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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 처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시험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시험하지 않으십니다”라고 증언합니다. 또 주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시험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쓰인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해서 그렇습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페이라스모스’라는 헬라어 명사가 있습니다. 이 ‘페이라스모스’라는 단어는 ‘시험’(test)이라는 뜻도 있고, ‘유혹’(temptation)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과 ‘유혹’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시험은 하나님에게서 오지만 유혹은 사탄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즉,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을 단련시키고자 하는 것이고, 유혹은 사탄이 우리 신앙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가 나올 때는 그 문맥에 따라서 ‘시험’이라고 번역할지 아니면 ‘유혹’이라고 번역할지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오역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예로 든 야고보서 1장 13절의 경우 공동번역은 “유혹을 당할 때에 아무도 ‘하나님께서 나를 유혹하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라고 옳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개역과 새번역은 ‘유혹’ 대신 ‘시험’이라고 오역했습니다. 또 주기도문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보다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고”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을 연단(鍊鍛)하고자 시험하시는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청해야 할 것은 악의 세력이 우리를 유혹할 때 그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험과 유혹이 함께 온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고, 사탄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에덴동산의 선악과 이야기입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시험하셨고, 사탄은 “선악과를 따먹어야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이처럼 시험과 유혹은 각기 다른 주체에게서 오지만 같은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과 어둠의 세력이 주는 두 가지 상충한 가치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른 분별을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 기준에 근거해서 우리의 행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의 기준은 하나님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시험이나 유혹이 공통으로 건드리는 것은 우리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즉, 우리 삶의 중심으로 무엇을 택할 것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번 철저한 순명(順命)을 요구하십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여기서는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고 하십니다. 전자의 “가거라”는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시는 것이요, 후자의 “가거라”는 “미래와의 단절”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 준 ‘첫 믿음’은 아무것도 보장돼 있지 않은 미래를 향해 조건 없이 내어 딛는 발걸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고 확실하다는 보장을 얻은 다음에 걸어간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되는 일체의 것－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과감히 버리는 행위였습니다. 이렇듯 새로운 인간 아브라함의 특징은 ‘떠남/脫出’으로 규정됩니다. 가진 것에서 자기를 느끼고 그것으로 보장을 삼으려는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에서 차단되어 있습니다. 신앙, 그것은 새로운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차단된 세계에서 과감히 자기를 탈출시키며 이 탈출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불가능에서 태어난 이삭의 출생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희망은 이제 현재 속에 싹트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순수 미래적인 것이 아니고 현재적인 것이 된 것입니다. 이제 눈을 미래로 향하지 않고 여기 있는 현재로서의 이삭에게만 집중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적어도 미래의 한끝을 손에 잡았고, 그러기에 미래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와 연속된 줄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제 이 줄만 착실히 잡으면 됩니다. 이삭을 잘 키우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현재에 정좌할 자리가 마련됩니다. 그러면 믿음이라는 줄을 늦추어도 됩니다. 아니 놓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미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을 꽉 잡고 잘 키우기만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이렇듯 이삭의 출생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변질할 위험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로 이 한 가닥 희망의 닻줄을 제 손으로 끊습니다. 미래의 보장인 이삭을 과감히 하나님께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일 수 있겠습니까? 이삭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너 자신을 죽이라는 그런 뜻 아니었겠습니까? 이렇게 ‘자기’를 죽이지 않고서는, 자기가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버리지 않고서는, 따를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소유가 삶을 보장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명령이 ‘허튼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죽어야 산다,” “포기해야 얻는다”라는 것이 성경이 일관되게 입증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시험하시는 하나님’ 외에 ‘마련하시는 하나님’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을 죽였을 때, 자기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자식까지도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삭을 대신할 제물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나아가 더 큰 복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순명하는 자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는 이런 하나님 체험은 오직 철저히 순명한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일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중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둘째 아들 야곱이 이삭과 맏아들 에서를 감쪽같이 속여 축복을 가로챈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주일학교 때부터 자주 듣던 얘기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셨습니까? 아니면 “속임수는 정당치 못하다”는 윤리의 잣대로 이 이야기를 평가하셨습니까?

