럼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나라들처럼 되고 싶다”는 말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싶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정의, 자유, 평등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우상을 버리고 진정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들처럼 되겠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무엘기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위 환경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기가 어려워질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지파체제에서 왕정체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처럼, 주위환경이 크게 달라졌을 때 어떻게 하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서 오늘날 우리 교회는 세상 안에서 존재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유지하고 실현하며 살 수 있을까요? 왕을 달라는 요구는 그만큼 이스라엘이 가진 것이 많아졌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지 않더라도 삶을 이어나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 곧 우리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를 ‘필요’가 없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만’ 믿고 신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무엘기를 읽으면서 대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왕정체제로의 전환은 이제껏 유지해왔던 지파동맹, 즉 이스라엘의 평등공동체를 포기함을 뜻했고, 동시에 야훼 유일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기에 성경에는 왕정수립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 입장 차이는 위의 도표와 같습니다.▩

어제 읽은 사무엘상 8-12장은 사사시대에서 왕국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대한 서술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왕권을 싸고 격론한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입니다. 왕의 옹립을 원하던 측은 왕국을 이루어 강력한 체제를 갖추고 이방과 대결하면서 그들과 같은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부국강병론: 삼상 8:20). 한편 이에 극구 반대하는 민중의 소리가 사무엘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삼상 8:11-17).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왕)에게 절대권을 주면 인간(=백성)을 노예화하리라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왕의 옹립을 반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런 요구가 실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형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삼상 8:7; 10:19; 12:12).

그러나 대세는 점차 왕권파에게로 기울어 사사로서 원로의 자리를 굳히고 있던 사무엘이 본의 아니게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시작된 이스라엘의 왕권제도의 첫걸음은 주변국들의 왕권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한된 왕권’의 개념 속에서 새로운 왕정을 수용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졌던 평등사회의 역사적 경험은 그들이 배척했던 주변국들의 왕권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제한된 왕권’이라는 새로운 왕권의 모델을 창출하여 이스라엘 평등공동체가 위협받는 것을 극소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울의 왕권은 이런 ‘제한된 왕권’의 틀 안에서 허용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은 이 틀을 넘어서려고 하였고, 여기에서 사무엘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사무엘과 사울의 갈등을 통해서 제한된 왕권의 윤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이스라엘의 왕은 예언자에 의해 임명되었고 또한 폐위 당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왕권이 세습에 의해 승계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왕을 임명하고 폐위시키는 권한을 민중전통의 최후의 보루인 야훼 종교의 지도자에게 부여함으로써 왕권이 절대 권력이 되는 것을 제한하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부음(임명) 받았으나 후에 사무엘은 사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또한 여기에는 종교지도자의 개인적 독단을 견제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각 지파 대표의 승인을 필요로 했으며, 때로는 지방의 대표들과 계약을 통해서 되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통일왕국의 왕이 될 때 이스라엘 각 지방의 장로들과 계약을 맺은 후 그들이 그에게 기름 붓는 의식을 거침으로써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삼하 5:3). 또한 르호보암 역시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받았으나 지방의 장로들에게 동의를 얻기 위하여 북쪽 지파 영역을 여행해야 했습니다.

② 왕의 권한은 군사적 임무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사울은 왕이라기보다는 블레셋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령관의 임무를 가지고 있는 ‘의사’(擬似)왕이었습니다. 후대의 다윗이 ‘왕’(melek)이란 칭호로 불리는 데 반하여 사울은 ‘총사령관’(nagid=수장, 영도자, 수령)이란 용어로 불립니다.

③ 전쟁 선포도 왕의 권한이 아니라 종교지도자의 권한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터에서 사울은 사무엘을 일주일간이나 기다렸으나 그가 오지 않자 군대는 뿔뿔이 흩어져버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게 되어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은 사울이 단순히 제사권을 범한 것뿐만 아니라 전쟁을 선포하는 종교지도자의 권한을 범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사무엘이 사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삼상 13장).

고대국가의 왕들은 왕권 강화와 또 왕권에 필요한 물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정복전쟁을 그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그 땅의 민중이었습니다(징병, 부역, 전비 조달을 위한 물자 징수 등). 이스라엘은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전쟁을 선포하는 기능을 야훼 종교 지도자에게 제한한 것입니다. 또 부득이한 경우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전리품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이른바 ‘거룩한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전쟁이 물자획득의 수단이 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④ 왕의 통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야 합니다. 고대근동의 왕들은 그들 자신이 입법자이기 때문에 왕의 통치 근거는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법제정의 권한을 철저하게 야훼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리고 왕 역시 법 아래 있는 존재로, 법을 두루마리에 베껴 항상 왕의 옆에 두고 읽고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신 17:18 이하).

