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4:43-72 : 베드로의 부인과 예수님의 시인

수난사화는 유월절 준비와 최후의 만찬(14:12-26), 제자들의 배반 예고(14:27-31), 그리고 겟세마네 기도와 체포(14:32-50)로 빠르게 진행됩니다. 예수님은 이미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예고했고(27절), 막상 체포당하자 약속이나 한 듯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주했습니다(50절). 바로 그 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열둘 중 하나 아니 열둘 중 으뜸 베드로입니다. 그는 끌려가는 스승을 보며 거리를 유지한 채 저만치에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스승을 사모하였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실수로 호기 어린 장담을 내뱉었기 때문일까요?(14:29) 아니면, 예수님이 불원간에 영광과 권력의 메시아로 등극할 것을 아직도 기대하기 때문일까요? 이유도 알 수 없고 동기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알 수 없는 그의 예수님 따름이 그런 그를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에까지’ 이끌었습니다(53-54절).

대제사장 관저의 위 뜰에서는 예수님이 기소되어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아래 뜰에서는 베드로가 불 곁에 서 있습니다(사실 직역하면 ‘불’보다는 ‘빛’이라 해야 옳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집의 많은 사람들 틈에 둘러싸인 채 심리적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그 고단한 밤에 타오르는 불길이 베드로의 얼굴을 언뜻언뜻 비춥니다. 그 때 불빛처럼 강렬한 눈빛으로 대제사장의 하녀 하나가 다가옵니다. 베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합니다. “당신도 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지요?”(67절) 그러지 않아도 잔뜩 위축된 베드로가 얼버무립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소.” 아, 엉겁결에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자신 없는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며 바깥 뜰로 자취를 감춥니다(68절). 도망치는 비겁자의 뒤통수를 향하여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그 하녀가 말합니다. “저 자도 한 패야”(69절). 아, 예수님과의 인연이 이렇게 피곤할 줄이야…! 자기도 모르게 안색을 바꾼 베드로가 언성을 높입니다. 예수님을 두 번째로 부인한 것입니다(70절). 그러나 잠시 후 이제는 결정적으로, 그 하녀 곁에 있다가 그 하녀에게서 들은 그 사람들이 다가서며 베드로를 지목합니다. “보아하니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틀림없이 한통속이야”(70절). 베드로가 저주하며 단언합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그 자를 나는 맹세코 알지 못합니다”(71절).

여기서 마가는, 아니 오직 마가만이, 베드로가 세 차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 장면을 매우 정교하게 구성하였습니다(마 26:69-75와 눅 22:56-62는 마가의 문학적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처음엔 하녀가 베드로에게 개인적으로 말함으로써 베드로와 예수님의 관계는 사적(私的)으로만 이야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에서 하녀는 주변 사람들에게로 말하고 세 번째 단계에선 그 주변인들 전체가 베드로를 공격함으로써, 이제는 공적(公的)인 문제로 비화됩니다. 베드로의 반응도 볼 만합니다. 그 사적 지적에 베드로는 “모른다”고 말함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로 진입할수록 베드로는 대범해지고 예수님을 향한 그의 적대적 태도도 노골화되어 이제는 예수님을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나약하고 무책임한 베드로가 이제는 가장 담대한 자로 둔갑한 것입니다.

