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기 19장 말씀 순례

(1)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 (19:8)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종종 성경이 사람의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창세기 19장 1- 11절의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아보려고 천사 둘을 소돔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거기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날 밤 소돔 사람들은 롯의 집으로 몰려와 “오늘 밤에 당신의 집에 온 그 남자들이 어디에 있소?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리고 나오시오.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 하겠소” 하고 소리치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이 원했던 것은 동성(同性)에 대한 성폭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건이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자 롯이 바깥으로 나가서 그들을 달랜답시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들, 제발 이러지 말게. 이건 악한 짓일세. 이것 보게, 나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 아이들을 자네들에게 줄 터이니,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 보호받으러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이 아버지가 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아무리 시간과 문화가 차이가 나도 그렇지, 자기 집에 묵고 있는 손님을 보호하겠다고 자기 딸을 폭도들에게 내어주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롯은 두 딸의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으면 이렇게 이야기했을까요?

이에 반해서 마태복음 10장 29-3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와는 정반대로 들립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예수님은 동전 한 냥에 팔리는 참새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땅에 떨어져 사람의 손에 넘겨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얼마나 더 소중하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사람은 참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한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자기 딸을 폭도에게 내어주겠다고 말하는 롯의 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각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는 예수님의 편입니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까, 아니면 측량할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입니까?

가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제되어 있는 가치와 요구되는 가치가 그것입니다. 이 둘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할 수는 없지만 구별해서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신약성경학자 불트만(Rudolf Bultmann)이 쓴 명저 󰡔신약성서신학󰡕 가운데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성경의 서술형은 곧 명령형이다.” 이 말은 성경이 ‘너는 이렇다’고 서술형으로 말하면, 그 말 안에는 ‘너는 이래야 한다’는 명령의 뜻이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너는 이렇게 살아라’고 명령한다면 그 안에는 ‘너는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긍정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명하시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한 생명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하면 그 말 안에는 ‘너는 네 생명, 혹은 남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명령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언어에서 ‘긍정’은 그냥 긍정이 아닙니다. 성경이 ‘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맞아! 난 온 천하보다 귀한 존재야!’라고 생각하고 우쭐하는 데 그친다면 그건 성경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나를 천하보다 귀중한 존재로 긍정하기 때문에 나는 내 생명과 시간과 내가 가진 온갖 유무형의 재산들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사용해야 하는 것이고, 또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시간과 유무형의 재산을 나의 그것과 똑같이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에는 전제되어 있는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모든 생명에는 요구되는 가치가 있습니다. 나와 남의 생명을 천하보다 소중한 것으로 만들라는 요구를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직까지 이뤄놓은 것이 보잘 것 없고 또 앞으로도 대단한 일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생명은 천하보다 소중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삶을 천하보다 더 귀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그 사람 자신입니다. 그러니 절대 스스로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2)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19:26)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이 있고, 또 그것이 영화화된 적도 있습니다. 적어도 2천년 가까이 지하에 묻혀 있던 이 고대 도시가 발굴되면서 당시의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화려한 도시가 주후 79년에 화산 폭발로 인해 순식간에 매몰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다 죽어버렸습니다. 지금도 폼페이에 가면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인간 화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 도시는 이처럼 비참하게 일순간에 망했을까요? 화산이 터져 그런 거라고 설명하면 그뿐이지만,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어떤 수수께끼가 있지는 않을까요?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극에 이른 죄에 대한 값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징벌에 대한 경고의 상징으로 폼페이를 듭니다. 특히 성적 문란을 문제 삼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벽화들에 의하면 폼페이는 오늘 우리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폼페이가 멸망한 이유의 전부일까요?

기록에 의하면 이 도시에 지진이 일기 시작하고 화산이 폭발할 징후를 보인 것은 주후 63년부터라고 합니다. 주후 79년에 이 도시가 완전히 매몰되었으니, 적어도 16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계속 위험에 대한 경고를 받은 셈입니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왜 그곳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참변을 당했을까요?

상상이긴 하지만 집의 구조나 목욕탕, 정원을 가꾼 것을 보면 지금의 도시 생활로도 부족할 만큼 부요하게 살았는데 역시 저들이 쌓아 올린 그 부 때문에 위험을 보면서도 차마 버리고 떠날 수가 없어 머뭇거리다가 끝내 그런 참변을 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화석화한 시체들을 보면 거의가 무엇인가를 끌어안은 채 죽었습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가 귀하게 여기던 보물을 마지막 순간까지 안고 뛰다가 죽은 것이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위기가 왔는데도 이미 소유한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에 결국은 탈출할 기회를 잃은 비극적인 모습을 폼페이는 지금도 생생히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소돔이 멸망한 이야기에도 이와 비슷한 요소가 있습니다. 소돔성의 모든 백성들은 그만두고 ‘롯’의 가정만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저들은 소돔이 멸망할 예고와 함께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향해 달려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았기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역시 추측이 되겠지만, 뒤를 돌아다 본 것 역시 자기의 소유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미련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3) “아버지에게서 씨를 받도록 하자” (19:32)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는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두 딸의 근친상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섹스 스캔들 이야기가 다른 책도 아닌 성경 중에 등장하여 좀 놀라셨지요? 그런데 성경의 저자는 왜 이 껄끄러운 이야기를 성경에 포함시켰을까요? 모르는 척 슬며시 삭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가장 그럴듯한 해석 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증오의 대상인 모압인들과 암몬인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흑색선전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 이야기의 결론이 다음과 같이 맺어짐에서 연유했습니다.