저는 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독한 가부장제(家父長制) 사회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무렵 여자와 아이는 남자 어른이 지닌 인간의 무게에 견주어 볼 때 티끌처럼 가벼운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여자는 비록 아내라는 아름을 얻었다 해도 집안의 남종, 여종, 소, 나귀와 같은 ‘재산목록’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실례가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거기 보면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출 20:17)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내는 ‘여자’인 까닭에 소나 나귀와 함께 남자의 ‘소유’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가부장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자권’(長子權)으로 나타납니다. 장자권이란 맏아들로 태어난 이가 가부장의 모든 권리를 물려받게 된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여자는 처음부터 열외였고, 남자도 맏이로 태어나지 않으면 권리에서 소외되었습니다. 따라서 가부장제가 장차 태어날 아이에게 전해줄 메시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일단 남자로 태어나라. 남자로 태어나되 맏이로 태어날 일이다. 아니면 평생 소외된 자로서 후회할 것이다.” 실상이 그러했기에 우리는 야곱과 에서, 쌍둥이 형제가 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다투어야 했는지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먼저 나가기 위해서, 장자권을 손에 거머쥐고 태어나기 위하여, 형제는 태 안에서부터 그렇게 다투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야곱과 에서 이야기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한편에는 가장(家長)인 아버지와 맏아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어머니와 둘째 아들이 있습니다. 집안의 모든 권력을 쥔 두 사람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맞은편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권리를 빼앗긴 두 사람이 연대하여 서 있습니다. 아버지와 맏아들. 그들에게는 이른바 기득권이 있었습니다. 관습으로나 제도로나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만한 세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철옹성 앞에 힘없는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어머니는 여자이기 때문에, 둘째 아들은 둘째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무 권리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두 진영의 갈등과 투쟁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약자인 어머니와 둘째 아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승리도 아주 일방적인 완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편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성경의 믿음이 여기에서도 실현된 것입니다.

주도면밀한 속임수, 이것이 어머니와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맏아들을 이긴 전술이었습니다. 여기서 “속임수는 정당하지 못하다”는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좀 우습습니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맏아들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로 집안의 모든 권리에서 원천적으로 소외되어야만 하는 터무니없는 관습과 제도에 대하여, 윤리는 무슨 말로 그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절차’가 아니라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눈먼 이삭이 상징하는 굳어진 가부장제는 스스로 자기 발목을 걸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속아서 온갖 축복을 몽땅 둘째 아들한테 쏟아부었습니다. 한번 뱉은 말은 쏟아진 물과 같아 다시 거두어들이거나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말을 모두 도둑맞은 에서에게 남은 것은 저주의 말뿐이었습니다.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창 27:39). 축복이란 축복은 모조리 맏아들한테만 내려주는 이 눈먼 가부장제의 결말을 보십시오. 어쩌면 단 한 가지 축복도 다른 아들을 위하여 남겨두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것은 좋은 것일수록 독차지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도전이기에 ‘축복’이 오히려 ‘저주’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독(獨)차지는 독(毒)차지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승리로 가부장제는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형 대신 아우가 가장이 되었다고 해서 가부장제가 청산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제도는 그대로 남고 지배자의 얼굴만 바뀌는 일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후로도 계속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연단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주 내용은 야곱의 귀향 이야기입니다. 형에게 돌아가기로 되어 있던 복을 모조리 가로챈 야곱은 바로 그 일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게 되어 정든 고향과 어머니의 품을 떠나 머나먼 피난길에 올랐었습니다. 가까스로 외삼촌 라반의 집에 이른 야곱은 외사촌 누이인 라헬을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7년 동안 무보수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신혼 첫날밤 아내가 라헬의 언니 레아로 바뀌는 바람에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또다시 7년간을 공짜로 머슴살이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넘어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야곱은 독특한 방법으로 자기 재산을 늘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일로 해서 라반과 그 아들들한테서 경계와 미움을 샀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향으로 야반도주를 합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의 발걸음은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자의 가벼운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자기 몫인 아버지의 축복을 아우한테 도둑맞고는 절치부심 앙갚음할 날을 고대하고 있을 쌍둥이 형 에서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에게 자기 머슴들을 앞서 보내면서 “주인의 종 야곱이 이렇게 아룁니다. 저는 그동안 라반에게 몸 붙여 살며, 최근까지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소와 나귀, 양 떼와 염소 떼, 남종과 여종이 있습니다. 형님께 이렇게 소식을 전하여 드립니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창 32:4-5)라고 문안 인사를 드리게 합니다. 그런데 머슴들이 다녀와서는 “주인어른의 형님인 에서 어른께서 지금 부하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어른을 치려고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창세 32:6)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야곱은 더욱 겁이 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가 있으니 형이 자기와 가족들을 몰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뇌물을 바쳐서라도 형의 마음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어쩔 것입니까? 자기한테 있는 것이라고는 양 떼와 소 떼와 낙타 떼뿐인 것을.