정작 마가가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은 이 사건을 구성하는 편집 방식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께서 심문 받는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예의 방법대로 마가는 샌드위치 구조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두 사건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뗄 레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사건처럼 됩니다. 무슨 곡절이 있을까요? 여기에는 마가의 어떤 ‘심오한’ 의미 세계가 있을까요?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이 찬양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14:61). 이 물음에 예수님은 간단히 대답하였습니다, ｢에고 에이미｣(62절)! 우리말 개역성경에 “내가 그니라”(I AM)로 번역된 이 대답은, 출애굽기 3장 14절과 같이 ‘존재 그 자체’ 또는 ‘존재의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오직 야훼처럼 바다의 풍랑을 지배하신 예수님께서(4:35-41, 욥 9:8) 바다의 격랑을 밟고서 제자들에게로 다가오며(6:48)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선언하듯(6:50, ｢에고 에이미｣), 대제사장과 온 공회(전체 산헤드린) 앞에서 당신의 정체를 온전히 폭로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여 “네가 그리스도냐?”는 대제사장의 심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로서의 자신을 시인한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의 정체성과 이 칭호는 마가복음 안에서 언제나 극단적으로 예민한 시비 거리였습니다. 그리스도로서의 정체가 폭로될 때마다 그는 극단적으로 예민하였습니다. 그것은 끝까지 비밀 속에 감추어 있어야 했습니다(1:34.44; 3:11-12; 8:29-30; 9:9). 누구든지 이를 어기는 자마다 그는 ｢에피티마오｣하였습니다(1:25; 3:12; 8:30.32.33).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리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악령들과 더러운 귀신들만이 그를 알아보았을 뿐, 그의 수많은 제자들도 열두 명 남성 제자들도 아니 예수님의 최측근 야고보와 요한과 그리고 심지어 베드로도 그 누구도 그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그의 일생 동안 단 한번, 그것도 최대의 적 대제사장 앞에서 당신의 정체를 온전히 폭로합니다!

감춤과 드러냄, 그리고 은폐와 폭로! 예수님이 돌연히 ‘그리스도’ 칭호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예수님을 전면적으로 바꾸었을까요? 그것은 분명 앞서 상술한 그 이름 없는 여인의 위대한 예언자적 도유사건(그리스도 대관식) 때문이었습니다. 여인은 이미 예수님을 ‘죽음을 향하여 예비된 그리스도’로 즉위시켰습니다(14:3-9). 그렇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머리에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그리스도’의 관을 씌웠습니다(참고: 8:27-9,1). 예수님은 오해의 소지가 많은 이 칭호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해의 대상으로 그리고 고난의 주인으로 자신의 정체를 떳떳이 시인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대가로서 사형을 언도 받습니다(63-65절).

마가는 베드로의 이야기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둘러쌈으로써 그 둘 사이의 비극의 깊이를 더합니다. 마가의 샌드위치 구조는 예수님의 자기 시인과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을 동시화 하는 것입니다. 한평생 자신을 부인하며 살던 예수님께서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기를 시인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베드로는 ‘저주’하며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시인과 베드로의 부인! 둘은 끝내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로써 예전에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한 것은(8:29)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도무지 누구를 저주하는 것일까요? 자기를 저주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을 저주하는 것일까요? 물론 여기의 동사(저주하다) 뒤에는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맥을 보십시다. 처음 두 지적에 베드로가 부인한 것은,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의 추종자 집단에 속했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68,70절). 그러나 마지막 고소에 베드로가 부인하는 것은 자신과 예수님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71절). “나는 도무지 이 자를 모른다!” 베드로가 저주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는 이렇게 예수님과의 모든 관계를 완전히 청산합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자기에게서 샅샅이 털어 버립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양보할 수 없는 적대 관계에 휩싸입니다.