“롯의 두 딸이 드디어 아버지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큰 딸은 아들을 낳고, 아기 이름을 모압이라고 하였으니, 그가 바로 오늘날 모압 사람의 조상이다. 작은 딸도 아들을 낳고, 아기 이름을 벤암미라고 하였으니, 그가 바로 오늘날 암몬 사람의 조상이다.” (창 19:36-38).

이 견해에 따르면 성경의 저자는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앞서 5강에서 “10장 1-32절에 민족들의 일람표가 기록된 이유는 홍수 이후에 내린 하나님의 축복, 즉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거기에서 번성하여라’(9:7)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며(10:32), 인류가 한 형제임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나아가 모든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하고 보존하며 축복한 민족이라는 점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타민족이나 타인종에 대한 저주와 멸시는 성경의 입장과 명백히 어긋납니다”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이야기가 ‘흑색선전’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9장 36-38절의 말씀이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 열쇠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롯의 두 딸이 낳은 아들들은 암몬족과 모압족의 시조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룻이라는 이름의 ‘암몬’ 여자가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할 운명을 타고났는데, 이 부부의 혈통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의 탄생과 곧바로 연결됩니다(룻 4:18-22). 또 나아마라는 이름의 ‘암몬’ 여자는 솔로몬 왕의 1,000명 후비 가운데 한 사람인데, 솔로몬의 왕위 계승자를 낳습니다(왕상 14:21). 그런데 유대교의 전통에 의하면 메시아는 다윗과 솔로몬의 가문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통을 이어받아, 기독교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 솔로몬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마 1:1-16 참조).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쓸데없다고 하지만, 만약 롯의 두 딸들이 없었다면 그리스도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롯의 두 딸들의 행위는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시각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창세기 서두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생명을 주신 분임을 증언합니다. 또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창 1:28)는 것이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에게 최초로 그리고 거듭해서 강조하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하나님이 생명의 제공자일 뿐만 아니라 생명의 탈취자이며, 파괴자임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는 하나님이 자기 피조물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했던 최초의 경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지옥 불이 소돔에 비처럼 떨어지기 오래 전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생존할 가치가 없다고 판정했으며, 선택한 생존자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과 만물을 지상에서 멸망시키는 작업에 들어간 바 있었습니다. 물론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 마음을 바꾸셨다는 것도 우리는 앞에서 배웠습니다.

이제 소돔과 고모라는 파괴되어 폐허로 변했고, 인적이 사라진 유다 사막의 황무지에는 오직 롯과 그의 딸들만 남았습니다. 따라서 롯의 딸들은 적당한 남편을 찾을 가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처럼 인간의 대는 이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롯의 딸들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아이를 잉태해서 지상에 인종을 퍼뜨려야 할 임무를 받아들였을 때, 근친상간의 터부조차도 무시되어야만 했습니다.

술에 취한 롯에 대한 근친상간 사건은 성경이 인류의 운명을 두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분명히 보여주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첫째, 자녀를 낳아 기르는 단순한 행동은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는 가장 근본적인 명령을 이행한 것이며,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롯의 혈통을 보존하는 행위였습니다. 만약 롯의 딸들이 아비의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름과 혈통은 소돔과 고모라의 다른 희생자들의 죽음과 함께 사막의 동굴 안에서 영원히 끊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둘째, 성경 저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은 롯에게 아들이자 동시에 손자인 두 남자아이의 탄생은 인류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인류 창조에서부터 메시아에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롯의 딸들은 성경에 그 이름이 명시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무명의 두 딸은 대담하며 용기 있고 지혜로운 여성들이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들은 산 위의 피난처에서 내려다본 폐허와 인종공백지대에 인간생활을 되살리기 위해서 근친상간에 대한 터부를 기꺼이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거역은 창세기의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마침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저들의 후손이 메시아의 계보에 포함되도록 하기까지에 이르렀던 것입니다.순례

2. 이번 주 과제

(1) 창세기 20-22장을 을 꼼꼼히 읽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