이스라엘 공동체는 왕정제도를 다시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극히 제한된 의미에서 왕권이었습니다. 이렇게 왕권을 제한함으로써 왕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평등공동체가 위협받는 것을 극소화하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제한적 왕권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를 수밖에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왕권 강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는데, 바로 이 점에서 사무엘과 충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사무엘기의 진짜 주인공인 다윗이 사울 왕궁에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세 가지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야훼의 뜻에 따라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 후 궁중의 악사로(16장) 그리고 골리앗을 쳐부순 전쟁영웅으로(17장) 사울 왕궁에 등장합니다. 이후 그는 출전할 때마다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스라엘의 군사령관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이에 사울은 자신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는 다윗을 경계하게 되었고, 마침내 다윗은 사울의 질투 대상이 되어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사울을 피해 도망치기에 이릅니다.

누구든 사무엘기에 그려진 다윗의 모습을 보고 그 인물됨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영웅으로 묘사됩니다. 그는 여러 차례 뛰어난 전공을 세우고 사람들의 호감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관대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습니다. 성경 저자는 다윗이 군인으로서 성공한 생애를 보냈음을 감추려 하지 않으며, 이상적인 왕이 주님께 보인 순종의 태도, 그의 탄원, 그리고 역경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려 한 사실 등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진실일까요? 우리는 다윗이 사울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인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무엘기에 그려진 다윗의 모습은 그의 왕정사가들에 의해 집필되었기에 성경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다윗의 인물됨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란 언제나 승리자의 시각에서 집필되기에 우리는 그 행간에 드러난 진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사무엘하를 통독하면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다윗의 등장 이야기 가운데 “다윗과 요나단”에 관한 이야기가 끼어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평소에 잘 주목하지 않던 이 이야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우정’이라고 부르기에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 관계를 주도한 사람은 요나단이었습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사무엘기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하지만 요나단과의 관계에 있어서 만은 그가 아니라 요나단이 주인공이었고, 그는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쳤습니다. 요나단은 친구인 다윗을 위해서 아버지 사울을 배신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울의 눈에는 이런 요나단이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아들 요나단이 자기를 배신하면서까지 아꼈던 친구가 자기 원수인 다윗이었다니, 사울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요나단은 사울의 왕위를 계승할 왕자였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 수하의 장수였으나 이제는 왕의 미움을 받아 도망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맺어질 수 없는 관계였던 이 두 사람이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9-20장에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요나단과 온 시종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요나단은 이를 다윗에게 알리고 나서 아버지 사울을 설득했습니다. 다윗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를 죽이려 하느냐고 말입니다. 이에 사울은 요나단에게 설득되어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미 정신분열증 같은 것을 겪고 있었으므로 갑자기 변덕을 부려 다윗을 죽이려고 그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이에 실패하자 사울은 재차 군인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의 목숨을 구합니다. 미갈이 누구입니까? 그녀는 사울이 다윗에게 아내로 준 그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울이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 하는데 처음에는 아들 요나단이 방해하더니 다음에는 딸 미갈이 아버지의 계획을 좌절시킨 셈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피신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사울은 다시 군인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내려 황홀경 상태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다윗을 죽일 생각일랑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사울은 이차, 삼차로 군인들을 보냈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됐고 급기야 자기가 직접 나섰지만 그도 군인들과 똑같이 황홀경에 빠져 다윗을 죽이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아들과 딸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사울을 방해했던 셈입니다.

