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기 예언서 (신명기계 역사서) 개관

오늘부터는 모세오경을 넘어 예언서를 통독하게 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전기 예언서라 불리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는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역사서로 분류됩니다. 그리스어 성경의 역사서는 크게 셋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신명기계 역사서, 둘째는 역대기계 역사서, 셋째는 이야기(하가다 미드라쉬)입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에는 히브리어 성경의 전기 예언서인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가 속하고, 역대기계 역사서에는 역대, 에스라, 느헤미야가, 그리고 이야기에는 룻기, 토비트, 유딧, 에스더, 마카베오가 속합니다. (이 가운데 토비트, 유딧, 마카베오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으므로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는 일관성 있는 한 묶음을 이루고 있으며, 약속의 땅 정복에서부터(주전 13세기) 바빌론 포로기까지의(주전 586-538) 이스라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들의 저자는 옛 전승들을 신명기의 신학에 기초해서 해석하고 편집했습니다. 신명기의 신학이란 “하나님께 순종하고 율법에 충실하면 축복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명기 신학에 따라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평가하였기에 위의 책들을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신명기계 역사서의 사관(史觀)은 사사기 2장 6절로 3장 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범죄-처벌-회개-은총이라는 연결고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자는 이 도식을 이스라엘 역사에 적용하면서 하나님께서 계약에 충실하셨음을, 즉 이스라엘이 새로운 사회와 역사를 세우도록 땅을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충실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범죄). 그 결과 사회생활은 점차 타락하고 국가에 재앙을 불러오고 맙니다(징벌).

신명기계 역사서는 마지막 두 도식인 회개와 은총을 가르치기 위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자는 열왕기상 8:46-53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자기네 잘못을 깨닫고 마음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청하면, 하나님께서는 해방과 은총의 새로운 상황을 허락하시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에 나오는 역사 묶음은 위대한 “복음”으로서 회개와 희망을 불러일으키려는 선포입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하나님의 계획에 충실하거나 불충실한 데 따른 축복과 저주를 통하여 해석하라고 초대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책들을 예언서로 간주하는 것은 쓰라린 과거 역사가 주는 교훈이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같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대변하여 직접 이스라엘의 죄상을 고발하며 참된 진리와 생활 태도를 가르치던 후기 예언서와는 구별됩니다.▩

2. 여호수아를 시작하며

여호수아는 구약성경의 여섯 번째 책이며, 전기 예언서 또는 역사서의 첫 번째 책입니다. 이 책을 여호수아라고 부르는 까닭은 여호수아가 썼다는 유대인 전승(바빌로니아 탈무드)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24장에 여호수아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여호수아가 쓴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된 여러 전승을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기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 사람들을 ‘신명기계 역사가’라고 부릅니다.

여호수아에서 우선 강조되는 가르침은 땅을 주시는 하나님, 곧 당신의 약속과 계약에 성실하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성조들에게 하신 약속,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면서 그들에게 하셨던 당신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비로 이 땅을 선사하셨다면, 이스라엘이 이 땅을 어떻게 지키며 가꾸어갈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릅니다. 이스라엘은 물줄기가 끊어진 요단강 한복판에서 지파별로 돌 열두 개를 가져다가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 나가겠다는 공동체의 다짐으로 삼습니다. 그 다짐을 온전히 실현해 나갈 때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해방과 자유가 살아 숨 쉬는 생명의 터전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내세우면 아간처럼 공동체에 큰 피해를 주는가 하면 일가친척까지 몰살당하는 죽음의 터전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약속의 땅으로 주신 이 지구 또한 인류 공동체가 어떤 지향으로 무엇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느냐에 따라 생명의 터전이 될지 죽음의 터전이 될지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여호수아를 직접 읽어봅시다.▩

여호수아 1-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하는 가운데 벌어졌던 파란만장한 일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행로를 따라가면서, 어디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싯딤(시띰) : 정탐꾼 둘 밀파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살펴보기 위해서 정탐꾼 둘을 파견한 곳입니다. 정탐꾼은 창녀 라합을 통해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그것은 미리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나아갈 때, 그분께서 미리 마련하신 사람이나 사건을 통해 그분의 뜻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요단강 : 언약궤 앞세워

이 강을 건너면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사제들이 백성들의 선두에 서서 언약궤를 메고 들어서자, 흐르던 강물이 끊기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백성들이 모두 건넌 후 사제들이 나오자 다시 강물이 흘렀습니다. 요단강은 광야와 약속의 땅을 가르는 벽입니다. 이곳을 통과해야 하나님 백성의 삶이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로 넘어가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며 그 길을 열어주십니다.

