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 14-17절에는 12장에 나왔던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이 반복됩니다. 당시로서는 자식이 한 명도 없었던 떠돌이 아브람에게 많은 후손을 주겠다는 약속과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던 땅을 주겠다는 약속은 정녕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겨 거기서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와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14장에서 아브람은 장정 318명을 거느리고 네 임금의 부대를 쳐서 붙잡혀 간 롯을 구하는 영웅이요 구원자로 등장합니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임금에게 맞서 진을 치고 있는 아브람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가나안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그리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서 살펴보게 됩니다(창 13:17 참조). 가나안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땅으로서, 다윗 시대에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아브람을 전사로 만듦으로써 약속된 땅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 땅이 하나님의 선물일지라도 그 선물을 받는데 인간의 노력과 동참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 선물을 베푸시지만, 인간은 스스로 노력을 기울일 때에만 그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창세기 14장 17-24절은 아브람이 다윗을 미리 나타내는 인물이라고 볼 때 더 이해가 잘 됩니다. 다윗은 영토를 모두 정복한 다음에 예루살렘(살렘)을 다스리던 제사장 왕조와 동맹을 맺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백성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로 삼았지만, 종교적 역할과 임무를 계속 맡은 자들은 사독 제사장들의 후예였습니다. 사독 제사장들이라 하면 멜기세덱(사독=정의로운 분, 멜기세덱=나의 왕은 정의로운 분이시다)의 이름을 떠오르게 합니다.

2. 창세기 13-14장 말씀 순례

(1)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창 13:9)

숙부와 조카 사이인 아브람과 롯은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함께 옮겨 다니면서 외로운 나그넷길에 서로 의지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네겝에서 베델로 가다가 아이에 이르러 거기에 자리를 잡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 집안 모두 재물이 많아서 사이좋게 이웃하여 살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이 너무 많은 것’은 재난의 싹인 모양입니다.

아브람과 롯에게 재물이 많았다는 말은 가축이 많았다는 말입니다. 두 집안에 가축이 많아서 사이좋게 살 수 없었던 것은 그 가축을 먹이는데 필요한 풀과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목자들끼리 싸움이 잦다 보니 주인도 언제까지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윽고 아브람이 조카를 불러 자기의 복안을 말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너의 목자들과 나의 목자들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13:8-9).

여기 이 대목에서 아브람의 사람됨이 빛을 냅니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해결의 열쇠를 조카인 롯에게 몽땅 맡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롯은 기름져 보이는 요단 분지를 차지하겠노라 말했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그냥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롯은 소돔과 고모라라는 ‘불구덩이’로 들어갔다가 겨우 몸뚱이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요?

우리는 롯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더 좋아 보이는 쪽의 땅을 나이 든 숙부에게 양보하지 않고 제가 차지하다니! 따라서 롯이 거기서 패가망신한 것은 마땅한 귀결이요, 업보(業報)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기 조카의 사람됨을 몰랐을 리 없는 아브람이,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지 않았을 터에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것,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이기심에 눈먼 롯이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아브람의 선택이 없었다면 롯의 선택도 없었을 것이요, 그랬더라면 불바다가 된 도성에서 알몸으로 도망치는 비참한 운명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못은 롯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선택에서부터 이미 저질러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브람의 잘못은 불편한 현실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밝은 눈으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은 조카인 롯이 노골적으로 보여준 이기욕과 똑같은 욕심을 그 자신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롯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자신의 재물을 조금도 축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롯을 멀리 쫓아버림으로써 자기의 재물을 고스란히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아브람이 이 모든 결과를 미리 계산하고 그렇게 했다면 너무 사악했고, 몰랐다고 한다면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풀과 물이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들로 지탱시켜야 할 인간의 ‘소유’인 재물(가축)이 너무 많은 것, 그것이 탈이었는데, 어째서 가축의 수를 줄이려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조카와 함께 정착한 그 땅의 물과 풀로 넉넉히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만 가축을 길렀다면 싸우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를 몰라서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람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아브람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창 14:20)

성경에서 십일조가 맨 처음으로 언급된 곳이 바로 창세기 14장 20절입니다. 여기를 보면 아브람이 살렘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십일조가 ‘어떻게 사용되고, 누구에게 주어졌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성경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십일조 규정이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톰슨Ⅱ주석성경󰡕(지독지혜사)은 그 발전의 결과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레위인들을 봉양하거나 혹은 사회적인 구제사업을 목적으로 매년 토지소산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1/10)을 바쳐야 하는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의무이다(레 27:30). 유대인들은 모세 율법에 나타난 여러 십일조 규례(신 12:5-19; 레 27:30-33; 민 18:21-32)를 근거로 십일조 헌납을 세 단계로 구분했다.

<첫째 십일조> 한해의 추수가 끝나면 백성들은 먼저 모든 소출의 1/10을 구별하여 자기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들에게 주어야 했다(민 18:21-24). 그러면 레위인들은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1/10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거제로 바쳐야 했는데, 이것은 곧 제사장들의 몫이 되었다(민 18:26-29). 이처럼 분배받은 기업 없이 성막에서 종교적 직무에만 전념하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생계를 보장해주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쳐야 하는 십일조의 첫 단계를 ‘첫째 십일조’라고 부른다.

