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원형 : 예루살렘의 생활공동체

본격적으로 ‘공동체’를 공부하기에 앞서, 이번과 다음 시간에는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어디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보느냐, 즉 교회의 기원(원형)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오순절 성령강림 체험 이후 결성된 예루살렘 생활공동체’라는 의견과, ‘예수 공동체(＝예수와 민중이 더불어 있는 공동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이 둘은 모두 ‘공동체’이다. 따라서 그 원형이 무엇이든 교회는 그 출발에서부터 공동체였다.

특별히 누가가 전하는 ‘예루살렘 생활공동체’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사도행전은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2:41그(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42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43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44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46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행 2:41-47)

4:32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34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행 4:32-35)

이 예루살렘 생활공동체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에 의해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공산사회의 모델로 차용되기도 했다. 또한 사도 바울에 의해 예루살렘을 벗어나 당시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바울의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집중해 보자.

2. 바울의 크리스천 공동체

바울은 선교를 함에 있어서 도시들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주로 로마 지방들의 수도들(capital)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출생 장소였던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를 비롯해서, 시리아 안디옥의 경험을 거쳐,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아카이아의 고린도, 소아시아의 에베소 등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그런 도시들에서의 생활, 특히 그런 수도와 같은 대도시의 생활은 어떠했는가?

⑴ 바울 당시의 도시들

바울이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도시의 평민들이었다. 고대 세계의 “평민들”은 도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는데, 그들은 도시의 노동자 계급이었다. 도시 노동자 계급에는 일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 혹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가끔씩만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극빈층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부득이 거지가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의 빈약한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힘겹게 연명했다.

 도시 노동자 계급의 생활은 다음과 같았다. 고대 도시들은 규모가 작았는데, 그 이유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 성벽을 쌓는 것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도시 인구가 늘어나도 성벽 안에 밀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매우 높았으며, 특히 노동자 계급이 살던 지역은 그랬다.

고대 로마 지방 시리아의 수도였던 안디옥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보면, 1세기에 안디옥의 인구는 대략 15만 명이었으며, 그 성벽 안의 지역은 5㎢로서, 인구밀도는 1㎢당 3만 명에 이르렀다. 이것은 현재 서울의 2배에 해당한다. 안디옥 성벽 안의 거의 40%에 이르는 상당한 지역이 공공건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부자들의 대저택들이 나머지 몇 퍼센트를 점유했다. 따라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 노동자 계급은 그 지역의 60%가 채 못 되는 지역에서 살았다. 따라서 그들의 인구밀도는 1㎢당 5만 명에 이르러 뉴욕 맨해튼의 두 배가 되었지만, 맨해튼과 같은 고층건물들은 전혀 없었다. 노동자 계급 대부분은 여러 층으로 된 건물에 살았다. 그 건물들은 기껏해야 5층이나 6층이었다. 많은 가족들이 단칸방에서 살았으며, 그 방을 주로 침실과 창고로 사용했다. 그들은 낮에는 밖에서 일하느라 보냈는데, 날씨가 나쁘거나 병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할 때만 예외였다.

이처럼 인구가 밀집된 거주 지역에 하수도 시설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였다. 고대 도시들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 흔히 놀라게 되는 것은 부자들의 대저택에 있는 정교한 수도시설이었다. 즉 수돗물, 실내 화장실, 목욕을 위한 온수 시설 등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공동주택에는 이런 시설들이 없었다. 수돗물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사용할 물을 길어 와야 했으며 흔히 몇 층을 오르내려야 했다. 화장실 시설은 땅에 판 웅덩이였거나 요강이었고, 요강은 대개 좁은 길에 있는 도랑에다 비웠다. 하수도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악취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벌레들과 질병이 많았다. 고대 세계에서는 어디에서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으며, 특히 도시에서는 더욱 높았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시골에서 인구가 계속적으로 유입되지 않았더라면, 도시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는 항상 넘쳐났다. 그 주된 이유는 로마제국의 경제정책 때문이었다. 토지를 잃은 수만 명의 농민들은 일할 곳도 없거나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되자 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도시 노동자 계급의 대다수는 이처럼 새로 유입된 사람들로서 서로 간에 낯선 사람들이었다. 즉 도시로 이주했다는 것은 마을에서 대가족을 이루어 오랜 세월 살면서 서로 간에 도우며 살았던 전통적인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상실했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도시 안에서의 높은 사망률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조만간 가족들을 잃고 혼자 남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도시로 이주했다는 것은 또한 서로 다른 언어와 인종 집단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디옥은 1㎢당 3만 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그 안에는 열여덟 개의 인종 구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해, 경쟁, 적개심이 만연했으며 종종 폭동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바울이 여행했던 도시들은 그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의 유적들이 상징하는 영광에도 불구하고, 비참함, 위험, 공포, 절망, 증오심으로 가득한 도시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도시선교를 했던 당시의 상황이었다.

⑵ 상점 교회들

바울의 공동체들은 작은 규모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는 그의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기원후 60년까지 로마제국 전체의 기독교인 숫자를 2,000명으로 추정한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이야기는 훨씬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제시한다. 즉 기독교적인 설교의 첫날에만도 “약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행 2:41). 그러나 이것은 과장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의 본토에 대략 1,000명 정도 있었을 것이며, 나머지 1,000명은 제국의 나머지 지역, 주로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 아마도 이집트와 멀리는 로마에까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공동체를 세운 도시들에서는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 숫자가 1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며, 아마도 몇 명 혹은 몇 십 명이었을 것이다.

