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1-11 “당신은 어느 행렬에 참여하고자 합니까?”

예수님은 줄곧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하시다가 생애 마지막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의 행렬은 저 갈릴리로부터 북쪽으로 160km 떨어진 예루살렘에 거의 다 이르러 입성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두 제자를 맞은쪽 마을로 보내서 거기서 아직 아무도 타 본 적이 없는 새끼 나귀를 풀어서 끌고 오라고 시킵니다. 나귀 주인은 당연히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묻겠지요. 그러면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 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라고 알려주십니다.

이것은 이 나귀 주인과 예수님이 사전에 약속을 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선뜻 나귀를 내어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해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 면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셨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우연한 일도, 충동적인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도를 갖고 면밀하게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왜 하필 미끈한 말이 아니고 초라한 새끼 나귀였을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은 유대교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 첫 날이었습니다. 유월절은 우리의 광복절처럼,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유월절에는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여듭니다. 그래서 유월절 기간에는 평소의 몇 십 배 내지 몇 백 배의 사람들로 예루살렘이 북적거립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는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을 이집트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주셨듯이 지금 자기들을 로마제국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데모도 하고, 소요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점령자인 로마제국은 이 위험한 절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로마제국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성전 뜰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안토니오 요새에 로마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었지만, 유월절 기간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 병력을 더욱 더 많이 증강시켜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 당시에 유대를 통치하던 사람은 로마제국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였습니다. 그는 평소에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95km 떨어져 있는 ‘가이사랴 해변’의 화려한 신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예루살렘보다 훨씬 더 살기 편한 로마식 신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유대교의 중요한 절기가 있을 때면 빌라도는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주후 30년 어느 봄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행렬은 예수님의 행렬뿐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른 행렬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군대의 행렬이었습니다. 동쪽에서는 예수님이 추종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귀를 타고 감람산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 맞은편 서쪽에서는 이두메와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제국의 기병대와 보병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제국의 권력과 위용이 눈에 보이는 듯 하지 않습니까? 말을 탄 기병들, 보병들, 가죽 갑옷, 투구들, 병기들, 깃발들, 식대 위에 앉은 황금 독수리들, 금속에 반사되어 빛나는 태양. 그 소리는 또 어떻습니까? 행군하는 군화소리, 가죽이 스치며 삐걱거리는 소리, 말고삐가 쩔렁거리는 소리, 진군의 북소리, 먼지의 소용돌이, 말없이 응시하는 눈들, 놀라움으로 바라보는 눈들,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들.

이렇듯 예수님의 행렬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다면, 빌라도의 행렬은 제국의 권력을 과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행렬은 단순히 제국주의적 권력의 위용을 과시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로마제국의 신학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신학에 따르면 황제는 단순히 로마의 지배자가 아니라 “신의 아들”, “주님”, “구원자”였습니다. 사실 복음서가 예수님에게 붙인 모든 호칭은 로마제국의 신학으로부터 나온 것들입니다.

유월절 첫날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은 나귀를 탄 예수님의 초라한 행렬과 말과 무기로 무장한 화려한 빌라도의 행진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누가 진정한 왕인지, 누구의 나라가 참된 나라인지를 선택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주님이라면, 본디오 빌라도는 주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님이라면, 로마 황제 시이저는 주님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는 로마제국, 시이저의 통치가 무너져야만 실현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로마가 창과 방패로 사람들을 지배했다면, 하나님은 나눔과 섬김으로, 사랑으로 사람들을 통치합니다. 그래서 스가랴 9장 10절은 이렇게 예언합니다. “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행진은 맞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진에 대한 의도적인 대결이었습니다. 빌라도의 행진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권력과 영화와 폭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의 행진은 전혀 다른 비전, 즉 하나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님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다음과 같은 물음에 직면하여 양자택일의 기로에 섭니다. 당신은 어느 행렬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느 행렬에 참여하고 싶습니까?

∎막 11:12-14.20-21 “무화과나무 에피소드”

철이 아닌 무화과나무에 먹을 것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데 예수님은 죄 없는 무화과나무에 저주를 내립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분, 특히 보잘것없는 것들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분이 왜 이러시는 걸까요? 그러나 앞뒤 맥락을 잘 살펴보면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은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저주를 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비판이나 개혁을 통해 달라질 가능성이 없음을, 더 이상 그곳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을, 성전의 영원한 죽음을 확인합니다. 마가는 무화과나무 에피소드를 12-14절과 20-21절에 배치하고 그 중간에 ‘성전파괴’ 사건을 끼워 넣음으로써 이를 풍자적으로 드러냅니다.

