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공동체

 1. 오두막을 찾아서

1) 공동체의 씨앗

오두막공동체의 출발을 언제부터 보아야 할까. 오두막공동체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씨앗이 뿌려져야 한다. 그 씨앗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었다.

또 너희가 너의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5 : 47)

너의 형제가 아닌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합창단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던 교도소의 재소자 얼굴이 떠올랐고 그들에게 문안하기로 했다. 1983년 9월 “에바다”라는 월간 전도책자를 창간해 전국의 교도소에 보냈고 그때부터 이재영 장로의 재소자, 출소자들과 씨름하는 가시밭길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출소자들이 찾아오고 감당하기 힘든 지원요청이 끊이지 않았으나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예수님 이름에 먹칠을 한다고 생각해 열심히 도왔다.

2) 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훈련

그러나 말썽만 부리고 고마움도 모르고 욕을 하고 가는 출소자들에 지쳤을 때 오히려, 함께 산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들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1983년 11월 출판사 근처의 달동네에 다섯 칸의 쪽방을 빌려 출소자 그룹홈을 열면서 30년 넘는 공동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병원을 설립하려고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하시는 장기려 박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장기려 박사도 무모하다고 거절한 무료병원을 1984년에 기어코 개원했고 양로원에 계신 가난한 노인들, 출소자 재소자의 가족들, 가난한 사람들의 진료를 해주었다. 그러나 곧 재정은 바닥이 났고 어려움에 쩔쩔매고 있을 때 이 “에바다의원”에 기부금을 갖고 천사처럼 나타난 최영희 권사님을 일생의 반려로 맞아들이게 된다. 권사님과 갖은 애를 썼지만 밑빠진 독에 물 붓기는 오래 갈 수 없었다.

결국 1985년 6월에 병원은 문을 닫았고 1990년에는 재소자를 위한 잡지도 8년만에 폐간한다. 가족들은 늘어났고 생계마저 어려운 지경이 되어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부인의 말에 자신의 헌신이 독기와 오기로 버텨온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1995년에는 모든 선교회 일을 접는다. 사업을 시작하여 직원이 50명이 될 정도로 번창했으나 사기를 당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구제를 하던 입장에서 구제를 받아야 할 입장으로 추락했다. 추운 창고에서 부부는 새벽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회개하고 그간의 자신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고 철저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때까지 ‘믿음’이라고 여긴 ‘의지’를 내려놓아야 함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좋은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당연히 도와주셔야 된다는 교만함을 회개하였다. 이전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만 기독교 신앙의 정수로 간주하고, 신비와 기적을 추구하는 태도를 극히 경계하였으나 그러한 실천이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기도하는 중에 부부는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깊은 산골짜기와 스룹바벨을 보여주셨다고 한다.

내 집을 먼저 세우겠다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뒤로 미룬 것을 회개합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일을 도모하고 하나님을 마음씨 좋은 보조자로 전락시킨 것을 회개합니다. 내가 사역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것을 회개합니다.

3) 공동체 연습

그리하여 다시 재소자 문서사역을 시작하고 갱생보호공단에도 찾아가 그룹홈 운영을 멈춘 사이 그곳에서 지내는 공동체원들도 다시 보살폈다. 다시 사역을 시작한 후 후원자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2001년 부산 금정산 자락에서 공동체를 다시 꾸리게 되었다. 어떠한 의도나 계획도 없이 서로 사랑하려는 마음만 가지고 살려고 ‘애린원’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이때 밀양에 있는 장애인 공동체와 사귐이 시작되었고 목욕 봉사를 하게 되었다. 사랑의 실천이 주는 기쁨과 위로는 어떠한 교육보다 공동체 식구들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인원도 점점 늘어나 20명이 넘게 되었다. 출소자들의 공동체는 예전과 다름없이 어려웠다.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금정산에서는 쫓겨나게 되었고 주변에는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피난처가 필요했다. 기도 중에 다시 산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하나님의 적절한 도우심으로 합천 산골짜기의 적당한 땅을 샀다.

