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4:1-11 : 복음의 일부가 되어 예수 곁에 선 여인

막 14:1-11의 말씀은 마가복음 14-15장이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마가에 따르면 예수님의 수난은 이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때는 유월절 직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올리브 산에 있는 베다니에 계셨습니다. 유대 사회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1-2절), 또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아넘길 궁리를 하는 중에(10-11절) 한 이름 없는 여인이 예수님에게 기름을 붓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3-9절). 우리가 이 이야기, 특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여인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여인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3절).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여인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오직 권위 있는 예언자만이 특정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이나 대제사장, 또는 하나님의 예언자로 삼았습니다. 즉 이 이야기에서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기름을 붓는 위대한 여성 예언자로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이 여인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비로소 ‘기름부음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 이를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하고, 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즉 이 여인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예수님은 비로소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바로 이 사건 이후로 이제껏 당신의 정체를 숨기던 예수님이 스스로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하게 됩니다(14:61). 실로 이 사건은 ‘그리스도 대관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행위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호되게 비난을 받습니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4-5절). 삼백 데나리온이면 일만 오천 명 내지 삼만 명에게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거액입니다. 그러니 이 여인을 향한 비난은 그리 부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6-7절). 수난사화에서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가난한 예수,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처참한 종말을 앞둔 ‘그리스도!’ 그가 이 여인의 헌신적 기름부음을 흠향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8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기름부음을 장례의 의미로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시신을 염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신에 기름을 발랐는데, 이 여인이 그 일을 미리 앞당겨 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그때까지 예수님은 십자가의 잔을 마셔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36절)라고 기도하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여인이 그런 예수님께 미리 기름을 부음으로써, 십자가에서 기꺼이 돌아가시라고, 그것이 당신 소명이라고 행동으로 말했던 것이고, 예수님은 여인의 그 행동을 그렇게 이해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여인의 밀어붙임(push)이 십자가 사건을 추동했던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9절).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그 놀라운 행위도 함께 선포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복음의 일부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예수의 이야기가 선포될 때마다 ‘예수와 함께’ 말하여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예수님과 이 여인은 나란히 존재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이 여인을 나란히 선포합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 여인을 ‘기념 받을’ 존재로 내세웁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이야기를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의 성만찬 본문과 비교해보기 바랍니다.

막 14:22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23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24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25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고전 11:23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24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5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6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 22-25절의 최후 만찬에는, 고린도교회의 성만찬 전승에 두 차례 나타나는 “나를 기억하라”는 명령(고전 11:24.25)을 탈락시킵니다. 그리하여 “나를 기억하라”는 제정의 말씀이 없습니다. 그 대신 마가는 이 기념(추모)의 명령을 14장 9절의 이 여인에게 적용합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9절). 그렇다면, 마가의 예수 이야기에서 기념 받아야 할 분은 더 이상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기념 받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닙니다. 기념 받을 이는 바로 이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름을 잃은 채 그냥 거기에 있습니다. 교회도 성서도 아니 마가도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채 그냥 거기에 서 있습니다. 이 여인은 생물학적으로 죽고 이름을 잃어(명예가 죽어) 두 번 죽은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이 위대한 영웅적 여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마가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추모하라”(9절).

∎막 14:12-31: 18.10.14 증언 “죄인들의 만찬, 은혜의 만찬

∎막 14:32-42 :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우리가 갑이냐 을이냐 둘을 놓고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한다고 할 때, 그것은 잡음이면서 동시에 놓아버림입니다. 갑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갑을 잡고 을을 놓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잡음으로서의 선택과 놓아버림으로서의 선택이 그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때에는, 선택하는 결단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 버리는(포기하는) 결단을 아울러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최대의 은사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자유에 바탕 합니다. 이 완전한 자유는 하나님도 빼앗지 못합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선택한 바에 대하여 일생동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가 선택한 바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인간의 선택들 가운데서 맨 처음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앞에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셨습니다.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 열매를 따먹어도 되지만 선악과만은 손대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 안에는 하나님이 제시한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가능성과 먹지 않는 가능성입니다. “따먹지 말라”는 명령문 속에는 “네가 원한다면 먹을 수도 있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면, 그러니까 먹을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그런 명령을 내릴 아무런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을 것이냐 먹지 않을 것이냐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에게 선택이 강요된 것입니다. 그는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었고 따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였고, 하나님도 손댈 수 없는 완전한 자유였습니다. 선택할 수 있은 자유－그것은 신성한 것입니다. 만일 누가 그것을 훼방한다면, 그는 선택을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간의 자유를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아담의 선택은 마침내 비극을 가져오고야 말았습니다. 왜였을까요?

하나님이 아담에게 제시하신 두 가지 길이란 무엇입니까? 물어보나마나 그것은 선악과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느 쪽을 바라셨습니까? 먹지 않는 쪽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어느 쪽을 선택했습니까? 먹는 쪽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이 선악과를 보매 그것이 ‘먹음직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아담은 그것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의 뜻은 먹는데 있었고, 하나님의 뜻은 먹지 않는데 있었습니다. 아담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뜻’ 가운데서 자신의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가 인간의 타락이라는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이 성경의 논리입니다. 그리고 이 논리는 성경 전체를 관통해 흐릅니다.

선택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절대 자유와 권리로 인간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어떻게’－‘무엇을’ 선택하느냐 입니다. 우리가 ‘선택’이라는 주제를 놓고 생각을 모아 볼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나를 포함한 인류 전체를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인도할 것인가? 선택은 유희가 아닙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생사가 관련된 문제입니다. 올바른 선택은 생명을 낳고, 잘못된 선택은 죽음을 낳습니다. 아담의 선택이 후자라면, 전자는 무엇일까요?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신을 으깨면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한 예수님의 선택이 그것입니다. 막 14:32-36을 보면,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그 고통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살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은 생명의 법칙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를 억압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참 인간이셨기에, 다가오는 죽음의 형틀을 피하고 싶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밤에 예수님은 홀로 아버지 앞에 엎드려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 다시 말해서 자신이 받아들이기로 결단하여 선택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또 그것을 선택함으로 수락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나의 뜻’을 놓아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잡은 이 최후의 선택은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대로 모든 사람을 살리는 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에 의하여 목숨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것을 바쳤습니다. 바치기에 힘겨운 자신의 뜻을 꺾음으로써 말입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다시 한 사람의 옳은 선택으로 모든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바울 사도의 해석입니다(롬 5장). 그렇다면 적어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선택의 타당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선명하게 부각된 셈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랐느냐 자기의 뜻을 따랐느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뜻에다가 하나님의 뜻을 두드려 맞추려고 하면 문제가 생겨납니다. 제 욕심대로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억지주장을 펴는데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선택의 어려움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데 있습니다. 올바른 선택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살리지만, 그릇된 선택은 파멸로 이끕니다. 이것은 개인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국가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 일을 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그 나라는 살아날 것이요, 인가의 욕심 때문에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그 나라는 수다한 갈등과 부조리에 봉착할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의 뜻은 참된 국민의 뜻(=民意)이 됩니다. 조잡한 기교 몇 가지로 민의를 조작하려 의도한다면, 그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짓이요 자기와 타인을 함께 망치려는 처사일 뿐입니다. 그런 자들의 훼방만 없다면 하나님의 뜻(민의로서 나타나는)은 언제나 공명정대하며 태양처럼 명백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누구 다른 사람이 그렇게 선택해 주기를 바랄 것이 아닙니다. 나와 너, 즉 우리들이 바로 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버리면 하나님이 삽니다. 하나님이 살아야 내가 삽니다. 선택의 열쇠는 바로 우리 손에 있습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14:4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