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라함이다 (창 17:5)

성서 인물들의 이름은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하나님과 관련하여 그들의 신원과 사명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람과 사래를 통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경에서 하나님에 의해 이름이 바뀐 첫 번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17:5)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 새 이름은 그의 신적 사명을 드러냅니다. 이제부터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당신 구원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십니다.

랍비 라쉬에 따르면, ‘아브람’이란 이름은 ‘아람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곧 아람족의 조상이란 뜻입니다. 한편 새로운 이름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그러니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뀐다는 것은 그가 일개 유목민의 족장에서 이스라엘의 아버지, 나아가 모든 믿는 이의 아버지가 되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라도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사명을 받습니다(17:15-16). 사라는 왕비 또는 공주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름이 ‘사래’에서 ‘사라’로 바뀌는 것은 한 족장의 어머니에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나아가 모든 민족의 어머니가 되는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영적 차원에서 신분의 변화를 뜻합니다. 아브람이 새로운 이름인 아브라함으로 불림으로써 영적으로 새로운 존재, 변화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이름을 받으면서 추가된 단어 하나를 통해 설명됩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면서 추가된 히브리 단어 하나는 ‘헤이’입니다. 이 단어는 보통 하나님을 가리키는 약어로 사용됩니다. 새롭게 주어진 이름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약자 헤이가 추가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셨음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 안에 존재하시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안에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을 만큼 결합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2)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이다 (창 17:11)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13년 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계약을 재확인시켜 주시면서 첫 계약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을 추가시키십니다. 그것은 ‘언약의 표’로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할례를 받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할례는 본래 몽고족과 인도-게르만족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행해지던 고대 관습 중 하나입니다. 가나안의 셈족들과 이집트에서도 위생적인 이유로 또는 성인 의식이나 혼인 의식과 관련하여 실시하였고, 이스라엘도 가나안 정복 이후 이 관습을 받아들였습니다(수 5:2-9 참조). 그런데 사제계 저자는 종교적 의미가 별로 없던 이 관습의 의미를 계약과 연결하여 하나님에게 속한 백성의 표지로 변화시켰습니다. 또한 성인 의식이던 할례를 생후 팔 일 만에 실시함으로써 이스라엘 남자의 일생 전부가 하나님에게 바쳐졌음을 나타내는 신앙의 증표로 삼았습니다.

여기서 ‘표’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오트’는 그리스어로 ‘스티그마’, 곧 ‘낙인’에 해당됩니다. ‘낙인’은 육체에 무엇인가 표지를 남겨두는 것을 지칭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기 가축을 다른 사람의 것과 구분하기 위해, 가축의 엉덩이에 불에 달군 쇠 인장으로 표지를 남겼습니다. 또 노예들이 자기 소유물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들의 이마나 팔에 표지를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몸에 새긴 낙인은, 그들이 하나님 소유의 백성 곧 ‘made in God’이란 표지입니다.

할례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 요소 중 하나가 된 것은 바빌론 유배 시대 이후입니다. 사제계 저자는 유다의 멸망으로 인한 정치적인 붕괴, 전통 및 생존과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고 공동체를 단합시키려 했습니다. 그는 할례를 하나님의 약속에 포함시킴으로써 할례에 신성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하나님과 하나님께 의존하는 백성의 상호교환적인 계약으로까지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계약의 불이행은 유대 공동체의 붕괴를 뜻하므로, 계약의 표인 할례는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준수되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할례가 중요시된 것은 할례를 하지 않는 바빌론 사람들과 이스라엘 민족을 외적으로 구분해 주는 표지로서, 민족일치의 상징이자 신앙표현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3) 그들을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창 18:2)

창세기 18-19장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천사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고대 근동 유목 사회의 미풍양속이자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그네 환대법을 통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나그네에게 보여준 태도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의인의 전형입니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는 믿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계명과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40)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게까지 이릅니다.

반면 소돔성 주민들이 나그네를 유린하려는 행위는 악의 절정으로 보입니다. 오갈 데 없는 나그네를 자기네 쾌락의 도구로 삼는 행위는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서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잔악성입니다. 나그네로 찾아온 세 천사를 환대한 아브라함은 결국 하나님을 대접한 것이고, 내년 봄에 아들을 얻게 된다는 생명의 복음을 듣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은 유황불의 심판을 받습니다.

