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여정을 거쳐 시내산에 이르러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과 정착 생활에 필요한 온갖 법령을 전해 받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법의 기본 정신은 십계명의 제1계명에 담겨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출 20:3)는 십계명의 제1계명은 흔히 다른 종교와의 대결에서 야훼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이해됐습니다. 즉 ‘야훼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은 다 가짜고 우상이므로 우리는 야훼 하나님만을 믿고 섬겨야 한다’라고 해석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십계명이 형성된 배경을 살펴보면 제1계명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그 의미를 종교적 의미로만 축소 해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삶과 유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인의 사변(思辨)에서 형성된 신이 아니고 바로 그 역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사회적 조건들과 분리하여 야훼를 이해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십계명 역시 사변이나 관념의 산물이 아니고 출애굽 사건의 결과물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출애굽 사건은 바로의 권력에 의한 박해에 대항하여 히브리들이 탈출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히브리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가 신의 대리자라는 통치 이데올로기 때문이었습니다. “너 히브리나 나 바로나 똑같은 인간 같지만 그게 아니다. 나는 신의 대리자 곧 신이고 너는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니 신인 내가 인간인 너희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논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는 비단 고대 이집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왕을 천자(天子=신의 아들)라고 부른 중국 등 고대 계급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출애굽한 히브리들은 이러한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항해서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오직 야훼 하나님 한 분뿐이다. 너 바로는 우리와 똑같은 신의 피조물일 뿐이다”라고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훼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다른 어떤 것도 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즉, 인간 위에 군림하는 인위적인 모든 것에 대해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제1계명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라는 신앙고백으로 명문화된 것입니다.

이렇듯 제1계명의 핵심을 이루는 모노 야휘즘(Mono-Yahwism=‘오직 야훼만’의 신앙=야훼 유일신앙)이란, 다른 종교들과의 경쟁에서 야훼만을 내세우는 그런 종교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오직 야훼 하나님의 주권만을 받아들인다”라는 신앙으로 사람 위에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믿음, 신격화된 인간의 지배에 대한 절대부정의 선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즉 인간이 권력욕에 의해서 자기를 절대화하여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을 거부하는 정신이 “야훼만”이라는 신앙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만”이라는 신앙과 권력의 지배로부터 탈출한 사건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렇듯 고대 이스라엘의 부족동맹(이른바 12지파 동맹)의 야훼 신앙은 소위 순수한 종교적, 피안적 성격이었던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삶에서 일어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건과 결부된, 구체적인 생활 규범이었던 것입니다.▨

시내산 계약에 이은 본문에는 성막(聖幕) 건설에 관한 내용이 길게 나옵니다. 어찌 보면 아주 지루한 대목이지만,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중요하고 의미 깊은 부분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설계와 도본에 따라 성막과 성물 모형을 복원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출애굽기의 마지막 이야기로 성막의 완성과 봉헌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기원전 13~4세기에 이집트에 살았던 히브리 노예들의 울부짖음으로 시작되어(1장), 하나님의 영광(40장)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봉헌으로 완성된 성막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때에 구름이 회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40:34)라고 했는데, 성경 언어에서 구름과 불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뜻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광야의 떨기나무가 불길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타지 않은 것을 보던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불은 본래 태워 없애는 특성이 있는데, 불에 타면서도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는 자연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유한한 인간이나 자연을 초월하시는 ‘있는 나’이신 야훼 하나님께서는 이제 출애굽의 백성이 광야의 오랜 시련을 거치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그 불신(不信)까지도 넘기고 난 다음, 모세의 지휘 아래 온 백성이 마음을 합하여 완성한 성막 위에 불과 구름으로 당신의 현존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이 성막에서 걷히면 진을 거두어 가지고 떠났다. 그러나 구름이 걷히지 않으면, 걷힐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길을 가는 동안에,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구름 가운데 불이 있어서, 이스라엘 온 자손의 눈앞을 밝혀 주었다”(40:36-38)는 말로 출애굽기는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백성들과 함께 이동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어떤 장소에 고정되어 계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한가운데서 당신의 성막을 이동하며 머무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 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고전 6:19)임을 강조합니다. 백성들과 더불어 이동하는 성막은,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외적인 일을 무리하게 하느라고, 참 성전인 우리 자신들의 영혼을 메말라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합니다. 또한 우리가 외적인 성전 건축을 위해서 애쓴 만큼, 사람들 한가운데 주님의 성전을 이룩하려고 애썼는지도 바라보게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 사랑이 없는 곳은 더는 하나님의 성전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통탄은 나 자신의 성전과 우리 교회 공동체의 성전에 올려야 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성막 위에 머무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신앙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구름이 성막에서 걷히면 진을 거두어 가지고 떠났다”(40:36)고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끊임없이 떠나가는 신앙의 길입니다.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서 주님이 보여주시는 곳으로 믿으며 떠났듯이, 이제 이 광야의 백성은 하나님 현존의 표지인 구름과 불기둥이 떠날 때마다 길을 떠나가는, 떠남의 영성을 살게 됩니다. 우리 인생 광야 역시 어느 한곳에 정착하는 생활이 아니라 끊임없이 떠나는 삶, 곧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삶이어야 합니다. 떠나되 무작정의 모험이거나, 인간의 잔꾀나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의 표징에 따라서 떠나는 생활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루 걱정은 그 하루에 족하다는 말씀으로 이 신앙의 길을 보장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완전한 위탁으로 오늘을 살며,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벧전 5:7)라고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신 출애굽의 최종 목표가 실현되었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바로에게 거듭 말씀하셨던 것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내보내어 나에게 예배드리게 하라”(4:23)였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백성이 광야에서 세운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 가장 거룩하게 될 것이다”(40:1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자기 자신을 대신할 귀한 봉헌물을 끊임없이 살라 바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이 가장 거룩하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출애굽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히 신뢰하는 삶이 바로 그 백성에게 참 자유와 생명과 행복이 되는 삶임을 알려 줍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모두 이집트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의 이기와 물질의 풍요와 편리함과 탐욕과 집착의 사슬에 묶인 자아로부터 탈출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복된 백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