바울의 공동체들이 작은 규모였다는 두 번째 이유는 공간적인 제한 때문이었다. 특별히 교회 건물을 건축하게 된 것은 2~300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기 때문에, 바울의 공동체들은 기존의 공간에서 모임을 가졌다. “가정 교회”(house church)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지만, 오히려 “상점 교회”(shop church)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즉 기독교인들이 상점에서 모였는데, 상점은 일반적으로 공동주택과 기타 건물들의 1층에 있었다. 상점들은 작았으며, 대부분 3m×6m를 넘지 않았으며, 그보다 작은 상점들도 많았다. 그보다 큰 모임이 가능했던 것은, 고린도에서처럼 개종자들 가운데 자신의 대저택을 소유하고 사람들을 대접할 만큼 부유한 사람들이 있을 경우였다.(빌라의 안마당에서 모일 경우 1백여 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규모가 작은 모임이었을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또한 한 도시 안에 몇 개의 “상점 교회들”이 있었을 법도 하다.

⑶ 하나님의 가족

바울은 그런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에 대해 어디에서도 포괄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편지로 약간은 유추해 볼 수 있다. 바울의 진정한 편지들 7개 안에 나오는 모든 인사말의 “은혜와 평화”는 “하나님 아버지”(살전)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나머지 편지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바울은 “우리 하나님이며 아버지”(살전 1:3; 3:11.13; 갈 1:4), “하나님이며 아버지”(고후 1:3; 11:31; 롬 15:6), “아버지 하나님”(갈 1:1; 빌 2:11; 고전 8:6; 15:24), “아버지”(롬 6:4), “아빠! 아버지!”(갈 4:6; 롬 8:15)라는 용어도 자주 사용한다.

여기서 “아버지”라는 용어를 잠시 생각해보자. 한편으로 이 용어는 초월적으로 성별을 뛰어넘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부적절한 남성 칭호, 즉 성차별적인 호칭처럼 보인다. “어머니”라는 말이나 “어버이” 또는 “부모”라는 말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라는 말의 가부장적인 편견을 인정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긴다. 왜 남자만 가리키는 많은 칭호들 가운데 다른 어떤 것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왜 “황제”나, 혹은 “왕”이나 “전사”나 “재판장”을 사용하지 않고, 하필이면 “아버지”일까?

이는 바울이 내다본 세상이 가정과 가족에 대한 그의 비전을 초월적으로 투사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집안의 가장을 생각하고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 가장은 대개 남자이기 때문에 그는 남성우월적인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즉, “아버지”는 가장”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대가족의 집안에 들어가면, 그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가장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고 바울은 생각했다. 그 가장에 대한 평판, 곧 그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난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형편없는 가장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권리와 책임, 의무와 특권이 정당하며 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가?

모든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는가? 각자가 충분히 갖고 있는가? 누구는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이 갖고, 누구는 적게 갖는가? 한 마디로, 모두를 위해 돌아가는 집안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 가장의 이름을 칭찬할 것이다.

바울이 믿기에는, 이 땅—집, 세상—가정의 가장은 하나님이며,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권속들이다. 가장으로서의 하나님은 이 집의 대가족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분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는 평등성의 정의가 직접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의로운 세상에 반영된 정의로운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관한 것이다. 즉, 거룩한 아버지인 하나님 밑에서 누리는 평등은 인간 아버지 밑에서 누리는 평등과 같은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평등은 모든 사람이 정확히 똑같은 양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 충분히 얻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세계의 가족 안에서는 낙오자가 되는 자녀가 하나도 없다는 의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의 편지에는 가족에 관한 용어들이 그처럼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공동체들을 부를 때 흔히 “형제들”이라고 불렀다(새번역 성서는 양성평등 언어를 사용하여 형제자매로 번역해 놓았다). 이 단어는 그의 진정한 편지들 속에 50회 이상 나온다. 여기서 ‘형제’란 교인들 가운데 남성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으로 보고, 교인들은 형제자매, 즉 동기로 여겨서 하는 말이다. 즉, ‘형제’란 말은 “새로운 가족”에 관한 언어로서, 사회역사가들이 생물학적 가족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족”(fictive family)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바울이 새로운 가족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생물학적인 형제자매들처럼, 똑같은 의무를 갖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바울이 활동했던 도시 세계에서는, 생물학적인 대가족들이 흩어지고 해체되고 때로는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도시들로 이주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며 높은 사망률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 크리스천 공동체들은 “새로운 가족들”로서 생물학적인 가족들처럼 서로를 돌볼 책임이 있었다. 즉 크리스천 공동체들은 돌봄과 나눔의 공동체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듯 바울은 지상에 참다운 평화가 수립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로마의 평화에 기반을 둔 로마제국과 달리) 하나님의 세상—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분의 하사품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몫을 나누어 받을 때이며, 하나님의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충분히 갖게 될 때라고 믿고 이를 그가 세운 교회 공동체 속에서 실현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