재물을 갈라서 형에게 보낼 것을 띄엄띄엄 앞서가게 하고 야곱은 드디어 얍복 나루에 도달합니다. 이제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고향 친족에게로 돌아가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 부디, 제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형이 와서 저를 치고,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죽일까 두렵습니다”(창 32:10-11). 자기 생명을 지켜주십사는 야곱의 기도는 밤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말로만 중얼거리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생사’(生死)를 걸고 하는 씨름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무엇으로 야곱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까? 야곱의 환도뼈를 꺾어서 다리를 절게 하셨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살려달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오히려 그의 몸을 불구로 만드셨습니다. 대체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야곱의 그 애절한 기도에 이런 식으로 응답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그다음 날 야곱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형 에서가 칼잡이 400명을 대동하고 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동생을 죽이겠다고 폭력배들을 동원한 형이 동생에게 뛰어와서 그 목을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 순간 야곱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금방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야곱이 형의 축복을 가로챈 덕분에 지난 20년 동안 모은 재산으로 비단옷을 입고 기름기가 흐르는 유들유들한 모습으로 나타났더라면 여지없이 에서의 칼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에서는 분명히 그런 모습의 동생을 상상하고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마주한 야곱의 몰골은 자기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밤새워 무릎 꿇고 기도하느라고 옷은 구겨져 있었고 땀에 젖어 있었으며,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야곱은 다리까지 절뚝절뚝 절고 있었습니다. 그때 형 에서의 마음속에 어린 시절의 사랑이 왜 회복되지 않았겠습니까? 함께 물장구치며 놀던 생각이며, 함께 꽃을 보며 나비를 쫓던 옛날 추억들이 왜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에서는 이제 장애인의 몸으로 돌아온 불쌍한 동생에게 뛰어가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리가 부러져서 절게 된 일은 고통이나 벌이 아니라 야곱을 살려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던 것입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때론 우리가 건강을 기원할 때 질병을 주십니다. 합격을 기원할 때 불합격으로 응답하십니다. 성공을 바랐는데 실패로 대답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우리 눈으로 보면 이런 기도 응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눈앞의 실패만 보면 안 됩니다. 그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기 원하시는 더 큰 은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시며,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요셉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문자 그대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드라마였습니다. 꿈쟁이 요셉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귀염둥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복이 곧장 화를 불러들였으니, 형들의 질투와 미움을 사서 살해당할 뻔한 뒤, 가까스로 목숨만을 건져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머나먼 타국으로 팔려갑니다. 비참한 노예로 전락한 요셉은 이집트에서 바로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가노(家奴)가 됩니다. 노예 생활 10년 만에 마침내 주인 보디발이 요셉을 잘 보아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의 관리인으로 세워 모든 일을 그에게 맡깁니다. 명실상부한 명문 귀족 집안의 제2인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이 다시 화를 부릅니다. 보디발의 젊은 아내가 요셉을 유혹한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한테 거절당한 상전의 아내는 화가 나서 요셉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무고(誣告)했고, 결국 요셉은 강간 미수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무기수로 살게 됩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집안의 이인자가 이번에는 죄 없는 죄수로 전락한 것입니다. 3년 동안의 옥살이 중에 요셉은 이집트 왕 바로의 시종들을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바로의 꿈을 풀어 주게 됨으로써, 마침내 요셉은 감옥에서 풀려났을 뿐 아니라 일약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이렇듯 온갖 시련과 역경을 헤치고 끝내 이집트의 통치자 자리에 서게 된 요셉은 이집트란 나라를 기근에서 건졌을 뿐 아니라, 나아가 굶어 죽게 된 아버지와 형제들, 즉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이 겪은 이유 없는 고난은 오히려 그가 속해 있던 야곱(이스라엘) 가문 전체를 가난의 질곡에서 구원해 내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적 계획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비록 요셉은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었지만, 바로 그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 도구가 된 것입니다. 