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스캇 펙의 『마음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를 읽고

￭ 번역본 제목은 이 책을 명상이나 마음수련 관련 책으로 생각하게 하지만, 원 제목은 『(The) different drum : community-making and peace』로, 이 책은 공동체 만들기와 평화, 규칙을 바꾸는 투쟁에 관한 이야기이다.(북의 의미 :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와 그와는 다른 북소리)

￭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주거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와는 달리 이 책에서의 공동체란 우선 단기간(예: 2박3일, 일주일) 혹은 장기간(예: 일주일에 한번씩 2년간 지속 등)의 모임에서 ‘공동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 즉 단호한 개인주의자였던 부모와의 관계와 철저한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적인 기숙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새로이 작은 퀘이커 계통 학교로 전학하여 완전한 자유로움을 느꼈던 경험과 군의관(정신과 의사)으로서 시행했던 여러 임상 연구에서의 통찰을 바탕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은 공동체 안에서부터,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공동체란 “서로 정직하게 소통하는 법을 배운 개인들, 차가운 가면의 이면으로 뚫고 들어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인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서로 반기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개인들의 집단”이다.

이런 이들은 개개 문화나 개개 종교가 지닌 차이를 이해하고 오히려 감사하며, 화합하며 사는 법을 터득한 자들이다. 기존의 규칙을 변경하여 ‘단호한 개인주의’에서부터 벗어나 자신의 약점・불완전・결함・부적응・죄 등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상호의존성’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인정하는 ‘온건한 개인주의’에로 나아와, 자유와 사랑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요한 법칙을 익히고 지키는 자들이다.

￭ 이런 공동체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값싸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법칙을 익혀야 하는데, 이것은 스캇 펙이 ‘의도적으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모인 집단들’을 보며 찾아낸 세 번째 단계의 “마음 비우기”이다.

갈등을 회피하고 속마음을 숨기고 위장하며 내 말이 아닌 일반화 된 포괄적 진술을 묵인하는 ‘사이비 공동체’에서 의견다툼과 싸움・투쟁이 일어나는 혼란의 두 번째 단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마음비우기’ 단계이다. ‘혼란’이 공동체를 특히 신앙공동체일 경우, 파괴적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우려할 수도 있는데, 스캇 펙은 대퇴부 뼈가 빠지기까지 하나님과 씨름하여 새롭게 이스라엘로 태어나 절룩거리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 야곱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들려준다.

‘마음 비우기’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즉 타자(이방인)를 위한 빈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타인을 치유하고 통제하려는 욕구까지 비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우는 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침묵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 개개인의 자발적인 작은 죽음에의 훈련이다. 타자에게 우리를 개방할 때 우리는 상처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기꺼이 상처받을 수 있는(‘상처받는다’는 이 말이 애매하다고도 함) 능력, 즉 여린 마음(강한 마음이 아니라)이 요구된다. 예수님이 기존 질서가 가하는 견디기 힘든 고통에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도 여린 마음으로 자신을 내맡겼듯이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상처받을 위험을 무릅쓰는’ 여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상처와 망가진 모습, 무능력, 약함, 실패와 미숙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무장해제라고도 함)

이제 진실로 솔선수범하는 용감한 한 사람 한사람이 거부나 상처의 위험성을 무릅쓰면, 집단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린 마음과 정직성으로 인해 한 차원 높게 발전한다.

이것이 공동체의 통합성이다. 즉 성별이나 나이, 종교, 문화, 관점, 삶의 방식, 발단단계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여서 이 구성원들의 총합보다 더욱 크고 위대한 전체를 만들어내는 부활의 신비이다. 위험을 무릅쓴 약함을 통하여 평화와 생명을 얻는 것이다.

￭ 스캇 펙의 이 책이 1987년에 출간하여 오늘날까지(2019년) 읽히는 이유는, 어쩌면 영적 치유나 개인적 차원의 공동체 구현의 문제를, 세상의 혼란을 치유할 수 있는 길로 보고 세계 평화를 이루는 해결책으로 제시한다는 데에 있겠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을 얼마나 비워낼 수 있느냐에 세계 공동체의 위기극복과 발전이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이 공동체 형성규칙을 세계에 적용하여 스캇 펙은 무기경쟁을 당장 그만둘 것과 교회는 영성을 칸막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방향을 바꾸는 전쟁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합중국 정부를 향하여는 정부 안에 공동체가 없다고 지적하며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바꾸어, 슈퍼맨이 아닌 현실의 인간, 위대한 아버지가 아닌 정신적 지도자 즉 공동체적 대통령으로 발전시키라고 하는데, 이것은 소박한 이상이 아니라 유대인 조상이 가르쳐 준 ‘비전’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잠언 29장 18절에서 ‘비전이 없으면 사람은 무너지고 만다’) 강한 어조로 말한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공동체를 시작하라. 결코 중단하지 마라. “공동체의 삶은 기쁨보다 더 깊은 차원과 맞닿을 수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공동체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기로 마음먹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오직 한 단어로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 현상에 동참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 단어를 조심스레 사용해 본다. 그것은 바로 ‘영광’이다.

이 책의 출간이 1987년이기에, 그 시대 상황에서 스캇 펙은 무기경쟁을 당장 그만 둘 것을 얘기하였지만 2019년의 현 시점에서라면 세계를 살리는 길에 추가할 것이 너무나 많아졌으리라. 아! 생태계 파괴, 핵발전소, 전쟁과 종교갈등으로 인한 테러, 기후변화 등..

21C 교회에게 스캇 펙은 이것들과 싸우는 싸움을 공동체 구현의 규칙으로(죽음-부활) 멈추지 말라고 우리를 독려할 것이다. 북을 계속 울리라고, 생명의 북을... 완전한 공동체 구현을 통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