2. 오두막에 머무는 행복

1) 구조의 내적 변화-다양성

공동체는 23년을 같이 살아도 여전히 변화가 없고 서열다툼 등으로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름다운 공동체 박신원 대표의 주선으로 2006년 ‘바시스게마인데’라는 독일공동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만남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40년이 넘는 경험을 갖고 있는 공동체였다. 출소자와 알코올 중독자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문제점을 상담하였더니 자신들도 겪은 일이라며 다양성이라는 해답을 제시했다. 자신들도 노숙자, 마약중독자 등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만 모인 집단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했는데 아이와 노인, 남자와 여자,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의 비율을 적절히 맞췄더니 다른 특별한 노력없이도 어려움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합천의 산속에서 오두막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구성원의 변화를 꾀했다. 지적 발달장애를 가진 영기와 정상인 어머니가 합류하였고 이재영 장로의 장남 가족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차츰 다양화했다. 놀랍게도 알코올 중독자들이 많이 좋아졌고 늘 위축되었던 영기는 아낌없는 칭찬으로 자존감이 높아져 해피메이커가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주는 좋은 영향은 자정력을 갖고 있다. 지금은 출소자와 알코올 중독자 30%, 발달장애와 정동장애(조울증) 등 정신장애 30%, 그 가족 등 정상인 30%, 그 외 10%로 구성되어 있다.

2) 자연 속에서의 삶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기계화하면서 도시의 삶은 기계처럼 복잡하다.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기준에 못 맞추는 사람은 낙오자나 비정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 구조에선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은 정신질환자가 된다. 밀식 사육하는 닭이 병들 듯 좁은 구조 안에서 부대끼면 병이 나게 되어있다.

이들을 대자연 속에서 풀어놓고 규제를 없애 이완시키면 달라진

다. “싸우지만 말고 네 멋대로 살아라”라고 풀어놓으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가축도 방목을 하면 건강해지듯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기 와서 깨달았다고 한다.

3) 자발적 가난, 느리고 단순한 삶

처음에 공동체에서 자립을 위해 양계를 했다. 보은 예수마을 공동체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자연양계를 했는데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100% 자연사료를 만드는 게 만만치 않아 모든 식구가 하루 종일 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어렵게 고생해서 번 돈이 많아지자 자기 몫을 챙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자립을 위해 온 신경을 쓰는 동안 하나 되어야 할 공동체가 망가지고 있었으며 너무 바빠서 식구들의 마음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느리고 단순한 생활방식이 공동체를 지켜주었다는 것을. 효율성을 추구해 풍요를 얻으면 잃는 것이 있으며, 풍요가 주는 가난은 가난이 주는 불편보다 크다는 것을. 닭의 마릿수를 줄이고 자발적 가난을 택했다. 효율성이나 성취보다는 구성원들의 행복이 중요했다.

오두막 공동체에서는 쓸모없는 일손이 없다.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와 성별이 다양한 구성원이 자급자족을 추구하며 살기 때문에 돈의 사용은 최소화하되 직접 집을 짓고 밭을 일구려면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빨리빨리 더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 오두막 공동체의 기본 질서이다. 공동체의 중심건물인 50평짜리 ‘화해와 일치의 집’을 짓는데 7년이 걸렸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구성원이 하나가 되는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 등으로 자급자족하며 마을 내에 있는 카페에

서 직접 빵을 굽거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게 일상이다. 바쁠 때는 좀 더 일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하루 4시간 정도 일한다. 스

코트 니어링이 독서와 문화생활을 위해 정한 일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폐쇄적이지는 않다. 정기적으로 목욕탕에 가고 영화를 보러 가는 등 외부 생활도 활발하게 한다. 특히 다른 마을의 농사일을 돕기도 하고 서부경남지역의 공동체들과 두 달에 한 번 연합예배를 드리는 등 유대를 갖고 있다.

3. 오두막공동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들

1) 공동체는 농촌에 위치해야 하는가?

도시는 편의와 효율성에 익숙해져 있는 곳이고 생산과 소비 구조가 이미 자본의 영향 안에 있는 곳이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생활이 가능한 곳은 시골밖에 없다. 경쟁하고 비교하며 더 많이 빚을 내어 더 많이 가지라고 부추기는 도시는 멀쩡한 사람을 ‘도시 난민’으로 전락시킨다. 이들을 위한 구원의 방주가 필요하다. 그래서 더 많은 공동체가 시골에 자리잡아 직접 농사를 짓고 생명을 가꾸며 금융자본에 휘둘리지 않을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다. 도시 교회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공동체를 어떻게 시작하는가

공동체는 유기적 생명체이다. 공동체는 설계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심겨져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위적으로 공동체를 조직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 지금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 또 주어진 상황에서 산상수훈과 같은 그리스도의 질문을 마주 보자. 그러면 사랑의 마음으로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지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인 사회적 약자를 꼭 품어야 한다. 약한 사람에 맞춰서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 공동체는 자기파멸에 이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