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함께 사는 삶

바울은 단순히 개인을 ‘개종’시킨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사람들을 개종시켜 그 공동체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는 생활로 이끌었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이 세상이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생활방식과는 전혀 다른 대안적인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방식’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자세히 다룸)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하나됨’(at-one-ment)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에 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with Christ),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그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즉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을 통해서 가능하다. 바울은 이것을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갈 2:20)

바울에게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의 길을 계시했다. 즉 그것은 내적인 죽음과 부활, 곧 옛 정체성과 생활방식에 대해서 죽고, 새로운 정체성과 생활방식으로 부활하는 변화의 길을 뜻한다. 이런 이해는 ‘참여를 통한 하나됨’을 강조한다. 즉 우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에로 들어가는 것이다. 참여하는 속죄는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여하는 속죄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철저한 내면적인 변화의 과정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언어이다. 그것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로의 삶으로 가는 수단인데, 바울은 그의 편지들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또는 “성령 안”에)라는 말을 100번도 넘게 사용하고 있다. 이런 표현들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정체성과 생활방식을 가리킨다. 바울의 변화는 “정체성 이식”과 관련된 것으로서, 그의 옛 정체성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대체된 것이다. 보그와 크로산은 이 “정체성 이식”을 흔히 “성령 이식” (Spirit transplant)이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이 말을 하면서 염두에 두는 유비는 현대 의학의 심장이식 수술인데, 이 수술을 통해 옛 심장이 새로운 심장으로 대체된다. 바울의 경우에는, 그의 영, 곧 옛 바울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시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뜻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새로운 정체성’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방향정립’을 뜻하는 ‘은유’이다. 그러나 바울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은 개인의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공동체적인 문제였다. 바울의 목적과 열정은 “이 세상의 지혜”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 대한 대안적인 사

회를 구현하는 공동생활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 안,”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몸”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크리스천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비전을 축약해서 표현한 말이다. 바울이 매우 좋아한 이 말은 바울의 진정한 편지들 속에 100회 이상 나오는데, 흔히 공동체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크리스천들이 함께 사는 삶’에 대해 다른 말도 사용했다. 그것은 “성령 안에”(in Spirit)라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성령 안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 두 가지 표현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의 공동체는 “성령 안에” 있는 공동체로서, 예수 안에서 알려진 “하나님의 영”에 기초를 둔 공동체였다.

그런데 바울은 단지 “그리스도의 영”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도 말한다. 크리스천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생명을 얻게 된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그들의 정체성과 “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 속에서 알려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알려진 하나님의 영 안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이런 모든 이미지들은, “새로운 시대”(new age)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바울의 확신에 잘 들어맞는 이미지들이었다. 바울은 종말, 즉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꿈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확신했다. 달리 말하면,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대청소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의 크리스천 공동체들은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 즉 이 세상이 본래 되어야 할 모습의 한 부분이었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 것은 지나갔다.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후 5:17).

바울은 또한 할례 문제로 인한 갈등 한복판에서도 “새로운 창조”를 말하는데,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하다”(갈 6:15)고 말한다. “새로운 창조/피조물”은 단지 새로운 개인들에 관한 말일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에 관한 말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살아가는 생활이었다.

3. 새로운 피조물/창조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의 중심적인 특질이 “새로운 피조물/창조”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는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다음의 유명한 구절이다.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into Christ),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with Christ)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이방]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in Christ)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to Christ)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갈 3:26-29)

여기서 바울은 인류에 관한 보편적인 선언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그는 단순히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유대인이나 그리스인, 노예나 자유인,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다는 주장이다. 즉 이미 진행 중인 “새로운 창조”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시대에서는 그런 분열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하나됨’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그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즉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세례’를 통해서다. 위의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바울은 ‘세례’를 언급하고 있는데, 로마서 6장 3-5절에서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밝힌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롬 6:3-5)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입회의식이다. 롬 6:3-4에서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힌 것”을 상징했다. 그 다음에는 부활로 이어졌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이다.” 바울은 또한 희생제물(sacrifi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예수의 죽음에 참여함을 통한 내면적인 변화에 관해 쓰고 있다. 롬 12:1에서 우리의 몸,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죽는다는 이미지로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선물로 바치는 제물로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변화와 새로움이다. 롬 12:2에서 우리가 순응하지 말아야 하는 “이 세상”은 고전 1-2장에서 말하는 “이 세상의 지혜”에 따라 조직된 세상으로서 지배, 불의, 분열, 폭력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제국의 세상이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라”는 말씀에서 “마음”(mind)은 우리의 세상과 인생을 “보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런 변화와 새로움의 결과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이렇듯 바울은 살아 있는 교인들에게 그들이 세례를 통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또한 다시 살아났다고 말한다. 그것은 미래에 (또는 조만간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되는 일이다. 세례를 통해 이미 그리스도의 죽음 속으로 들어갔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삶 속으로 부활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이것은 분명히 하나의 은유인데, 이 은유가 가리키는 실재는 무엇인가?

로마는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또한 법적으로 예수를 처형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로마제국에 의해(by) 죽임을 당했고, 하나님과 함께(with) 살아계신다. 이와 비슷하게,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에 대해(to) 죽어야 했으며 하나님을 위해서(for) 살아야 했다. 즉 세례를 통해서 예수의 제자들은 로마제국의 기본가치들에 대해서는 죽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에 대해서는 다시 태어났다. 구체적으로 그 가치들이란 무엇이었는가?

앞에서 인용한 갈라디아서 3:26-29를 다시 보자. 세례는 그리스도 안으로(into Christ), 그리스도로(with Christ),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그리스도께(to Christ)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로마에 의해(by) 처형당하고 죽은 것처럼, 크리스천들은 세례를 받아서 로마에 대해(to)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구체적으로 로마의 세 가지 중요한 가치들, 즉 가부장제, 노예제, 위계질서에 대해 죽은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남자와 여자가 없다”는 말을 통해 가부장제를 부정했다. 또한 “더 이상 종도 자유인도 없다”는 말을 통해 노예제도를 부정했다. 나아가 “더 이상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의 차별이 없다”고 함으로써 위계질서를 부정했다. 이 말씀은 누구든 초기 예수운동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선언한 말씀이다. 누구든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사람은 없다. 이 말은 비록 바울 자신이 크리스천 유대인이었지만,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서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높지 않다는 말이다. 반대로 이방인이 유대인보다 높은 위계질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4.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사는 공동체

“그리스도 안의” 공동체들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살아간다. 그들은 성령이식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는 것과 (하나님/그리스도의) 성령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생활은 함께 간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16-21에서 육체(flesh)를 따르는 삶과 성령(spirit)을 따르는 삶을 대조한다.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5:16-21)

여기서 육체(flesh)는 몸(body)과 똑같은 것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몸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의 생활, 성령 안의 생활과 포괄적으로 대조가 되는 “육체의 행실”이 문제이다. “육체의 행실”은 성령 이외의 다른 것--유한한 것을 중심에 놓고 사는 것, “이 세상의 지혜” 곧 시대의 지배체제가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생활은 원수 맺음, 다툼과 시기, 분냄, 분쟁과 분열, 파당, 질투로 드러난다. 그 대안은 성령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방식이며, 그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과 온유와 절제로 이는 성령이식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