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마을과 공동체를 이야기하는가

인간의 자화상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다. 특히 정반대의 것을 갈구하는 인간의 정신상태가 그렇다.

인간은 고립을 견딜 수 없는 존재다. SNS, 동창회, 교회와 성당, 절 등을 통해 끊임없이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삶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은 섹스나 운동과 같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며 함께 울고 웃는 공감활동, 중보기도, 게임, 응원 등과 같은 인간관계의 합일에서 더 큰 환희를 느끼게 된다.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이다. 애타게 갈구하던 것을 손에 넣으면 곧 바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죽도록 매달리던 연인에게 이제는 벗어나지 못해 몸부림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며칠이라도 쉬고 싶다고 하면서 자극이 없는 상태를 한 순간도 견디어내질 못한다. 세속에선 사람 때문에 괴롭고 산속에서는 아무도 없어서 괴로워한다.

욕심을 다 채울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모순된 자화상, 그 모든 것의 뿌리에는 인간의 욕심이 있다. 특히 한국인의 유별난 욕심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금수저의 갑질에 분노를 하면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예상되는 것에는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님비현상이 끝이 없다. 자신이 약자일 때는 정의의 투사이지만 개인의 이익에 관해서는 이웃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반공동체적 삶을 산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한국인에게 정작 브루더호프의 평화가 욕망을 버리고 소유조차도 내려놓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왜 한국에서 유례없는 혼인 기피와 저출산 현상이 야기되는가, 왜 혼자는 외롭고 같이하면 괴로운가. 지난 반세기 동안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대가족과 마을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빚어진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를 직시하면서 치유할 대안이 무엇일까.

남을 따라 하다가 생을 다 보내버리려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본의 디바이더 앤 룰에 종속되어 있다. 핵가족 시대를 넘어 1인 가구화, 혼삶을 당연한 주제로 선전하면서 더 많은 집, 더 많은 TV, 냉장고, 세탁기, 가스레인지, 청소기를 요구한다. 그래놓고 불안을 달래기 위한 보험, 연금을 강요한다. 신용카드와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의 모든 것을 빅데이터로 구축하고 광고와 마케팅을 앞세워 신과 같이 나의 소비와 사고마저 지배한다.

자본을 위한 미디어의 해약은 자본의 입맛에 맞도록 살기를 강요하는데 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삶의 프레임을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다른 사람의 욕망을 내 자신의 욕구로 착각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모방하려 하고 있다.

언제까지 준비만 하고 있을 것인가

흔히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고 한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초중고 시절부터 열심히 준비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내 집 마련을 위해, 노후 준비를 위해 평생 노력하며 준비하는 삶이다. 노력하는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마을이나 공동체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래의 행복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소박하게 이웃과 서로 돌보며 친밀해짐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다. 인간 혼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지만 서로 의지하고 돌보고 협조하고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주고 사랑해주면서 행복해지고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가치는 늘 평범함 속에 있고 우리 가까이 있는 법이다.

생존경쟁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면

마을과 공동체가 주는 최대의 장점은 노예살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사냥에서 벗어나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마을과 공동체이다.

마을 공동체살이는 부익부 빈익빈과 지구 황폐화를 가속화하는 소비와 환경 파괴에 맞서는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웃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다 보면 나홀로 TV나 인터넷, 게임을 할 틈이 없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다윈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것이 진화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공동체를 통해 서로 의지하고 협력해 생존을 도모하는데서 나아가 ‘함께 행복’해진다. ‘함께 행복해지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세상을, 지구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다.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

사람마다 자신이 원하는 집이 다르듯이 공동체 또한 다양하다. 공동체가 100개라면 구성이나 운영방식이 100가지이다. 기존의 마을을 좀 더 사이좋게 만든 마을공동체, 함께 지은 공유 주택, 뜻 맞는 사람들이 시골로 내려가 만든 공동체 등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가 있다.

보통 공동체라고 하면 인위적으로 만든 마을을 생각하기 쉽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대안적 삶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마을이다. 하지만 땅 값이 비싸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기존의 마을을 더 사이좋고 재미있는 대안 마을로 변화시키는 ‘전환마을’이 늘고 있다. 도시에서는 열 집 정도가 함께 집을 지어 사는 공유 주택 또한 늘고 있다.

공동체성이 살아있는 마을과 공유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행복, 이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함께 산다는 것은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삶의 여유와 재미를 더해준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함께 해 주고, 경제적으로도 절감 효과가 매우 크다. 짐작이지만 우리나라의 공동체에서는 하위 2-30% 소득계층이 지출하는 비용으로 상위 7-80% 계층의 여유 있는 삶을 누린다고 한다. 공동체가 적게 쓰면서도 몇 배의 효과를 누리는 가장 경제적인 시스템인 셈이다. 경제적인 효과 뿐만 아니다. 삶의 행복도 측면에서 보면 상위 90% 이상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도를 경험케 한다고 한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우습게 보아서는 안된다. 한 사회에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과 감정을 바탕으로, 공동의 문제 해결에 함께 참여하려는 공동체 의식뿐만 아니라 확고한 비전, 가치관이 필요하다.
공동체 의식은 참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서 배려하는 정신이 가장 기본이다. 내가 인격적으로 존중받기를 원하고 존중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역시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과 다른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여기에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관, 목적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기존의 삶의 방식, 가치관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마을과 공동체에서 살아간다는 의미

공동체 이야기는 혼자나 둘, 혹은 가족들끼리만의 울타리를 낮추고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는 이야기다. 행복의 길은 ‘돌봄’과 ‘친밀’에 있다.

마을공동체살이를 하는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미래만을 걱정하며 평생 준비만 하는 인생을 살 필요가 없다며 아이들에게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닦달을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휴식과 여백이 있었다. 초스피드 사회에서 경쟁에 짓눌리지 않고 불안과 비교와 부러움과 질시로 괴로워하지 않고 여유있는 표정으로 쉬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평온한 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의지가 되는 이들은 가족일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는 닫힌 가족주의와는 다르다. 가족이 만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살이를 하는 이들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삶의 여유와 재미를 갖게 된 것은 이웃 가족들과 함께 협력하고 의지하고 서로 돌보며 친밀해졌기 때문이다.

공동체살이는 함께 어울려 사는 장소만을 뜻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변화다. 마을공동체살이를 선택한다는 것은 소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돈과 이익을 위해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방식과는 다르게 살아보려는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개인을 옥죄이고 노동마저 상품화시키면서, 돈(자본)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물신주의를 조장하고 있지만, 개인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이 아플 때, 혼자 죽어갈 때 모든 고통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 누군가가 곁에 있고 함께 아파하는 이가 있는 것 만큼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 사회 진행도 공동체 삶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외로움과 가난, 가족 파괴, 질병으로 힘든 노인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마을공동체는 주거, 비혼, 출산, 육아, 교육 등 우리 사회 가장 골치 아픈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간디는 ‘마을공동체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하기 어렵거니와 먼저 일차적으로 공동체가 서로 의지하며 돌보는 사회야말로 가장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