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문학이란?

주전 200년경부터 주후 100년경 사이에 이스라엘에선 묵시문학이라는 종교문학이 성행했습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 중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와 바빌론 유배에 이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난세였습니다. 그러니까 묵시문학은 우선 난세의 종교문학입니다. 조선조 말엽 삼정이 문란하여 우리 겨레가 도탄에 빠졌을 때 정감록(鄭鑑錄)이 성행한 사실과 같은 현상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문학도들은 실의에 사로잡힌 백성들에게 도무지 이승에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형편인지라 적어도 미래 종말의 희망만이라도 불어넣으려고, 묵시문학이라는 독특한 문학유형을 개발했습니다.

묵시문학은 역사에 절망하고 오로지 종말 초월자에게 희망을 거는 문학입니다. 묵시문학적 서술은 절대로 종말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언표한 것입니다. 천지창조 이야기가 신화이듯이 종말 이야기도 신화입니다. 묵시문학도들은 천지창조로부터 역사의 종말까지, 아니 종말 이후 내세의 사정까지 환히 아는 양 뽐냅니다. 이들은 특히 종말 전조(前兆)와 종말 사건을 즐겨 상론합니다. 그럼 묵시문학들은 어떻게 이 엄청난 일들을 알아낸단 말일까요? 이들은 꿈‧환시‧환청‧무아경‧천사의 발현 등의 계시를 통해서 창조와 역사, 종말과 내세를 꿰뚫어보게 되었노라고 으스댑니다. 묵시문학적 서술은 실은 상상‧공상‧망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묵시문학도들은 자기네 실명을 밝히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니까, 반드시 아브라함, 모세, 바룩, 에스라, 에녹 등 옛 성현들의 이름을 도용하여 묵시문학을 펴냈습니다. 묵시문학은 하나같이 가명작품입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다음 야브네, 일명 얌니야에서 바리새파 율사들이 유대교를 재건하고 구약성경을 확정할 때 예언서들은 수용하고 묵시문학 작품들은 배척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성경에는 전형적 묵시문학 작품인 다니엘서가 들어 있습니다. 율사들이 다니엘서를 예언서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묵시문학적 요소들이 들어있는 단락들이 제법 있는데, 예로 이사야 24- 27장, 요엘 2장, 스가랴 9-14장, 에스겔 38-39장을 꼽겠습니다. 구약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유대교 묵시문학 대표작들로는 슬라브어 아브라함 묵시록, 시리아어 바룩서, 라틴어 제4에스라서, 에디오피아어 에녹, 라틴어 모세 승천기 등을 꼽겠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활약한 1세기, 신약성경이 씌어진 1세기는 온통 묵시문학 시대인지라, 예수님과 사도들을 비롯해서 신약성경 작가들은 묵시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한편으로 묵시문학으로부터 종말임박사상을 물려받았지만, 또 한편으로 묵시문학적 호기심을 일축하셨습니다. 예로, “종말의 날과 시는 하나님밖에 아무도 모른다”(막 13:32), “종말 도래의 장소를 논할 일이 아니다”(눅 17:20b-2la.23-24), “종말에 구원받을 사람들의 숫자를 논하지 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할 일이다”(눅 13:22)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은 단호히 묵시문학적 질문들을 일축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교적으로 번안한 묵시문학 단편들이 제법 많은데, 예로 막 13장, 마 24-25장, 눅 17-21장, 살전 4-5장, 고전 15장, 살후 2장을 꼽겠습니다. 요한묵시록은 유대교 묵시문학의 영향을 듬뿍 받은 그리스도교 묵시문학의 대표작입니다.

 ∎마가복음 13장의 역사적 배경

마가복음 13장의 역사적 배경은 66-70년까지 진행된 유대독립항쟁임이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단지 13장의 가르침이 그 직전에 기록된 것인지, 아니면 그 사건 직후에 기록된 것인지 논란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사실 이 장에 묘사된 내용에는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보다 초대교회, 특히 마가공동체의 체험이 더 짙게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서기 66년 5월, 총독 플로루스가 예루살렘 성전금고에서 17달란트를 요구하자 예루살렘의 천민들이 반로마 봉기를 일으킵니다. 군인들이 유혈진압을 계속하자, 6월 어느 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를 위한 매일 제물봉헌을 전격적으로 중지하고 본격적으로 봉기합니다. 가이사랴에 주둔하던 로마 군인과 이방인들은 즉각 시내에 살던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도 안 돼 2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두매와 갈릴리, 베레아에서 속속 유대인들이 봉기합니다. 같은 해 12월 유대인들이 주변의 이방인 도시를 공격하여 계속 점령하게 되자 시리아 총독 갈루스가 진압에 나섰다가 오히려 유대군에게 대패합니다. 67년 초 황제는 57세의 노련한 장군 베스파시아누스를 진압군 책임자로 파견합니다. 그는 아들 티투스와 함께 6만여 명의 군인을 동원하여 진압에 나섭니다. 갈릴리가 67년 가을에, 베레아와 서부 유대는 68년 봄에, 예루살렘은 70년 가을에(유대인들의 저항보다 로마 내부의 문제로 공격이 늦춰짐), 마지막 남은 마사다는 72년에 점령됩니다.