요셉처럼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에 직면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볼 줄 아는 시각입니다. 고난 자체가 아니라, 그 고난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문제 뒤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문제, 우리의 고통보다 더 큼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계획을 넘어섬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가장 악한 것에서도 선을 끌어내실 수 있는 분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요셉 이야기의 계속으로 야곱 일가가 어떻게 이집트로 이주했는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7장을 보면 야곱이 이집트 왕 바로를 알현(謁見)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가 야곱에게 “노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하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야곱은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 47:8-9)라고 대답합니다. 험악한 세월이었다는 야곱 자신의 회고처럼 실로 그의 생은 쉽지 않은 생이었습니다. 하나의 투쟁이 지나가면 또 다른 투쟁이 다가오는 생, 한마디로 말해 야곱의 생은 투쟁과 집념의 삶이었습니다. 실제로 야곱은 자신의 의지가 담긴 집념의 행위들을 통해서 자기 생을 조각해 나갔습니다.

그의 첫 번째 집념은 다름 아닌 ‘장자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 야곱은 ‘뒤꿈치’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유래했는데, 동사로는 ‘약탈하다, 간계를 부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에 어머니 뱃속에서 자기가 먼저 나오려고 쌍둥이 형 에서의 발꿈치를 꽉 움켜잡고 출생의 ‘순서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또 그는 후에 장자권에 대한 집념 때문에 사냥에서 돌아온 허기진 형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나아가 눈먼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가 받을 아버지의 축복마저 가로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일 때문에 야곱은 자기 집과 고향에서 도망쳐야 했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살아생전에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 집념은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집념 때문에 그는 인색하고 고약한 장인 라반 밑에서 돈 한 푼도 못 건지며 14년을 머슴처럼 일해야 했습니다. 과거에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였는데, 이번에는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세 번째 집념은 복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얍복강을 건널 때, 그는 하나님의 천사와 대면하고 밤새 그와 씨름을 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축복을 받아내려는 집념 때문에 그 천사를 놓아주지 않았고, 결국에는 환도뼈를 채여서 평생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또한, 세겜에 정착한 이후에는 성미가 급하고 잔인한 성격의 자녀들 때문에 항상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누이 디나가 겁탈당한 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살육한 후에는 언제 어디에서 세겜 사람들이 복수하러 나타날지 몰라 늘 불안하게 살아야 했고, 결국에는 베델로 이사해야 했습니다. 그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맏아들 르우벤이 자기 소실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불륜을 저질러 그를 노엽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고통은 고향 땅에 돌아오자마자 그가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내 라헬을 길에다 묻어야 했던 사건입니다. 이어 애지중지하던 아들 요셉이 들짐승에게 무참하게 찢겨 죽었다는 변고 소식을 들어야 했고, 그런 일이 있은 지 21년 뒤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식량이 떨어지자 어린 손자들이 배를 움켜쥐고 땅에 뒹구는 꼴을 보아야 했습니다. 또 막내아들 베냐민을 이집트 땅으로 보내면서 그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야곱의 생은 거친 풍파를 헤쳐 온 험난한 생이었고,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야곱의 생이 비참했다 하더라도 그의 아들 요셉만큼 비극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유랑생활을 했지만, 요셉처럼 노예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야곱은 14년간이나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을 했지만, 자유인이었고, 옆에는 사랑스러운 연인 라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유인이 아닌 종의 신분으로 일했고 상전의 부인으로부터 성적 시달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아가 요셉은 언제 풀려날지도 모르는 무기수로서 감옥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요셉의 생은 아버지 야곱의 생보다 더 고통스러웠지만, 창세기를 읽어보면 요셉의 생은 봄날 순풍에 돛단배 가듯 평탄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무슨 까닭에서 그럴까요? 야곱의 집념과 요셉의 순종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야곱은 집념이 컸던 만큼 하나님께 대한 항복이 늦었습니다. 