마가는 나아가서 예수님의 사형 언도와 베드로의 저주를 동시화 합니다. 대제사장 관저의 아래 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한 바로 그 때, 위 뜰에서는 예수님께서 산헤드린에게 사형을 언도 받습니다. 스승이 체포될 때 제자들이 다 도주하듯, 당신이 죽임 당하는 현장에서 베드로는 그를 저주합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지도자들의 음모나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애제자나, 죽이기로 결정된 스승을 저주하는 수제자나 다름이 없습니다. 독자인 우리에게 비극의 깊이는 이렇게 감지됩니다. 예수님의 심문과 베드로의 저주를 동시화 한 마가는, 각각 그 결과까지도 동시화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시인한 대가로 사형을 언도 받습니다(64절).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대가는 그 죽음의 동일한 운명으로부터 가까스로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어차피 쓸모없는 스승이라면, 그를 저주하며 나라도 살고 보자.”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둔함’이 예수님을 죽이게 하듯 제자들의 ‘둔함’과(6:52; 8:17) 베드로(돌)의 단단함(3:16; 4:16-17)이 그들을 예수님의 죽음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가담케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인’과 베드로의 ‘부인’은, 모든 기독교 실존이 따를 종말의 윤리로 제시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는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당신을 그리스도로 시인할 때 예수님은 경고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8:38). 정작 대제사장의 관저(법정)에서 베드로가 할 일이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의 법정에서 그것도 예수님 수난의 절박한 때에 ‘죽음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못내 예수님이 저주스러워 그를 부인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영광의 때에 그를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8:38).

바로 이 때 닭이 두 번째로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것을 기억하고 울었습니다(72절).이 모든 이야기는 마가의 이야기 세계 안에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차례 부인하리라 예고하신 그 사건의 성취입니다. 세 차례나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며 제자들의 눈을 열고자 한 예수님은(8:31; 9:31; 10:32-34), 베드로가 세 차례나 당신을 부인할 것을 예고하였습니다(14:27-31). 예수님은 죽음의 언덕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 등 당신의 세 제자에게 깨어 기도할 것을 세 차례나 요구하였습니다(14:32-42). 그러나 과연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차례 부인합니다.

닭의 울음은 이 모두의 ‘끝’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닭의 울음은, 제일 먼저 부름 받아(1:16-18) 제일 나중까지 예수님을 따른 그 자에게(14:53-54) 처참한 실패자로 낙인을 찍어버렸습니다. 닭의 울음은 베드로에게 그 모든 ‘호반의 꿈’을 끝내버리는 하나의 신호와도 같았습니다. 닭이 울자 베드로는 과연 처참한 실패자가 되어 따라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스러져 갔습니다. 그는 이제 마가의 이야기 세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립니다. 그는 이름(돌, 바위)만큼이나 그 마음이 단단하고 완고하여(3:5; 6:52; 8:17), 예수님의 말씀(복음)을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넘어지는 자”입니다(4:17). 예수님의 비극은, 처음 부름 받아 마지막까지 남은 한 제자가 이렇게 처참히 무너졌다는 점입니다.

∎막 14:51-52 : 알몸으로 달아난 청년

마가복음 14장 51-52절에는 뜬금없이 ‘알몸으로 달아난 청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이 청년의 모습이 수난사 앞에 선 우리 자신들의 발가벗은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수난사라는 빛에서 우리의 삶을 조명해 보면,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우리들의 알몸이, 정말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마가의 수난 이야기를 보면 첫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체포될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는데, 그래도 수제자인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나마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지금 스승 예수님은 대사제에게 심문을 받고 있는데, 베드로에게는 스승의 운명에 대한 염려보다는 당장 자신의 몸이 느끼는 한기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피워놓은 모닥불 곁으로 다가가 불을 쬡니다. 저는 베드로의 이런 태도에서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게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남의 문제는 그것이 아무리 큰 것이라도 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는 그것이 아무리 작은 문제일지라도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큰 문젯거리입니다. 스승을 좇아 간 베드로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좇는다고 교회를 다니기는 다니는데, 예수님보다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지금 당장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님 일은 언제나 둘째 문제고, 내 문제, 내 가족 문제가 언제나 0순위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많아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이기주의자들의 악취가 풍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 작은 문제에 집착하던 베드로는 결국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기 문제를 앞장세우니 지금 자기 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고자 예수님을 부인하고 맙니다. 왜? 중심에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내가 먼저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그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 우선적 가치가 나에서 예수님에게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15:1-16:8

※ 다음 시간에 “마가에게 예수님의 길을 묻다”을 종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