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하나님 : 실재의 심장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확고한 고백(robust affirmation)이 없다면, 기독교는 말이 되지 않는다(makes no sense). 또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하는가”(see) 하는 문제, 즉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며, 하나님과 이 세계의 관계, 하나님의 성격(character)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1. 하나님의 실재

∙하나님은 “실재하는가?”(Is God real?) 이것은 오늘날 서구 문화에서 핵심적인 종교적 질문이다.

∙현대 세계에서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것이 “세계관”(worldview)이다. 세계관은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무엇이 실재하는 것이며 또한 무엇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이고, 우리가 실재를 바라보는 ‘렌즈’(사회화 과정을 통해 우리 안에 내면화된 세계관은 실재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형성)이다.

∙매우 기본적인 차원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세계관이 있는데, 종교적인 세계관과 비종교적인 세계관이 그것이다. 종교적인 세계관에는, 윌리엄 제임스의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그 이상”(More)이 있다. 그러나 비종교적인 세계관(=현대적 세계관)에는 “그 이상”이 없다. 단지 “이것” 뿐이다.

∙지난 300년 동안, 이 두 종류의 세계관이 서구 문화 속에서 충돌해왔는데, 이 때문에 우리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종교적 문제는 하나님의 실재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현대적 세계관에는 하나님을 위한 여지(foundational place)가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이 세계관을 통해 하나님의 실재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하나님에 관해 심각하게 의심하게 되어, 무신론(atheism) 혹은 불가지론(agnosticism)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물증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신 존재 증명은 불가능). 그러나 자료(data)는 하나님의 실재를 암시한다. 예: 집단적 증언, 종교 체험, 포스트모던 과학 등.

∙과학과 종교 사이의 충돌은 많은 부분에서 사라지고 있다. 종교와 포스트모던 과학은 모두 “그 이상”을 가리키고 있다.

2. 하나님에 대한 두 개념

∙기독교 역사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고,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초자연적 유신론”(supernatural theism)이고, 다른 하나는 “범재신론”(panentheism)이다. (이 두 개념 다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초자연적 유신론은 하나님을 사람과 비슷한 인격적 존재(a personlike being)로 상상한다. 매우 오래전에 이 사람과 비슷한 인격적 존재가 자신과는 분리된 세상을 창조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은 완전히 구분된다. 즉 하나님은 “하늘 위에”(up in heaven), “저 밖”(out there) 우주 너머에 계신다.

∙“저 밖에” 계신 하나님은 때때로 이 세상에 개입하신다. 성서에 보도된 놀라운 사건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개입하신 예들이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개입하시는데, 특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형태로 개입하신다.

→ 많은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란 말을 이해하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무신론 관련 저서의 저자들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다.

→ 따라서 “유신론의 종말”이 아니라 “초자연적 유신론의 종말”이라고 해야 한다. 그 대안은 무신론(無神論)이 아니라 범재신론이다.

∙범재신론은 하나님을 “저 밖에” 계신, 인간과 같은 인격적 존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삼라만상을 둘러싸고 계신 영(the encompassing Spirit)으로 생각하여, 그 영 안에 삼라만상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주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in) 있다.

∙중요한 점은 이 하나님 개념이 하나님을 우주로 환원시키거나, 하나님을 우주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삼라만상을 둘러싸고 계신 영으로서 하나님은 삼라만상 이상이며, 삼라만상은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바로 여기에” 계실 뿐만 아니라 “바로 여기 그 이상”(more than right here)이다.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 범재신론은 현대에 창안한 개념이 아니라, 고대의 개념이며 전통적인 개념이다.

→ 물고기가 물속에 있듯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

→ 이레나이우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하며, 하나님은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다.”

→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완전히 뒤바꿔버린다. 이제 질문은 ‘존재함’(is-ness)이 존재하는지 묻는 게 아니라 ‘존재함’이 무엇인지 묻는다.

→ 하나님은 우리를 에워싼 불가사의하고 신성하며 놀랍고 장엄한 ‘그 이상의 무엇’인 ‘존재하는 것’을 부르는 이름이다.

→ 하나님을 창조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곧 이 우주가 매순간 그 존재를 하나님에게 위탁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범재신론은 “하나님의 개입”(intervention)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의도(intention)”와 “하나님의 상호작용”(interaction)에 대해 말한다. 즉 하나님을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직접적 원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 그리고 그 아래에 계시는 것으로 이해한다.

→ 하나님이 ‘바로 여기’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실재라면, ‘개입’이란 말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하나님은 개입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에 ‘관여’한다. 우리가 신성과 관계 맺고, 신성에 우리를 개방하며, 신성에 참여함으로써 불가능했을 일들이 가능해진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행동은 서로 협력, 즉 상호작용할 수 있다.

∙범재신론은 기도의 효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재신론은 기도의 효력이나 비범한 사건을 하나님이 개입하신 결과로 보지는 않는다. (9장에서 다룰 예정)

∙범재신론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모두를 강조하지만, 초자연적 유신론은 그 현대적 형태에서 단지 하나님의 초월성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범재신론이 초자연적 유신론보다 실제로 중요한 점에서 보다 더 성서적이며 정통적이다.