그 후 다윗은 요나단을 만나 사울이 계속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하소연합니다. 요나단은 그럴 리 없다고 말하지만 최종적으로 두 사람은 사울의 의중을 확인하기로 작정합니다. 확인 방법은, 다윗이 사울이 벌이는 왕의 만찬에 일부러 불참해서 사울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만찬이 벌어졌습니다.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사울은 첫날은 그냥 지나갔지만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자 요나단에게 묻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문중제사에 다녀오겠다고 해서 자기가 허락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요나단에게 크게 화를 내며 다윗을 당장 잡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두둔하자 사울은 요나단까지 죽이려 했습니다. 이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사무엘상 18장 1절과 3절을 보면 요나단은 다윗을 “제 목숨을 아끼듯” 아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장 17절에도 요나단은 다윗을 “제 몸처럼” 그렇게 아끼었다고 했습니다. 둘 사이의 우정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여전히 다윗이 아니라 요나단이었습니다. 이런 요나단이었기에 다윗과의 이별이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결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사울과 친구 다윗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요나단은 친구 다윗을 선택합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껴안고 실컷 운 다음에 서로를 축복한 후 헤어집니다. 이 장면은 사무엘상 20장 41-42절에 짧게 기록되었지만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후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다윗은 망명생활에 들어갔고 요나단은 전쟁터에 나가 아버지와 함께 전사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부모 자식간, 형제 자매간, 또는 부부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자주 등장합니다. 혈연으로 연결된 일차적 관계 안에서의 사랑에 대한 얘기는 자주 등장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의 관계, 곧 이해관계로 연결된 사람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얘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요나단과 다윗의 이야기가 유일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무엇이 이 두 사람 사이를 이어 주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혈연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라면 무엇이 이 둘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가능하게 했을까요? 성경은 두 사람 사이를 묶어준 것이 요나단의 ‘헤세드’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헤세드’라는 말은 보통 ‘언약적 사랑’이란 말로 번역하지만 영어로나 한글로나 한 단어로 번역하기 힘든 말입니다. 여기에는 약속, 서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를 버리는 희생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희생적 사랑을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왜 요나단은 다윗을 그토록 사랑했을까요? 혈육도 아닌데 그는 무엇 때문에 다윗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그로 하여금 아버지까지 배신하고 보장된 왕위도 포기하게 만들었을까요? 무엇이 요나단으로 하여금 다윗을 ‘헤세드’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만들었을까요? 분명 ‘조건’이나 ‘보상’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훗날 다윗은 왕이 되지만 요나단이 그렇게 될 줄 알고 보상을 바랬던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요나단으로 하여금 다윗을 향해 희생적 사랑을 바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성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요나단이 어렴풋이나마 다윗을 통해 이루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봤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물론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합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요나단의 다윗을 향한 우정의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곧 요나단의 사랑은 다윗을 향한 ‘헤세드’였을 뿐 아니라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헤세드’에 대한 요나단의 응답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은 천리 길을 떠나면서 처자를 맡길 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은 온 세상이 다 자기를 버려 마음이 한없이 외로울 때도 그 사람만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무였습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은 탔던 배가 가라앉고 구명대는 모자라 누군가가 희생해야 했을 때 ‘너만은 살아다오’하며 구명대를 잡았던 손을 놓을 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왜 요나단과 다윗의 이야기가 지금 있는 그 자리에 있을까요? 아무리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일이라 해도 요나단처럼 희생적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이런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파트너인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에게는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요나단과 같은 친구입니까?▩

다윗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일화를 여럿 남겼습니다. 그가 연루된 사건 중에는 훗날 신앙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행동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이야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가다가 놉에 사는 아히멜렉에게 갔습니다. 굶주린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자 아히멜렉은 야훼 하나님께 바쳤던 떡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떡을 먹을 자격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떡을 먹을 사람들이 근래에 여자를 가까이 했던 적이 있느냐고 제사장은 물었습니다. 다윗이 그런 적이 없다고 하자 제사장은 그에게 떡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제단에 바쳐졌던 떡에 대해서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이때 드려졌던 제사가 어떤 제사인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께 드려졌던 제단의 떡은 오로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다윗 일행이 근래에 여자를 가까이 했든 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그들은 떡 먹을 자격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떡을 먹으라고 줘서는 안 됐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다윗에게 떡을 줬을까요? 그가 무식해서였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바쳐진 떡에 대한 율법 규정을 잠시 헷갈려서 그랬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율법을 무시해서 그랬을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만 아히멜렉은 제물에 관한 율법 규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규정을 모르고 어떻게 제사장 노릇을 했겠습니까! 그러면 왜 그랬을까요? 그는 어렴풋이나마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는 다윗이 왕이 되면 한 자리 차지하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사울의 기세가 등등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차기 왕으로 낙점하셨다는 사실을 아히멜렉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가던 도망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히멜렉이 율법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제단에 바쳐졌던 떡을 다윗에게 주어 그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은 그가 어렴풋이나마 하나님의 계획을 인지하고,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1천 년쯤 지난 후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분이 바로 이 사건에 대해 얘기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을 보면 하루는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안식일에 금지되어 있는 일을 당신 제자들이 하고 있다”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예로 드셨습니다. 다윗도 배가 고팠을 때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었던 떡을 먹었다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율법의 기본 성격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율법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입니다. 율법은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수단도 중요하지만 목적에 앞설 수는 없습니다. 수단은 잘 활용될 때만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그것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태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에 때로는 그것을 깨뜨리고 넘어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거기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것을 깨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과감하게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율법 규정을 깨뜨리거나 넘어설 때는 그 행동에 대한 대가(代價)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히멜렉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을 다윗에게 준 행동 때문에 사울 왕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대가치고는 너무나 큰 대가 아닙니까! 예수님은 어땠습니까? 예수님도 안식일법을 넘어서는 행동 때문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라는 진리를 몸으로 실천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해야 했습니다. 물론 다른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예수님 사역의 근본정신은 이 한마디 말씀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아히멜렉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그리고 예수님 같은 분이 있었기에 우리는 안식일법의 참뜻을 알게 되고 그 정신을 존중하고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율법 규정들을 넘어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무작정 틀을 깨려 하고 규정들을 무시하려는 태도는 크게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러나 목적과 근본 의미는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전통과 규정을 따르겠다는 태도도 잘못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왜 내가 이 전통과 규정을 따라야 하는가, 왜 내가 그것들을 깨뜨리고 넘어서야 하는가, 무엇을 실현하려고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을 갖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을 따라 살아갈 때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정작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은, 그 대가가 결코 값없는 대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