∎막 11:15-19 “너의 성전을 파괴하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막 11:15-19을 ‘성전정화 사건’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역사적 예수 학자들은 이것이 ‘성전정화 사건’이 아니고, 상징적으로 ‘성전을 파괴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정화’와 ‘파괴’는 다릅니다. 정화(淨化)는 “더러운 것을 없애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화의 목적은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에 비해서 파괴(破壞)는 “때려 부수거나 깨뜨려 헐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고쳐도 다시 쓸 수 없기에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역사적 예수 학자들이 성전에서 예수님이 한 행위를 ‘성전정화’가 아니라 ‘성전파괴’라고 보는 이유는 이 사건이 기원전 6세기 말 예레미야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언적 계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7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성전 문 앞에 서서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 사람들을 막으라고 하십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거짓된 안전의식’ 때문입니다. 저들은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절대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최고 기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출입을 막음으로써, 성전이 안전을 보증하지도 않고 예배가 심판을 면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발합니다.

5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6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7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 성전을 파괴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왜 예수님이 성전파괴를 암시하셨고, 어디까지가 하나님 신앙이고 어디서부터가 우상 숭배인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 가늠자는 바로 이웃사랑입니다. 즉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고,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정의와 사랑이 먼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의와 사랑은 함께 갑니다. 정의 없는 사랑이나 사랑 없는 정의가 아니라, 정의에 기초한 사랑, 사랑에 기초한 정의를 뜻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그 예배를 인정하신다는 것이고, 그 예배가 진행되는 성전에서 쫓아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국교회는 이웃 관계를 바탕으로 하나님 관계를 풀어갑니까? 아니면 이웃은 상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열중합니까? 우리는 정화의 대상입니까? 아니면 파괴의 대상입니까?

성전(聖殿)은 신성합니다. 왜? ‘하나님의 거처(居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곳입니다.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절대화하면 어느 순간부터 우상(偶像)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가 절대 충성을 바치는 어떤 것은 우리에게 성전이면서 동시에 우상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념’ 입니다. 이념, ism은 다른 말로 하면 ‘주의’(主義)이고, ‘신념 체계’입니다. 그런데 신념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신념이 체계가 되면 문제가 됩니다. 율법과 율법주의, 기복과 기복주의 등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것이 이념이 되면, 그것만 옳고 그것과 다른 것은 틀리다는 신념 체계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와 다른 것을 차별하고 배척하고, 끝내는 없애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념 체계는 종교의 신앙 체계와 매우 흡사합니다.

앞에서 성전은 어쩌면 우상과 비슷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하나님신앙’이고, 어디서부터가 ‘우상숭배’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 우상숭배를 하나님신앙이라고 가르쳐온 것이 사실입니다. 몇 가지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며 신성화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성전 중심의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며, 마치 성전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주일성수의 원칙을 율법처럼 가르치면서 주일예배를 한 번만 빠져도 큰 벌이 떨어질 것처럼 위협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가르치고, 그에게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은 모두 ‘썩어빠질 일’이며, 교회 일과 선교만이 ‘주의 일’ 즉 ‘거룩한 일’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 나머지는 자기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렇다고 그 정반대로 하는 것 역시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허물라고 하셨으니, 이 땅에 그 어떤 형태의 종교적인 건물도 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이 제사장 제도를 폐하셨으니, 신부, 목사 등 모든 교역자/목회자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이 제사와 제물을 부정하셨으므로 십일조와 헌금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일하셨으니, 어느 하루를 떼어 내어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폐지하셨으니, 나는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겠다고 착각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주장은 나이브한/유치한 주장이고, 자유를 빙자한 방종입니다. 얽매이는 것도 문제지만, 방종 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앞의 주장들은 기장 교회 교우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조금 더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만 참 종교고, 오직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배타주의. 동성애는 창조질서에 반하는 죄악이니 양성평등까지는 몰라도 성평등은 결코 허락할 수 없다는 성차별주의. 마르크스가 종교는 아편이라 했으니,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절대악이고, 반대로 자유민주주의는 절대선이라고 보는 반공주의. “힘이 최고다”라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물신주의. 하나님을 내가 힘을 갖는데 이용하고자 하는 기복주의 등등이 그것들입니다.

나아가 이런 것들보다 더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속신학, 타력구원론 같은 것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그 보혈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있습니다. 이 교리로부터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 받았으니 너도 정죄하지 말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또 여기로부터 기독교는 자력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타력구원의 종교라는 주장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진짜로 어디까지가 하나님신앙이고 어디서부터 우상숭배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언제나 역사적 예수의 삶이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역사를 살았던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삶을 거울삼아서 우상숭배적인 삶을 파괴해 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11:22-12:27