3. 길갈 : 할례식 거행

요단강 물이 끊긴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지파 수에 따라 돌 열두 개를 가져다가 이곳에 세웁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받고 가나안에서 첫 유월절을 지키면서 약속의 땅에서 난 소출을 먹은 다음부터 다시는 만나가 내리지 않습니다. 길갈은 약속의 땅에서 처음으로 머문 땅이므로 중요합니다. 여호수아 12장까지 이루어지는 땅의 정복 사업은 모두 여기서 시작합니다. 초기 이스라엘의 중심지이자 중요한 성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여리고 : 가나안 정복의 교두보 확보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장 먼저 정복한 가나안의 도시국가입니다. 이레 동안 성을 돈 다음, 나팔과 고함으로 성을 무너뜨리고서 점령했습니다. 뿔 나팔을 불며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행렬하는 것은 전투대형이라기보다 종교적이고 전례적인 행렬에 가깝습니다. 말씀대로 하였을 때 성벽은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성을 점령했던 것입니다.

5. 아이 : 탐욕 징계

부정한 것을 가진 아간 때문에 첫 싸움에서 패했다가, 두 번째 싸움에서 복병과 유인작전을 써서 점령한 곳입니다. 장차 저들이 다시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살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이외에는 취하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만 충실하라는 가르침입니다.

6. 기브온 : 우호관계 맺음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를 해치운 이야기를 듣고, 낡은 옷과 바삭바삭하는 빵을 가지고 멀리서 온 것처럼 속여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어서 목숨을 부지한 주민들이 사는 성읍으로, 일국의 수도가 되고도 남을 큰 도시입니다. 2장에 나오는 라합이 개인으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참여했다면, 기브온은 한 이민족 집단으로서 야훼 공동체에 참여합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약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7. 가나안 : 남부와 북부 점령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시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8. 아나테마의 율법(전멸법)의 배경

우리는 가나안 정복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 큰 걸림돌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학살의 기록들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를 읽다 보면 가나안의 여러 성을 공략한 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옵니다. 예를 들어 여리고 성을 함락한 후, “성안에 있는 사람을,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치고, 소나 양이나 나귀까지도 모조리 칼로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6:21)라고 합니다. 아무리 전쟁이 사람들을 잔혹하게 만든다고 해도, 부녀자들은 비전투원인데 그들마저 모두 죽이다니! 게다가 죄 없는 아이들과 짐승들까지 죽이다니! 그것뿐입니까?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정복지에 대한 “전멸(완전 파괴, 헤렘)”을 명령합니다. 이런 명령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과연 어떻게 신앙할 수 있을까요?

가나안 점령의 이념화가 가져온 재앙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계속 현실로 드러났고,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십자군 원정, 종교재판,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정책, 인디언 학살, 코소보 인종 청소 등). 즉, “전멸”이란 성경 말씀을 근거로 기독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난 2천 년의 역사 속에서 그토록 잔인무도한 침략전쟁을 자행해 왔던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들을 붙잡아다가 짐승처럼 부리면서도 아무 신앙적 갈등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었던 것도, 세계 곳곳에서 남의 나라를 무자비하게 도륙(屠戮)하고 착취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렐루야 아멘”을 노래했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예는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독선적인 종교인이 얼마나 철면피하게 될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일까요? 소위 ‘완전 파괴’(=전멸)를 명령하는 성경의 ‘아나테마의 율법’은 그들의 평등공동체를 훈련하고 수호하는데 그 초점이 있습니다. 현대도 마찬가지지만 고대의 전쟁은 잉여생산물을 약탈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즉 전쟁의 승리자는 모든 전리품을 약탈함으로써 고대 사회의 한정된 생산력을 넘어선 부의 축적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완전 파괴 명령은 해방전쟁 초기에는 광야의 만나나 메추라기의 예처럼 사적인 탐욕을 극복하는 훈련으로서의 의미가 컸고(=‘보고’ ‘욕심내고’ ‘차지한’ 아간의 예), 후기에는 ‘전쟁을 해봤자 치부할 것이 없으니 재산축적의 수단으로 전쟁을 일삼지 말라’는 교훈의 의미가 컸습니다(사울왕의 예).