<둘째 십일조/축제 십일조> 이것은 첫째 십일조를 바친 백성들이 그 나머지 소출(9/10) 가운데서 다시 1/10을 구별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자신들이 직접 중앙 성소로 가지고 올라가는데, 한 해 동안 풍성한 축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축제를 드리는 비용으로 사용되었다(신 12:5-19). 이때 중앙 성소가 너무 멀면 현물 대신 일단 현금으로 바꾸어 가지고 갔다가 성소 근처에서 다시 잔치에 필요한 예물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신 14:24-26). 한편 이 감사 잔치에는 가족과 친지는 물론 수하의 남녀종들과 성중의 레위인들까지 모두 참여하였다.

<셋째 십일조> 안식년(제7년째인 이때에는 토지를 경작하지 않기 때문에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다)을 기준으로 제3년과 제6년에는 위의 ‘둘째 십일조’로 잔치를 베푸는 대신 각 처소에서 다 모아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 나그네, 가난한 자, 과부 등을 위한 구제비로 사용하였다(신 14:28-29; 신 26:12). 그리고 이때 백성들은 자신들이 마련한 이 ‘둘째 십일조’를 율법대로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거짓 없이 사용했노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해야 했다(신 26:13-15). 따라서 이 ‘셋째 십일조’는 따로 구별된 십일조가 아니라 ‘둘째 십일조’와 동일한 것인데, 다만 용도에 있어서 다를 뿐이다. 즉, ‘둘째 십일조’는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 1년과 2년, 그리고 4년과 5년째에 쓰는 ‘감사축제용’이었고, ‘셋째 십일조’는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 3년과 6년째에 쓰는 ‘이웃 구제용’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두 번 바쳐야 했습니다. 의무적으로 드려지는 첫 번째 십일조는 회막(성전)의 직무를 전담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한 경비, 요즘 용어를 빌리면 교회 유지 비용으로 쓰였습니다. 그 다음 감사의 의미로 드려지는 두 번째(혹은 세 번째) 십일조는 교회 유지가 아닌, 이웃과의 나눔이나 구제를 위해서 쓰였습니다.

한국 개신교회는 ‘온전한’ ‘십일조’를 강조합니다. 율법을 폄하하고 은혜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도대체 다른 율법들은 십자가 은혜로 다 폐기되었다고 하면서, 왜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그렇지 않은지 그 이유가 참으로 궁색합니다. 그래서 저는 율법으로서의 십일조에 반대합니다. 강요된 헌금은 헌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봉헌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자발적인 행위입니다. 사실 모든 봉헌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로 돌려 드리는 신앙 고백적 행위입니다. 신명기 8장 17-1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재산은 내 손으로 뼛골이 빠지게 일해서 모은 것이다.’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거든, 너희 하나님을 생각하여라. 하나님께서 오늘 이처럼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여라”(공동번역). 또 고린도전서 4장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인데 왜 자기 것인 양 자랑합니까?”(공동번역)

이 말씀들은 내가 가진 것 모두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해도,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에 미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의 가질 자격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바가 더 큼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의 다음 기도문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였다. “주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길이길이 찬양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위대함과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존귀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의 머리 되신 분으로 높임을 받아 주십시오! 부와 존귀가 주님께로부터 나오고, 주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며,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니, 사람이 위대하고 강하게 되는 것도 주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가 지금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제가 무엇이며, 저의 백성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이렇듯이 기쁜 마음으로 바칠 힘을 주셨습니까?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셨으므로, 우리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님께 바쳤을 뿐입니다.”(대상 29:10-14)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여러 가지 헌금을 드릴 수 있지만 어떤 헌금이든, 인간의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바로 안다면 헌금으로 인해 교만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헌금과 관련하여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헌금은 ‘세금’도 아니고, ‘뇌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헌금을 교회에 내는 세금으로 생각할 때, 납세자들이 절세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듯이 우리는 봉헌하면서 잔머리를 쓰고 요령도 피우게 됩니다. 또한 헌금은 ‘뇌물’도 아닙니다. 중세 교회의 ‘면죄부’가 헌금이 뇌물로 기능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시 교회는 “교황의 이름으로 된 면죄부를 사면 죄의 형벌을 면죄 받게 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나아가 “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찰랑 소리 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 밖으로 뛰어나온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면죄 받고, 나아가 죽은 조상들의 죄까지 면죄 받고자 교회에 큰돈을 헌금하고 면죄부를 샀습니다. 그러니까 면죄부를 ‘천국행 구원열차표’로 여긴 것입니다. ‘선물’은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반면 ‘뇌물’은 앞으로 돌려받을 것을 전제하고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하면서 하나님께 무엇인가 돌려받을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이미 헌금이 아니고 뇌물입니다.

앞에서 저는 율법으로서의 십일조에는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헌금에 대한 자기 기준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은 자기 형편과 처지에 따라 십일조가 될 수도 있고, 이십의 일조나 십의 이조도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기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 6:21).

일제 강점기에 고국 땅에서 쫓겨나 만주에 정착하며 살던 이민자들에게는 삼전(三田)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군전(軍田)과 학전(學田), 그리고 생전(生田)이 그것입니다. 저들은 자신이 농사짓는 땅을 삼등분하여 군전에서 나오는 소출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일에, 학전은 자녀들의 학교를 지원하는 일에, 그리고 생전은 자기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썼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지금 우리는 내 소출, 내 재물, 내 시간, 내 관심, 내 능력을 어디다 나누며 살고 있습니까?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고,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로 향할 때 과연 우리의 재물은 어디에 있어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