(4)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창 18:23)

소돔은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들려오는 아우성을 들으셨고, 소돔을 멸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런데 소돔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는 땅이었으므로 하나님은 소돔을 멸하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계획을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다 듣고 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획에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은 말로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당신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면 공정해야 합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쓸어버린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성안에 50명이라도 의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래도 그곳을 쓸어버리시렵니까? 아니면 그 50명을 보고 도시 전체를 용서하시렵니까?”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이는 이전까지 아브라함이 보여줬던 순종적인 태도와는 사뭇 다르기에 매우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더욱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의인 50명만 있으면 그 사람들을 보아서라도 다 용서해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숫자를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으로 줄여가면서 끈질기게 하나님과 ‘담판’을 했습니다. 상거래를 하면서도 그렇게 물건 값을 깎으려 하면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떼에 가까운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마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수용적인 태도에 놀랐을 것입니다.

협상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소돔성에서 의인 10명을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소돔성은 멸망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결과가 그렇게 되리라고 알고 계셨기 때문에 아브라함과의 ‘담판’은 별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성경을 그렇게 읽으면 잘못 읽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고, 결국 소돔성은 망하게 예정되어 있었다고 읽으면 안 됩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과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네 가지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털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통고’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토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토론을 벌이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홀로 전권을 행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 협상의 주도권은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에서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늘 제안하고 하나님은 수동적으로 그 제안을 수용합니다.

셋째, 의인에게는 상을 주고 악인에게는 벌을 준다는 보상신학이 여기서는 철저하게 부정됩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10명만 따로 떼어내서 그들만 구원해달라고 청하지 않고, 그 10명 때문에 성안의 모는 주민을 구원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의인 10명 이외에도 나머지는 ‘도맷값’으로 구원받는 셈입니다. 이래서는 보상신학의 질서가 서지 않습니다. 보상신학에서 ‘도맷값’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청을 하나님이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아니더라도 구원해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강철 같은 원칙이 아닙니다. 단단한 돌에 새겨진 불변의 법칙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 원칙을 사람에게 강요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단 내려진 결정은 뒤집을 수 없다”는 원칙은 하나님의 원칙이 아닙니다.

이렇듯 이 이야기에는 사람의 도전과 저항에 대한 하나님의 수용과 변화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변하는 법칙이 아닙니다. 대홍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일반적인 기대를 넘어서 스스로 변화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은 저주와 처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심판에 앞서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축복할 근거를 찾지 못해 애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5)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창 18:32)

창세기 18장 16-33절의 대화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실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항의를 하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인들의 운명만이 아니라 그 전체가 살 길이 없는가 하는 문제로 바꾸어 간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첫 단계에서 이스라엘 전 민족이 의로운 민족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희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은 그렇지 못했고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기대는 날이 갈수록 희미해졌습니다. 그러자 주전 7세기경부터는 개인에 대한 신앙이 싹트고 소위 ‘남은 무리’ 사상이 등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실망 속에서도 이 ‘남은 무리’ 신앙으로 인해 희망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집단과도 같은 의로운 핵심체는 계속 나타나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한 명이라도 참된 의인이 있다면 그를 통하여 새로운 살길이 열릴 것이라는 믿고 이 신앙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러한 의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 예언의 소리마저 끊어져 희망을 잃고 지낼 때, 한 적은 무리가 지금까지 구하던 한 사람, 한 의인이 여기 왔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서 저주의 시대는 지나가고 복음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무너진 성을 몸으로 막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돌이킨 자라고 주장했으며(겔 22: 29-31 참조), 이 신앙 속에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성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위기가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무너진 성을 쌓거나 뚫어진 구멍을 내 스스로 막으려 하지 않고 그대로 체념 속에 주저앉아서 불평만 일삼는다면,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의 계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입니다. 신약에 와서 바울은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내 사람됨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할 수 없습니다. 나를 보아서 민족을 살려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숨김없는 그리스도인의 고백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자기를 표현한 대로 티끌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는 개인이란 참으로 무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렇게 체념 속에만 빠져 있다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 한 사람을 찾아서 이 땅 이 역사를 확실히 구원한다고 믿고 출발한 신앙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역학 위에 발을 디디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기상도에 의해서 약해지거나 강해지거나, 희망과 절망을 느낀다면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사람, 뚫어진 성을 자기 몸으로 가로막아 죽은 십자가의 신앙에 발을 디디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유일한 의로운 이라 믿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절망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몸’이라 하고, 우리를 그의 ‘지체’라 했습니다. 지체는 반드시 몸이라는 전체가 하는 일에 따르는 법입니다. 그리스도가 정말 이 성의 뚫린 구멍을 몸으로 가로막은 자라면, 우리는 그의 지체로서 역시 그 몸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의인을 믿는 사람은 지체가 그 몸의 일부가 되듯이 스스로 의인의 길을 가게 마련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순례

2. 이번 주 과제

(1) 창세기 19-20장을 을 꼼꼼히 읽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