전쟁을 위한 군주제도의 채택과 전쟁을 통한 재화 획득은 군주제도에 반대하고 평등공동체를 지향하는 야훼 유일신앙과 배치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입을 통해 이런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처음 부분을 읽으면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승승장구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전체를 순식간에 정복하고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11장 23절의 증언이 이런 상상을 가능케 합니다.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모든 땅을 점령하고, 그것을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을 따라 유산으로 주었다. 그래서 그 땅에서는 전쟁이 그치고, 사람들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13장 1절 이하의 증언은 이러한 상상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늙고 나이가 많아졌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늙었고 나이가 많은데, 정복하여야 할 땅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땅은 이러하다. 블레셋 사람과 그술 사람의 모든 지역과, 이집트의 동쪽에 있는 시홀 시내로부터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에 이르는 가나안 땅과, 가사와 아스돗과 아스글론과 가드와 에그론 등 블레셋의 다섯 왕의 땅과, 아위 사람의 땅과, 남쪽으로 가나안의 모든 땅과, 시돈의 므아라로부터 아모리 사람의 변경 아벡까지, 또 그발 사람의 땅과, 동쪽의 레바논 땅 전체와 헤르몬 산 남쪽 바알갓에서 하맛에 이르는 곳까지이다’”(13:1-5).

이 진술대로라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극히 일부분만 점령했을 뿐입니다. 더구나 성경의 증언을 꼼꼼히 뜯어보면 그들이 점령한 땅들은 가나안의 성읍들이 아닌 산악지대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장 16절에 있는 요셉 자손의 증언이 이를 확인해 줍니다. “그 산간지방은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하고, 그 골짜기 땅 곧 벳산과 그 변두리 마을과 이스르엘 골짜기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다 철 병거가 있습니다.” 또 사사기 1장 19절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주님께서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간지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거민들은,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된 것일까요? 학자들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정복설’, ‘이주설’, ‘혁명설’이 그것입니다. 정복설은 “이집트에서 온 히브리가 군사적으로 일거에 가나안을 정복했다”는 설이고, 이주설은 “정복한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잠입·정착하되 군주국들이 평지를 점유한 데 비해 산악지대를 점유했다”는 설입니다. 혁명설은 “이집트에서 들어온 히브리와 가나안 성읍국가의 농노였던 히브리가 결탁·봉기하여 점령한 지역에 종족동맹을 만들었다”는 설입니다.

이 중 첫 번째 가설은 여호수아 후반부와 사사기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신빙성이 없으며, 이집트 왕 바로의 억압에서 벗어났던 히브리인들과 가나안 성읍 국가의 군주로부터 압제를 받아온 하층민들(암 하아레츠)이 힘을 합해서 해방공동체를 형성했으리라는 혁명설이 요즘 많은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즉, 이집트에서 빠져나와 광야를 거쳐 온 이스라엘이나, 가나안 성읍 국가에서 억눌린 생활을 해오던 하층민들의 처지가 별로 다를 바가 없었기에 쉽게 의기투합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과정을 이해하려면 가나안에 대한 전이해가 필요합니다. 물이 부족했던 가나안 지방에서는 샘이 솟는 수원지를 중심으로 성읍들이 세워졌습니다. 광야지대에서는 수원지가 생존과 농경의 필수 조건입니다. 따라서 수원지와 관개시설을 장악한 성읍의 군주들은 이것을 매개로 하여 주변 촌락들을 자신에게 예속시키고 전권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즉 성읍과 주변 촌락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중세 봉건사회의 영주와 농노 관계와 흡사했습니다.   

그런데 철기시대(주전 1200년 이후)로 들어가는 시기(=초기 이스라엘 형성기)에 가나안 지방에는 중대한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가나안 지방은 6개월이 우기이고 6개월은 건기이므로, 우기 때에 물을 저장할 커다란 웅덩이가 필수적입니다. 이 거대한 물웅덩이는 가나안 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석회암은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벽에 회반죽을 발라야 물을 오래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에 석회를 태워서 회반죽을 만들어 칠하면 방수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저장 방법의 획기적 변화로 인해 샘터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지대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헤브론에서 세겜에 이르는 산악지대에 도시의 성읍들과는 독립적인 촌락들이 생겨났으며, 그 증가속도는 놀랄만했습니다.    