한편, 요셉은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리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고통보다는 축복이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집념의 삶을 산 야곱 역시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통해서, 그리고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어머니의 고향 하란으로 도망가던 중 베델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또 외삼촌 라반에게 몸 붙여 사는 동안에도 그는 자기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에서 또다시 축복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가 제이, 제삼 자꾸 자신이 복 받았음을 확인하려 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려는 욕심도 있었겠지만, 거꾸로 그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반증(反證)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인 야곱은 집념이 컸던 만큼 하나님께 대한 항복도 늦었습니다. 항복이 늦었기에 그의 생은 험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인도하심에 자기 삶을 맡기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자기 삶을 개척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보며 우리는 나 또한 야곱처럼 순종보다는 집념이 내 생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야곱의 축복과 유언, 그리고 죽음과 장례 이야기입니다. 이어서 짤막하게 요셉의 죽음과 장례 이야기도 나옵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 모두와 작별하기에 앞서(49장)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자기 양자로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의 다른 아들들과 같은 족장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가 한데 뭉쳐 민족이 되었을 때, 요셉의 후손들은 열두 지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두 지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의 후손들은 열두 지파 안에 들지 않습니다. 이들은 전체 이스라엘을 위하여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토지 소유에 어떤 정해진 몫도 지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 18:20-24 참조).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장면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첫째, 그의 아버지 이삭과는 달리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똑같은 복을 빌어준다는 점입니다. 독(獨)차지는 곧 독(毒)차지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작은아들 에브라임을 큰아들 므낫세보다 앞세웠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후에 에브라임 지파는 형님 지파 므낫세 보다 뛰어나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이끌어가는 지파가 됩니다. 야곱이 앞날을 미리 내다본 것으로 되어 있는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가나안 땅에서 지파들로 조직된 다음 시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즉, 출애굽 이후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49장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49장은 보통 야곱의 축복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전하는 사후예언에 가깝습니다. 특히 르우벤(49:3-4), 시므온과 레위(49:5-7), 잇사갈(49:14-15), 베냐민(49:27)의 경우에는 비난과 저주를 받는데, 이는 가나안 정착 이후 각 지파의 실제 운명을 다룬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번도 특별한 역할을 맡지 못한 르우벤 지파는 민수기 32장 다음으로는 사사기 5장 15~16절에서 마지막으로 나오고 비교적 일찍 멸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시므온 지파는 일찍이 유다 지파로 흡수됩니다.

야곱은 죽은 후에 이집트가 아닌 가나안의 막벨라 동굴에 안장됩니다. 막벨라 동굴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샀던 것입니다(창 23장 참조). 성경의 여인 중에 유일하게 평생 살아온 햇수(127년)가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모 사라는 마지막으로 자기 가족을 위해서 또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큰일을 해주고 갔는데 그것은 묘지 땅을 마련해 주고 간 것입니다. 즉, “너와 네 후손이 땅을 차지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의 죽음에서 비롯된 막벨라 무덤의 구매로부터 실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막벨라 무덤은 약속의 첫 실현이라는 의미 말고도 혈연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는 장소로서의 의미도 큽니다. 일 년에 몇 번씩 모여서 조상을 추모하며 유대와 일치를 확인하는 장소가 바로 묘지이기 때문입니다. 묘지는 ‘우리가 한 근원에서 나왔구나, 우리의 뿌리가 같구나’ 하는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그런 장소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막벨라 동굴을 매우 큰 성지로 여기고 있고, 1967년도에 이곳을 탈환하기까지 무려 700년의 세월을 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축복의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성조사에서 저들이 차지한 땅이라고는 겨우 자신들의 시신을 안장한 묘지 땅 한 조각에 불과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성조들의 처지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히브리서 저자도 우리처럼 여기에 대해서 많은 묵상을 했는데, 그는 히브리서 11장 13절 이하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지상의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성조들의 유산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남기고 간 작은 묘지 터가 아니었고, 하늘 본향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살아간 신앙의 유산이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