유대독립항쟁을 둘러싼 몇 년 동안 팔레스틴 일대는 뒤숭숭하였습니다. 로마군의 거친 탄압에다가 헬라인 등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보복, 유대군 내부의 내분으로 인해 약탈과 살인이 빈번하였습니다(이 때 죽은 유대인만 11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분위기는 뜨거웠습니다.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대의명분을 내건 애국자들의 깃발이 펄럭이는 데다, 무엇보다도 “때가 됐다”는 유대인 특유의 ‘대중 메시아 운동’이 만개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용기를 주도한 세력 중의 하나인 열혈당의 지도자 마나헴은 메시아를 자처했으며, 또 다른 지도자 시몬 바르 기오라는 다윗처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요즘의 CNN처럼 직접 중계는 못했을지라도, 이 유대독립항쟁은 로마제국 전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경계와 증오심이 극도로 높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교의 할 분파처럼 여겨졌던 그리스도교, 특히 유대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했을까요? 조국독립이란 명분과 로마의 폭력적 대처를 어떻게 이해해야 했을까요? 지금이 과연 약속된 종말의 그 때인지, 아니면 이런 사건을 무슨 표징으로 풀이해야 할지, 곤혹스런 그들에게는 좀 더 분명한 지침이 필요했습니다. 13장은 이런 초대교회의 절박한 체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마가복음 13장의 구성과 내용

마가복음 13장의 짜임새는 다음과 같습니다.

13: 1-2 :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고

5-13 : 재난의 시작 = 종말의 먼 전조

14-23 : 큰 재난 = 종말의 직전 전조

24-27 : 종말 = 인자 내림

28-37 : 종말은 한 세대 안에 도래하지만(30절)

그 날과 그 시간은 모른다(32절)

13장의 내용을 훑어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고하시는 기회에 종말의 먼 전조, 종말 직전 전조, 그리고 종말 사건인 인자 내림을 차례차례 말씀하신 것처럼 엮어져 있습니다.

(1) 종말의 먼 징조와 종말 직전 징조(5-13,14-23절)

종말을 예시하는 먼 전조(5-13절)로는 가짜 그리스도 등장, 전쟁, 지진, 기근, 교회 박해를 꼽습니다. 이것들이 작은 불행은 아니지만 종말이 임박할수록 훨씬 더 큰 불행들이 밀어닥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발전하는 게 아니고 중단 없이 퇴보한다는 비관적 사관을 묵시문학도들은 지녔으니까요. 그러므로 종말 직전의 전조(14-23절)는 전대미문의 재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환난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19절). 그럼 언제 이런 재난이 닥칠까요?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서 있을 때”(14절) 전무후무한 재난이 닥친다고 합니다. 기원전 167년 12월 7일 시리아의 임금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 제단을 치우고 그 자리에다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 제단을 차렸습니다(1마카 1:54-55.59; 2마카 6:2). 묵시문학도들은 제우스 제단을 일컬어 “황폐의 흉물”이라고 불렀습니다(단 9:27; 11:31; 12:11; 1마카 1:54). 저 끔찍한 독성사전이 다시 한 번 일어나거든 세상이 곧 끝장날 줄 알라고 합니다(14절).

(2) 종말에 인자가 내림한다(24-27절)

묵시문학에선 인자의 내림을 임금님의 행차처럼 묘사하곤 합니다. 해 달 별 등 천체에 이변이 일어나면 초월적 존재인 인자가 구름에 싸여 하강해서 온 세상의 선민들을 소집합니다(26절).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17절에선 주님이 하강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공중으로 이끌려 가는 공중 들림 사건, 일명 휴거 사건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장 8절에선 하나님의 발현(출 3:2)의 영향을 받아, 장차 예수께서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여 오신다고 합니다.

(3) 종말시한어(30절)

종말이 정확히 몇 날 몇 시에 도래하는지는 알 수 없으되(32절) 예수 시대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도래한다는 말씀, 이른바 종말시한어는 공관복음서에 세 번 나옵니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막 13:30)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와 있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막 9:1)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마 10:23).

예수 친히 세 차례나 종말시한어들을 발설하셨을까요, 아니면 말세 사상에 젖은 그리스도교 묵시문학도들이 종말시한어를 만들어 예수님 입에 담았을까요?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설사 예수님의 발설이라 할지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명답이 나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죄짓는 일 말고 인간의 유한성을 고스란히 타고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유한성에는 지식의 한계도 포함됩니다.

∎‘재림(再臨)’의 참 뜻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면서 마지막 날에, 즉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재림, 즉 두 번째 오심, second coming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라는 책에서 저자 마커스 보그(Borg)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용어들은 그리스도인, 비그리스도인 할 것 없이 심각하게 잘못 이해되고 있다. 그것들은 성서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에서 상당히 왜곡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기독교 용어들은 그것이 본래 말해지고 쓰인 ‘그때 거기서’의 원래 뜻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달라진 정도가 ‘오해’의 수준을 넘어 ‘왜곡’의 수준에까지 이르러서 큰 문제입니다. 보그는 ‘재림’ 역시 그것이 처음 말해진 시간과 장소에서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였음을 지적합니다.

분명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나타내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사도신경도 재림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주장했을 때 그것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 완성되고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그들의 확신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꿈을 열망했습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새 세상--새 하늘 새 땅을 보았고, 예수님의 그 비전을 함께 꿈꾸고 열망했으며, 마침내는 그 비전이 그들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재림이란 예수님이 다시 와서 그가 이미 시작한 일을 (부분적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완성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즉 재림이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총체적 현실을 말합니다. 따라서 재림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와서 그가 시작한 일을 완성할 것이라고 신앙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나 또한 미래에 대한 예수님의 비전, 하나님의 꿈에 헌신하겠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1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