이렇게 새로 등장한 독립된 촌락과 성읍 중심의 봉건 체제 사이의 갈등은 불가피했습니다. 성읍의 봉건적 지배자들이 볼 때 산악지대의 새로운 촌락들은 또 하나의 지배와 착취의 대상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원지대와는 달리 그들이 자랑하는 병거는 산악지대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무렵 산악지역의 촌락들에서는 철기를 사용하여 비탈을 계단식 농토로 개간하고, 포도나 올리브는 물론 곡물도 재배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지대의 주민들은 가나안과 블레셋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립된 생존기반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고고학적 발굴들을 통해 당시 가나안의 사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가나안 지방의 여러 성이 하비루라고 부르는 집단에 의해 침공을 받고 있고, 그들에 의해 성이 함락되었으며, 군주들이 암살당했다”는 보도들입니다. “하비루들이 예루살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라기스 왕은 하비루와 합세한 노예들에게 암살되었습니다.” “세겜 왕 라바유와 그의 아들은 하비루들과 한편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근방의 도시 벳니니브는 하비루에게 함락되었습니다” 등등이 그것입니다.

고대 근동 여러 지방의 사료에 등장하는 하비루들은 주로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붙잡혀 온 전쟁포로, 혹은 건축사업, 채석장 같은 곳에 동원된 강제 노동자들, 노예들, 외부에서 유입된 이방인들, 또는 여러 지역의 군대에 속한 용병 등 사회적 하층민을 가리키는 통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고학적 발굴은 이제까지 이스라엘과 동의어라고 생각했던 히브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낳게 했습니다.

성경에서 히브리라는 용어는 대부분이 족장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다윗이 통일왕국을 수립할 때까지의 역사에 국한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 하비루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는 족장들의 역사에서 히브리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으며, 여기서 히브리는 경멸당하고 멸시받는 대상을 가리키는 용어였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예: 창 39:14; 43:32; 삼상 4:9 등). 또한, 사무엘상 14장에는 “(이제껏) 블레셋 사람들 편을 들어 싸움터에까지 나왔던 히브리 사람들도, 이제는 돌이켜서 사울과 요나단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편이 되었다”(삼상 14:21)는 진술이 나옵니다. 이 구절에서 “히브리”와 “이스라엘”은 같은 대상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과정을 ‘혁명설’로 설명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성읍들의 지배로부터 독립하고자 투쟁하던 산악지대의 정착 농민들(당시 가나안 성읍들은 이집트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이들은 이집트의 세력을 가나안에서 몰아내려고 싸운 ‘농민혁명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과 이집트의 지배에 도전하여 밖으로부터 들어온 히브리들(출애굽 한 노예집단들)이 합세하여 반이집트 해방전쟁을 치렀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과정은 가나안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던 농민해방군의 해방전쟁에 출애굽 한 히브리들이 가세하여 자신들의 ‘해방구’를 넓혀나간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해방전쟁은 200년간 계속되다가 다윗 시대에 이르러 이집트를 대신하여 가나안의 지배자가 된 블레셋을 꺾음으로써 비로소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 소개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하비루－히브리들이 야훼 유일신앙을 매개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종족공동체로 연합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가나안의 지배자들이 믿던 신은 ‘바알’이었습니다. 또한, 이집트의 지배자들은 ‘레’와 ‘아톤’을 섬겼습니다. 이들 신은 지배자의 통치, 그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해 주고 통치자들의 후광이 되어 주는 신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피지배자들은 이런 신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신을 섬겼는데, 이 신은 나라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 짓눌려 기를 못 펴고 사는 변두리 인생들의 신이었습니다. 가나안 농민들은 그 신을 ‘엘 샫다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전능의 신’이라고 번역된 이 말은 신이라는 뜻의 ‘엘’이라는 말과 ‘산’(山)이라는 뜻의 ‘샫다이’가 합성된 말입니다. 즉 직역하면 ‘산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성읍으로부터 독립하여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농민 히브리들이 자신들의 신을 그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한편 이집트에서 탈출한 노예 히브리들은 자신들의 신을 야훼(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두 세력이 가나안에서 합류하여 반이집트 해방전쟁을 치르다 보니, 야훼와 엘은 다른 두 신이 아니라 한 신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에는 엘과 야훼라는 두 개의 하나님 이름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저들은 드디어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싸우시기를!’ 또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