∙하나님에 관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실재”(isness)를 이름 붙이며 이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존재, 비존재 문제가 아니라 현존하는 것에 대한 이해의 문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언어 너머에 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 하나님이라는 말로 지칭하는 실재는 모든 말로도,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어떤 개념으로도 포착해 낼 수 없다.

→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개념도, 하나님이란 말이 지시하는 대상에 대한 어떤 설명도, 그것이 초자연적 유신론이든 범재신론이든, 완전할 수 없다.

3. 인격적인 하나님

∙하나님은 인격적(personal)인가? 만일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인격적이라는 말인가?

∙Borg는 “도매상 하나님”(wholesale God)과 “소매상 하나님”(retail God)이라는 개념으로 위 질문에 대답한다. “도매상 하나님”은 어느 특수한 종교전통의 언어로부터 추상화된 하나님, 즉 철학적 신학의 하나님이다. “소매상 하나님”은 여러 종교에서 부르는 신성함으로, 세계 종교들의 경전과 이야기들의 주인공으로서의 신이다.

∙전형적으로, “소매상 하나님”은 인격화(人格化)되어, 마치 하나님이 인간과 같은 존재처럼 인격적인 특성이 있는 존재로 일컬어진다. 이런 인격화는 (“소매상 종교”라 부를 수 있는) 종교의 자연적인 언어이며, 경건과 예배의 자연스러운 언어이다.

→ 하나님이 별개의 인격적 존재를 지칭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의인화하는 것은 나쁠 게 없다. 의인화는 경배와 헌신, 관계를 표현하는 언어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다만 하나님에 대한 의인화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일 따름이다.

∙하나님을 인격화시킨 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초자연적 유신론에 도달하게 되며, 관련된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표현들이 갖는 세 가지 차원의 의미

(1)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인격적이다.

(2) 하나님의 인격성은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의 계약(covenant)이라는 개념의 중심이다.

(3) (인격적)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인격적인가?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인격을 초월하는”(transpersonal), 즉 인격적인 것 이상 존재라고 말한다. 이 용어는 “비인격적”(impersonal), 즉 “인격적인 것보다 못한” 존재라는 말보다 합리적이다.  

4. 하나님의 성격/품성(character)

∙우리가 하나님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충실함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며, 기독교인의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결정짓는다.

∙하나님의 성격을 상상하는 첫 번째 방식은 하나님을 요구와 보상의 하나님(a God of requirement and rewards)으로 생각하는 방식이다. 고대 세계의 왕처럼, 하나님은 법률을 제정해주는 분이며 재판장으로서, 그의 요구에 사람들은 반드시 부응해야만 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군주적 모델”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법적인 언어들을 통해 표현된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희생 제사와 회개를 통해 우리의 죄를 해결할 길을 마련하셨고, 또한 예수의 죽음이라는 희생을 통한 우리의 용서와 구원을 가능하게 해주셨다. 이것이 진리라고 믿는 것이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며 구원의 수단이다. 하나님의 성격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면,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의 요구가 많든 적든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성격을 상상하는 두 번째 방식은 하나님을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a God of love and justice)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과 정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성서에서 정의는 사랑의 사회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의 하나님은 사회정의를 향한 열정을 지닌 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을 사랑하신다. 단지 나와 너만이 아니라, 단지 우리만이 아니라 삼라만상 모두를 사랑하신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계속되는 불의에는 그 마땅한 결과가 뒤따를 것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인의 삶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더욱 자비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은 관계와 변화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성격에 대해 이처럼 서로 대조되는 두 가지 방식을 달리 표현하면, 율법의 하나님(God of law)과 은총의 하나님(God of grace)이다. 이 두 개념 사이의 대조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의 차이점도 아니며,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차이점도 아니다.

∙바울과 루터 그리고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철저한 “은총”의 하나님을 강조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신 것은 무조건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믿거나 행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 “만일에(if)”라는 조건절이 덧붙여지면, 은총은 조건적인 것이 되어, 절대 은총이 아닌 것이 된다.

∙무조건적인 은총(unconditional grace)은 내세(afterlife)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위한 기초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위한 기초가 율법인가 아니면 은총인가, 요구와 보상인가 아니면 관계와 변화인가? 은총은 후자를 확증한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 그리고 은총의 하나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기독교의 메시지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기독교인의 삶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믿을 필요가 있거나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믿거나 행동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의 삶은 이미 참된 진리, 즉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터득하는 것이며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맺으려고 의식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격에 대한 질문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다. 기독교는 요구들에 관한 것인가? 즉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만 하는 것들이 여기에 있다는 식의 요구들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는 관계와 변화에 관한 것인가? 즉 “여기에 길이 있으니 이 길을 따르십시오!” 하는 것인가? 이 두 가지 방식 모두에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는 협박이며, 다른 하나는 초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