을 강하게 드러내시기를!’을 뜻함)이라는 이름의 계약 공동체로 연합하게 된 것입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여호수아는 평생 가나안에서 전투를 벌이지만 미처 점령하지 못한 지역도 많았습니다. 블레셋족이 차지하고 있는 남부 해안 평야와 갈릴리 호수 동편 그술 땅, 북부 레바논 땅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은 장차 차지하기로 하고, 먼저 정복한 땅부터 모세가 요단강 동쪽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 절반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듯이, 가나안 땅을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 나머지 절반에게 나누어줍니다. 또한, 유산을 받지 못한 다른 일곱 지파에는 지적도를 그려서 추첨으로 자기 영토를 배당만 해줍니다(18:1-10).

앞의 지도에서 시므온 지파가 차지한 영토의 경계선이 없는 것은 유다 지파의 영토에서 일부분을 떼어냈기 때문입니다(19:9). 시므온 지파는 후에 유다 지파에 흡수되었습니다.▩

※ *므낫세(동), 르우벤, 갓은 요르단 동쪽 지역을 차지한 지파들입니다.

여호수아 마지막 부분은 도피 성읍(20장), 레위인들의 성읍(21장), 요단 건너편 지파들과의 관계(22장) 등 미진한 문제에 관한 다양한 자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단강 동쪽 지역에 이어서 서쪽 지역까지 12지파별로 분배한 다음에야, 실수하여 살인한 사람이 피신할 도피성들과 사제와 레위인들이 거주할 성읍들을 지정하게 됩니다.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와 달리 유산으로 받은 영토가 없었으므로, 각 지파가 분배받은 영토 안에서 몇몇 성읍을 할당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각 지파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뜻에 맞갖는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제사를 거행하고 율법을 가르칠 책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했다고 해서, 유목 시절서부터 관습으로 굳어져 왔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 사라질 리는 없었습니다. 동태복수법의 악순환을 깨닫고 합리적인 법적 제도를 만들기 전까지는 자신이 피해를 보면,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신 19:21) 갚아 왔기에, 살인죄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일의 자초지종을 고려하기보다는, “피살자에게 앙갚음을 하여 줄 근친이 복수심에 불타 그(살인자)를 따라 잡아 죽이곤”(신 19:6)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조차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지파 간에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을 때는 한 지파가 전멸될 위험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삿 19-20장). 그래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거주하는 성읍 중에 야훼의 제단이 있는 곳(수 24장; 창 13:18; 18:1 참조)을 도피성으로 지정하여 이들의 인권을 보장해 주고자 하는 제도적인 노력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 마련된 제도라도, 시일이 지나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실수로 살인한 사람만이 아니라 고의로 살인한 사람도 생명을 부지하려는 마음으로 도피성에 곧잘 숨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살인자는 이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가서, 그 성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의 장로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설명하여야 한다”(수 20:4)거나,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서 해치려고 숨었다가, 일어나 이웃을 덮쳐서 그 생명에 치명상을 입혀 죽게 하고, 이 여러 성읍 가운데 한 곳으로 피신하면, 그가 살던 성읍의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에서 붙잡아다가 복수자의 손에 넘겨주어 죽이게 하여야 한다”(신 19:11-12)는 등의 부수 규정이 생겨났습니다. 어떤 생명이든지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마음이 이 법의 정신입니다.

23-24장은 여호수아의 유언과 세겜 회의, 그리고 여호수아의 죽음에 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23:2-16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설교는 1:2-9의 첫 번째 설교와 같은 주제, 즉 땅과 율법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룹니다. 하지만 전혀 상반된 메시지를 전합니다. 1장의 설교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땅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무기요 보증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23장의 설교는 율법에 대한 불순종이 땅의 상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이스라엘은 위대한 두 지도자를 잃고 약속된 땅을 차지하고서도 그 땅 때문에 방황하게 됩니다. 땅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이지만, 동시에 끝없는 유혹의 장본인입니다. 순례의 방향과 목적이 상실되었을 때, 선물은 유혹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적 재화 또한 그렇지 않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